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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152화 (152/175)

제152화

그날 이후로 내 평화로운 일상에는 목 잘린 유령이 함께하게 되었다. 이 유령을 성불시키려면 극야를 불러 제발 이 유령과 한 번만 만나 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었으나…….

【“싫어요.”】

그렇다고 하신다. 우리 집 악마 제2호는 1호보다 훨씬 새침한 스타일이었다.

“혹시 저희집 식객이 된 유령이 앞으로 쓰일 곳이 있는 건가요? 그래서 성불을 못 하게 하시는 거예요?”

편애는 특성이 그쪽인 관계로 알아서 내 생각을 읽고 대답했지만, 악마 2호와 대화하려면 직접 말로 해야 했다. 편애와는 다른 분야를 다루니까.

【“…….”】

문제는 이 악마는 편애와 다르게 몹시 비협조적이라는 거다. 처음 봤을 때랑 이미지가 조금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이게 원래 성격인가?

속으로 불평을 늘어놓아도 딴지 거는 사람이 없으니 심심했다. 막상 생겼을 때는 불편하다고 뭐라고 했는데, 없으니까 또 아쉽구나. 살면서 그렇게 성능 좋은 백과사전을 가질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야기했던 건 알아 왔어?”

나는 이예단과 교대를 마치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코끝이 빨간 PK가 편의점 밖에 서 있었다.

“그래. 낙원교 집회는 다음 주 수요일이야.”

이곳의 진짜 이예단이 바란 것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 극야와 계약한 이후로 타워를 오르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되었지만, 낙원교 쪽에는 아직 볼일이 있었다.

이예단의 아버지는 어떻게 괴물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했는가? 그리고 낙원교의 교리가 이 세계의 감춰진 진실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 특성은 끝의 끝에 가서 되찾을 수 있을 거다. 어쩌면 색욕왕을 물리쳐야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 세계는 하룻밤의 꿈이에요.”】

극야는 그렇게 말했다.

【“몽마는 꿈을 다루는 종족이죠. 그들이 사용하는 종족 특성의 기원은 녹색 눈의 악마. 색욕왕은 녹색 눈의 악마가 이 세계를 무너뜨릴까 봐 그가 간섭조차 하지 못하게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어요.”】

정신과 관련된 것은 모두 편애의 영역이다. 편애는 나와 계약할 때도 그런 말을 했었다. 자기는 이제 내 정신의 수호자라고.

하지만 수호자는 이제 없지. 나는 이어지는 극야의 말을 경청했다.

【“꿈의 형식으로 완성된 환영 세계. 색욕왕은 이 세계에 굉장한 공을 들인 만큼 순순히 주도권을 넘기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게 편애가 간섭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정신 계열 전공인 편애가 왜 간섭하지 못하나 궁금했는데, 그런 이유가. 그렇다면 이 분야 전공도 아닌 극야는 왜 간섭할 수 있는 거지?

“그럼 당신은요? 이쪽은 당신 영역이 아니지 않아요?”

분명히 아주 거창한 영역이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그거 말이다.

나는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그의 수식어에 회귀자 딱지가 붙은 이상 그렇게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뭐든 방법이 있었겠지. 처음에는 없었어도 반복하면서 강구했을 테고.

【“잠과 죽음은 형제 사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극야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잠과 죽음은 형제라. 진짜 형제가 있다는 소리는 아니고 부전공이란 뜻인가. 죽음을 영면이라고도 말하니 일리가 있었다.

그럼 이 세계는 내 꿈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라고 할 수 있나? 바깥의 나는 잠자고 있는 거고?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은 외부의 자극에 둔감해진다. 더군다나 나는 눈을 뜰 수조차도 없는 상황. 나는 부디 바깥의 내가 사지 멀쩡한 상태이길 바랐다.

“다음 주 수요일이면 시간이 빠듯한데. 그전까지 타워를 쭉 오를 수 있을까?”

“가 봐야지. 조금만 더 오르면 사람도 없어.”

지금 우리가 위치한 곳은 타워를 세운 대기업 계열사 오피스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눈을 피해 괴물을 처리할 수 없어서, 타워는 뉴스에서 한창 핫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괴물이 습격하는 지옥탑이라는 말이 나도니 말 다했지. 하지만 괴물이라면 그 타워를 습격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도망가고 싶어 할 텐데. 거긴 감옥이니까.

