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저걸 잡자고?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이? 타워에서 그 고생을 하고서?”
PK는 이 터무니없는 계획에 다소 질린 듯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소리긴 했다. 타워에서도 저걸 잡겠다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안도 아니고 밖에서 저걸 잡겠다니.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그리고 타워 다음 층에서 시험해 보는 것보다는 밖에서 하는 게 낫잖아.”
타워는 꽉 막힌 공간이다. 차라리 바다처럼 탁 트인 공간이 도망가기 더 좋지 않을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왜 말이 안 돼. 너 귀신이나 악마는 믿잖아.”
“그건 내 목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잖아. 무섭고 꺼림칙해서 그렇지.”
귀신이 무서운 건가 싶었는데 정말로 무서웠던 게 맞구나. 나는 PK를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옆에 얌전히 서 있던 네정좋이 PK의 말에 호응하듯 그의 몸을 스르륵 통과했다.
“으아악!!”
이럴 때만 기막히게 감이 좋은 PK가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네정좋은 PK의 표정을 보려고 허리를 숙였다가 굴러가는 머리를 주우러 떠났다.
쿵-!!
바다 위의 랍스터가 거대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땅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밤의 항구가 이렇게 조용했던가. 항구라는 곳이 밤이라고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나?
저렇게 커다란 괴물이 밤마다 돌아다니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랐을까? 그저 아무도 저걸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에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낮에는 얌전하니까 밤에는 항구를 비우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내가 계속 생각했던 건데 말이야.”
색욕왕이 타워 안에 가둬 놓은 몬스터들은 이 세계를 어지럽히는 오류였다. 우리 때문에 퍼지고 있는 특성도 오류에 속하고 말이다.
“어쩌면 괴물은 죽여도 죽지 않을지도 몰라.”
오류를 없애는 것으로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면 색욕왕이 굳이 감옥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었을까?
바깥에서는 외부 차원으로부터 꾸준한 침공이 있었지만, 이 안은 그런 게 없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습격하는 몬스터들은 우리가 타워에서 풀어 준 몬스터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것치고는 다들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지.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몬스터라고 해 봐야 겨우 스물아홉 마리.
많은 각성자가 몬스터에 의해 죽었다고 해도 지금 전투 특성을 가지고 남아 있는 사람만 그것의 수십 배는 될 터였다.
출동한 각성자 수십 명이 몬스터 한 마리를 처리하는 모습은 이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처리한 몬스터만 수십 마리는 족히 될 텐데, 왜 몬스터는 사라지지 않았을까?
“감옥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우리가 영화관에서 죽인 괴물은 아직 살아 있을 거야.”
나는 분명 한결이의 복수를 돕겠다고 약속했다. 특성을 되찾은 PK가 직접 그 괴물을 죽여 한결이의 복수를 했으면 했다.
하지만 계획에도 없는 계약을 하게 되면서 일이 틀어졌고, PK는 한결이의 복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았겠지. 나도 그랬다. 그리고 괴물은 아직 죽지 않았을 거다.
“저건 이 세상의 오류야. 이 가짜 세상을 만든 사람은 저것들을 가두기 위해 타워를 만들었지.”
바닥에 주저앉은 PK가 말없이 날 올려다보았다. 나는 쿵쿵대며 움직이는 랍스터를 주시했다.
“너를 만들고 세상을 만든 사람도 죽일 수 없는 것들을 한낱 인간이 죽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봤다. 각성자들이 죽인 괴물은 얼마간의 시일이 지난 후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하게 말해 복구할 시간이 필요하단 소리다.
창조주조차 손대지 못한 영역에 피조물이 어떻게 손을 댈 수 있을까. 아마 이 동네 사람들은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할 터였다. 특성이 필요하다고 풀어 두고 책임은 안 지다니. 이렇게 보니 우리가 완전 악당이네.
“못 죽일걸. 하지만 악마는 좀 달라. 나나 세상을 만든 사람처럼 바깥에서 왔거든.”
나는 고개를 돌려 머리를 절단면에 맞추고 있는 네정좋을 보았다. 그가 툭하면 머리가 떨어져서 고생하고 있는 건 머리가 잘려 죽었기 때문이다.
-여기 귀신은 죽은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다녀요.
자기 장례식을 보고 온 네정좋이 남긴 말이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편의점 근처에서 신체의 절반이 뭉개진 귀신을 보고 기겁해서 주먹부터 날렸다.
평범하게 나타났으면 초면에 주먹질할 일은 없었을 텐데, 하필이면 바닥을 뚫고 나타나서 말이다. 그렇게 내 주먹은 귀신의 뭉개진 심장 근처에 꽂혔다. 그것도 옅은 분홍색으로 일렁이는 묘한 불꽃에 직격했다.
펑-!!
화르륵 타오르던 불꽃이 충격을 받자 폭죽 터지는 소리를 내며 터졌다.
-터졌다.
네정좋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날 괴롭게 했다. 저 사람도 성불하지 못한 이유가 있는 불쌍한 사람일 텐데, 갑자기 주먹질을 하다니. 나는 다급하게 귀신이 있던 자리를 더듬거렸다.
그러나 불꽃이 터짐과 동시에 귀신은 이미 녹아내렸다. 녹아내려서 이제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죽었나 봐요.
이미 죽은 네정좋이 귀신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귀신을 성불시킨 건가? 나는 내 주먹을 더듬거리며 생각했다. 아니, 이건 성불시켰다기보다는…… 소멸시켰다는 쪽이 더 옳은 말일 것 같았다.
나는 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네정좋을 샅샅이 살폈다. 네정좋 역시 심장 근처에 작게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 있었다. 바깥의 네정좋의 홍채 색과 똑같은 진홍색이었다.
