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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21화 (21/150)

며칠 후, 발레아나 공주는 제국 내 모든 귀부인 및 영애들을 자신이 주최하는 황실 티 파티에 초대했다.

그중에는 물론 미모세 백작 부인도 포함되어있었다.

‘발레아나 황녀가 웬일이지? 안 하던 티 파티를 다 열고?’

그녀는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초대에 응한다는 답신을 보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으려나……?’

21미모세 백작 부인은 아직까지 비덴탕을 방문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휘온 공작의 촉촉한 피부를 떠올리면 마음이 동하였지만.

‘혼탕을 없앤 것도 모자라, 하녀들하고 같은 탕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녀는 비덴탕 방문을 꺼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제국의 황녀가 주최하는 황실 티 파티에서도 또다시 비덴탕이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혹평을 받은 때밀이라는 것을 제국의 공주가 몸소 체험하고 왔다는 것.

물론 그 효과는 공주의 빛나는 피부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매끈매끈, 반짝반짝.

원래부터 어디 가서 미모로는 빠지지 않는 발레아나 공주였지만.

비덴탕에 며칠 머물며 집중 케어를 받은 후 완전히 새로운 피부로 거듭나 돌아온 것이다.

아직 사춘기의 소녀인지라 가끔씩 올라오던 뾰루지를 두꺼운 화장으로 감추기도 했었는데, 이제 그런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 놀라운 변화에 제국의 모든 귀부인 및 영애들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들의 마음속엔 때밀이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었다.

한 귀부인이 공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공주마마, 귀하신 몸께서 체험하시기에 그 때밀이라는 것이 조금 불결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불결하다니요?”

공주가 되물었다.

“아무래도 그…… 꼭 검은 국수 같은 것들이 몸에서 줄줄 밀려 나온다는 게 좀…….”

귀부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발레아나는 크게 웃었다.

예상치 못한 공주의 반응에 조금 전 질문을 한 귀부인은 혼란에 빠졌다.

‘공주님이 왜 웃으시지? 설마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이윽고 발레아나가 그 귀부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그 검은 국수들을 몸에 계속 달고 사시겠다는 것인지요?”

깜짝 놀란 귀부인은 말을 더듬었다.

“예?! 그, 그것이 아니오라……!”

“더럽다고 생각하시면 오히려 밀어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공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설마 이곳에 계신 다른 귀부인들께서도 아직 때를 밀어본 적이 없으신 건 아니겠죠?”

그 말에 화들짝 놀란 귀부인들은 붉어진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열심히 해명했다.

“아, 아니옵니다. 공주마마! 충분히 씻고 왔사옵니다!”

“저는 그 때밀이라는 것의 예약 날짜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옵니다!”

그러자 발레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귀하신 분들께서 온몸에 때가 가득한 채 황궁에 들어오셨을 리는 없는데 말입니다. 제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녀가 모두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덧붙였다.

“우리, 이런 딱딱한 얘기는 그만하고. 함께 다과를 즐기는 게 어떨까요? 귀한 분들을 위해 제가 특별한 것을 준비해두었답니다.”

“특별한 것이요?”

공주가 손뼉을 치자, 잠시 후 시종들이 은쟁반에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무언가를 들고 왔다.

모두의 관심이 그 쟁반 위로 쏠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며칠 전 발레아나 공주가 비덴비덴 남작령에서 맛보았던 온갖 종류의 팝콘들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공주마마?”

귀부인들은 이 양털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한 신기한 과자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아니, 그 냄새에 반해버렸다는 말이 더 맞으리라.

“이건 팝콘이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산수이 남작 영애가 개발했지요.”

“팝…… 콘이요?”

귀부인들은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팝콘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이, 이것은……!’

순간 입 안 가득 퍼지는 향긋한 냄새와 함께 그녀들의 눈앞에 광활한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천상의 맛이다! 마치 옥수수가 알알이 터지며 새하얀 눈송이가 흩날리는 것만 같구나……!’

