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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26화 (26/150)

26화.

수상한 마차 안에 앉아 있던 그 남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바로 금사로 된 이태리타월이었다.

“이, 이것은 금사가 아닌가?”

“헉, 그게 금으로 만든 것입니까? 어쩐지 번쩍번쩍하더라니…….”

“그래서 대체 이걸 다 얼마에 구매한 건가?”

“으음, 지금 뭐 한정판이라는 것까지 판매하고 있어서 계산이 어렵더라고요. 제가 까막눈이지 않습니까? 그냥 금화 주머니를 냈더니 알아서 계산해 주시던데요?”

“그래서 얼마냐고!”

사내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어 그러니까 공이 세 개…… 아니다, 네 개였나?”

“뭐? 대체 얼마를 쓴 거야!”

그가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자네 미쳤나! 이걸 보시면 그분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어! 샘플만 사 오면 됐지, 누가 이런 명품 때수건까지 구매하랬나!”

하지만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있는 대로 싹 다 긁어모아 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야 카피하기 좋다고요.”

카피.

그렇다. 이들은 지금 산수이의 때수건을 카피하려고 하는 무리.

바로 비덴비덴 남작령에 맞닿아 있는 인근의 보다폰 백작령에서 온 자들이었다.

특히나 백작 보좌관인 이 남자의 목표는 이태리타월의 생산 기밀을 빼돌리는 것이었다.

혹시나 계획이 실패할 경우엔 의심을 피하고자 비덴탕에 손님인 척 들어가서.

가급적 다양한 종류의 이태리타월을 사 오라는 보다폰 백작의 지시가 있었다.

‘그런데 이 멍청한 놈이 금사가 박힌 때수건까지 구매해왔어! 이래서야 비덴비덴 남작가의 매출만 올려준 꼴이 되지 않았는가.’

백작 보좌관의 긴 한숨 소리와 함께 마차는 하염없이 달려 보다폰 백작령에 도착했다.

***

한편, 이태리타월 공장의 총책임실 안.

조금 전 제 앞에 나타났던 사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우테.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우테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왜, 왜 돌아온 거야? 당신……?’

아까 그녀가 마주친 그 사내는.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보다폰 백작령으로 야반도주했다던 남편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인제 와서 왜? 내가 이곳 공장의 총책임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뭐라도 뜯어내려고 온 걸까?

하지만 아까 자신을 마주쳤을 때 그의 놀란 눈빛이란.

그것은 정말 우테가 이곳에 있을지는 꿈에도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우테와 눈이 마주친 순간 빠르게 뒤돌아 달아났으니까.

만일 그가 또다시 찾아온다면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드,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산수이였다.

산수이는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아있는 우테를 발견했다.

그녀가 빠르게 달려와 우테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괜찮아요? 얀피르 경한테 얘기 들었어요. 역시 아까 내가 같이 왔어야 했는데!”

“아, 아닙니다. 그보다 영애님.”

우테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테는 산수이에게 아까 공장에 나타났던 수상한 사내가 사실은 자신의 전남편임을 털어놓았다.

산수이가 우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세상에, 많이 놀랐겠어요.”

“하지만 제가 여기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온 눈치는 아니었어요. 그럼 도대체 왜 지금 다시 나타난 걸까요? 바라는 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으음, 혹시 우테를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공장에 들른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이 공장의 총책임자가 됐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그렇게 놀랐던 걸 테고요.”

이유야 어쨌든, 그는 우테에게 있어서 위험한 존재가 될 것이 확실했다.

가정 폭력도 모자라 처자식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남자.

그런 남자의 추후 행보야 뻔하다고 산수이는 생각했다.

산수이는 총책임실에 추가 경비를 붙여주며 우테를 안심시켰다.

“미안해요, 미리 경호를 더 늘려놨어야 했는데. 혹시 그 사람이 또 찾아오면 바로 말해줘요.”

“감사합니다, 영애님.”

이날의 사건을 그저 집착증이 있는 우테 전남편의 사랑과 전쟁으로만 치부한 것이 산수이의 가장 큰 실수였다.

때문에 그녀는 앞으로 닥칠 일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우테와 함께 탐폰 개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가장 품종이 우수한 목화솜만을 사용해 여성의 인체 내에 들어가도 문제없는 유기농 탐폰을 만들자는 것.

그것이 산수이의 생각이었다.

마침 이태리타월을 제작하기 위한 생산 라인엔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탐폰 샘플 몇 개를 추가 제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후, 휘온은 산수이로부터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소개하고 싶으니 에데카나 공작저 방문을 허가해 달라는 서신을 받았다.

“이번엔 산수이가 또 어떤 획기적인 상품을 개발한 걸까?”

자세한 건 직접 만나서 보여주겠다는 산수이의 서신을 읽으며 휘온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분명 이태리타월처럼 멋진 상품일 것이었다.

사실 산수이는 휘온이 매번 자신을 만나러 남작령을 방문해주는 것에 대해 살짝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제국의 법도뿐 아니라 비즈니스 상하 관계로만 따져도, 투자를 받는 산수이 쪽에서 공작저를 방문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마음이 달아오른 휘온은 그 며칠을 참지 못하고 또 마차에 올라 비덴비덴 남작령으로 향해버렸다.