“악마랑 계약한 이후로 영혼을 보게 된 것 같아.”
그걸 영혼이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친절하게 모든 걸 설명해 준 편애와 다르게 극야는 내게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듯이. 편애처럼 옳은 길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닌, 내가 가는 길을 옳은 길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처럼.
“불꽃이 꺼지면 생물이 소멸해. 나는 그걸 볼 수 있어. 죽지 않는 괴물을 죽여 줄 수 있다는 소리야.”
랍스터는 우리보다 훨씬 큰 만큼 불꽃 또한 커다랬다. 나는 옅은 녹색으로 타오르는 그 불꽃을 보았다. 힘이 넘치는 랍스터처럼 불꽃도 아주 힘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정리하건대, 너의 완전한 복수를 위해서는 새로 얻은 이 능력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가설이 확실하다면 앞으로 괴물이 바깥에 풀려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면 자연스럽게 괴물 때문에 죽는 사람이 줄어들게 될 테고.”
나는 손가락에 이유를 꼽아 가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PK는 내 부하 같은 게 아니었으니 협조를 구하려면 납득부터 시켜야 했다.
눈을 아래로 내리깐 PK가 생각에 잠겼다. 바깥에서는 긴 시간 동안 신뢰 관계를 구축해 놓았으니 밑지는 셈 치고 억지를 들어줄 수 있었겠지만, 여기는 바깥이 아니었다.
대뜸 악마랑 계약했다고 하면서 랍스터를 소멸시키는 실험에 참여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절대로 못 믿을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만화나 소설도 아니고 그런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고민하는 PK를 내려다보며 그가 거절했을 시에 일을 강행할 계획을 세웠다. 1번, 네정좋을 이용해서 협박하기. 2번, 극야 부르기. 3번, 굉장한 어그로를 끌어서 랍스터가 우릴 공격하게 하기.
선택지를 주는 것처럼 말해 놓고서 결국은 답정너라니. 사기가 따로 없었지만, 완전 범죄면 사기가 아니다. 여기서 평생 살 것도 아니고 바깥으로 나갈 거니까 괜찮아.
-지금 이상한 생각 하죠?
남몰래 히죽거리고 있었더니 머리를 이어 붙인 네정좋이 다가와 말했다. 다년간의 사회생활 덕분에 눈치라는 게 생긴 네정좋이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고민하는 PK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네정좋이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믿기지만 네 노력이 가상하니 믿는 척이라도 해 주겠다는 제스처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그의 머리가 정신없이 흔들린다.
랍스터가 움직일 때마다 파도가 철썩철썩 밀려왔다. 나는 다리를 집어삼킬 듯이 닥쳐오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무저갱처럼 새카만 빛깔이 사람을 지레 겁먹게 만들었다.
“나는,”
목소리를 살짝 내리깐 PK가 운을 뗐다. 그는 무릎을 모으고 팔로 무릎을 감싸 안았다.
“네 말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
특성을 되찾지 못해 아직 갈색인 눈이 날 올려다보았다. 진실만 떠들어도 의심을 받는구나.
-설득력 없는 얼굴이긴 해요.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네정좋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다. 이 분위기에 얼굴 타령이 나와? 넌 조용히 해.
“믿기 어렵겠지. 나도 이해해.”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괴물의 출현, 한결이의 죽음, 이 세계의 진실, 특성의 발견, 그리고 나의 존재까지.
PK의 입장에서는 모든 게 거짓말 같을 것이다. 이 세계는 원래 그런 세계였다. 특성도 마법도 없는 세계. 과거에 닫혀 있던 우리 차원을 그대로 구현한 세계.
인간 때문에 죽는 일은 있어도 몬스터 때문에 죽는 일은 없던 세계. 목숨 걱정이 아니라 돈 걱정이나 하던 세계 말이다.
비일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와 이 세계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지금도 한창 편애와 기 싸움하고 있을 색욕왕이 보면 기겁할 만한 모양새가 따로 없다.
나는 이 세계에 오류를 풀어 망쳐 놓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나와 함께 이 세계를 망쳐 줄 사람은 몇 명이 있어도 부족했다.
“믿지 않아도 돼. 지금 중요한 건 네가 네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고, 나는 아직 네가 필요하다는 거니까.”
바닷가라 그런지 짠내가 났다. 바람에 실려 오는 묘한 비린내가 해산물 비린내와는 조금 달랐다.
“상식 따질 거면 귀신부터 믿지 말았어야지. 사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상식적이지는 않잖아. 괴물이 나오질 않나, 초능력자가 생기질 않나, 귀신을 보는 사람이 있질 않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엑소시스트 운운하던 인간이 이렇게 나오니까 조금 웃기기도 하고. 영화 좀 본 것 같은데 이러기야?
“네가 죽는 걸 무서워한다는 걸 알아.”
커다란 달이 뜬 밤이었다. 나는 웅크리고 앉아 있는 PK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갈색 눈에 내 모습이 비쳤다.
“악마한테 영혼을 팔아서라도 여기서는 안 죽게 해 줄 테니까 그만 일어나.”
편애와 계약했을 때처럼 한쪽 눈이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극야의 눈 색과 똑같은 색이었다.
죽음을 상징하는 보라색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녹색이랑 보라색이 섞여서 갈색이 되려나. 나는 착잡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활짝 웃었다. 확 튀는 두 색보다는 갈색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어디 가서 갈색 눈의 악마랑 계약했다고 말하면 되겠네. 편애가 뒷목 잡고 넘어갈 모습이 눈에 선하다.
희미한 피냄새가 바람에 섞여 흩어지는 밤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PK는 결국 내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