이제 귀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제 눈앞의 팝콘을 미친 듯이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발레아나가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비덴탕에 가면 때밀이를 받은 후 이런 진귀한 간식까지 맛볼 수 있답니다?”

그날을 신호탄으로 산수이의 비덴탕에 때밀이 예약 서신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

때밀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남작저의 사용인들은 그제야 산수이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때밀이라는 것이 이토록 혁신적인 사업이었다니. 역시 우리 아가씨, 다 생각이 있으셨던 거군요.’

‘아가씨가 예전과는 뭔가 다르다 싶었건만, 지금 보니 남작님의 젊은 시절 패기를 쏙 빼닮으셨군!’

산수이 역시 밀려드는 예약 편지 더미 속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긴 마찬가지였다.

‘우와아. 제국 내의 모든 귀부인이 때밀이를 예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

물론, 그 예약자 명단에는 기대하던 고객 한 명의 이름이 빠져있었지만 말이다.

바로, 미모세 백작 부인.

‘흐음, 이 백작 부인이 황후와 발레아나 공주 다음으로 사교계의 실세라고 하던데. 역시 지금의 목욕탕 규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

항간에 떠도는 미모세 백작 부인의 소문은 산수이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녀 한 명을 위해 혼탕을 만들거나, 혹은 목욕탕에 평민들의 입장을 금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순 없는 법이니까. 우선은 여길 찾으시는 손님들에게 집중하고, 언젠가 이분을 모실 방법도 추가로 고민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산수이는 고급 양피지를 한 장 꺼냈다.

그리고 때밀이 신청자 한 명 한 명에게 예약 날짜 및 때밀이 요금이 적힌 답신을 적기 시작했다.

그것도.

작위에 따라 때밀이 요금에 차등을 두어서 말이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집사가 놀라 물었다.

“아, 아가씨? 정말로 신분에 따라 때밀이 가격을 달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제야 겨우 손님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네. 높은 작위를 가지고 있을수록 비싸게 받을 생각인데요.”

산수이는 집사를 향해 생긋 웃어 보이며, 조금 전 자신이 작성한 때밀이 요금표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집사는 떨리는 손으로 모노클을 붙잡고 요금표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비덴탕 때밀이 요금표.

황족 : 1만 에우로

공작 : 5천 에우로

후작 : 3천 에우로

백작 : 2천 에우로

자작 : 1천 에우로

남작 : 5백 에우로

그 외 : 10에우로]

에우로는 이곳의 화폐 단위다.

지폐인 에우로는 대한민국 화폐 단위로 치면 1에우로에 약 1천 원.

다시 말해서, 지금 산수이는 황족이 때를 밀러 오면 코리안 머니로 약 천만 원을 청구하고.

그 외 평민들은 만 원만 내도 때를 밀어주겠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때밀이 요금표를 모두 읽은 집사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작위가 높을수록 요금을 비싸게 매기겠다는 것도 모자라 귀족이 아닌 자들은 단돈 10에우로에 때를 밀어주겠다니.

이제야 겨우 목욕탕에 손님들이 모여드나 했는데.

이래서야 오는 손님도 다시 돌아갈 지경이었다.

게다가…….

‘황족분들께마저 돈을 받는 것도 모자라 공작께도 5천 에우로라니. 이 제국에 공작 작위를 가진 자가 휘온 님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그 말인즉슨 비덴탕의 최고 투자자인 휘온 에데카나 공작에게까지 때밀이 요금을 받겠다는 소리였다.

‘아가씨, 정녕 휘온 공작님의 마음을 모르시는 겁니까.’

집사가 산수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아가씨?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여기 오탈자가 있는 듯하여……. 공작 작위를 가진 자는 5천 에우로라고 적으셨습니다만.”

“음? 오탈자 아닌데요? 맞게 적었는데?”

