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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41화 (4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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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이가 때를 밀수록 프리트의 호흡이 점점 더 가빠졌다.

“크윽.”

그는 제 등을 타고 전해져오는 찌릿한 감각을 음미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애, 내가 아까부터 느낀 건데…….”

“예, 저하. 말씀하십시오.”

드디어 이 황태자가 제 속을 털어놓는 것인가! 지금껏 때를 밀면서 이토록 기대되던 순간이 또 있었던가.

산수이는 그가 어떤 비밀을 들려줄지 몹시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대체 때를 미는 태도가 왜 이리 불성실하지? 왼쪽 등 윗부분이 제일 가려운데, 그쪽은 손도 안 대고!”

산수이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등짝에 상처가 너무 많아서 평소보다 훨씬 더 신경 써서 밀어주고 있었는데, 뭐?’

그런 프리트에게 산수이가 버럭 하며 쏴붙였다.

“상처가 있는 부분은 때를 밀면 안 되거든요, 저하?”

하지만 프리트는 막무가내였다.

“그딴 것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말고 피부를 박박 긁어내듯이 때를 밀도록.”

“안 됩니다.”

“밀어!”

“세신사의 명예를 걸고 그리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이 황태자 놈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거로 똥고집이야.

그러다 귀하신 옥체의 상처가 덧나기라도 하면 제가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그런데 이어지는 황태자의 말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상처가 덧나도 좋으니, 이 몸에 밴 피 냄새를 모조리 벗겨내 줘, 제발.”

그 말을 들은 산수이는 적잖이 놀랐다.

‘응……? 피를 좋아해서 칠갑을 하고 다니는 거 아니었어?’

그녀가 프리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저하, 몸에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 싫으세요?”

“그래. 피 냄새라면 아주 진절머리가 나. 특히…… 내 아우의 피 냄새가.”

“아우라 하시면…… 설마?”

프리트가 처연하게 웃으며 답했다.

“영애도 물론 알고 있겠지. 미치광이 황태자가 제 형제를 죽였다는 소문 말이야.”

“그건 그저 항간에 떠도는 소문 아닌가요.”

“사실이다.”

“예?!”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내가 이 손으로 직접…… 그 녀석의 목을 베었지.”

프리트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튄 피 냄새가 아직도 내 몸에 배어…… 사라지질 않아.”

***

약 9년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을 거라 여겼던 그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연무장에서 검술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프리트에게 그의 아우인 제2황자가 다급히 찾아왔다.

“형님! 여기 계셨군요. 오늘도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제2황자는 황비 소생의 배다른 형제였지만, 프리트는 그를 친동생인 발레아나만큼이나 사랑했다.

그가 제 아우의 붉은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쉽지만, 곧 제왕학 수업이 있다. 내일 함께 대련하는 것은 어떠냐?”

“하, 하지만……! 잠깐,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형님!”

그날따라 유독 이상할 정도로 검술 대련을 보채는 아우였다.

게다가 프리트는 검을 쥔 제 아우의 손이 평소와는 다르게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음……?’

혼자선 연습이 잘 안 되나?

그렇게 별다른 의심 없이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하는 수 없구나. 그럼 아주 잠깐만이다.”

“예! 형님!”

그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의 아우가 아무리 전력을 다해도, 일찍이 천재적인 재능을 선보이며 제국의 검이라 불리고 있는 프리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챙-

“……역시 형님은 이길 수가 없군요.”

프리트는 주저앉은 제 아우를 일으켜주었다.

“네 실력이 일취월장하니, 곧 나를 따라잡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하며 프리트는 자신의 검을 챙겨 뒤돌아섰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다. 내일 다시 대련하자꾸…….”

그때였다.

프리트는 자신의 등 뒤로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

“……!”

자객인가.

프리트는 뒤돌아볼 틈도 없이 등 뒤의 적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서걱—

새빨간 피의 분수가 프리트의 시야를 덮었다.

그는 누군가의 잘려나간 머리통이 잔디 위로 도르르 굴러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건 다름 아닌 아우의 것이었다.

