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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6화 (6/150)

6화.

얀피르는 산수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방금 전 자신이 한 말에 대한 허락을 구하려는 듯.

하지만 산수이는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조차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있는 얀피르의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저 얼굴을 계속 보고 있자니 심장마비가 올 것 같고. 그렇다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니 그러면 그, 그……!’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산수이는 갑자기 코에 피가 쏠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뜨거운 열탕 안에 있어서 그런지 그녀의 얼굴은 더더욱 초고속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산수이의 새빨개진 얼굴을 본 얀피르가 깜짝 놀라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주인? 어디 아파? 갑자기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야, 얀피르.”

“응! 뭐 필요해? 얼음주머니 갖다 줄까?”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응……. 뭐? 지금 나 쫓아내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제 앞에서 시무룩해진 얀피르를 보며, 산수이는 어린애를 달래듯 타일렀다.

“원래 여자랑 남자는 같이 목욕하는 거 아냐! 얼른 옆 홀로 건너가서 남성분들하고 같이 목욕해. 그리고 거기 있는 여성분들은 모두 이쪽으로 오시라고 하고.”

“하지만 난 주인하고 목욕하고 싶은데……!”

산수이는 애처럼 칭얼거리는 얀피르의 두 뺨을 손바닥으로 따뜻하게 감싸며 말했다.

“얀피르, 착하지?”

제 뺨을 감싸는 산수이의 온기에 마음이 스르르 풀린 얀피르는 결국 꼬리를 내렸다.

“쳇, 알겠어. 대신 이따가 목욕 끝나고 실컷 핥게 해 줘야 돼?”

“그, 그래.”

얀피르는 어깨가 축 처진 채 산수이에게서 떨어졌다.

“그럼 나 진짜 간다?”

“응, 잘 가. 멀리 안 나갈게.”

상심한 표정의 얀피르가 제 몸을 물속에서 촤악 일으키려던 찰나, 깜짝 놀란 산수이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소리 질렀다.

“꺄악! 얀피르! 나,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정말이야!”

하지만 그녀가 왜 이러는지 알 길이 없는 얀피르는 산수이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주인, 정말로 괜찮은 거 맞지?”

“응응! 그러니까 빨리 가!”

“아무래도 주인, 아픈 게 맞는 것 같은데…….”

이곳을 죽어도 떠나고 싶지 않았던 얀피르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산수이가 걱정되는지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산수이는 얀피르의 발자국 소리가 한참 멀어진 후에야 제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뗄 수 있었다.

그녀가 벌게진 제 뺨을 연신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아, 사우나스 신이시여. 유교걸인 저에게 왜 자꾸 이런 시험을?’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얀피르는 심장에 지나치게 안 좋아…….”

***

한편 산수이의 명에 따라 옆 홀로 건너간 얀피르.

그가 온탕에 몸을 담그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보다 감각이 월등히 뛰어났던 탓에, 벽 너머에 있는 산수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그의 귀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주인이랑 같이 목욕할 수 있었는데.’

그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었다.

아직은 기억뿐 아니라 성에 대한 지식도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얀피르였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던 찰나, 얀피르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있는 것을 느꼈다.

“……?”

얀피르의 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놀라움을 넘어선 경이로운 것이었다.

“허, 허억……!”

“얀피르 경! 역시……!”

특히나 젊은 남성일수록 얀피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존경 어린 눈길로 그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왜들 저래?’

하지만 그 이유를 알 길 없는 얀피르는 딱히 물어보기도 귀찮아서, 그저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산수이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한편 맞은편에서 몸을 담그고 있던 집사는 그런 얀피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아가씨의 배필이 되시기 위해 일단 1라운드, 신체검사는 통과하셨습니다. 얀피르 경……’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산수이는 목욕탕 안에서 유모와 하녀들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을 더듬으며 이세계의 목욕 문화를 상기해보았다.

“여태 이걸 왜 놓치고 있었지. 내 실수다.”

카데베르 제국은 고대 로마처럼 목욕 문화가 매우 발달된 곳이었다.

도심에는 공중목욕탕이 있어 제국민들은 목욕을 즐기면서 그곳을 사교의 장으로도 이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유한 귀족들의 저택 안에는 개인 목욕탕이 딸려있기도 했다.

그러나 제국의 목욕 문화 중 산수이가 가장 놀랍게 생각한 점은, 바로 남탕과 여탕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실상 목욕탕을 방문하는 고객은 거의 남성뿐이었다.

물론 여성 고객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다수 여성들, 특히 혼인을 치르지 않은 젊은 여성들은 목욕탕에 마음 놓고 방문하길 꺼렸다.

본디 혼탕은 제국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휴식의 장이라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중목욕탕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되어버렸고, 여성들은 목욕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끔찍한 일이야. 목욕탕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에게 열린 곳이어야 해.’

여기까지 생각하던 찰나, 드디어 유모와 하녀들이 탕 입구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나신이 아니었다.

간편한 작업복을 입고, 한 손에는 각종 목욕 도구들을 들고 있었으니까.

‘뭐, 뭐지? 왜 다들 목욕탕에 옷을 입고 들어와?’

