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몽마는 보통 정기를 빼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이상형으로 모습을 바꾼다. 물론 이건 온건한 몽마들이 정기를 갈취할 때 들키지 않기 위해서 거치는 절차라 생략하는 것도 가능하다.
저 몽마처럼 정기뿐만 아니라 생명력까지 몽땅 갈취할 덫을 파뒀으면 그럴 이유가 없지. 그냥 사람 죽여서 생명력 죄다 빼가면 그만인데.
다른 생물의 생명력을 잔뜩 갈취해 간 몽마는 놀라우리만치 강대해졌다.
나는 강대한 힘을 쥐게 된 몽마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괴물을 보았다.
그것은 바깥의 우리가 고스트라고 부르던 몬스터였다.
“저게 저렇게 만들어지는 건 줄은 또 몰랐네.”
바깥의 고스트는 일종의 최종 병기 같은 거였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파워레인저 같은 거 보면 주인공 팀이 조종하는 오단 합체 로봇 나오잖아. 그런 거랑 비슷하다.
전장에 나온 고스트는 보통 피아식별을 하지 못하고 마구 날뛰었다. 같은 편인 몬스터들조차 제어를 힘들어하는 괴물. 간혹 완벽하게 제어가 되는 고스트가 있긴 했지만,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 읽었던 마법서에도 적혀 있지 않았던가. 사령술은 까다로운 마법이라서 사령술사는 그 숫자가 손에 꼽을 만큼 적다고.
저 고스트라는 괴물이 날뛴 전장에서 고스트가 제어 되는 꼴을 본 게 딱 두 번인가? 어쩌면 한 번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게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였다니. 수십만의 영혼을 뭉치고 모아 하나로 만드는 것. 사용되는 영혼은 이승에 미련이 남아서 저승으로 가지 못한 것들.
강력하지 않은 게 이상한 조합이었다.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으나 물리적인 공격을 행할 수 있는 괴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런 재료가 필요할 줄이야.
그워어어어-.
완성 직전의 고스트가 크게 울부짖었다. 두개의 다리와 하나의 머리, 그리고 여러 개의 촉수가 빛을 받아 반투명하게 빛났다.
“……저게 뭐야?”
그 사이에 몽마의 머리를 두 개도 넘게 터뜨린 PK가 고스트의 흐린 윤곽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몽마가 만들어 낸 괴물.”
귀신을 무서워하는 PK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리를 옮겼다. 하람의 등 뒤였다.
영문을 모르는 하람이 자기 등 뒤에 숨은 PK를 흘겼다. PK는 그 시선이 따갑지도 않은지 꿋꿋하게 하람의 뒤에 숨어 있었다.
엑소시스트 타령할 때는 고스트를 볼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이래서 세상 일은 맞닥뜨리기 전에는 모른다니까.
나는 한쪽 뺨을 긁적거리며 고스트가 완전한 모습을 갖추기를 기다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야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저 몽마는 왜 고스트를 만들어 낸 거지? 고스트는 사령술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텐데.
그동안 모아온 생명력을 팍팍 사용해서 고스트를 만들어낸 데는 이유가 따로 있지 않겠는가. 단순하게 동귀어진하고 싶어서 이런 거라면 색욕왕이 버릴 만했다고 생각한다. 멍청한 부하는 버리는 게 상책 아닌가?
끌어 모은 영혼이 하도 많아서 그런지 고스트의 완성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우리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뎠다.
“저게 완성되면 피아식별을 못하고 날뛰기 시작할 거야. 우린 완전 한 주먹거리라고 해야 하나.”
한 주먹거리라도 되면 감사하다고 해야 할 판이지. 아, 그래도 하람의 특성이 고스트에게 통하긴 할 거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지면 물리칠 수도 있겠네. 지금은 무리고.
“퇴마는 언제 해?”
PK는 아주 비장한 얼굴로 물었다. 최근 들어 본 표정 중에서 가장 비장했다.
“안 할 건데.”
“뭐? 대체 왜?”
“내가 쓸 거야.”
안 그래도 제대로 된 무기가 없던 참이었지. 정말 기적 같은 타이밍 아닌가?
저 고스트만 있으면 이 공간 자체를 찢고 나가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밖에 이예단이 있다 해도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우릴 깨우기 힘들겠지. 뇌진탕 올 만큼 강한 충격을 주면 깨겠지만, 그러다 진짜 뇌진탕 오면 싸우기 전에 병원으로 실려간다.
난데없는 고스트의 등장에 PK는 혼절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반투명한 고스트의 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보라색 눈. 극야와의 계약으로 얻은 보라색 눈이 가장 눈에 띄었다.
“와라! 온 힘을 다해 날뛰어라! 네가 가진 힘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멈추지 말고 날뛰어라!”
허공에 떠 있는 몽마가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외쳤다. 그의 마지막 주문으로 완전해진 고스트가 크게 울부짖어 그 위용을 떨쳤다. 환희에 찬 몽마의 몸 안쪽에 녹색이 아닌 다른 색깔의 불꽃이 엿보였다.
녹색은 편애와 환영술의 상징이니 환영 마법을 배우면서 물든 색깔. 그럼 저 안에서 흔들리는 것이 원래 저 사람이 가진 특성인가?
우리는 이곳에 오면서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괴물들이 왜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지? 괴물을 통제하는 것은 누구일까?
몽마에 의해 만들어진 고스트는 몽마의 명령에 따르기라도 하듯이 촉수로 주변을 마구 내리쳤다. 모든 힘을 소진할 때까지 거칠게 날뛰려는 모양이었다.
괴물이 누군가의 통제를 따르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했었지. 지금 보니 확실히 알겠다.
