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타워에서 랍스터를 상대할 때는 다리와 꼬리를 제거하고 처리했다. 타워 안의 랍스터는 생각보다 더 물렁한 데다가 건물 천장에 막혀 지금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였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척 봐도 무리지. 나는 다리 바로 앞에 서서 랍스터의 크기를 가늠했다. 지금 저 괴물이 다리 사이에 끼운 게 항구에 정박되어 있던 선박인가? 너무 간단하게 뽀개 버렸는데?
랍스터를 한 끼 식사로 먹던 인간들은 새 시대가 도래하며 랍스터의 한 밤 야식이 되었다. 두 번 봤다가는 다시는 갑각류를 먹을 수 없게 될 기막힌 광경!
-맛있게 생겼어요.
이건 이미 죽었다는 이점을 이용해 랍스터의 앞까지 구경 다녀온 네정좋의 첫 감상이었다.
“……맛있게 생겼다고요?”
조리했을 때면 몰라도 겉만 봐서는 꿈에 나올 만큼 끔찍한 모습인데. 작을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거대해지니까 징그럽게 생겼다는 게 바로 체감된다.
-반으로 갈라서 버터와 마늘을 섞어 바르고 치즈를 얹어서 오븐에 구워 보세요.
이미 죽어서 육체가 없는 네정좋을 정찰로 보냈더니 생뚱맞게 바닷가재 요리법을 알려 준다. 아마 랍스터 치즈 구이 요리법인 것 같았다.
“맛있겠네요.”
-맞아요.
“근데 지금 저희는 천하제일 요리대회 식재료 구하러 나온 게 아니거든요.”
정말로 천하제일 요리대회 같은 게 있었으면 저걸 식재료로 써도 좋았겠다. 껍질이 검은 거로 보아 독이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괴물을 먹어 없애는 방법은 생각도 못 해 봤는데 하긴 괴물이나 인간이나 생물이란 점에서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저것들이 우릴 먹으니까 우리도 저걸 먹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다른 상황에서나 고려해 볼 이야기다. 우리는 오늘 저 괴물을 소멸시킬 것이다. 어쩌면 이 사건이 인류 식량 역사에 재를 뿌리는 될 수도 있겠다. 네정좋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면 결국 저건 무한 랍스터 구이 아닌가.
나는 정찰을 보낸 소득 없이 PK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폭죽을 사 온 PK가 터덜터덜 걸어오는 날 보며 물었다.
“그 귀신이 뭐래?”
“랍스터 먹고 싶대.”
“제정신이 아니네.”
PK는 네정좋의 정신 상태를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어쩜 그렇게 맞는 말을 할 수가. 나는 바닥에 쭈그려 앉은 PK의 옆에 앉아 그가 만지작거리는 폭죽을 보았다. 어그로 용으로 준비한 거였다.
“이건 쇠꼬챙이가 아니네?”
“그런 건 한강에서나 쓰는 거고.”
가볍게 대꾸한 PK가 폭죽을 들고 일어섰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갑각류의 머리에서 빛나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옅은 녹색의 그 불꽃은 달과 함께 이 근처를 비추는 두 개의 불빛 중 하나였다.
퍼엉-!!!
PK가 쏜 폭죽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소리였다. 밤에 주택가 근처에서 이런 폭죽을 터뜨렸다가는 어느 집 가스라도 터진 줄 알고 다들 집을 뛰쳐나올 것이 분명했다.
항구 근처를 돌아다니며 배를 짓눌러 부수던 랍스터가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쿵, 쿵, 쿵. 랍스터가 다가올 때마다 땅이 울렸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
평소처럼 총기를 꺼내 든 PK가 다가오는 랍스터를 바라보며 물었다.
“잠깐 기다려 봐.”
나는 바닥에 놓인 폭죽과 라이터를 챙겨 들며 말했다. 다리 위에서 싸우다 다리가 무너지면 단체로 황천길 가기에 어그로를 끌긴 했지만, 땅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번에 실수로 소멸시킨 귀신의 불꽃은 내 주먹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러나 저 가재의 불꽃은 척 봐도 인간만 하다.
