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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157화 (157/175)

제157화

화성시에서 발견한 그 봉고차는 그대로 달려 강원도의 한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인적 드문 시골답지 않게 화려하고, 또 웅장했다.

-약간 한옥 마을 같았어요.

인위적으로 잘 닦인 길과 늘어선 기와집, 그리고 마을의 끝에 있던 고궁.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기이한 동네.

-봉고차 안에는 사람이 있었어요. 밧줄에 꽁꽁 묶여 있는 사람이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음산한 마을에는 괴물이 산다. 인간이 잔뜩 실려 있던 봉고차 운전석에서는 사람이 아닌 것이 내렸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했어요.

괴물들이 인간을 봉고차 밖으로 끌어낸 순간, 스산한 기운이 마을을 덮쳤다. 건물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던 마을에 나타난 것은 수많은 괴물이었다.

네정좋은 괴물이 나타나 인간을 집어 삼키는 그 일련의 과정이 몹시 끔찍했노라고 말했다. 물론 표정도 바꾸지 않고 그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없다. 괴물이 못생겨서 끔찍한 거야, 아니면 상황 자체가 끔찍했던 거야?

“어떤 의미로 끔찍했던 거예요?”

나는 치미는 의문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네정좋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생긴 게요.

언제나 한결같은 인간이었다. 물어보지 말걸 그랬다.

“그렇군요.”

-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잠깐 뜸을 들인 네정좋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난데없이 괴물이 나타나길래 그 마을은 괴물이 사는 마을인 줄 알았다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단다.

“사람이 산다고요?”

사람이 사는 마을인데 괴물이 돌아다니면서 먹방을 찍는다고? 운전하는 괴물도 충격적이었지만, 이건 그것보다 더 충격적이다.

괴물이 운전을 하는 거야 뭐……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원래 우리가 몬스터라고 부르는 것들은 다른 차원의 주민이다. 당연히 인간처럼 지성이 있다. 지성체가 아니었다면 그쪽 차원에서도 가축 취급을 받았겠지.

자동차는 인간에게 맞춰 개발된 물건이다. 저번에 본 랍스터처럼 신체가 너무 거대하면 운전이 불가능하지만, 신체가 작고 손발이 있다면 운전 같은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번에 본 델리키아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쪽에도 학교가 있는 모양인데, 그걸 생각해 보면 빈씨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지.

-네. 사람이 살아요.

하지만 그 마을에 사람이 산다는 건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 세계 몬스터 주식은 인간이잖아. 밥으로 인간 먹으면서 그 마을 사람은 왜 안 먹는 거지?

그리고 사람들이 몬스터의 존재를 묵인해주고 있다고? 몬스터와의 공존이 그렇게 쉬운 거였나? 인간을 안 먹는 몬스터였다면 이해가 갔을 터였다. 근데 그것도 아니잖아. 잘못하면 괴물의 한 끼 식사가 될 텐데?

“괴물이 마을 주민을 잡아먹진 않고요?”

-그 마을에 나타나는 괴물은 누군가가 통솔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바깥처럼 마구잡이로 날뛰지 않아요.

“그럼 마을 주민은요? 멀쩡하던가요?”

제정신 박힌 인간이 그렇게 살 리가 없을 텐데. 나는 그 마을의 존재에 영문 모를 불쾌함을 느꼈다.

-아니요. 많이 이상했어요.

그리고 그건 네정좋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눈가를 찡그리고 있었다. 네정좋은 표정을 쉽사리 바꾸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마저 얼굴을 구기다니. 저번에 느꼈던 게 역시나 기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가 그 동네에 며칠 있었잖아요.

“그랬죠.”

-그 동네의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었어요.

네정좋은 잘린 목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제 본 건 20대 청년이었는데, 오늘 보니 40대 중년. 다음 날에 본 건 60대 노인.

“하루에 20년 씩 늙었다고요? 잘못 본 게 아니고?”

-그 마을엔 끊임없이 사람이 들어와요. 하나같이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고, 죽은 사람의 시체는 괴물의 먹이로 써요. 마을에 있는 괴물들은 마을에 출입하는 인간을 모두 잡아먹지만,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먹지 않아요.

마을에 출현하는 이세계의 존재와 하루에 20년 씩 늙는 주민들. 어디 괴담 소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괴한 이야기였다.

“밖에서도 이런 건 못 들어봤는데…….”

강원도 산골의 한옥 마을과 고궁, 마을에 거주하는 괴물과 이상한 사람들. 물론 괴담도 현실을 바탕으로 도는 이야기라지만,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

나와 PK가 타워를 오른 후로 이 세계가 빠르게 침식되고 있다는 건 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칼 대신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하람을 보고 왔지 않나.

하지만 이 세계는 바깥 세계와는 결이 좀 다르다. 만들어진 세계인만큼 사람들의 사고도 달랐고, 일이 흘러가는 양상도 미묘하게 달랐다.

바깥 세계를 참고하긴 했지만, 완전히 독립된 세계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저런 괴담 같은 마을이 생긴 꼴을 보면 말이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 골똘히 생각했다. 반복적으로 목이 잘린 부분을 만지작거리던 네정좋이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왔다.

-제가 돌아다닌 건 마을뿐이에요. 궁 안으로는 못 들어가 봤어요.

“왜요? 유령이니까 들어갈 수 있지 않아요?”

-그 안에는 수많은 귀신이 있어요. 접근하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저를 봐요.