“아가씨! 정말로 에데카나 공작님께도 때밀이 요금을 받으시겠다는 겁니까?”

“당연하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두 번이나 무료로 밀어줬으면 됐지.”

사실 지난번에 휘온이 비덴탕을 방문했을 때도 세신비를 청구하려다 참았던 거였으니까.

그러자 지금껏 뒤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얀피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집사. 주인은 원래 나한테만 공짜 때밀이를 해주기로 약속했었다고.”

“예?”

얀피르의 말을 들은 집사의 동공이 커지며, 그의 머릿속에서 잘못된 오해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 아가씨랑 얀피르 경이 설마 벌써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것이란 말인가?!’

그는 얼른 방을 나가 이 새로운 사실에 대해 유모와 수다를 떨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산수이의 말에 그 오해는 사그라지고 말았다.

“당연하지. 이 남작가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든 공짜로 때를 밀어줄 거니까!”

“에, 주인?! 나한테만 공짜로 밀어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럼 내가 유모랑 집사한테도 돈을 받으리?”

산수이와 얀피르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집사는 아쉬움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가씨, 이 두 명의 훌륭한 청년들과 연애하실 생각은 전혀 없으셨던 거군요. 그저 돈 버실 생각밖엔…….’

그는 돌아가신 남작 부부 내외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남작령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가씨가 영영 결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때밀이 가격표를 본 얀피르가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그런데 주인, 공작 5천 에우로면 너무 싼 거 아냐? 그놈은 한 10만 에우로 정도 내라고 하자.”

그러니까 산수이한테 때 한 번 밀 때마다 1억 원씩 지불하라는 소리였다.

산수이는 그저 못 들은 척 남은 서신들에 답장을 쓸 뿐이었다.

***

작위에 따른 때밀이 요금 차등표는 의외로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비록 때밀이 한 번에 지불하기엔 다소 높게 책정된 금액이긴 했지만.

귀족들은 이것을 럭셔리 마케팅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과연! 서민들과 함께 목욕한다고 해서 내심 찝찝했었는데, 이렇게 때밀이라는 것으로 신분의 차별화를 두는군. 마음에 들어!’

고위 귀족일수록 때를 밀 때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사실 엄청나게 불합리한 요금표였지만 웃기게도 작위가 높은 자일수록 이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액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도 다르겠지. 조금 더 신경 써서 밀어줄 테고, 특별히 나만을 위해 따로 제작된 이태리타월을 사용해 주겠지!’

사실 별 차이 없었다.

산수이는 그냥 많이 가진 놈들한테 더 뜯어내자는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거야. 이렇게 모은 돈은 다시 목욕탕에 투자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시설을 즐길 수 있게 해야지!’

귀족들의 생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고객마다 매번 새로운 이태리타월을 사용하여 때를 밀어드릴 예정이었으니까.

물론 귀족 한정 때수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고객이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뿐이었지만.

‘쓴 거 또 쓰면 더럽잖아. 한 번 사용된 때수건은 무조건 삶아 쓴다.’

이것은 산수이의 경영 철학이었다.

어쨌든 모두가 만족하는 때밀이 요금표였다.

단 한 사람, 휘온 에데카나만 빼고.

비덴탕을 찾아온 휘온은 입구에 떡하니 붙여져 있는 요금표를 보고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공작 5천 에우로? 그러니까 지금 투자자인 나도 때밀이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인가……?!’

보통의 영애가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뼛속까지 사업가였을 수가.

평소 같았다면 휘온은 이렇게 셈이 빠른 자들을 자신의 곁에 두고 이용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영애, 어째서 제게……! 섭섭하단 말입니다!’

게다가 하필 요금표를 보고 충격을 받아 멍 때리고 있던 순간.

그 뒤로 얀피르가 지나가고 있었을 건 뭐란 말인가.

“쿡.”

그것도 명백한 비웃음을 흘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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