불꽃의 크기는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불꽃이 꺼져야만 존재가 소멸하는 거면 불꽃이 클수록 타격의 강도가 세야 하나?
킹 랍스터는 크기가 큰 만큼 한 번에 움직이는 거리도 길었다. 나는 랍스터의 머리에 폭죽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고 판단하였을 때 폭죽을 위로 쏘아 올렸다.
펑-!!
소리만큼 위력도 제법 괜찮은 폭죽이 랍스터의 불꽃에 맞고 떨어졌다. 그러나 랍스터의 불꽃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잘만 불타고 있을 뿐이었다.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해.”
불꽃을 꺼서 존재를 소멸시킨다니. 힘이 충분한 밖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유용할 것 같은 능력이었다.
물론 안에서도 굉장히 유용한 능력이다. 우리는 죽일 수 없는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힐 힘이 있어야 쓸모가 있는 거다. 크기 보니까 자동차째로 갖다 처박지 않으면 죽일 수 없겠는데?
커다란 고철 덩어리를 가속해서 처박아야 끌 수 있는 불꽃이라면 그걸 끄는 쪽이 더 손해다. 쟤는 목숨이 무한이라지만, 나는 목숨이 하나 아니던가.
“작전상 후퇴야. 뛰어!!”
“뭐? 갑자기?!”
안타깝지만 작전상 후퇴다. 뒷정리는 아까 공중전화로 경찰을 불러 놨으니 괜찮을 거다. 괜히 엑소시스트 대신 짭새가 뜰 수 있다고 말한 게 아니니까.
분노한 랍스터가 개미 기어가는 속도로 우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PK의 팔을 잡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가재의 느릿한 손길에 조형을 위해 심은 나무가 싹 쓸려 나가는 게 보였다.
-세상에는 덜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이 많아요.
이미 죽어서 숨이 찰 일이 없는 네정좋이 우리 옆에서 같이 달리며 말했다. 여기 죽으러 온 게 아니라니까. 이 인간은 왜 자꾸 사람을 죽이려고 해?
“저걸 죽이려면 일정 수준의 충격이 필요한 것 같아. 근데 우리가 지금 당장 저걸 세게 칠 방법은 없잖아.”
“공격하려다가 우리가 먼저 박살 나긴 하겠지.”
“그래서 작전상 후퇴야. 준비 잘하면 다음은 문제없을 것 같아.”
그래. 확실하게 공격 특성이 있는 사람과 같이 오면 말이다.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 분노한 랍스터를 흘끗거렸다. 랍스터가 부순 나무와 건물의 잔해가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살다가 몬스터한테 돌팔매질 맞기는 또 처음이네.”
미간을 구긴 PK가 헛숨을 토하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기가 차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왕 뻔뻔하게 나간 거 끝까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래.”
“그러다 죽으면 성공은 안 태어나고 실패로 죽는 거야.”
“무드가 없네, 무드가 없어.”
하늘로 비상한 돌가루와 나뭇가지 따위가 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나와 PK는 비처럼 내리는 그것들을 맞아 가며 열심히 달렸다. 분노한 랍스터는 이걸로 안 되겠다 싶었는지 컨테이너 건물 하나를 통째로 뽑아다 던졌다.
“위에 봐!”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컨테이너를 피해 움직이며 다급하게 외쳤다. 한 발짝 느리게 위로 고개를 든 PK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컨테이너를 보고는 얼었다.
-저러다 죽겠어요.
이제는 나레이션이 따로 없는 네정좋이 고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해, 뛰어!!”
마음 같아서는 저걸 박살 내서 구해 주고 싶은데 지금은 내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경고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주마등이 스쳐 지나갈 때 재깍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는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PK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컨테이너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나는 얼어서 꼼짝도 못 하는 PK의 안에서 흐리게 타오르는 라임 색 불꽃을 보았다.
분명히 바깥의 PK의 가지고 있었던 홍채 색이었다.
-와.
