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낙원교 신년 대집회 잠입 계획은 관계자인 이예단 몰래 잘 진행되고 있었다.
-보통 그런 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아요.
네정좋은 간만에 사람다운 말을 했다. 저런 게 사람다운 말을 하다니. 세상 두 번 살고 볼 일이다.
사실 이번 계획의 가장 큰 핵심은 하람 포섭이었다. 하람이라 하면 우리 계획의 중심. 쫄보 PK의 구원자가 되어줄 명예 엑소시스트. 인간이든 괴물이든 누구에게나 상성상 우위를 점하는 기적 같은 특성의 소유자.
거기에 눈도 좋고 이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우리의 사정까지 모조리 알고 있는 최고의 조력자.
그동안 뒤에서 암암리에 활약해왔으니 슬슬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도 좋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람의 의견을 물어보자면…… 글쎄.
[“싫은데요.”]
몹시 단호하더라고. 나는 하람을 설득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하람 씨 없으면 저희 다 죽어요. 저희의 인연을 생각해서 딱 한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제 신변에 문제 생기면 손 떼겠다고 저번에 말씀 드렸잖아요.”]
“하지만 세상 일이 제 마음대로 굴러가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지금 특성도 없는 일반인인 걸요.”
한때 일반인이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힘을 가졌기 때문에 싸우고 지켜내야 하는 걸 내심 싫어하던 때가 있었다.
없다가 있으면 몰라도 있다가 없으면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고 했었나. 두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는 이 세계에서는 많은 것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고 해요.”
낙원교를 박살 내는 건 이예단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공익적으로도 중요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통제를 따르고 있는 괴물들이 밖으로 풀려 나오면 무슨 일이 생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지금보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하겠죠.”
낙원교 본진에서 정기를 쏙쏙 빼먹으며 움츠리고 있는 몽마는 무슨 일을 벌이려고 잠자코 기다리는 걸까. 나는 이름 모를 몽마의 의중이 궁금했다.
“또 제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거쳐 가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낙원교가 이 세계의 진실과 맞닿아 있는 것은 배후에 있는 몽마가 색욕왕의 수하이기 때문인가? 그걸 토대로 이예단의 아버지가 사이비 종교를 창설한 거고?
뭔가 말이 맞지 않았다. 낙원교는 그보다 더 오래된 종교가 아니던가. 추측만으로 모든 일을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결국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혀봐야 했다.
“모든 일에 늘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 일을 해쳐나가기 위해서는 하람 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정말 하람만한 적임자가 또 없었다. 그동안 하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돌려보았지. 혹시 모르잖아. 그들을 따로 써먹을 수 있을지.
연락을 돌려본 결과 대부분이 특성을 되찾았다. 일단 연락처를 저장한 사람 중에 특성을 되찾지 못한 건 반서준 단 하나. 쓸모 있는 특성을 가진 것은 러브리스와 하람 정도.
하지만 러브리스는 이 세계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모든 일의 내막에 깊게 관여한 것도 아니다.
러브리스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세계의 진실은 물론이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녀를 설득해야 했다. 이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데.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하람은 포섭 대상 1순위라고 해야 하나. 물론 차였을 때를 대비해서 러브리스를 포섭할 멘트도 고민하고 있긴 했다. 문제는 우리 집 유령이 러브리스를 너무 싫어하더라고. 밖에서도 사이가 안 좋더니 여기서도 똑같네. 마주친 적도 없는 사람일 텐데 본능이 거부하나.
“지금은 하람 씨가 제 최선이거든요.”
러브리스를 포섭했다간 네정좋이 내 목을 조르려고 할지도 모르지. 유령이라서 잡히지도 않지만 말이다.
하람이 평소처럼 그만 포기하고 슬슬 어울려줬으면 좋겠다. 설마 이러다가 상종하길 포기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하람의 대답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입술을 뜯었다. 하람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당신 정말 짜증 나.”]
신경질적인 목소리였지만, 저게 부정이 아니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저도 알아요. 그래도 요새 반성 중이에요.”
나는 끌어안은 인형에 얼굴을 묻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맨날 싫다면서 도와주는 게 참 웃겼다. 이 세계의 끝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도와주는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매번 툴툴거리는 점이 정말 웃겼다. 바깥이랑 비교되니까 귀엽다고 해야 하나.
-윗집에서 너무 뛰어서 겁주고 올게요.
요즘은 유령도 층간소음에 피해를 받는다. 열심히 층간소음을 유발하던 중에 등골이 섬뜩해진다면 그건 층간소음에 열받은 유령의 짓일지도 모른다.
나는 천장을 뚫고 윗집으로 향하는 그에게 잘 다녀오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네정좋이 온 뒤로 층간소음이 덜해서 참 좋아. 밥값 제대로 하는 유령이었다. 물론 유령은 음식물 섭취를 못하지만 말이다.
하람 포섭은 그렇게 완료되었다. 남은 건 이예단에게 우리가 벌일 소동에 대해 말해주는 것 뿐인가.
우리 계획이 정확히 뭐였지? 낙원교 본진에 처들어가서 연설하는 교주 머리통 터뜨리고 도주하기? 간 김에 겸사겸사 괴물도 물리치고 낙원교 배후도 보고 오기? 물리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근데 정보를 털어놓게 하려면 쓰러뜨리는 게 먼저니까 무조건 물리칠 수밖에 없겠구나. 그 몽마가 멍청이가 아니라면 정보 같이 귀중한 것을 술술 불어줄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괴물을 한데 모아서 수를 꾸미는 몽마였다. 낙원교의 배후에 서서 신자들의 정기를 쪽쪽 빨아먹고 자란 괴물.
