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병상에 누워있는 크랑크 자작 부인의 모습을 본 산수이와 휘온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자작 부인은 단순한 알레르기 증상을 넘어서,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참담한 표정으로 귀부인을 바라보는 산수이의 앞에, 갑자기 크랑크 자작이 나타나 그녀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너! 감히 그딴 물건을 판매해서 내 마누라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커, 커헉……!”
산수이는 그의 손에 매달린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분노한 휘온이 산수이에게서 그를 떼어낸 후,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자작! 영애에게 그 무슨 망언입니까!”
“에데카나 공작님! 지금 투자처 편을 드시는 겁니까? 그놈의 이태리타월이라는 것 때문에 치료비가 얼마나 들고 있는 줄이나 아쇼?”
자작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산수이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크랑크 자작님,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자작 부인의 치료비는 저희 측에서 전액 부담하기로 하겠습니다.”
“하, 당연한 소릴! 설마 치료비만 홀랑 내주고 내빼겠단 건 아니겠지?”
위협적인 자작을 막아서며 휘온이 말했다.
“진정하십시오, 자작. 안 그래도 지금 부인을 위해 황실 주치의를 모시고 오는 길이니까요.”
“화, 황실 주치의요……?”
제국 황실 주치의는 신의 의술을 가졌다 칭해지는 이들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제아무리 고위 귀족이라 해도 황실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휘온에게서 이번 사건을 전해 들은 발레아나 공주가 특별히 주치의를 파견해 주었다.
휘온의 말을 들은 크랑크 자작은 조금 화가 누그러진 듯했다.
“크흠. 그렇다면 뭐…….”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휘온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또한 저희가 자작님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만, 한번 보시겠습니까?”
“에, 에데카나 공작님께서 제게 선물을요?”
“그렇습니다.”
휘온은 자신이 들고 있던 고급 상자를 자작에게 내밀었다.
화려하고 디테일한 세공이 돋보이는 고가품이었다.
상자를 본 자작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어디…….”
달칵 소리와 함께 열린 상자 속의 벨벳 쿠션 위에는.
다름 아닌 최고급 이태리타월이 놓여있었다.
그 선물을 본 자작이 분노에 가득 차 소리를 질렀다.
“에데카나 공작님!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이 망할 것 때문에 부인이 저 지경이 됐는데 이걸 다시 선물로 주시다니요!”
하지만 휘온은 대답 없이 자신의 소매를 걷어 올려 팔뚝을 드러냈다.
이를 본 자작이 놀라 소리쳤다.
“지, 지금 뭐 하는……!”
곧이어 휘온은 상자 속 이태리타월을 집어 들어 망설임 없이 자신의 피부를 세게 박박 밀어댔다.
이태리타월에 거칠게 밀린 휘온의 피부가 발갛게 변했다.
순간 자작저 내 모든 사용인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며 정적이 흘렀다.
휘온이 자작에게 물었다.
“부인께서 이태리타월을 쓰신 후 알레르기 반응이 즉각 일어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 그렇소만.”
“그렇다면 저도 이제 곧 발진과 고열이 나야 하는데, 별다른 증상이 일어나질 않는군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자작을 향해 휘온이 덧붙였다.
“자작 부인께서 사용하셨던 이태리타월은, 안타깝지만 저희 제품을 모방한 가짜였기 때문입니다.”
“뭐, 뭐라? 가짜요?”
“그러므로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여기 비덴비덴 남작 영애가 자작 부인의 치료비를 대어드릴 이유는 전혀 없지요.”
그 말을 들은 자작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휘온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 역시 투자자로서 이번 모조품 사건을 미리 알고 막지 못해 크나큰 책임감을 느끼는 바입니다.”
“에데카나 공작님……!”
“이에 자작 부인의 치료비를 모두 지원해드릴 뿐 아니라, 직접 범인을 잡아 엄벌에 처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자작님?”
***
크랑크 자작은 휘온에게 자신의 부인이 사용했던 문제의 가짜 이태리타월을 넘겨줬을 뿐 아니라.
이를 선물했다는 지인의 인적 사항도 알려주었다.
달리는 마차 안에서 산수이가 휘온을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팔을 너무 세게 문지른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보여줘야 우리 이태리타월의 무해성을 입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살짝 피 맺혔던 건 알고 있어요?”
“아, 마침 황실 주치의도 계셨는데, 붕대라도 감고 올 걸 그랬나요? 하하.”
이에 산수이는 말없이 휘온의 옆에 가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휘온의 팔에 감아주었다.
그런 산수이를 바라보는 휘온의 뺨에 홍조가 돌았다.
“크, 흠흠!”
“정신없었을 텐데 황실에는 언제 연락했던 거예요? 일개 귀족의 일에 황실 주치의가 와 주신 것도 놀랍지만…….”
“뭐가 됐든 이 에데카나 공작한테는 다 쉬운 일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는지. 정말 고마워요, 휘온.”
그렇게 말한 산수이는 휘온의 팔에 손수건의 마지막 매듭을 묶어주며 미소 지었다.
휘온은 그런 산수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부디 저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까요.”
자신을 바라보는 휘온의 진지한 눈빛에 산수이의 얼굴이 붉게 번졌다.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있잖아요, 휘온.”