프리트는 모든 사고가 정지한 것만 같았다.

이게 지금 다 무슨 일이지?

그다음의 기억은 희미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끔찍한 피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제 팔에서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새 찢긴 자신의 도복 아래로, 새카만 자상이 보였다.

아우가 떨어트린 칼끝에 프리트의 도복 자락이 걸려있었다.

그 기억을 끝으로 프리트는 쓰러졌다.

***

온몸에 독이 퍼져 며칠째 사경을 헤매는 프리트 황태자의 존재 자체가 모든 일의 증거였다.

제2황자가 검에 독을 발라 황태자를 시해하려 했다.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제2황자의 생모인 당시의 황비를 의심했지만.

제국은 이 전대미문의 비극적인 사건을 조용히 묻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오로지, 프리트가 제 아우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만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회상을 마친 프리트가 산수이를 향해 툭 내뱉으며 웃었다.

“참 질긴 목숨이야. 그렇게 맹독을 처발라도 죽질 않았어.”

하지만 그렇게 웃는 프리트의 얼굴은 처량할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산수이가 프리트를 향해 말했다.

“……그분을 많이 사랑하셨군요.”

“사랑? 하! 세상 어떤 미친놈이 사랑하는 형제의 목을 베어 죽일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정당방위였잖아요. 저하는 잘못하신 게 없어요.”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을, 수도 없이 봐 왔지.”

그가 형형한 눈빛으로 산수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리할 것 없어, 영애. 다 알고 있으니까.”

“뭘요?”

“등 뒤에선 날 살인자라 생각한다는 걸 말이야.”

그 말에 산수이가 발끈하며 외쳤다.

“아니, 저하가 제 속에 들어가 보시기라도 했어요? 대체 어떤 인간들만 만나며 살아오신 건진 모르겠지만, 전 그런 생각 안 해요!”

그 말에 프리트가 조소하며 웃었다.

“내 몸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이 흉터들과, 지독한 피 냄새를 맡고도?”

“나 참. 피 냄새가 그렇게 싫으시면, 잘 좀 씻고 다니시지 그러셨어요?”

“뭐, 뭣?”

예의는 이제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던져버린 산수이의 태도에, 당황한 프리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영애는 내가 무섭지도 않아?”

그가 산수이의 팔목을 거세게 쥐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그대를 죽여 없애는 건 일도 아니야.”

하지만 산수이는 전혀 동요하지 않으며 끄덕거렸다.

“아, 예에. 마음 약하신 분이 참 그러시겠네요.”

“누, 누가 마음이 약하다는 거지?”

산수이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9년 전, 그것도 스스로를 지키느라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사고 때문에 여태 힘들어하시는 저하요.”

“……!”

“그렇게 피 냄새를 싫어하시면서, 대체 왜 피범벅을 하고 돌아다니시는 건데요? 그러니까 자꾸 이상한 소문이 나잖아요.”

잠시간 침묵하던 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지우기 위해서다.”

“네?”

“내 몸에 밴…… 아우의 피 냄새를 덮어버리기 위해서라고.”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날 이후로 제대로 잠을 자 본적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피 냄새를 지우려고 피 냄새로 덮었다…… 뭐 그런 소리야?

산수이가 황당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니, 피 냄새가 싫으면 그걸 씻어내야지, 왜 다른 피를 묻히고 있어요? 아 됐고, 빨랑 다시 엎드려보세요.”

“하……?”

“제가 그 피 냄새, 싹 지워드릴 테니깐 엎드려 보시라고요.”

순간 흔들린 프리트의 표정을 보며, 산수이가 싱긋 웃었다.

“장담할게요. 저한테 제대로 때밀이받고 나시면, 다시는 몸에서 피 냄새가 나지 않으실 거예요.”

그렇게.

산수이는 어느 때보다 더 성심을 다해 다시 한 번 프리트의 때를 밀기 시작했다.

이제 대형 목욕탕 안에는 오로지 때를 벗겨내는 소리와, 황태자의 신음만이 가득했다.

