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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38화 (38/150)

38화.

산수이에게 때를 밀러 오겠다는 놈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국의 황태자라니.

이 말을 들은 얀피르 역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휘온 하나만으로도 신경이 쓰여 죽겠는데.

비덴탕에 드나들 수컷이 한 마리 더 늘어나는 것도 모자라 이젠 황태자라니……!

그럼 제 맘대로 찢어 죽이지도 못할 터였다.

그랬다간 제 주인인 산수이가 역모죄로 처형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얀피르 역시 평소 제국의 황태자에 대한 소문을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

그가 휘온에게 물었다.

“그 황태자 말이야. 피 맛에 미친 놈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미, 미친놈이라니! 그런 불충한 표현은 절대 다른 데 가선 사용하지 마라.”

“그럼 미친놈 아니고 뭔데?”

“크흠!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면이 있으신 것뿐이다.”

미친놈이 맞긴 맞나 보군.

얀피르가 굴하지 않고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친놈인데? 성격이 파탄이야? 설마…… 그 자식 변태야?!”

“변태라니! 그저 전장에서 적을 많이 베실 뿐이다!”

“뭐야, 고작 그까짓 거 가지고 뭔 미친놈이야? 전장에선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오히려 제가 죽는다고.”

그렇게 말한 얀피르가 눈을 가늘게 뜨곤 휘온을 바라봤다.

“뭐 다른 이유가 있는 거지?”

“…….”

“네놈이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날 이 밤에 불러냈을 리는 없잖아.”

“그게.”

망설이던 휘온이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저하께선, 남들보다 좀 더…… 피를 많이 보시는 편이다.”

얀피르는 그 행간에 담겨있는 의미를 빠르게 파악했다.

‘주인이 그 황태자라는 자의 때를 밀다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소리군.’

얀피르가 굳은 표정으로 휘온에게 물었다.

“휘온 너, 분명히 생각해 둔 해결방안이 있으니까 이렇게 날 부른 거겠지?”

“그럼 당연하지. 얀피르 네놈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뭔데.”

잠시 망설이던 휘온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얀피르 네가 산수이 대신 황태자 저하의 때를 미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얀피르의 어안이 벙벙했다.

“그게 네가 생각한 해결 방안이냐……?”

“그렇다.”

그 대답에 얀피르가 휘온을 향해 조소하며 말했다.

“다른 놈도 아니고 너한테 들으니 어이가 없군. 내가 때를 밀어줄 때 아프다고 징징댄 게 누구였더라.”

“그, 그런 건 좀 잊어버리라고!”

“혹시 내가 때 밀다 실수해서 황태자한테 참수라도 당하길 바라고 시키는 건 아니지? 만약에 나랑 싸움이라도 나게 되면 둘 중 죽는 건 그 황태자 쪽일 텐데?”

헛다리 짚는 얀피르를 보며 휘온이 혀를 찼다.

“쯧. 그런 뜻이 아니다. 오히려 네놈이 황태자 저하의 옥체에 상처라도 내는 일이 없도록 때밀이 기술을 제대로 배워야지! 산수이에게…… 직접.”

휘온이 얀피르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얀피르, 네놈이 비덴탕의 최초 남성 세신사가 되는 거야.”

그가 얀피르의 단단한 팔뚝을 꽉 주무르며 말했다.

“이 인간의 것이 아닌 힘, 지치지 않는 체력! 여기에 산수이에게 직접 기술을 하사받아 섬세함까지 더해진다면……! 황태자 저하의 때를 밀어드릴 수 있는 세신사는, 이 제국 땅에 오직 얀피르 네놈밖엔 없다고!”

“하……?”

이것은 훗날 비덴탕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세신사 2호가 탄생한 역사적인 밤이었다.

***

산수이는 자신의 방에 찾아온 얀피르를 보며 놀라 되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때밀이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응, 가르쳐 줘. 열심히 할게.”

정말 굳은 결심을 한 것 같은 얀피르의 모습을 보며, 산수이는 적잖이 놀랐다.

‘갑자기 얀피르가 웬 때밀이……? 아니지, 생각해보니 좋은 아이디어잖아? 나 혼자 손님을 받는 게 힘에 부쳤기도 하고.’

산수이는 이 획기적인 방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할 것이 있었다.

“좋아. 그런데 갑자기 세신사가 되겠다는 이유를 물어봐도 돼?”

“그건…….”

얀피르는 일전의 대화에서 휘온이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휘온은 프리트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와의 대화를 상기하며 얀피르가 산수이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면 양쪽 때밀이실에서 동시에 손님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들은 산수이의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그렇다! 손님이 두 배, 그러면 이익도 두 배!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 폭죽은 금세 짜게 식었다.

“하지만 아직 남성 손님들은 때밀이를 부탁하지 않으시는걸…….”

“조, 조만간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미리 나를 가르쳐 놔.”

그 말에 다시금 산수이의 머릿속에서 폭죽이 펑펑 피어올랐다.

그래. 얀피르 말이 맞아. 유비무환 정신!

혹시나 모를 때를 대비하여 후학을 양성해야겠다고 산수이는 생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첫 때밀이 강습이 시작되었다.

***

비덴탕의 때밀이실 안.

산수이의 앞에 놓인 대리석 판 위에는, 다름 아닌 남작저의 집사가 엎드려있었다.

[야! 너두 때 밀 수 있어]라는 특이한 이름의 강의 첫 피실험자…… 아니, 때밀이 대상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엎드린 채 생각했다.

‘때밀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산수이 아가씨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는 생각이시군요. 과연 얀피르경…….’

곧이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얀피르가 때밀이실로 들어왔다.

그는 검은색의 짧은 하의만을 걸친 모습이었다.

