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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160화 (160/175)

제160화

낙원교의 본진이자 몽마 흑막이 머물고 있는 고궁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컸다. 신도들한테 뜯은 돈을 이 궁을 짓는데 다 썼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큰 궁이 꽉 찼다고 느낄 정도로 모인 낙원교의 신도들. 올화이트로 옷을 맞춰 입은 신도들은 걸을 때도 소리를 내지 않고 걸었다. 말을 섞지 않는 것은 뭐라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이 가득한 궁의 내부는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내가 평가해도 될지 모를 정도로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사이비 종교 본진보다는 박물관이나 궁에 왔다고 느낄 만한 모습. 겉면만 궁 같은 줄 알았는데 내부도 비슷하구나. 돈 안 내고 고궁 체험 온 기분이라 묘하게 신이 났다.

-얼굴이 뚫릴 것 같아서 나가고 싶어요.

고궁은 몹시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위험하니까 얌전히 있어요.”

우중충한 안색의 유령들이 궁 안을 느릿한 걸음으로 배회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쭈글쭈글한 얼굴의 노인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정기와 함께 생명력을 빨려 죽은 사람들 같았다. 일명 ‘낙원행’을 당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젊어서 죽은 유령인 네정좋이 신기한지 그가 지나갈 때마다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네정좋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영 불쾌한 표정으로 근처를 배회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킥킥 웃었다가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았다. 여기서는 소리 내어 웃는 것도 금지된 모양이었다.

“거기서 웃지 말고 빨리 오세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걸음이 자꾸 늦어지자 하람이 핀잔을 줬다. 여기 신도들은 그 핀잔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하람마저 강렬하게 쏘아보았다. 그냥 발소리보다 큰 소리를 내는 걸 싫어하나 보다.

손을 내밀었던 하람이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더니 잽싸게 손을 거뒀다. 나는 인파에 휩쓸려 멀어지지 않도록 하람의 뒤를 열심히 쫓았다.

우리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식이 열리는 회장에 도착했다. 회장 안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있었고, 우리가 도착한 후에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정도로 밀집되어 있으면 앞사람 휴대폰까지 보이겠는데. 출퇴근 시간 2호선을 방불케 하는 인원 수였다.

“저기……”

나는 이렇게 퍼스널 스페이스가 없으면 위급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하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입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눈초리는 결코 살갑지 않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인다면 이런 느낌일까? 수용 인원 몇 만 명짜리 홀에서 콘서트를 하는 아이돌도 이 정도로 강렬한 시선을 받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러다간 사람들 눈빛 때문에 사망! 같은 사망계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것 같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아래로 슬그머니 떨궜다.

조용히만 하면 터치할 생각은 없는 건지 사람들은 금세 시선을 거뒀다.

-홀 안이 거의 다 찼어요.

운신이 자유로운 네정좋이 회장 안을 쭉 둘러보더니 소곤소곤 이야기해줬다. 이렇게 낑겨 있다가는 조만간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은데.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에 없나.

PK와는 여기 오기 전에 따로 말을 해뒀다. 교주가 단상에 나와서 입을 여는 그 때, 교주의 머리를 터뜨려 천벌을 내리기로.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말 비인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일이었으나, 여기에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PK는 낙원교와 거래하며 그들에 대해 얼핏 알고 있었고, 하람은 나대신 그들을 조사해주었으니까.

딱히 문제될 건 없다는 말이다. 설령 그들이 낙원교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었다.

저 인간들 성격을 봐라. 사람 하나 죽인다고 뭐라고 할 성격들인가? 들키지 않게 잘 묻으라고 할 인간들이지.

기다림은 숨이 다 넘어가도록 길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끼어 있다가는 갈비뼈든 뭐든 하나 부러지겠다 싶을 때.

기이이익-!!

스피커에서 마이크 울리는 소리가 났다. 노래방 가면 종종 들을 수 있는 그 소리 말이다.

안 그래도 조용했던 내부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끼이익- 쿵. 한참 뒤에 있는 입구에서 문 닫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시끄럽게 쏘다니던 망령들이 일제히 그 자리에 멈춰섰다. 나는 우리를 주시하는 끈적한 시선을 느꼈다. 하람 또한 그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슬쩍 바라보는 게 보였다.

한없이 고요해진 내부에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울렸다. 왕좌가 놓인 단상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은 흰 정장을 정갈하게 차려 입은 남자였다.

“아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옆에서 짧게 탄식을 흘렸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알이 인상적인 걸 보니 제정신은 아닌 모양이다.

회장 안에 빈틈없이 꽉꽉 들어찬 흰 옷의 신도들. 소리 없이 강렬한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만한데도, 교주는 줄곧 웃는 얼굴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그는 단상 위로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나와 하람보다 한 블록 앞에 서 있는 PK가 그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나는 PK를 보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오늘-”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입을 연 그 순간,

퍽-!!

PK의 미소와 함께 그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마이크를 든 몸뚱이가 아래로 추락하는 게 보인다. 정적으로 가득 찼던 회장에 사람들의 술렁거림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콰앙-!!!

가장 뒤에 있던 사람이 닫힌 문을 세게 걷어찼다.

“으아아악-!!”

“문 열어, 문 열라고!!!”

“천벌이다!! 천벌이야-!!!”

빠르게 번져나간 술렁거림은 얼마 안 가 비명이 되었다. 조금 전만 해도 내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던 사람들은 대체 어디 갔는가.

머리가 터져 나간 사이비 종교 교주와 회장 안에 갇힌 사람들.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다음 계획 있어요?”