이것이 그의 신음인지, 아니면 흐느끼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9년 전에 밴 피 냄새가 아직까지 몸에 남아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산수이는 이 때를 미는 행위를 통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묵혀져있던 아픔을 벗겨 내주고 싶었다.

‘오늘의 세신이 끝나고 나면, 부디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실 수 있길 바라요, 저하.’

이윽고 그의 몸을 모두 밀어냈을 때, 프리트는 어느새 눈을 감고 아이처럼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었다.

항상 구겨져있던 미간이 스르르 풀리며, 굳어있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오랜만에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산수이는 그런 프리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는 건 꼭 천사 같네. 아까랑은 다르게.’

그녀는 프리트의 이마에 흘러내린 그의 머리칼을 살며시 쓸어 올려주었다.

***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프리트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금 얼마나 꿀잠을 자는 중이겠어. 방해하지 말자.’

산수이는 살금살금 마사지실을 빠져나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때 산수이의 눈에 아까의 대형 온탕이 들어왔다.

‘앗 맞다, 저게 있었지!’

목욕 덕후인 산수이의 앞에 놓인 초대형 황궁 온탕이라니.

사실 이건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놓은 격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결국 산수이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온탕 앞에 쭈그려 앉아 물속에 손가락을 한번 쏙 담가보았다.

‘하아아…… 좋다.’

손끝에 닿는 온수의 찌릿한 감촉에 산수이의 온몸이 전율했다.

딱 좋은 온도에 몸의 긴장이 점점 풀어져 갔다.

‘무슨 입욕제를 넣었기에 이렇게 좋은 향기까지 나지?’

정말로 아주 잠깐, 손만 슬쩍 담가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향기에 취한 그녀는 이곳에서 그만 시간을 지체해버렸다.

이윽고 산수이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차, 내가 미쳤지! 얼른 돌아가야겠다.’

시간이 꽤 경과했음을 깨닫고 서둘러 황태자에게 돌아가려던 순간.

뒤에서 굵고 단단한 팔뚝이 튀어나오더니 그녀의 몸을 옭아매었다.

산수이가 저항할 사이도 없이 두 사람은 함께 온탕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꺅!”

“현행범을 잡았군. 내 허락도 없이 곁을 떠나다니, 불충하기 짝이 없어.”

어느새 깨어난 프리트가 온탕 안에서 자신의 팔로 그녀를 포박하고 있었다.

“화, 황태자 저하……!”

산수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게 빨리 되돌아갔어야지, 후회가 밀려오던 순간.

프리트가 자신의 이마를 산수이의 어깨에 떨어뜨린 채 속삭였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푹 잘 수 있었어. 정말……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소리가 못 견디게 간지러웠다.

산수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하지만 이어지는 프리트의 말에 그녀는 아까보다도 더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내 전속 세신사가 되는 건 어떤가?”

“예?! 아,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프리트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어째서지?”

황실 전속이 되면 비덴비덴 남작령을 떠나야 하잖아.

그럼 목욕의 신이 내린 미션을 완수할 수 없게 된다고!

속으로 절규하던 산수이가 대답했다.

“에, 그게 그러니까. 저는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가문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뭐야, 겨우 그런 이유인가?”

프리트는 웃으며 산수이의 몸을 앞쪽으로 빙그르르 돌렸다.

‘허, 허억?’

이제 산수이는 프리트의 팔에 갇힌 채 그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까스로 내뻗은 양손이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서로의 몸이 맞닿을 뻔했다.

‘위, 위험해!’

하지만 산수이가 몸을 뒤로 빼면 뺄수록, 프리트는 그 굵은 팔로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렇다면 직접 작위를 받아 남작이 되는 건 어떤가? 황실 정기 회의 때마다 찾아와 내 때를 밀어주는 거지.”

“하지만 그러다 저하께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나면…….”

“아아, 내가 생각이 짧았군. 그래, 미혼의 영애에겐 스캔들이 될 수도 있겠어.”

고개를 끄덕이던 프리트가 산수이를 향해 시퍼런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세신사 말고, 나와 결혼해서 황태자비가 되어 줘,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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