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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42화 (42/150)

42화.

지금 뭐라……?

이 미친 황태자 놈이 뭐라고?

결혼?!

산수이는 제 귀를 의심했다.

“저하, 제가 방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결혼이라 하셨……?”

“제대로 들었는데?”

“싫습니다.”

산수이는 딱 잘라 거절했다.

하지만 프리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좋다. 영애의 마음은 이해했어.”

“그렇다면 다행…….”

“곧 남작저로 직접 찾아가 제대로 된 청혼을 하도록 하지.”

아니라고! 이벤트가 부족해서 거절하는 거 아니라고오!

“아니요. 찾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흘 밤낮으로 파티를 열며 청혼을 하신다 해도 제 대답은 ‘싫습니다.’니까요!

“……영애는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알고는 있나?”

“음, 청혼 거절……?”

설마 황족의 청혼을 거절하면 처형당한다든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은 없겠지?

그렇게 산수이가 생각하고 있던 찰나, 프리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영애는 지금 최고의 신랑감을 마다한 거야. 이 제국 땅에 나보다 더 괜찮은 놈이 있을 거라 생각하나?”

하.

왕자가 왕자병에 걸렸구나.

산수이는 머리가 자꾸만 지끈거려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대체 저와 결혼하고 싶으신 이유가 뭔데요, 저하? 그저 때밀이 때문이시라면, 비덴탕에 때밀이 예약을 해서 자주 찾아오세요. 특별히 서비스 넣어서 더 잘 밀어드릴 테니까요.”

“물론 때밀이도 하나의 이유이긴 하지.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데.”

“그럼 뭔데요?”

“그대가 아까 내 과거 얘기를 다 들었잖아.”

“이야기…… 요?”

설마 그 2황자 사망에 대한 이야기?

“그래. 영애는 지금 황실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일급비밀을 들어버린 거라고.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계속 내 품에 끼고 가는 수밖에.”

그렇게 말한 프리트는 섬뜩하게 웃으며 산수이를 끌어안은 팔을 더 옥죄어왔다.

산수이는 기가 막혔다.

‘아니, 누가 해 달랬나. 때 밀었더니 제가 먼저 술술 털어놓은 거잖아……!’

“일단 저부터 놓으시고!”

“싫어.”

산수이가 힘겹게 바동거렸지만, 프리트는 능글맞게 웃으며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은?”

산수이가 비장하게 말했다.

“역시나 싫습니다.”

“왜!”

“아까도 말했지만, 저도 취향이란 게 있다고요!”

너무나 단호한 산수이의 거절에 프리트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가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다른 놈이 있나?”

있다면 당장 썰어버릴 기세였다.

“없어요, 그런 놈.”

“그럼 대체 영애의 취향이란 게 뭔데!”

한숨을 푹 내쉰 산수이가 프리트의 푸른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조신남이요.”

“조, 조신…… 뭐?!”

“조신한 남자요! 제 말 잘 듣고, 아주 순-하고, 착하고, 자상한. 아! 거기에다 요리까지 잘하면 금상첨화겠네요.”

이제는 프리트가 되레 제가 뭘 듣고 있는 건지 멍해졌다.

조신한 남자라니? 말 잘 듣고 순한 데다 요리까지 잘해야 된다고?

이건 지나가던 개가 들어도 프리트와는 정반대의 남성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프리트를 바라보며 산수이는 그의 심장에 마지막 쐐기를 다시 한 번 쾅 박아 넣었다.

“그러니 송구하지만, 황태자 저하는 제 취향이 아니십니다.”

***

그렇게 산수이가 프리트의 때를 밀어준 지 수일이 지났다.

다행히 그 황태자 놈은 더는 결혼이니 뭐니 하며 산수이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날 조신남 소리를 듣고는 충격을 받았는지 순순히 그녀를 보내주었으니까.

‘사실 아무 말이나 지껄인 거였지만.’

조신남이라니. 지금은 어떤 미남자들을 한 트럭으로 갖다 준다 해도 관심이 없었다.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목욕탕 경영에만 열을 올려도 목욕의 신 사우나스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데.

반면 그런 산수이를 바라보는 얀피르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주인이 그날 황궁에 다녀온 이후로 분명 뭔가 이상해.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무조건 따라갈걸. 복면을 쓰고서 잠입이라도 할걸.

얀피르는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산수이가 그 황태자라는 놈을 마주친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자가 아직 비덴탕에 걸어놓은 때밀이 예약을 취소하지 않고 있으니까.

일단 황태자 놈이 오면 때를 잘 밀어줘서 조용히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얀피르였다.

그리고 마침내 프리트가 비덴탕에 방문하는 날이 다가왔다.

***

황궁에서 출발한 황금빛 마차는, 카데베르 제국의 상징인 사자 문양을 단 채 비덴비덴 남작령으로 향하고 있었다.

프리트와 함께 마차에 타고 있던 휘온은 자신의 시선 끝에 있는 그를 흘끔 쳐다보았다.

기분 좋아 보이는 프리트와는 대조적으로, 휘온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오늘 자 산수이의 때밀이 예약 명단은 모두 확인했어. 추가 예약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쁜 날이더군. 예정대로 황태자 저하께서 얀피르에게 때를 밀고 나시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거야.’