극야 말하기를, 죽은 자는 응당 사후 세계로 간다고 했다. 현실에 남아 있는 것은 네정좋처럼 강한 미련이 남은 사람뿐이다.

-그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은 귀신이 되어 궁으로 가요.

네정좋이 두 손으로 자기 목을 꽉 잡으며 말했다. 입술을 깨무는 모습에서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영혼이 갇혀 있고……

“갑자기 장르가 이상해진 것 같아요. 솔직히 이 정도면 퇴마사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마을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장르가 이상하다니까요. 지금 우리 엑소시즘 호러 영화 찍는 것 같아요.”

이거 완전 엑소시즘 호러 영화 도입부인데? 조만간 퇴마사 하나 불러서 그 동네 갔다가 난리가 나는 꼴을 보게 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조만간 낙원교 집회라서 준비 단단히 해야 하는데, 이상한 일을 또 몰고 왔네. 나는 네정좋의 입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뭐든 사전 차단을 해야 이상한 일에 엮이는 걸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은 그걸 낙원행이라고 불러요.

그러나 네정좋은 끝까지 할 말을 다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단어에 입을 쩍 벌렸다.

“낙원행이요?”

-네.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네정좋과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나. 무거운 침묵이 우리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 미치광이 종교 집단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극야 인수 버전 낙원교는 극히 조용해서 몰랐는데, 이 동네 낙원교는 진짜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저 이상한 마을에 낙원교가 얽히지 않았을 확률이 몇 %나 될까? 난 0%라고 본다. 낙원행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확정 땅땅이었다고.

네정좋이 며칠 동안 어디 가서 공포체험 하고 온 줄 알았는데, 듣고 보니 남일이 아니었다. 조만간 내가 맞이하게 될 일이었던 거다.

그럼 이게 극야의 안배인가? 거긴 괴물 소굴이니 알아서 잘 대비하라는? 그걸 네정좋을 유령 만들어서 알아오게 만드는?

“문제가 있네요.”

문제가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많이 있지. 난 이예단이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잘 모르겠다. PK 그 자식은 낙원교랑 거래를 어떻게 한 거야?

단순히 사람들한테 돈 뜯어내고 단체로 약하는 미치광이들인 줄 알았는데, 이건 그 수준이 아니다.

괴물을 통솔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했던가. 이 일은 한낱 인간 나부랭이가 벌일 스케일이 아니니 그게 누군지가 중요하겠네.

교주 머리통 터뜨리는 건 이제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낙원교의 배후에 서 있는 누군가였다.

“알아오느라 고생하셨어요.”

네정좋이 없었다면 꿈에도 몰랐을 정보다. 나는 아직도 목을 꽉 잡고 있는 네정좋을 보았다.

-네.

유일하게 그를 볼 수 있는 사람으로 격상되었어도 바깥만큼 길 정도는 아니라는 걸까. 네정좋은 목을 꽉 잡은 채로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그 반응에 괘념치 않고 질문했다.

“근데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관찰하시느라 늦은 건가?”

사실 네정좋의 행적에는 궁금한 부분이 좀 있었다. 수상한 봉고차를 순순히 조사해준 점이나, 거기서 장시간 머무르고 온 것, 그리고 계속해서 목을 붙잡고 있는 것까지.

밖에서도 그렇지만 안에서도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사람이다. 나는 네정좋이 순순히 내 말에 따라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머리를 잃어버려서요.

“예?”

-마을에서 머리를 떨어뜨렸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서 헤맸어요.

일단 왜 늦었냐는 질문의 대답은 ‘머리를 잃어버려서’인 모양이었다. 와, 누가 유령 아니랄까 봐 정말로 비상식적인 대답이었다.

하긴 들은 말대로라면 그쪽 풍경이 좋지도 않을 텐데, 그런 이유 아니면 길게 머무를 이유가 없긴 하지. 머리를 잃어버린 덕에 쓸만한 정보를 얻은 모양이다.

그럼 목을 붙잡고 있는 건 다시 머리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인가? 두 번째 의문이 풀리자 세 번째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나는 첫 번째 의문을 풀기 위해 다시 질문했다.

“그럼 그때 봉고차를 따라가 주신 이유는 뭐예요?”

가장 궁금했던 거였다. 바깥에서야 내가 주먹 하나로 세계를 평정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지만, 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보라. 온갖 아양을 떨던 모습은 사라지고 시큰둥한 표정이지 않나.

-그런 게 왜 궁금해요?

질문이 썩 내키지 않는지 네정좋의 목소리가 뾰족했다. 누가 보면 내가 잘못한 줄 알겠네.

“그냥요. 순순히 제 말 들어주시는 게 신기하잖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허공에 대고 혼잣말하는 날 보며 수군거렸다. 저 사람 미친 거 아니냐는 소리부터 각성자인가? 하는 소리까지 다양했다.

네정좋은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자기도 왜 내 말을 들어줬는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설마 제 외모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나요?”

합당한 이유는 이것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아닌가? 나는 씩 웃으며 물었다.

-헛소리하지 마세요.

네정좋은 불쾌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아닌가 보군.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도 안 해서 상처받을 것도 없다.

-그냥…….

내 불쾌한 발언에 미간을 팍 찌푸린 네정좋이 운을 뗐다.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요.

“예?”

-그 말에 꼭 따라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내 특성에 세뇌 같은 것도 있었나. 그런 거 없는데. 네정좋의 대답은 엉뚱한 느낌이 강했다.

설마 이것도 극야가 참견한 건가? 나는 우릴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슈뢰딩거의 악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편하다는 건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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