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넘실거리는 푸른 불꽃이 지하 전체에 번졌다. 나는 기절한 PK의 앞으로 다가가 그를 퍽 걷어찼다. 생존 본능 투철한 PK는 걷어차이기 무섭게 눈을 번쩍 떴다.
“뭐야. 불났잖아!”
호들갑도 참 어수선하게 떤다. 나는 쓰러진 하람을 가리키며 방방 뛰는 PK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여기서 죽을 생각 없지? 빨리 저거 챙겨서 올라가자.”
오랜만에 되찾은 힘이라 그런지 조절이 잘 안 됐다. 여기 더 있다가는 질식해서 죽을 판이다.
뜨거운 열기가 지하 곳곳에서 넘실넘실 솟아올랐다. 나는 PK의 특성에 실려 가며 지하를 내려다보았다.
저 밑에는 사람이 있었다. 인간도 아니고 괴물도 아닌 것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은 사람이.
이제는 기억할 사람이 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있었다.
“왜 그렇게 감성적인 표정이야?”
위로 올라가던 도중에 PK가 질문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것은 빨랐으나,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느렸다. 그야 당연하지. 내려갈 땐 안전하게 내려간 게 아니라 추락했으니까.
“어. 겨울이라 그런지 좀 감성적이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겨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을도 아니고 겨울인데 감성적이라고?”
지금이 대체 몇 월인데 눈이 와? 아, 1월이지.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묻는 PK를 향해 대충 손을 저었다. 쓸모없는 대화로 안 그래도 없는 기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고.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 이유 없이 기분이 적적해질 때.”
오늘은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이유가 있는 쪽에 속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내 손으로 태워 죽이고 들떠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지 않나.
“그래. 그럴 때가 있지.”
지상으로 올라온 우리가 본 것은 황량한 폐허에 쌓인 시체와 그 위를 덮어 가고 있는 눈이었다.
돌아온 주인을 발견한 고스트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고스트를 통과해 땅에 내려앉는 눈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온 네정좋이 물었다. 괜찮냐고 물으면 해 줄 말이 하나밖에 없긴 한데. 나는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황량한 대지 위에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 뜨거운 입김이 샜다.
확실히 눈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진실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미리 대비해 놓아야 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 속에서 매번 나를 살렸던 것은 빠른 판단이었다. 부동심을 지키는 것은 어느 상황이든 가장 중요한 것이지.
낙원교 사건은 본진을 털어 버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교주는 물론, 신도들도 모두 죽었으며, 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마저도 죽었다.
시체 더미를 쌓았으니 남은 건 그 위를 오르는 것뿐이구나. 나는 이 여정의 종착지를 알았다.
타워. 타워의 최고층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이 세계의 주인을 만나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야.”
펑펑 내리는 눈이 머리에 내려앉다 못해 쌓였다. 나는 머리에 쌓인 눈을 툭툭 털며 PK를 불렀다.
“왜?”
하람을 바닥에 대충 던져둔 PK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이 산골짜기에서 전파가 제대로 터지기는 하나? 아. 여기 낙원교 본진이었지. 그걸 감안하면 터질 만하네. 나는 쓰러진 하람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꼬집었다.
이 시대의 엘리트는 뺨이 말랑하지 않아서 꼬집는 맛이 없었다. 차라리 저 지저분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게 훨씬 낫겠는데. 나는 주머니에서 고무줄을 꺼내 하람의 머리카락을 묶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PK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게…….
“너 친구 있냐?”
“뭐? 친구?”
휴대폰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PK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반문했다. 나는 하람을 양 갈래 프리티 걸로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도 없어? 그럴 줄 알았지.”
“그러는 너는 친구가 얼마나 많다고 그러는데.”
“너보다는 많지.”
“인터넷 친구는 인정 안 해.”
“너보다는 많았지.”
인터넷 친구라면 비눗방울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인터넷 친구조차도 아니다. 원래 하나 있는 친구도 이제는 없으니 친구가 없다고 봐야 할까.
“친구가 있었는데 이제 없어.”
하람은 본판이 나쁘지 않아서 양 갈래를 해도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아까 그 몽마가 본질은 바꿀 수 없다고 말했던가. 그래. 본질은 바꿀 수 없겠지. 나는 몽마가 서술한 것들을 중얼거리며 나열했다.
“녹색 눈.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삶에 관여한 사람. 나의 유일한…….”
친구.
이제는 친구라고 부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정확히 밝혀진 것도 아닌데 불길한 추측부터 하고 있다니. 편애가 보았으면 잔소리부터 할 꼬락서니였다.
그렇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려면 최악의 상황부터 생각하는 게 맞았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하람의 앞머리를 고무줄로 꽉 당겨 묶었다. 잡념이 사라지는 게 은근 좋네.
-그러다 보복당해요.
목을 붙잡은 유령이 몸을 낮춰 하람의 머리 모양을 유심히 살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몸은 솔직하군. 이 상황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친구 없는 애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물었다. 그럴 리가 있나.
“집에 가야지.”
여기서 평생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슬슬 집에 가야 하지 않겠는가. 주차를 어디에 해 뒀더라? 차 키를 누가 가지고 있었지?
나는 하람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그의 겉옷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머리를 한참 만지작거려도 일어나지 않던 하람은 주머니에 손을 대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본능적이네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본능적인 유령이 심심한 코멘트를 남겼다. 나는 하람의 주머니에서 손을 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하늘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싸한 향기가 났다.
* * *
경찰은 귀찮다. 조사받는 건 두 배로 귀찮다.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는 게 경찰이지만, 막상 조사받으란 말을 들으면 기막히게 신경 쓰이는 게 경찰이다.
“……가 제 지론이에요.”