혼란을 틈타 어느새 옆으로 온 하람이 등을 지켰다. 미치광이처럼 뒤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에 휩쓸리지 않게 막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대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기이이이잉-!!

스피커가 다시 울렸다. 머리 없는 교주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건 좀 어렵겠네요.”

문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우르르 넘어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그들. 생명력을 모조리 빨려 거죽만 남아 쓰러지는 사람이 쌓이고 또 쌓인다.

회장 안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던 만큼 빠져나가려는 사람의 수도 많았다.

“계속 이대로 있을 생각은 아니죠?”

하람은 사람들 틈에서 버티고 서있는 것이 힘든지 이를 악물었다. 나는 단상 위에서 비틀거리는 목 없는 교주와 그를 둘러싼 망령 떼를 보았다.

쩌저적-.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머리 없는 교주의 몸이 점차 흐려지더니, 어느새 녹색 눈을 가진 몽마가 그 위에 나타났다.

“앞을 봐요.”

나는 균형을 잃기 직전인 하람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고개를 돌린 하람이 죽은 교주의 모습을 가진 몽마를 보며 중얼거렸다.

“언데드…… 인가요?”

“언데드는 아니에요. 언데드였다면 머리 없는 상태로 부활하거나 재생하는 과정이 있었겠지. 근데 저기 봐요.”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에 머리 없는 시체는 없었다. 녹색 눈을 가진 인큐버스만 있었을 뿐이다.

쿠웅-!!

건물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진다. 갈라진 땅 틈으로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빨려들어가는 게 보인다.

“저건 머리가 있잖아.”

PK는 그새 정신을 차리고 우리를 위로 띄웠다. 나는 공중에서 균형을 잡으며 말했다. 진창에 처박히고 있는 사람들이 위로 떠오르는 우릴 향해 마구잡이로 손을 뻗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돈이라면 줄게, 돈이라면 줄 테니까!!!”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발악하는 무리는 우릴 향해 애타게 손을 뻗었으나,

“천벌이 우리에게 내리지 않게 해주시고…….”

“죽음 이후의 낙원에서 모두를 다시 만나게 해주시고…….”

한 편으로는 저들끼리 조용히 모여 기도하는 무리도 있었다. 그들은 아래로 추락하는 마지막까지 꼿꼿했다. 말 그대로 광신이었다.

시체는 꾸준하게 쌓였고, 유령은 점차 늘고 있었다. 저 몽마는 무엇을 위해 수많은 사람의 생명력을 빼앗았을까. 궁금하긴 했으나 사정을 알아갈 시간은 없었다.

“저기 있는 교주가 몬스터야. 보여?”

나는 PK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죽였는데 살아났네?”

“죽은 게 아닌 거지. 아마 우린…… 저 몽마가 만들어 낸 환영 안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것 같은데.”

그게 아니면 죽은 몽마가 되살아날 리가 없었다. 사람들을 환영 안에서 몰살시키면 생명력은 생명력대로 빼먹고, 밖에는 온전한 시체가 남겠지. 이제 그건 괴물 줘서 배 채우게 하는 수법?

“머리 좀 썼네.”

머리 좀 쓴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굴러갔던 루틴에 우리가 낀 걸 수도 있겠지만, 뭐.

“잘 들어.”

나는 손을 들어 단상 위에서 우릴 주시하고 있는 몽마를 가리켰다.

“우린 저걸 죽여야 해.”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을 대체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보통은 이런 의문이 남겠지.

“이미 죽였잖아. 안 죽었고.”

몽마를 한 번 죽여봤던 장본인인 PK가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원래 환영은 안 걸리는 게 베스트지만, 걸리면 어쩔 수 없다.

“쟤가 힘 다 빠져서 환영 유지 못할 때까지 죽여야지. 별 수 있나.”

어떻게든 안에서 물리적으로 깨고 나가는 수밖에. 과거에 하람이 바르바토스의 힘을 소진시켜 상황을 역전한 것처럼, 우리도 저 몽마를 죽이고 또 죽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그때와 달리 문제가 되는 것은…….

-유령들이 한 군데로 뭉치고 있어요.

수많은 인간의 생명력을 처먹은 저 몽마가 어떤 식으로 나오느냐는 것인데.

우리가 과연 수십만 명 분의 생명력을 소진시키고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시도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라지만, 이번 건은 물량 공세가 장난 아니었다. 내가 교만왕의 환영을 찢었을 때처럼 이 환영 자체를 찢고 나가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럼 돌진해 봐야 한다는 거네.”

그걸 PK가 할 수 있을까? 하람은 대인전에만 특화되어 있어서 그런 건 시도도 못 한다. 공간 자체를 악하다고 인식하고 대적하려면 그 공간의 범위를 알아야 하니까.

다른 건 몰라도 자기 목숨 챙기는 건에는 눈에 띄게 예민한 PK가 얼굴을 구겼다. 동시에 언제 꺼낸 건지 모를 피막 날개를 쫙 펼친 몽마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설마 하늘에서 싸우는 건 아니죠?”

가방에서 야구 방망이를 꺼내 든 하람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비틀거렸다. 밑은 여전히 죽어가는 사람들로 인해 아수라장이었다.

“밑에서 싸워도 되긴 한데 조금만 삐끗해도 저승 가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에서 싸우는 게 상책인 건 아니었다. 우리는 PK 특성 덕분에 위에 떠 있는 거라서 PK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자리에서 발차기 정도는 할 수 있겠네.

상황은 여전히 조금도 나아진 게 없었지만, 일단 적과 대치는 했다. 위로 올라온 몽마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상공에서 홀로 여유로운 몽마가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심정을 아나?”

거만하게 턱을 위로 든 몽마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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