아까부터 혼자서 영화 보는 것처럼 열심히 구경하고 있던 네정좋이 허공에 떠 있는 컨테이너를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넋 나간 PK를 향해 신속하게 접근했다. 그리고는 정신 못 차리는 그의 등짝을 한 대 때리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정신 안 차려? 죽기 싫다면서!”
심히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같은 광경이었지만, 이걸 입 밖으로 내기에는 상황이 심각했다. 여기서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는 복수고 뭐고 황천길 먼저 가게 생겼다.
나는 도통 정신을 못 차리는 PK의 등을 마구 때렸다. PK는 그렇게 구타를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지 말을 더듬거렸다.
“방금, 그, 방금 있었던 그거-”
“네 특성이니까 입 다물고 뛰어.”
짧은 순간 라임 색으로 타올랐던 불꽃. 생존 본능으로 특성을 끌어 올렸던 건가? 나는 도로 하얀색이 된 그의 불꽃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하얀색은 특성이 없는 사람들이 가진 불꽃색이었다.
PK는 방금 있었던 일에 관하여 무언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계속 구박을 당하자 일단 입을 다물었다. 농담 없이 진지한 대화야 늘 환영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콰과광-!!!
분노한 랍스터는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처럼 파괴를 일삼았다. 우리는 가재가 던져 대는 것들을 피해 달리고 또 달렸다.
꼴에 몬스터라고 지능이 평균 이상인 가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차별 파괴를 줄였다. 대신 우리를 조준해 사물을 던지기 시작했다.
맞으면 머리가 제대로 깨질 것 같은 짱돌부터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선박 조각까지. 피하지 못할 수준의 거대한 물체가 우릴 향해 날아올 때면 PK의 불꽃이 라임 색으로 타올랐다.
무시무시한 생존 본능이었다.
“특성……”
특성이 자꾸 나왔다 들어가자 PK가 혼란에 빠졌다. 나는 PK에게 뭐라도 조언해 주려다가 달리면서 말하면 혀 씹을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특성은 절박한 상황에서 발전해요.
아침 조깅하는 것처럼 설렁설렁 뛰던 네정좋이 달리느라 정신없는 우릴 보며 말했다.
-죽을 것 같으면 안 죽더라고요.
“마치 겪어 본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때 안 죽어서 죽을 때도 안 죽을 줄 알았는데 죽었어요.
정말 생생한 경험담이었다. 특성이 어떻게 그리 빠르게 발전했는지 궁금했건만, 그런 비화가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하긴 사람은 빡세게 굴러야 뭐든지 늘긴 한다.
PK의 안에 있는 불꽃이 염색과 탈색을 반복한다. 극야가 네정좋에게 죽음 너머를 보여 주었다고 했던가. 나는 PK에게 죽음 너머를 보여 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야 저 불꽃이 라임 색으로 고정되어 타오를 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봄결아.”
하도 달려서 숨이 턱 끝까지 찼다. 나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PK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을 팍 찌푸렸다.
“나 알 것 같아.”
“뭘?”
“네가 특성을 제대로 가질 수 있는 방법.”
타워를 올라 특성을 돌려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쪽이 더 빠르긴 할 거다. 위험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때, 날 믿어?”
나는 달리는 걸 멈추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숨을 한 차례 고른 그가 내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급하긴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빨리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그럼 날 끝까지 믿어 봐.”
쿵, 쿵. 괴물이 우릴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방긋 웃는 얼굴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당혹에 물든 얼굴이 정말 끝내줬다.
“안 믿으면 어쩔 수 없고.”
라임 색 불꽃이 흰 불꽃을 살라 먹으며 타올랐다. 앞발을 그대로 내려찍는 괴물과 바닥에 넘어진 채로 괴물을 올려다보게 된 PK.
빠각-!!!
호두 껍질 부술 때 이런 소리가 났던가. 갑각류 앞발 날아가는 경쾌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의 올바르지 못한 예시.
목 없는 유령이 이번에도 옆에서 사람 화나게 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나는 앞으로 닥쳐올 시련을 대비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