인간의 정신 방벽은 생각보다 견고하다. 그걸 무너뜨리기 위해 약까지 쓴 괴물이라면 절대로 멍청하지 않을 거다.
어쩌면 가장 큰 위기가 다가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천장에 붙은 야광별 스티커를 보며 눈을 감았다. 결국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판단할 때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 * *
의미없이 보낸 며칠이 지나갔다. 결전의 날 아침, 나는 낙원교 드레스코드를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올블랙은 쉬워도 너무 쉬운데 올화이트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이럴 때면 밝은 옷 좀 입고 살라는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역시 어른 말 들어서 나쁠 거 하나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오늘의 파티원은 총 네 명. 정확히는 세 명과 유령 하나.
“오늘 그 사이비 종교 신도가 다 모인다고? 한두 명이 아닐 텐데 주차는 어떻게 해?”
살짝 파리한 낯빛의 PK가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을 언급했다. 일단 우리 파티의 주력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오늘따라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버스를 대절할 걸요.”
이때 심드렁한 목소리로 PK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한 사람. PK를 끌고 오기 위해 섭외한 오늘의 명예 엑소시스트였다. 물론 하람의 퇴마 가능 여부는 아직도 판명되지 않은 부분이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아요.
인간 셋과 유령 하나 중에서 유령 하나를 맡고 있는 네정좋. 유령인 탓에 딱히 준비할 것도 없는 그는 오늘 내비게이션 역할을 맡았다.
“위에 있으니까 멀미나는데 고도 좀 낮춰 봐.”
그리고 이들을 싹 다 불러모은 장본인인 나. 어떻게 이런 거지같은 조합을 완성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야 다들 서로 모르는 사이라지만, 바깥이었어 봐. 벌써 난리가 났다고.
새벽의 하람, 낙원의 네가정말좋아, 무소속 PK, 정체를 숨긴 랭킹 1위 손가락테크닉.
완전 랭커 올스타전이 따로 없었다. 여기서는 로스쿨 재학생 이하람, 연예인이었다가 유령 된 유주하, 마약 유통 범죄자 봄결이와 전직 고시생 현직 편의점 알바생 우연희지만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 할 말 없는 조합이 또 있을까. 나는 늘어지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고도 좀 낮춰보라니까.”
“저기에 괴물 있어. 괴물의 한 끼 식사가 되고 싶은 거면 너만 내려 보내주고.”
“말을 참 예쁘게 하는구나.”
이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애써 말을 걸어 봐도 얼마 안 가 원래 상태로 돌아올 뿐이었다. 마이페이스 네정좋과 매사에 무관심한 하람, 그리고 꿍꿍이가 있을 때만 사교적인 사람이 되는 PK까지.
이 무슨 지옥의 I 모임이란 말인가. 하람이 아니라 러브리스를 데려왔어야 했나?
아니지. 러브리스도 딱 보면 I다. 러브리스를 데려왔어도 이 분위기가 이어졌을 게 뻔하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인재는 편애나 레나구나.
나는 망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다가 금세 포기했다. 파티 구성원부터 잘못된 거라서 내가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냥 일이나 잘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도련님이 귀띔해준 거 있지 않아? 진입은 언젠데?”
마을은 아주 깊은 산골짜기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들은 마을에서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에 멈춰 서서 마을을 바라보았다. 준비성 철저한 하람은 가방에서 망원경까지 꺼냈다.
“식 시작은 정오야. 입장은 11시 50분까지고.”
“지금이 11시니까 50분이나 남았네.”
“입장은 지금도 하고 있을걸? 하람 씨, 어때 보여요?”
나는 PK와 대화를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하람에게 물었다. 망원경을 든 하람은 몸을 한바퀴 돌려 근처를 쭉 돌아보았다.
“보니까 다들 버스를 타고 오는 건 아니네요. 차 타고 온 사람도 더러 있어요.”
그러고 보니 이 종교 집단에 유명인도 더러 속해 있었던가. 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오진 않겠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오면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질 것 아닌가.
“버스에서 내리지 않아도 이상하게 보진 않겠네요. 저희도 가죠.”
하람이 말하자 PK가 재깍 움직였다. 내가 말할 땐 듣지도 않더니만, 하람이 하는 말은 또 듣네. 이래서 사람이 너무 편해지면 안 되는데. 비즈니스 상대랑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 법이다.
우리는 괴물의 시선을 피해 땅으로 내려와 마을로 들어가는 사람들 틈에 섞였다. 대집회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간이 떼로 몰려오고 있었다.
마을의 거리는 깔끔했으나 사람 사는 흔적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마을 끝에 있는 거대한 궁궐을 향해 걷고 있었다.
-머리가 없는 데도 얼굴이 뚫릴 것 같아요.
성지를 방문한 순례자처럼 경건한 표정의 사람들 사이에서 입을 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걷고 있는 네정좋을 보았다. 그는 오늘도 목이 떨어지지 않도록 꽉 쥐고 있었다.
으리으리한 고궁 위로 그동안 이곳에서 죽은 자들의 망령이 보였다. 그들은 무리를 이루어 한 곳을 맴돌고 있었는데,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검은 공처럼 보였다.
“저쪽에 섞이지 않게 조심해요.”
나는 목소리를 한껏 낮춰 속삭였다. 찰싹 달라붙어 있지 않으면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네.
네정좋은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고분고분했다. 저번에 이유 없이 내 말을 들어주었던 때처럼 말이다.
그게 단순한 심경의 변화가 아니라면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걸까. 나는 네정좋을 유심히 살피며 다른 사람들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 걸었다.
어느덧 목적지가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