그렇게 한걸음에 달려 남작저에 도착한 휘온을 본 사용인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그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그런 휘온의 마음을 모르는 산수이는 속으로 잘못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때밀이 요금은 낮춰줄 수 없어요, 휘온.’

***

“짜잔-!”

산수이는 테이블 위에 탐폰을 올려놓았다.

그 이름 모를 새하얀 물체를 바라보며 휘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뭡니까?”

좌약…… 같은 건가?

휘온은 생각했다.

그 정체불명의 물체는 어려서 그가 끔찍이도 싫어했던 좌약을 쏙 빼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끄트머리에 웬 실이 달려있다는 것 정도.

“그러니까 이건, 생리대 대용품이에요!”

“……예?!”

휘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생리대라니?!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 겪는다는 그…… 그날 쓰는 면으로 된 천을 말하는 건가?

산수이가 자신에게 너무도 태연히 생리대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이 솜뭉치가 어떻게 생리대로 쓰인다는 것인지도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조금 낯 뜨거웠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부끄러움을 앞선 휘온은 산수이에게 이 제품의 사용법에 관해 묻기로 했다.

“이런 솜뭉치를 어떻게 생…… 크흠! 그걸로 사용한다는 말씀입니까? 잡아서 펴면 되나요?”

휘온은 탐폰을 집어다가 솜뭉치를 악력으로 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단하게 뭉쳐져 있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런 휘온을 보며 산수이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건 펴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넣어서 사용하는 거예요!”

“……예? 뭘, 뭘 어디다 넣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산수이의 말을 듣던 휘온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닐 거야, 잘못 들었을 거야.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탐폰은 생리대와는 다르게, 솜뭉치가 월경혈을 몸 내부에서 흡수…….”

“푸웁–!”

휘온은 마시던 차를 모두 뿜어내고 말았다.

산수이의 뒤에서 이를 모두 지켜보고 있던 얀피르가 낮게 중얼거렸다.

“윽, 더러운 놈…….”

하지만 얀피르는 지금 너무나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로써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

‘주인은 그냥 어느 놈이나 다 남자로 보지 않는 것뿐이었군. 아니면 저 얘길 하는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거나.’

아니, 사실 만족스럽다기보단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휘온은 둘째 치고 산수이가 자신 역시 남자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래도 저놈한테 지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어차피 둘 다 출발선에 서 있을 땐 먼저 치고 나가면 그만이라고 얀피르는 생각했다.

산수이가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휘온에게 건네며 물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어요?”

“죄, 죄송합니다. 산수이…….”

휘온은 그녀의 앞에서 차를 뿜어냈다는 부끄러움보다 방금 들은 말이 더 충격이었다.

이 여자는 어찌 자신의 앞에서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산수이에게 그저 사업 파트너일 뿐인가…….’

그나마 휘온을 위로할만한 건 이 방 안에 얀피르도 함께였다는 점이었다.

‘저 드래곤 놈도 남자로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인가 보군.’

휘온과 얀피르는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를 동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꼈다.

두 남자가 만난 이후 처음으로 유대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휘온은 산수이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입가를 마저 닦으며 물었다.

“하지만 몸 안에 넣는 새, 새…… 크흠! 으어…… 리대…… 라니. 아무래도 구매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왜요? 아 혹시 솜이 몸 안에 남을까 봐 그러신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혈이 모두 흡수되고 나면 이 끝부분에 달린 실을 잡아당기면 돼요. 그럼 쑤욱-하고 모두 빠져나오거든요.”

“예, 예에?”

놀란 표정의 휘온에게 산수이가 덧붙였다.

“아 이것 참,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하지? 직접 보여드릴 수도 없고.”

“?!?”

휘온에게 있어서 이 이상 듣는 건 무리였다.

귀 끝까지 빨개진 그는 산수이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하, 하지만 모…… 몸 안에 들어가는 물건이라니. 그런 건 제국에서 판매되기 힘들 겁니다…….”

“왜요? 아, 설마 공작님.”

공작이라고?

휘온은 산수이가 자신을 다시 이름이 아닌 작위로 부르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그가 산수이와 눈을 마주쳤을 때, 그녀는 서늘한 눈빛으로 휘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수이가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혹시 탐폰을 쓰면 숙녀답지 않다든가…… 뭐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머, 멍청하다니!’

휘온은 산수이의 서슬 퍼런 기세에 숨이 막혔다.

게다가 멍청하다는 소리는 그의 인생을 통틀어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언제나 제국 최고의 엘리트라 불리던 그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산수이의 오해를 풀어야 한다.

휘온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반동에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찻잔이 엎어지며 찻물이 쏟아졌다.

평소였다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들이 연달아 이어졌지만 이미 휘온의 안중엔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산수이를 향해 빠르고 명확하게 외쳤다.

“오해입니다. 저는 산수이 그대가 숙녀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당신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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