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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27화 (27/150)

27화.

좋아합니다아—

좋아합니다-

휘온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순간 그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휘온은 조금 전 자신이 내뱉은 말이 계속 귓가에서 메아리처럼 맴도는 것만 같았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고백이었다.

‘장소도, 함께 듣는 사람도, 게다가 멘트까지 모든 것이 끔찍했다…….’

휘온은 당장 접시 물에 코라도 박아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 민망한 침묵을 깬 건 다름 아닌 얀피르였다.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심각한 분위기에 미안한데…… 지금 하는 말들이 다 무슨 뜻이야?”

***

산수이는 얀피르의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이세계 사람들은 성(性)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겠구나!’

잘 모른다 하면 또 가르쳐 줘야지.

그것도 모르고 괜히 예민하게 굴었다 싶었던 산수이는, 두 사람을 향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얀피르, 휘온. 그럼 이제부터 다 함께 아름다운 우리의 성에 대해 배워보도록 할까요?”

“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무슨 성?”

각기 상반된 표정의 두 학생을 향해, 산수이는 커다란 종이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펼쳐 보였다.

촤라락—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말이죠.”

난데없는 미술 시간에 눈만 끔뻑거리던 휘온이었지만, 곧 얀피르보다 먼저 그 그림의 정체를 알아채곤 입을 떡 벌렸다.

“으, 으아, 아아아아…….”

“왜? 이게 대체 뭔데 그래?!”

크게 당황한 휘온과는 다르게, 얀피르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한 산수이가 뿌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 이것이 바로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도입니다.”

그림을 본 휘온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거기에는 남성의 신체뿐 아니라 지금껏 잘 알지 못했던 여성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

반면 얀피르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이게 인간의 몸이라고?”

“응. 여성의 경우엔 바로 이 부분으로 탐폰이 들어가는 거야.”

산수이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휘온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저를 얼마나 편하게 생각하면 이런 낯 뜨거운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걸까.

‘난 학생이 아닙니다, 산수이. 그대를 연모하는 남자란 말입니다!’

하지만.

처음이었다.

휘온이 이런 수준 높은 인체 해부학 강의를 듣게 된 건.

‘제국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나다. 당연히 이 땅에 있는 모든 의학 서적 역시 통달했었는데.’

산수이의 명강의가 진행됨에 따라, 휘온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훌륭한 강의는 난생처음이다! 제국 대학의 그 어떤 교수에게서도 배울 수 없었던 새로운 관점이야.’

왕년에 공부 좀 했던 애는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

휘온은 저도 모르게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펜대를 잡았다.

그리고 산수이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방대한 지식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필기하기 시작했다.

사사삭—

그렇게 계속해서 산수이의 특강이 이어졌다.

“자, 참 쉽죠?”

“음, 음. 과연!”

휘온은 잉크 색까지 바꿔가며 작은 설명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적어나갔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하니 별표 하시고요.”

‘중요한 부분에 별표라? 그것참 좋은 생각…….’

자신의 완벽한 필기를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짓던 휘온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차, 이게 아닌데…….’

산수이한테 점수를 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이렇게 열심히 수업만 듣고 있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지금 중요한 건 수업이 아니다. 어서 아까의 그 바보 같은 고백을 만회해야…….’

하지만 그때, 산수이가 휘온에게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휘온의 얼굴이 또다시 새빨개졌다.

“휘온, 이제 이해하셨죠?”

“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탐폰의 원리 말이에요.”

산수이가 말을 이었다.

“어때요, 투자 가치가 있어 보이나요?”

그제야 휘온은 깨달았다.

지금 산수이에겐 자신도, 저 짐승 얀피르 놈도, 게다가 아까의 그 바보 같던 고백조차.

탐폰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목욕탕 경영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해사하게 웃는 산수이를 보며 휘온은 속으로 절규했다.

‘정말이지, 저는 그대에게 투자자일 뿐인 겁니까? 산수이, 나도 남자라고요!’

하지만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산수이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반짝거린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제국 땅에서 나를 가르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된단 말인가. 산수이, 그대 매력의 한계는 대체……!’

그렇게 모순된 감정 사이에 빠진 휘온이 계속해서 고뇌하는 동안, 그 옆에는 멘털이 더 심각하게 나가있는 사람…… 아니, 드래곤이 있었다.

얀피르는 지금까지 산수이가 그린 모든 그림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이 충격에 휩싸여 점점 굳어져갔다.

“저, 주인……?”

“네, 얀피르 학생. 질문하세요.”

얀피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인간의 아기는 다리 밑에서 주워오는 게 아니었어?”

“뭐라고?!”

왜, 아예 황새가 물어다 준다고 하지 그러냐!

산수이는 성에 대한 얀피르의 지식이 맨틀을 넘어 핵도 뚫어버린 저 먼 어딘가쯤에 자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으음, 역시 우리 얀피르는 그냥 애새끼였구나. 나를 핥는 것도 그저 개가 사심 없이 주인을 핥아대는 그런 거였어. 이거, 아주 긴 수업이 되겠는데.’