지성이 있는 것도, 지성이 없는 것도, 실체가 있는 것도, 실체가 없는 것도. 존재의 구성부터 확연히 차이 나는 것들이 모두 그를 따르고 있었다.
“저 몽마 말이야. 특성이 조종 같은 건가 봐.”
지성이 있는 것은 따르게 만들 수 있지만, 지성이 없는 것은 따르는 게 불가능하다. 그런 존재를 마음대로 움직이려면 직접 조종하는 수밖에. 아까 PK가 위에서 내 몸을 뜻대로 옮겼던 것처럼 말이다.
콰과광-!!
고스트가 날뛰기 시작하자 건축 자재와 돌 부스러기 따위가 마구 날렸다. 쏟아지는 흙먼지에 호흡기를 가린 하람이 내 쪽을 보며 질문했다.
“아까 그거 무슨 말이에요?”
“어떤 거요?”
“내가 쓴다고 하신 거요.”
하람이 말할 때마다 먼지가 퐁퐁 솟아났다. 하람은 당장이라도 이 공간에서 탈출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하람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별건 아니고…….”
그냥 말한 것 그대로인데. 근데 이대로 가다간 설명해주기 전에 죽겠다. 싸우다 죽는 게 아니라 건물 잔해에 깔려서 죽겠다.
나는 하람과 PK를 뒤에 내버려두고 앞을 향해 나아갔다. 안 그래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후드득.
앞으로 걷고 있으니 크고 작은 돌덩이가 투둑투둑 쏟아졌다. 나는 피할 수 있는 것들을 적당히 피하면서 걸었다. 뒤에서 PK도 손을 써주고 있는지 자그마한 돌 조각들이 허공을 부유하는 것이 보였다.
방해물이 없는 덕에 고스트의 근처까지 다가가는 것은 쉬웠다. 나는 그 앞에 보란 듯이 서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앉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촉수를 꿈틀거리며 날 짓누를 준비를 하고 있던 고스트.
고스트는 내가 소리 내어 명령하기 무섭게 촉수를 거둬들였다. 그리고는 그 촉수로 몸을 지탱하고 두 다리를 굽혀 무릎을 꿇었다.
“누워!”
경악에 빠진 몽마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히죽 웃는 얼굴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두 다리를 곧게 편 고스트가 일자로 누웠다. 크기가 하도 커서 회장을 뚫고 나간 점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굴러!”
몽마와 비슷한 수준으로 충격 받은 두 사람이 이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길래 손을 마구 흔들어줬다. 걱정 말라는 제스처였다.
나는 예전부터 동물을 키우게 되면 앉아! 누워! 굴러! 하는 게 꿈이었는데, 몬스터한테 이래도 되나 몰라.
명령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게 그거 같으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나는 수많은 영혼으로 이루어진 고스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굴러! 를 지시받은 고스트는 옆으로 한 바퀴 구른 채로 얌전히 누워 있었다.
이렇게 말 잘 들으면 간식이라도 줘야할 것 같은데 가진 게 없다. 고스트 간식은 뭐지? 인간?
인간을 줄 수는 없으니 나쁜 주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네. 나는 고스트를 등지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말도 안 돼.”
위에서는 고스트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 경악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몽마의 녹색 눈이 충격을 받아 마구 흔들렸다. 고스트를 빼앗긴 상심이 다소 큰 모양었다.
“내 특성은 어지간한 사령술사조차 이기는 것인데!”
몽마는 발악하듯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어지간한 사령술사? 이쪽에 붙어 있는 건 어지간한 사령술사가 아니었다. 원조 할매 국밥 같은 느낌의 극야였다.
“저게 당신보고 어지간한 사령술사라는데요?”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서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사령술사였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어지간한 사령술사인지는 모르겠네요.”】
그거야 그러시겠지. 원조 맛집 같은 느낌이니까. 내가 속으로 원조 할매 국밥집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걸 알면 극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그냥 하하 웃어넘기려나.
아니면 보복할 수도 있고. 예전이었다면 전자라고 확신했을 텐데 요새 새침한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섣불리 확신할 수가 없었다.
계약으로 인해 얻게 된 이점을 확실하게 설명해준 편애와 달리 극야는 내게 설명해준 것이 하나도 없지.
알아서 밝혀내라는 뜻인가, 아니면 직접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든 심술궂은 건 똑같다.
굽히고 들어가면 괜히 자존심 상하고, 그렇다고 모르자니 계약한 게 아깝고. 고민하는 사이에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버렸고, 그동안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딱 두 개.
하나는 영혼을 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혼에게 명령하는 것.
네정좋에게 여러 번 테스트해본 결과 개인에게는 절대적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지만, 고스트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다.
저건 단일 개체가 아니라 수많은 영혼이 모인 집단이었다. 저것이 피아식별을 못하는 이유는 수많은 영혼이 각자 의견을 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경우에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보통 그 명령에 따르게 되는 법이다. 인간도 그런데 영혼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그것도 그냥 영혼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인데.
“일어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얻었으니 이제 환영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다. 환영 안의 환영이라니. 이 무슨 끔찍한 소리.
“부술 수 있는 데까지 몽땅 다 부숴 봐.”
공간 자체를 부수고 나가려면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알아야 했다. 나는 고스트에게 명령했다.
“내가 있는 쪽으로는 오지 말고.”
명령을 입력받은 고스트가 명령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서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로 돌아가며 넋 나간 몽마를 흘끗거렸다.
그가 모은 생명력은 고스트 하나 만들었다고 바닥 날 양이 아니다. 고스트를 빼앗기고도 반격할 수 없는 것은 숨기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겠지.
그렇게 모은 생명력을 죄다 털어간 무언가. 대체 뭘까?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