며칠 만에 새 안경을 구해 온 하람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늘 내 옆을 차지하고 있는 목 잘린 유령이 그런 하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안경 쓰면 두 배로 못생겼다고 전해 주세요.
그걸 왜 나보고 말하라고 해. 저 인간한테 영혼까지 털린 게 고작 어제 일인데.
낙원교 사건은 너무 많은 사망자를 냈다. 게다가 괴물들이 고스트와 세기의 싸움을 벌이느라 난 소음까지. 아무리 강원도 산골짜기라고 한들, 밖에서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는 소리다.
지금까지 쭉 공권력과 유착 관계였으면 뭐하나. 다 죽었는데. 듣기로는 국회의원 몇 명과 경찰 쪽 높으신 분 몇 명도 같이 죽었다고 한다. 시체는 아직 못 찾았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러게, 누가 사이비 종교 믿으래?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행동 중 하나가 사이비 종교 믿는 거다. 멀쩡한 종교가 널리고 널렸구만. 뭐하러 그런 걸 믿어.
“그러고 보니 하람 씨 부모님도 그 종교 믿지 않았어요? 괜찮으신 건가?”
찔리는 거 많은 PK는 쥐도 새도 모르게 숨었다. 경찰청에 출석한 건 우리 둘뿐이었다.
“자기 목숨은 기막히게 챙기시는 분들이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하람이 심드렁한 투로 대답했다. 그렇구만. 나는 조금 전에 식당에서 가지고 나온 박하사탕을 입에 던져 넣었다. 해장국을 끝내주게 잘하는 집이었다.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죽은 전대미문의 사건. 물 밑에 숨겨져 있던 사이비 종교, 낙원교!
낙원교 신년 집회에 쏟아져 나온 괴물들, 그리고 그 지옥에서 살아 나온 두 명의 각성자.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은?!]
같은 줄거리의 방송이 어제 나갔었나. 나는 박하사탕을 와작와작 씹어 먹으며 지난 일을 회상했다.
낙원교 사건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 만한 파급력이 있었다. 나는 PK를 보낸 후에 반서준한테 전화부터 걸었다.
“여보세요. 반서준 씨 휴대폰이죠?”
[“네. 전화 받았습니다.”]
“전 자주 보던 편의점 알바생인데, 혹시 지금 제가 있는 곳으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 수십만 명이 죽었거든요.”
[“예……?”]
반서준의 벙찐 목소리는 처음 들어 보았던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게 대체 무슨 말……!”]
“와서 보시는 게 빠를 것 같아요. 지금 여기가 어디냐면-”
당황한 반서준이 뭐라고 하든 말든 나는 일방적으로 내 용건만 말했다. 겨울이긴 하지만 저 시체들을 방치해 놨다가는 벌레가 잔뜩 꼬일 테니까.
이렇게 규모가 큰일은 안 들키는 게 더 어렵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는 사람을 부르자. 나는 그날 반서준을 불렀고, 내 말에 따라 낙원교 본진까지 걸음한 반서준은 지옥을 보았다.
높으신 분도 많이 죽었다고 쉬쉬할 만한 수준의 사건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대선 문제로 논란이 불거지는 중이어서 매스컴에 뿌릴 핫한 뉴스가 필요한 참이기도 했고.
낙원교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나와 하람은 몇 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헌터 협회가 따로 없는 터라 각성자 관리를 경찰 쪽에서 하더라고. 나와 하람은 각성자라는 사실을 순순히 실토했다.
조사에서는 미리 맞춰 둔 거짓말을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사실 이 세계는 가짜고 낙원교 교주는 인간이 아니라 몽마다. 그 괴물은 사람들의 생명을 모조리 빨아 먹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하람 씨도 박하사탕 드실래요?”
나는 주머니를 뒤적여 박하사탕을 꺼냈다.
“아니요.”
하람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의 머리를 예쁘게 묶어 준 그날 이후로 조금 쌀쌀맞아진 것 같았다. 원래 쌀쌀맞긴 하지만 말이다.
“저희 오늘 감옥 갈 수도 있어요. 감회가 어떠세요?”
나는 하람에게 주려고 했던 박하사탕을 까서 입 안에 넣었다. 사실 감옥 갈 확률은 0%에 수렴하긴 해. 괴물 수십 마리 때려잡은 각성자는 감옥에 처넣는 것보다 밖으로 내돌리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저번 조사 끝나고 하람을 보러 왔던 사람이 생각난단 말이지. 무진장 비싸 보이는 쓰리피스 정장을 제대로 갖춰 입은 남자였다.
‘네가 이런 일에 엮이다니. 별일이네. 감옥 가게 되면 두부 사 줄게.’
나도 아는 사람. 재벌 3세라는 타이틀을 가진 자본주의 세계의 승리자. 끝내주는 슈트핏의 소유자, 비눗방울이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형.’
‘응?’
‘미쳤어요?’
하람의 파워 막말에도 하하 웃고 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지. 환경은 사람을 참 많이 바꿔 놓는 것 같다. 그는 더 이상 내가 아는 비눗방울이 아니었다.
장르가 좀 이상한 것 같거든요. 패션부터 현대 로맨스 소설 남주인공이야. 여주인공 회사 본부장님으로 발령받을 것 같다. 아니면 이사님.
“조사 끝나고 감옥 안 가면 두부 먹으러 갈래요?”
나는 히죽 웃는 얼굴로 물었다. 하람이 미간을 구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드드드드-!!!
타이밍 좋게 땅이 울리며 건물이 흔들렸다. 그러자 화난 얼굴의 하람이 깜짝 놀라 입술을 벙긋거렸다.
“이야~ 시간이 됐나 본데?”
건물 곳곳에서 ‘지진이다!!’ 따위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하람의 팔을 잡아끌었다.
경찰청 창밖으로 거대한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