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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10화 (10/150)

10화.

산수이가 에데카나 공작저로 향하는 날 아침.

유모는 산수이를 단장해주기 위해 화려한 드레스와 코르셋을 꺼내왔다.

새빨간 컬러에 풍성하게 부풀려진 스커트 자락엔 온갖 장식이 가득했고, 특히나 소매 부분엔 겹겹이 쌓인 레이스 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를 본 산수이의 반응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으음, 아니야.”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최근 제국 수도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던데…….”

“활동하기 편한 단순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입을 거예요. 특히 소매 부분은 반드시 아무런 장식이 없는 7부 길이여야 하고요.”

그 말에 유모를 비롯한 모든 하녀는 경악했다.

보석을 새로 사들여도 모자랄 마당에 밋밋한 드레스를 입으시겠다니!

물론 지금의 남작가 재정 상태를 고려했을 때 그런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남은 재산은 때수건인지 뭔지를 만드는 데 거의 다 투자하셨지.’

유모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산수이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 그리고 머리카락이 한 올도 빠져나오지 않도록 남김없이 위로 올려 묶어주세요.”

남들과는 다른 산수이만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물빛 머리카락이었다.

산수이는 보통 그 아름다운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트리고 다녔다. 그것이 그녀만의 청초하고 신비스러운 매력을 배가시키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것마저 하지 않겠다니.

“아가씨,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오늘 만나시는 상대는 바로 그 에데카나 공작님이시라고요.”

유모는 여러 차례 산수이를 설득해 봤지만, 끝내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방에서 나온 유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집사를 향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어휴. 대체 왜 저런 옷을 입고 가신다는 걸까요? 공작님 눈에 드실 수도 있으니, 좀 더 꾸며드리고 싶었건만.”

“유모는 얀피르 경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러자 유모가 단호히 말했다.

“물론 얀피르 경도 훌륭하신 분이지만, 원래 식장에 손잡고 들어가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집사 역시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아가씨의 배필이 되실 분인데, 최대한 많이 살펴봐야지요.”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국 산수이는 수수한 차림으로 저택을 나섰다.

하지만 마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얀피르는 산수이의 모습을 보곤 놀라 중얼거렸다.

“주인, 너 오늘 정말 예쁘다…….”

그런 얀피르의 말을 들은 유모와 집사는 다시금 마음을 고쳐먹고 속으로 그에게 추가 점수를 줬다.

‘아가씨의 꾸밈없는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는 남자! 훌륭합니다, 얀피르 경.’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마음속 생방송 남편 투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마차에 올라탄 산수이는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공작저로 출발했고, 유모는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역시 그 화려한 드레스를 억지로라도 입혀드려야 했어요! 우리 아가씨, 공작저에서 무시당하시면 어쩌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얀피르 경이 함께 따라갔으니…….”

사실 그게 가장 문제가 될 거라는 걸, 두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

산수이 일행은 한참을 달려 드디어 제국의 수도에 위치한 에데카나 공작저에 다다랐다.

공작의 저택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산수이는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

그것은 비덴비덴 남작가의 저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잘 가꾸어진 정원엔 백화가 난만했다.

산수이가 얀피르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서 내리자, 에데카나 가문의 집사가 기다렸다는 듯 그들을 친절히 맞이하였다.

“에데카나 공작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비덴비덴 남작 영애님.”

“이리 반갑게 맞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쪽은 제 호위 기사, 얀피르 경입니다.”

산수이는 집사에게 얀피르를 소개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젊은 공작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집사가 먼저 난감한 표정으로 산수이에게 입을 열었다.

“송구하지만 갑자기 공작님께 급한 업무가 생기셨다 합니다. 두 분 모두 피곤하실 텐데 우선은 귀빈실에서 여독을 푸시지요.”

“아…… 예, 알겠습니다.”

산수이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공사다망하다 한들, 미리 방문하기로 약속된 손님이 도착했는데 나와 보지도 않는 집주인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녀는 자신이 이 공작가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객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한편, 휘온은 자신의 집무실 창가에서 업무 도중 몰래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산수이의 수수한 옷차림에 가서 꽂혔다.

“에데카나 공작저 첫 방문에 저런 옷차림이라.”

그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신선하긴 하네.”

지금까지 공작가의 권세에 기대고자 휘온을 만나길 청하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그를 만날 수 있게 되는 날이면 으레 그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치장을 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으니까.

그런 휘온의 앞에 저렇게 심플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여자는 산수이, 그녀가 처음이었다.

‘소박한 건지, 아니면 옷을 빌려 입을 돈조차 없이 가난한 건지…….’

어느 쪽이건 간에.

저 영애가 자신의 흥미를 끈 건 사실이었다.

***

공작저 내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귀빈실을 배정받았지만, 산수이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렇게 무시할 거면 방문은 왜 허락해 준 거야?’

그렇게 생각하던 산수이는 이내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짝짝 때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 뭐 어때! 공작 놈한테 이 때수건을 어떻게 팔아먹을 건지 그것만 생각하자.’

산수이는 미리 준비해 둔 때수건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몇 시간, 마침내 집사는 그녀에게 공작이 지금 뵙기를 청하신다고 전했다.

산수이는 때수건을 비단에 곱게 감싼 후, 자신의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얀피르에게 말했다.

“얀피르, 지금부터 에데카나 공작님을 뵙고 올 테니까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

“나도 같이 갈래, 주인이랑.”

