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집무실에 앉아 우테가 가져온 때수건 1차 샘플을 살펴보던 산수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자신이 원하던 딱 그 감촉이었으니까.
‘으헤헤! 내가 생각한 대로 아주 잘 나왔어.’
게다가 초록색 바탕에 수놓아진 네 개의 검은 줄무늬는 그녀에게 뭉클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역시 클래식은 영원한 법이지. 이제 때수건을 테스트해 볼 사람이 필요한데…….”
하지만 저택 내의 그 어느 누구도 산수이의 때밀이를 순순히 받으려 하지 않았다.
“아, 아가씨께서 이 유모를 직접 씻겨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나중에 저승에서 주인 내외분들을 무슨 면목으로 뵈어야 할지!”
그렇게 산수이가 유모와 옥신각신하는 사이, 그 소리를 들은 얀피르가 다가와 물었다.
“주인, 뭐 해?”
그때 유모의 머리에 섬광 같은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아가씨를 얀피르 경과 맺어드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유모가 미소 지으며 얀피르를 향해 돌아섰다.
“얀피르 경!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저 대신 우리 아가씨의 때밀이를 받아보시겠어요?”
“유모!”
그 말을 들은 산수이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산수이는 이제껏 모태솔로로 살면서 한 번도 남자의 벗은 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얼마 전 본의 아니게 얀피르의 반라를 두 번이나 보고 말았지만.
“야, 얀피르 경은 남자잖아요!”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얀피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는 때 밀면 안 되는 거야?”
“어, 그러게……?”
순간 산수이는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들며 자신의 시야가 좁았음을 깨달았다.
성별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목욕 문화를 즐기게 하기 위해 혼탕까지 없앴는데, 때밀이에 있어선 남녀를 차별하겠다고?
‘남성분들을 고객이 아닌 이성으로 보려 했다니!’
산수이는 깊이 반성하며 스스로 다짐했다.
앞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남자 등짝 보기를 돌같이 하는 세신사가 되겠다고.
오늘의 다짐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남자를 울리게 될지, 이날의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마침내 결심을 한 산수이가 얀피르를 향해 수줍게 입을 열었다.
“저기 얀피르 그럼…… 내 첫 때밀이를 받아줄래?”
***
마사지 베드에 누워있는 얀피르의 반라를 보자 산수이의 심장이 미친 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사심을 없애자…… 고 다짐했건만, 얀피르의 몸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그저 좋기만 했다.
‘크윽, 내 심장!’
특히나 그의 넓은 등판을 본 산수이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지만, 곧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얀피르의 몸이 여성 손님의 것보다 곱절은 크다는 걸 뒤늦게 인식한 것이다.
그러자 태평양같이 넓은 그의 등판도 한 매력적인 사내의 것이 아닌 그저 고난도, 때밀이계의 최종 보스일 뿐이라고 느껴졌다.
‘남자들의 몸은 확실히 더 크구나. 앞으로 체력을 더 길러야겠어.’
그렇게 다짐하며 산수이는 그의 몸 위에 손을 올렸다.
“시작할게.”
이윽고 얀피르의 몸 위에서 산수이의 손이 미끄러졌다.
슥—
그는 마치 자신의 비늘이 한 겹씩 벗겨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촉은?’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 마치 알에서 깨어날 때처럼.
“하아아, 주인. 너무 좋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냈다.
“좋다니 다행이네. 혹시라도 아프면 바로 말해줘?”
“하나도 안 아파. 그냥 너무 시원해…….”
얀피르의 피부는 지금껏 그녀가 본 것 중 가장 단단했다.
‘확실히 인간의 피부와는 다르구나. 웬만한 바늘로는 찔러지지도 않겠어.’
보통의 사람들과 같은 강도로 밀면 때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산수이는 손에 힘을 더 세게 주었다.
그렇게 고요 속에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바닥에 똑똑 떨어지는 것 말고는, 가끔씩 낮게 들려오는 얀피르의 신음만이 넓은 홀을 가득 채웠다.
물론 얀피르의 반라를 보며 산수이의 가슴이 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프로야, 프로 세신사라고. 이건 그저 내가 성심을 다해 밀어드려야 할, 고객님의 소중한 몸일 뿐이야!’
그렇게.
마침내 망설임을 극복한 산수이의 표정이 근엄하게 변했다.
그녀에게선 이제 어떠한 사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에 놀란 얀피르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너무나 신성한 모습으로 자신의 때를 밀어주고 있었으니까.
벅벅벅—
그 무아지경의 시원함 속에, 얀피르는 눈이 풀린 채 그대로 마사지 베드 위에 고개를 떨궜다.
점차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 모습은 마치 때밀이의 신(神)과도 같이 성스럽고 고결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이상하게도, 얀피르는 자꾸만 입이 달싹였다.
“주인.”
“응?”
그대로 때밀이 열반의 세계에 도달할 뻔했던 산수이가, 얀피르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퍼뜩 차렸다.
“왜, 얀피르? 혹시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어?”
“있지, 나 주인한테 고백하고 싶은 게 있어…….”
그 말에 산수이는 깜짝 놀랐다.
‘설마, 얀피르한테도 나의 때밀이 능력이 발동된 건가?’
원래 세계에서 고객들의 때를 밀어줄 때면 으레 있던 일이긴 했지만 이번 상대는 전혀 달랐다.
이세계의 인물, 그것도 드래곤 종족이 아닌가.
“뭐든 괜찮으니 나한테 다 털어놔 봐.”
드래곤 종족의 비밀이라도 듣게 되는 걸까?
산수이는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나 있잖아, 주인이 정말 정말 좋아.”
“뭐? 난 또 뭐라고.”