산수이가 얀피르를 향해 답했다.

“좋은 질문이야, 얀피르. 아기를 다리 밑에서 주워온다는 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옛 성현들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사실…….”

그렇게 [여성의 몸과 탐폰] 강의에 이어 산수이의 [성교육 개론]이 시작되었다.

사실 산수이도 그쪽 실전을 잘 모르긴 매한가지였다.

‘연애를 해 봤어야 알지…….’

그러나 원래의 세계에서 수많은 콘텐츠들을 섭렵하며 누구보다 이론을 빠삭하게 꿰고 있던 그녀가 아닌가.

‘할 수 있어, 우리 애 잘 가르칠 수 있어! 내가 그동안 유료 결제에 쓴 돈이 얼만데!’

그렇게 산수이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냐 하면!”

갑작스러운 주제 변경에, 휘온은 차마 산수이를 바라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저, 저 얘기까진 무리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적을 수가 없어!’

하지만 얀피르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

입을 쩍 벌리며 인류 번식의 역사에 대해 경청하던 얀피르.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눈은 점점 더 커지며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산수이는 그 눈빛의 변화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열정적으로 계속 강의를 이어나갔다.

“남녀가…….”

얀피르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함께…….”

그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랑을……!”

그리고 마침내 강의가 정점에 달했을 때.

그의 기억 속에 봉인되어있던 ‘그것’에 대한 모든 지식들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아……!”

얀피르는 마침내 깨달았다.

왜 그렇게 산수이랑 닿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는지. 제 몸이 달아오르던 이유가 뭐였는지를.

고대 서적에서 읽었던 드래곤 종족만의 특별한 성 지식과 온갖 방중술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되살아났다.

‘크르르…….’

잠들어있던 어둠의 지식이 깨어난 이상, 얀피르는 산수이가 알던 예전의 애새끼가 아니었다.

그렇게 각성한 얀피르의 귀에서 산수이의 목소리가 점점 아득해져갔다.

쿵쿵쿵.

그녀가 눈앞에서 살랑살랑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꼭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 대는 것처럼.

게다가 산수이의 숨결, 향기 모든 것이 평소보다 몇 곱절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녀가 자신을 보고 예쁘게 웃었다.

그녀가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그녀의…….

입술.

꿀꺽-

‘아, 진짜 너무 예뻐서 돌아버리겠네…….’

눈이 완전히 풀려 맛이 간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산수이만을 좇았다.

‘이대로 너한테 입을 맞추고 싶어졌어.’

하지만 급격히 말이 없어진 얀피르를 보며, 산수이는 혼자만의 오해에 빠져있었다.

‘얀피르 표정이 갑자기 왜 저렇게 안 좋지? 수업이 영 재미없나?’

역시 지루할 땐 그거지.

산수이가 얀피르를 향해 말했다.

“얀피르, 내가 한 얘기 다 이해했지?”

“…….”

“그럼, 지금까지 배운 걸 나랑 같이 실습해볼까?”

“뭐?”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든 얀피르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 실습을 하자고?!”

그때였다.

쾅-!

뿌드득.

흥분한 얀피르가 발을 구르자 바닥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났다.

‘이런 미친!’

우연히 옆에서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된 휘온은 놀라서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를 미처 보지 못한 산수이는, 갑작스러운 굉음과 진동에 깜짝 놀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헉! 지금 뭐 무너지는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두 남자는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닌데? 방금 지진도 살짝 일어났는데?”

하지만 두 남자는 여전히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진짜 뭐지?”

벌떡—

그때 얀피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빠르게 달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도주했다.

“야, 얀피르? 너 갑자기 어디 가!”

당황한 산수이가 중얼거렸다.

“그림 그리기가 그렇게 싫었나?”

그 말에 휘온이 놀란 표정으로 산수이를 향해 물었다.

“그 실습이란 게, 그림이었습니까?!”

“네, 아무래도 직접 그려봐야 이해가 빠르니까요?”

“하아…….”

휘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마른세수를 해 댔다.

그 모습을 본 산수이가 물었다.

“휘온? 대체 무슨 일이에요? 얀피르는 또 왜 저러고.”

“……별일 아닙니다.”

“뭔가 이상한데? 휘온, 저 일단은 얀피르 좀 따라가 볼게요.”

“아니 굳이 따라갈 필요까지는!”

휘온은 산수이를 말리려 했으나, 바닥의 균열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어서 다녀오십시오.”

“고마워요. 금방 돌아올게요, 얀피르-!”

산수이는 얀피르를 따라 방을 나섰고.

휘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얀피르가 앉아있던 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몸을 숙여 문제의 사건 현장을 자세히 확인했다.

“하!”

그 참사를 보며 고개를 젓던 휘온은, 주위를 살핀 후 서둘러 장식장 하나를 밀어 바닥을 가렸다.

그러고는 낮게 중얼거렸다.

“……망했군.”

그간 휘온이 가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잠들어있던 판도라…… 아니, 얀피르의 상자가 열리는 일.

그것도 아주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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