“말씀하십시오.”
“휘온은 제가 때 밀어주는 거 좋아하시죠?”
“그야 물론이죠, 산수이.”
“그럼 제가, 다시 한 번 공짜로 때를 밀어드릴까요?”
휘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뭐뭐…… 지금 뭐라고?!’
싫냐고? 말이 돼? 당연히 땡큐지!
휘온의 마음속에선 거의 삼바 축제가 열렸다.
하지만 그는 태연한 척 품위를 지키며 대답했다.
“크, 크흠! 그, 그래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수이.”
산수이가 기쁘게 웃었다.
“아하하. 이렇게 좋아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네요.”
“그럼 저, 정말 밀어주시는 겁니까?!”
“그럼요.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그땐…….”
휘온의 심장은 거의 터져나가 버릴 지경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비장함이 서렸다.
‘내 공작 명예를 걸고서라도 반드시 범인을 잡는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할 경우 위증을 만들어서라도 잡아 처넣을 거니까…….’
똑똑한 놈이 돌아버리기까지 하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산수이는 그런 휘온을 보며 생각했다.
‘이거 봐. 역시 내 때밀이 실력이 문제인 게 아니었어. 때 밀어준다고 하니까, 휘온은 이렇게나 좋아하잖아?’
그렇게 동상이몽 속에 이윽고 마차가 목적지에 다다랐다.
***
크랑크 자작 부인에게 가짜 이태리타월을 선물한 자는 그저 평범한 귀족 부인이었다.
“그것이 가짜였을 줄은……!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절대 자작 부인께 선물로 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충격에 빠져 울먹이는 귀부인의 모습을 본 산수이는 그녀가 범인일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진심으로 크랑크 부인을 걱정하고 있네. 저분도 얼마나 놀랐겠어. 호의로 선물한 물건 때문에 친구가 의식까지 잃었으니. 게다가 저분이 범인이라면, 미쳤다고 제 손으로 가짜를 선물했겠어?’
하지만 그녀에게서 들은 정보로는 범인이 누구인지 도저히 단서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크랑크 자작 부인의 생일 선물로 이태리타월을 사 주고 싶었는데, 바쁜 일정 탓에 비덴비덴 남작령까지 직접 내려갈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비덴탕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행상을 통해 이태리타월을 사들였다는 것이었다.
남작저로 돌아온 산수이 일행은 지금까지 알게 된 단서를 모두 모아놓고 고민에 빠졌다.
가짜 이태리타월.
행상.
산수이가 테이블 위에 오른 가짜 이태리타월을 바라보며 말했다.
“겉보기엔 정말 비슷하게 생기긴 했네요. 물론 이게 좀 더 거칠어 보이지만. 실제 감촉은 얼마나 비슷하게 구현했으려나?”
산수이가 해당 이태리타월을 집어 들려던 찰나.
지금껏 멀리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얀피르가 빠르게 다가와 타월을 낚아채며 말했다.
“함부로 만지다 너도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고는 타월을 휘온에게로 던져버렸다.
깜짝 놀라며 타월을 받아든 휘온이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이 자식이……. 나는 발진 나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냐.”
“그거 좀 만졌다고 안 죽으니까 엄살 부리지 마. 너 머리 좋잖아. 가서 그 이태리타월 분석 좀 해봐.”
“안 그래도 이미 섬유 조각을 채취해 황실 연구소에 넘기고 오는 길이다.”
“그래? 잘됐네. 넌 그럼 지금 당장 연구소로 꺼지면 되겠다.”
“분석 결과에는 시일이 걸린다, 이 멍청한 놈아.”
두 남자가 이 와중에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혼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산수이가 입을 열었다.
“제국 내에서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행상들을 모두 추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우선은 분석 결과를 기다려보죠.”
그리고 며칠 후, 그들에게 도착한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
휘온은 자신의 앞으로 도착한 봉투를 뜯어 분석 결과를 읽어보았다.
가짜 이태리타월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직물들 이외에.
한 특수 식물의 섬유가 검출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 학명을 읽은 휘온의 표정이 단박에 구겨졌다.
“유, 유푸스 꽃?!”
“유푸스 꽃? 그게 뭔데요, 휘온?”
제국 및 다른 왕국들의 모든 식물학적 지식 역시 빠삭하게 꿰고 있는 휘온이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맹독을 지닌 꽃입니다. 희고 작은 외관만 봐서는 상상할 수 없이 위험한 식물이죠. 혈액을 통해서 독성 물질이 전달되는데, 조금만 희석해서 사용해도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어요.”
“그, 그런 걸 목욕 제품에 사용했단 말이에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짓을 꾸민 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군요. 그렇다면 범인의 목적은…… 아마도 이태리타월의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누가?
모두가 함께 생각에 잠겨있던 중 마침내 휘온이 입을 열었다.
“산수이, 탐폰 판매 개시를 잠시 중단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휘온도 역시 같은 생각이었군요.”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맹독이 들어간 제품을 유통해서라도 이태리타월의 명성을 떨어트리려는 놈이었다.
그런 자의 다음 목표야 뻔했다.
휘온이 덧붙여 말했다.
“이번엔 우리가 역으로 놈의 목표를 이용해 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