그렇게 상념에 잠긴 휘온을 향해 프리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굳이 따라올 필요 없다 했잖아, 휘온. 네가 바쁜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휘온이 웃음을 지으며 재빨리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하. 제가 추천해드린 것인데 불편하신 점은 없는지 마지막까지 살피는 것이 신하 된 자의 도리지요.”

이에 프리트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그 때밀이라는 거, 네가 말한 대로 만족스러웠으니까.”

그 말을 들은 휘온이 이상한 듯 물었다.

“저하? 때밀이…… 를 이미 경험해 보셨습니까?”

그러자 프리트가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 내가 얘기 안 했던가? 일전에 산수이 영애가 발레아나를 만나러 황궁에 왔을 때, 그녀에게 직접 때밀이를 받았지.”

“예?!”

뭐라고?!

프리트의 말을 들은 휘온의 동공이 격렬한 지진을 일으켰다.

그 말은 황태자 저하가 벌써 산수이와 만났단 것인가?

그것도 황궁에서?!

휘온이 요동치는 가슴을 억누르고 짐짓 태연한 척 프리트에게 물었다.

“사, 산수이 영애를 이미 만나셨군요, 저하. 그래서 직접 만나보니 어떠하셨는지……?”

“으음…….”

하지만 프리트는 순순히 대답을 내어놓질 않았다.

그런 프리트를 보며 휘온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 뭐지? 평소의 저하답지 않게 왜 저러시는 거지?’

휘온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마침내 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괜찮은 영애더군.”

뭐야, 그게 끝?

휘온은 몸이 달아 좀 더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그녀와 대화도 나누어 보셨습니까?”

“으음. 뭐, 그렇지.”

“어떤 얘기를 하던가요?”

“……때밀이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 그런데 휘온.”

프리트가 시퍼런 눈을 번뜩이며 휘온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궁금한 게 많지?”

꿀꺽.

휘온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전 그저 산수이 영애가 혹여 저하께 실수라도 했나 해서.”

“실수라…….”

그렇게 말하며 프리트는 입꼬리를 치켜올리곤 씨익 웃어 보였다.

“하긴…… 했지.”

“예?”

하지만 프리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맞은편에서 그런 프리트의 모습을 보는 휘온은 미칠 노릇이었다.

‘대체 무슨 실수를 한 건데?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프리트의 기나긴 침묵과, 휘온의 내적 절규와 함께 마차는 어느새 비덴비덴 남작저에 도착했다.

***

한편, 시간이 갈수록 남작저의 사용인들은 점점 더 긴장이 되었다.

아가씨가 제국 유일의 공작을 데리고 오던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제국의 황태자를 모셔왔단다.

물론 황태자가 이곳을 친히 방문하였다는 것은 비덴탕 홍보에 엄청난 도움이 될 터였다.

영지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프리트 황태자가 누구인가.

피 맛에 미친 놈이라는 소문이 제국 내에 자자하다는 것은, 남작저의 사용인들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터였다.

혹여 그를 모시던 도중 실수라도 하는 날엔 목숨이 남아나질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황실 마차에서 내리는 황태자 앞에 고개를 내리깔았다.

그런데, 프리트 황태자는 소문으로 듣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

어디를 가나 장검을 마치 지팡이 쓰듯이 휘두르고 다닌다더니.

황태자의 검은 멀쩡히 허리춤 옆의 칼집에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피 칠갑을 한 채 황금빛 머리를 사자 갈기처럼 아무렇게나 뻗치고 다닌다는 소문과는 다르게.

포마드를 발라 앞머리를 말끔하게 넘긴 모습은 그저 매력적이었다.

프리트의 훤칠한 이마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본 남작저의 사용인들은, 이미 두려움 따윈 모두 잊은 후였다.

그들은 그저 제국 황태자의 남신 같은 미모에 눈이 멀어버릴 지경이었다.

‘조, 조각……?’

휘온이 달빛같이 고운 용모에 날렵한 턱선을 자랑한다면.

프리트의 짙은 눈썹과 선 굵은 이목구비는 마치 태양이 타오르는 듯 강한 매력을 풍겼다.

하지만 프리트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알을 굴려 산수이만을 찾았다.

마침내 프리트는 맞은편에서 자신을 보고 깍듯이 예를 다하는 산수이를 찾아냈다.

그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표정으로 망설임 없이 산수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집사와 유모는 알 수 없는 촉을 느끼고는 서로를 바라봤다.

‘집사님……!’

‘유모……!’

두 사람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거의 텔레파시가 통하는 수준이었다.

‘세 번째 남편 후보감의 등장이군요……!’

프리트는 산수이의 앞에 다가가 그녀의 손등에 키스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얀피르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둘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읽어냈다.

‘둘이 어째 구면인 것 같다……?’

얀피르가 재빨리 휘온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휘온 놈의 상태도 자신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으니.

얀피르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산수이가 프리트에게 얀피르를 소개했다.

“이쪽이 오늘 저하의 때를 밀어드릴 세신사, 얀피르 경입니다.”

얀피르는 우선 산수이에게 배운 대로 예를 다해 황태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프리트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리트는 얀피르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산수이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자 말고, 영애가 나의 때를 밀어줬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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