“아쉽지만 호위 기사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대. 걱정 마, 공작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 위험한 사람은 아니야. 싸가지 없는 사람일 뿐이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럼 다녀올게!”

멀어져가는 산수이를 보며 얀피르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 공작이라는 놈, 왠지 느낌이 안 좋은데…….’

한편 산수이는 집사를 따라 끝없이 긴 복도를 걷고 있었다.

‘도대체 이놈의 저택은 얼마나 큰 거야?’

아무리 계단을 올라도 끝이 보이질 않았고, 복도 전체에 장식된 미술품들은 예술에는 문외한인 그녀가 보기에도 상당한 고가품들이었다.

‘후…… 그래. 예의를 밥 말아 먹은 놈이긴 하지만 미래의 물주로는 부족함이 없으시네.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하자. 마인드 컨트롤, 나는 돈을 사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집사가 공작의 집무실을 여는 순간—

노을 지는 창가를 등지고 선 휘온의 모습을 본 산수이는, 갑자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엄청 잘생겼잖아!’

얀피르에게 야생의 섹시함이 흐른다면, 이 남자는 정말 꽃미남이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지적이고 차가운 미모의 소유자였다.

산수이는 그의 비현실적인 미모 앞에서 잠시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잊을 뻔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은발이 바람결에 휘날리며, 공작의 짙은 눈동자가 그녀에게 꽂혔다.

하지만 두근거리는 산수이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는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그녀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비덴비덴 영애.”

“바, 방문을 허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에데카나 공작님.”

산수이는 드레스 자락을 우아하게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그러나.

“……저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예?”

이 인간이 지금 뭐라는 거지.

‘지금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렸던 건 저였는데요……?’

휘온이 그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지요. 서신에서 언급하신 그, 스크럽보다 훌륭하다는 혁신적인 발명품부터 보고 싶군요.”

그 말에 산수이는 소중히 들고 온 비단 꾸러미를 풀어 공작에게 내보였다.

“바로, 이것입니다!”

마침내 비단 속 때수건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휘온은 충격받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대체?!”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바로 손바닥만 한 초록색 주머니였다.

네 개의 검은색 줄무늬 자수로 포인트를 준 이 조그만 천 조각의 디자인은, 분명 지금까지 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것은 맞다.

‘자칫 촌스러울 뻔했을지도 모를 쨍한 녹색에 짙은 검정이 곁들여져 아방가르드함을 살렸군.’

하나 도대체 이 천 나부랭이 따위가 뭐란 말인가. 이 남작 영애가 지금 나를 놀리나?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영애는 지금, 이 작은 천 조각이 목욕 스크럽 제품을 능가한다 말씀하고 계신 것인지요?”

“예, 그렇습니다.”

“하아…….”

휘온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저는 시간 낭비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공작님의 시간은 전혀 낭비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한번 이 때수건을 써 보면 아실 겁니다.”

때수건.

이름조차 경박스럽다고 휘온은 생각했다.

“하아, 좋아요.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이 때…… 때수건이라는 게 도대체 어떻게 기능한다는 겁니까?”

“아! 그건 공작님께서 목욕하셔야만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휘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산수이는 상큼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례지만, 제가 공작님의 목욕 시중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휘온은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백번 양보해서 목욕 시중을 시킨다 쳐도 어떻게 남의 앞, 그것도 귀족 영애 앞에서 그 더러운…… 입에 담기도 싫은 단어, ‘때’를 보인단 말인가!

‘이 영애는 지금 제정신인가?’

공작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만 돌려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매번 자신에게 맞는 스크럽 제품을 찾느라 고생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때때로 잘못된 씨앗이나 오일을 배합해서 스크럽을 만드셨을 때는 몸에 상처나 알레르기가 나진 않으셨고요?”

‘그걸 어떻게!’

휘온은 자신의 속마음을 읽힌 듯한 기분이 들어 깜짝 놀랐다.

“그런 걱정과 고민은 인제 그만! 이 때수건 한 장이면 스크럽 제품과는 영원히 안녕! 딱 오늘 하루만 때밀이 무료 체험을 하실 기회를 드립니다. 지금 바로 선택하세요!”

갑자기 산수이 영애의 말투에서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제국의 홍보 문구보다도 설득력이 있었다.

게다가 오늘 딱 하루만이라니, 당장 수락하지 않으면 기회가 날아갈 것 같은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홈쇼핑 광고에 현혹되어 구매 버튼을 누르는 고객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크흠. 그, 그러면 먼 길 와주신 영애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딱 한 번만 체험해 보도록 할까요……?”

***

결국 산수이에게 넘어가 욕조 안에 몸을 담근 휘온.

‘하……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마지막까지도 망설이던 그는 결국 산수이를 욕실 안으로 불렀고, 곧이어 그녀가 들어섰다.

휘온은 이제야 그 소박한 옷차림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유행과는 한참 뒤떨어진 원피스였지만, 저 7부 소매와 폭이 좁은 치맛자락은 때밀이인지 뭔지를 하기에 최적의 디자인이 아닌가.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소매로 자신의 젖은 몸 위를 왔다 갔다 했다면 정말 끔찍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휘온은 오전 내내 그녀를 홀대했던 것이 못내 미안해졌다.

‘……산수이 영애는 처음부터 때 밀 준비를 하고 왔었던 거였군.’

그런 휘온을 향해 산수이가 때수건을 치켜들며 단호히 말했다.

“그럼 이제 엎드리세요,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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