특히 유모는 웬 유리그릇을 손에 들고 산수이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울 아가씨, 나중에 시집가면 어쩌시려고 이렇게 계속 유모만 찾으실까? 목욕 시중이 필요하셨으면 얀피르 경에게 부탁하시면 되셨을 것을. 그럼 두 분이서 오붓한 시간도 보내시고 좀 좋아요?”

“유모, 하지만 얀피르 경은……!”

유모가 네 맘 다 안다는 표정으로 끄덕이며 연신 웃었다.

“아유, 우리 순진한 아가씨. 혼욕은 처음이라 부끄러우셨죠? 자, 얼른 나오셔서 제 앞에 앉아 보세요. 유모가 오랜만에 시원하게 등 밀어드릴 테니까.”

‘등을…… 밀어준다고?’

산수이의 눈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번뜩였다.

그 말인즉슨, 이 세계에도 때밀이가 존재한다는 말이렷다!

그녀는 흥분되는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때밀이! 내 사랑 때밀이를 정말 여기서도 할 수 있는 거야?’

콧김을 마구 뿜어대며 물속에서 벌떡 일어난 산수이는, 유모가 미리 준비해 둔 작은 목욕용 의자 위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녀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밀어주세요, 빨리……!’

그러자 유모는 갑자기 웬 쇠막대기를 꺼내들더니, 유리그릇 안의 끈적한 액체를 휘젓기 시작했다.

유모의 행동에 놀란 산수이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유, 유모? 그게 대체 뭐……?”

산수이는 유모와 하녀들이 들고 온 목욕용품을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건 대체 어디 있지?’

하지만 그 어디에도 자신이 애타게 찾고 있는 그 물건, 꿈에서도 아른거리는 제 영혼의 단짝 ‘때수건’은 보이질 않았다.

그런 산수이를 보며 유모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아이고 우리 아가씨, 너무 오래 앓으셨나? 이건 아가씨가 제일 좋아하시던 거잖아요. 호호바 오일하고 장미 씨앗이 들은 거요.”

‘등 밀어준다며 웬 오일……? 마사지부터 하려는 건가?’

산수이는 일단 유모가 시키는 대로 등을 내어주곤 가만히 기다렸다.

“자아, 그럼 시작할게요, 아가씨. 아프시면 말씀해 주세요!”

이어서 유모는 유리그릇 속에 담긴 오일을 한 숟갈씩 떠서 산수이의 등에 뿌린 후, 쇠막대기로 조심스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하하, 간지러워요.”

“아유, 아가씨! 간지러워도 움직이지 마세요. 그래야 스크럽이 잘되죠.”

‘스크럽……?’

그제야 산수이는 이 물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 그렇구나! 역사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 과거 때수건이 없던 고대 로마 시절엔 이렇게 스크럽을 몸에 발라 쇠막대기로 긁어냈다고!’

말하자면 박물관에서나 보던 때밀이 조상 격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 역사적인 경험을 하며 산수이는 속으로 외쳤다.

‘구려!’

그건 말이 스크럽이지, 사실상 별 효과가 없었으니까.

때가 나오긴커녕 간단한 각질 제거도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나마 산수이가 귀족 가문의 여식이라 이런 값비싼 오일과 고급 씨앗으로 만들어진 스크럽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가난한 평민들은 보통 싸구려 향유에 모래를 섞어 쓰다 몸에 상처를 입곤 했으니까.

‘아니. 목욕하러 와서 때를 밀 수 없다니, 이게 말이 돼? 차라리 집순이한테서 와이파이를 뺏어라……!’

한참의 스크럽질을 받고 나서도 여전히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지 못한 산수이는, 결국 이 제국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한 결심을 하고 만다.

‘혼욕 문화도 너무 충격적이고, 이 간지럽기만 한 스크럽제도 마음에 안 들어. 이렇게는 안 돼! 내 안에 흐르는 목욕 덕후의 피가 용납하지 못하겠어……!’

마침내 유모의 스크럽 타임이 끝났을 때, 산수이는 계속해서 자신의 시중을 들고 있던 유모와 하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들 제 시중은 그만 들고, 다 같이 열탕에 들어가서 몸 좀 풀어볼까요? 이제 그 답답한 작업복 좀 벗어버리고요. 누가 목욕탕에 옷을 입고 들어와, 정말.”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용인들은 하나같이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니, 저희가 어찌 감히 아가씨와 같은 탕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 유모는 아가씨께서 자꾸 저에게 존대하시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린다고요!”

산수이가 웃으며 답했다.

“앞으로는 이런 거에 익숙해져야 할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혼탕 문화를 다 없애버릴 테니까.”

“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예요. 적어도 이 비덴탕 안에서만큼은 신분에 따라서가 아닌, 성별에 따라 탕을 나눠 사용하도록 할 거니까.”

“아가씨!”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십니까! 아랫것들이 어찌 감히 귀족 나리들과……!”

“말이 안 되긴? 얼른 탕 안으로 들어오기부터 해요.”

“아가씨이……!”

하지만 그들이 뭐라 애걸하든, 산수이는 방금 전 제가 한 말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꼿꼿한 태도를 유지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열탕 안으로 들어오는 유모와 하녀들을 보고 산수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때수건 개발해서 세신사로 일할 거란 소리까지 하면, 다들 아주 거품 물고 쓰러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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