산수이가 피식 웃으며 얀피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너 좋아, 얀피르.”
“아닌데! 이게 아니라, 그러니까 내 말은…….”
그때 갑자기 얀피르의 호흡이 가빠졌다.
“나, 아까부터 기분이 너무 이상해.”
“뭐?! 혹시 내가 아프게 밀었나? 어디, 어디가 이상한데?”
당황한 산수이가 얀피르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울혈이 맺히거나 한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얀피르가 또 한 번 힘겹게 중얼거렸다.
“이러다간 정말……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아.”
“으, 응?”
그때였다.
“크르르…….”
갑자기 얀피르의 입 안에서 송곳니가 길게 자라나고, 피부에선 칠흑 같은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가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천천히 산수이를 돌아봤다.
하지만.
“으앗……!”
계속되던 때밀이로 한계에 다다른 산수이는 그만 다리가 풀려 얀피르의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주, 주인?”
그와 동시에 매섭게 자라나던 얀피르의 송곳니와 비늘은 다시 그의 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산수이는 얀피르의 몸에 일어났던 변화를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빠르게 몸을 일으키곤 멋쩍은 듯 웃었다.
“미안, 얀피르. 금방 다시 밀어줄…….”
얀피르는 대답 대신 곧바로 몸을 일으켜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왜, 왜 이래? 아직 다 안 끝났어.”
“이미 충분해, 주인.”
얀피르는 공주님 안기를 한 채 열탕 쪽으로 척척 걸어갔고, 당황한 산수이는 그의 품 안에서 버둥거리며 외쳤다.
“내려줘!”
“싫어.”
그는 산수이를 안은 채 열탕 안으로 들어갔다.
첨벙—
김이 피어나는 물속으로 둘의 몸이 함께 잠겼다.
산수이는 물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얀피르는 그녀를 꽉 끌어안고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직 밀어야 할 데가 더 남았단 말이야.”
“괜찮아. 난 이미 충분히 좋았는걸.”
산수이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갑자기 그녀의 온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근육통이었다.
산수이보다도 먼저 그녀의 몸 상태를 눈치챈 얀피르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딱 보니까 체력 바닥났는데 뭘 더 하겠다는 건지. 에휴, 내가 계속 데리고 살면서 잘 챙겨야지 뭐.’
그는 품 안의 산수이를 좀 더 세게 끌어안으며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그때 문득, 갑자기 불안한 예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혹시 주인, 이 때밀이라는 거, 다른 놈들한테도 해 줄 거야?”
“다른 놈들?”
“다른 인간 수컷들!”
얀피르는 수컷이라는 말을 특히 강조하며 그르렁거렸다.
그를 보며 산수이는 이상하다는 듯 대답했다.
“남자? 당연하지. 여기 찾아오시는 손님들은 모두 다 때를 밀어드릴 생각인데?”
“안 돼! 절대 안 돼!”
얀피르의 표정이 무섭게 변하며 그의 입에선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크르르…… 어떤 놈이든 때 밀어주기만 해 봐. 다 내가 물어뜯어서 없애 버릴……!”
그 말에 산수이는 들고 있던 때수건으로 얀피르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아야.”
얀피르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힝, 왜 때려.”
“안 되긴 뭘 안 돼! 내가 뭐 때문에 때수건을 만든 건데.”
“나만, 나만 해달란 말이야!”
얀피르는 금세 표정을 풀고는 아이처럼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산수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신 너는 공짜로 밀어주잖아.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 돈 받을 거야. 나, 이 영지 다시 살리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해.”
“그래도 싫은데…….”
축 처진 얀피르는 산수이의 목덜미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산수이는 한숨을 내 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산수이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진 얀피르는 그녀의 목에 자신의 얼굴을 더욱더 비비며 그르렁댔다.
얘는 진짜 남자인가, 개인가, 그것도 아니면 애새끼인가?
‘혹시 모습만 성인이고 정신 상태는 아직 어린이인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산수이에게, 얀피르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었다.
“그럼 주인 나랑 하나만 약속해.”
“뭔데.”
“다른 수컷들 때 밀어줘도 되는데…….”
그가 송곳니를 빛내며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대충 등짝만 밀어줘야 해, 알겠지?”
***
그날의 첫 때밀이 이후, 산수이는 하루를 꼬박 앓아누웠다.
‘생전 궂은일이라곤 해 본 적 없는 귀족 영애의 체력을 내가 간과했다.’
병상에서 일어나는 대로 그녀는 운동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체력이 붙었다 싶은 후엔 틈나는 대로 얀피르와 훈련을 계속했다.
그의 벗은 몸을 매일 반복해서 보고 또 봐서, 이제 그가 자신의 앞에서 옷을 훌렁 벗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될 때까지.
물론 상대가 상대였던 만큼, 결코 쉬운 수행은 아니었다.
그의 미끈한 몸을 보며 코피를 쏟을 뻔하던 나날들이 계속 이어지다.
어느 날.
산수이는 목욕탕 속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뛰어나왔다.
깨달음,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었다.
‘몸은 몸이요, 때는 때이니라. 모든 육신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을. 난 이제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덤벼라, 남자들아.’
이렇게 세신사로서 한 단계 성장하게 된 산수이 비덴비덴 영애.
그것은 더 이상 예전의 산수이가 아니었다. 탈인간급 성장을 거쳐 마침내 득도의 경지에 다다른, 평온한 정신과 엄숙한 마음을 갖춘 한 명의 위대한 장인일 뿐.
그녀는 이제 때를 밀러 온 모든 남성의 몸을 일말의 사심도 없이 대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드디어 비덴탕이 다시 문을 여는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