얀피르는 유려한 상반신을 그대로 드러낸 채 한 손에 열심히 때수건을 감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얀피르의 모습을 본 집사와 산수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여, 역시 얀피르 경 몸은…….’

‘……정말이지 심장에 안 좋다니까.’

산수이는 다시 한 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얀피르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때밀이 강의를 시작할게.”

산수이는 얀피르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감겨있던 이태리타월을 주르륵 풀어버리며 말했다.

“우선 감는 법부터 다시 배우자. 이렇게 느슨하게 말고, 팽팽하게 잡아당겨서 감아야 때를 밀 때 풀리지 않…….”

그때 갑자기 뜨거운 시선을 느낀 산수이는 고개를 들어 얀피르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태리타월 쪽은 관심도 없고 오직 산수이 얼굴만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너 집중 안 할래? 열심히 배운다며!”

“굳이 보지 않아도 손에 감기는 느낌으로 알 수 있는데 왜.”

“그래도! 직접 보는 건 또 다르단 말이야.”

“알겠어.”

산수이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며 한 번 더 얀피르의 손에 이태리타월을 감아주었다.

뒤에서 집사만이 그런 두 남녀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태리타월은 다 감았고, 그럼 이젠.”

힘겹게 첫 가르침을 마친 산수이는 곧이어 집사의 등을 밀며 시범을 보였다.

“때를 밀 때는 무작정 힘을 줘서 문지르기만 하면 안 돼. 허리와 팔, 그리고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모두 사용하되, 손님의 피부 결 방향까지 고려해서…….”

하지만 산수이는 설명 도중 멈칫했다.

갑자기 그녀의 목덜미로 뜨거운 입김이 닿아왔기 때문이다.

이윽고 때를 밀고 있던 그녀의 팔 위로 얀피르의 굵은 팔뚝이 겹쳐왔다.

그렇게 얀피르의 양팔 사이에 몸이 갇히며, 순식간에 산수이는 그에게 안겨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얀피르! 얼른 가서 집중 안 해?!”

“하고 있는데? 집중. 그것도 엄청 열심히.”

“내가 때 미는 걸 앞에서 자세히 봐야지!”

하지만 얀피르가 고개를 저었다.

“난 보기만 해서는 잘 모르겠던데. 이렇게 주인 너랑 함께 포개져서 같이 몸을 움직여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얀피르는 산수이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이, 이놈 자식 이러려고 때밀이 가르쳐 달라고 한 거 아냐?!’

산수이의 얼굴이 또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그 변화를 눈치챈 얀피르가 산수이에게 말했다.

“주인. 날 가르치는 데 집중해야지, 왜 자꾸 얼굴이 빨개져? 혹시 너…….”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도 이제 나를 원해?”

“으, 으아악!”

산수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등 뒤의 얀피르를 있는 힘껏 밀쳐냈다.

“시…… 십 분간 휴식!”

그 말과 함께 산수이는 때밀이실을 나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던 얀피르는 곧바로 산수이를 쫄래쫄래 따라나섰다.

“쉴 시간이 어딨어, 주인! 얼른 더 가르쳐줘야지.”

이제 황량한 때밀이실엔 대리석 판 위에 엎드려있는 집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두 분 연애하시는 것은 좋지만, 부디 저도 여기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십시오! 수건이라도 덮어주고 나가셔야죠. 너무 춥단 말입니다……!’

결국,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산수이는 때밀이 강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얀피르의 심장 폭행 공격이 계속해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 내가 얠 두 번 가르쳤다간 앓다 죽게 생겼네.’

하지만 건성으로 배우는 것처럼 보였어도, 얀피르는 배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무엇보다 인간의 것이 아닌 근육이나, 스피드 등은 산수이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나보다도 잘 밀겠는데?’

집사의 등을 시원시원하게 밀어주는 얀피르를 지켜보며 산수이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출어람이다. 이제 하산시켜도 되겠어. 어차피 여기서 더 가르쳤다간 내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얀피르는 최초의 남성 세신사가 될 준비를 마쳤다.

***

그리고 며칠 후, 휘온에게서 서신이 날아왔다.

프리트 황태자가 비덴탕을 방문하여 때밀이 및 마사지를 받고자 하니, 예약을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황태자께서 가급적 남성 세신사를 원하신다는 추신도 함께.

서신을 읽어 내려간 산수이는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제국의 황태자가 고객으로 온다니?

그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드디어 휘온 말고도 첫 남성 고객님이 때를 밀러 오신다! 그것도 세상에…… 완전 VVVIP잖아!’

황태자의 때를 잘 밀어드리면 남성 때밀이에 대한 긍정적인 입소문이 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산수이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얀피르가 실수하지 않도록 완벽히 연습을 해놔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닌가.

마치 이곳에 남성 세신사가 준비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나 때맞춰 도착한 서신이라니.

산수이는 얀피르를 한번 흘깃 바라보았다.

‘설마 얀피르,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때밀이를 가르쳐 달라고 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휘온도 아니고 얀피르가 어떻게 황태자의 일정을 알 수 있겠는가.

산수이는 그저 자신의 억측이라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휘온에게 답신을 적었다.

얀피르가 자신에게 집중 교육을 받은 후, 남탕 때밀이실에서 황태자님을 세신할 수 있도록 조치해 놓겠다고.

물론 산수이는 뒤에서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얀피르의 표정을 미처 보지 못했다.

이렇게 휘온과 얀피르가 세운 작전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황태자와 산수이의 극적인 때밀이 만남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휘온과 얀피르는 한 가지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다.

그들의 이 완벽한 계획에 엄청나게 초를 치려는 사람이 있다는 걸.

며칠 후 산수이는 또 다른 서신 한 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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