“하긴 조금만 더 오르면 오피스텔 층이니까. 그쪽 주민을 제외하면 사람이 없겠지.”

“또 청소부 분장해야겠네.”

“슬슬 그냥 쳐들어가도 되지 않아? 어차피 싸우기 시작하면 괴물 습격이다 뭐다 난리 날 텐데.”

“넌 몰라도 난 경찰 조사받기 힘들다니까.”

사회의 쓰레기가 대놓고 쓰레기인 티를 냈다. 그러게, 착하게 살면 좀 좋아? 경찰 앞에서 당당해질 수도 있고.

-무슨 얘기 하는 거예요?

영문을 모르는 네정좋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제 머리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목 부위를 잡고 갸웃거리는구나.

“알면 다쳐요.”

이미 죽은 사람한테 알면 다친다는 말을 하는 게 옳나? 나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왜 허공에 대고 혼잣말해?”

말을 꺼내기 무섭게 PK가 태클을 걸었다.

“넌 모르겠지만, 지금 내 옆에는 유령이 있어.”

나는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유령? 설마 귀신 말하는 거야?”

PK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바깥에서도 현관에 귀신이 있냐고 묻더니, 이런 거 무서워하는 건가.

나는 고개를 돌려 자기 목을 감싸고 있는 네정좋을 보았다. 멍한 표정의 네정좋은 나와 PK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더니 이내 자리를 옮겼다.

“진짜야? 대답 좀 해 줘.”

꽁꽁 얼어붙은 PK가 재차 물었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지 자꾸만 입술을 핥는 게 보였다.

이런 건 맞다고 해도 이상하고 아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나? 네정좋이 PK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줄 것도 아닌데 그냥 말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PK의 애타는 물음을 무시했다. 자리를 옮긴 목 잘린 망령이 한쪽 손을 뻗어 PK의 어깨를 쥐었다. 무서워하는 걸 알아채자마자 장난질이라니. 외모가 네정좋 기준에서 합격점이라는 걸까, 아니면 낙제점이라는 걸까?

“아.”

개인적으로 궁금한 테마라 나는 네정좋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PK는 네정좋이 어깨를 쥐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내 쪽으로 붙었다.

“왜 그래?”

나보다 덩치도 큰 게 한쪽 팔을 잡고 매달리니 그만큼 웃긴 꼴도 없었다. 절벽에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사람도 아닌데 이만큼 힘을 주어 매달릴 필요가 있나. 나는 PK의 정강이를 발로 까며 짜증을 냈다.

“갑자기 왜 이래? 빨리 안 비켜?”

“방금 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어.”

“누가 네 어깨에 손을 올려? 여기에 너랑 나밖에 없어.”

“네가 말했잖아. 네 옆에 귀신이 있다고!”

PK는 곧 뒤로 넘어갈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어깨에 손 하나 올린 것으로 사람을 기절 직전까지 몰아간 네정좋과 귀신 가지고 온갖 난리를 치는 PK. 잘못한 건 어느 쪽일까.

-감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 어지간하면 모르는데.

여전히 멍한 얼굴의 네정좋이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나는 찰싹 달라붙은 PK를 걷어차며 말했다.

“야, 귀신이 너 맛있겠대.”

“뭐?!”

-맛없어요.

“잡아먹으라고 하기 전에 떨어져라.”

-안 먹어요.

이 인간이나 저 유령이나 도움 되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택시 앱을 켰다. 도착까지 1분에서 2분 정도 남았다는 창이 떠 있었다.

“곧 택시 도착하니까 엄살떨지 말고 빨리 와.”

“택시 불렀어? 어딜 가려고?”

“괴물 잡으러.”

영화관의 괴물은 극야가 처리했지만, 나는 극야처럼 괴물을 처리할 수는 없다. 우리에겐 아직 당면한 과제가 남아 있었다.

* * *

편애와 계약해 얻게 된 것은 남의 생각을 읽고 기억을 파헤치는 능력이었다.

저번에 감색 눈이랑 싸우던 걸 보면 땅을 무너뜨리고 싱크홀을 만드는 능력도 있는 모양이지만, 바깥의 내게는 직접적인 전투 능력이 필요 없었다.

그것보다 훨씬 좋고 익숙한 특성이 있는데 굳이 그게 필요할까? 나는 편애와의 계약에서 얻게 된 것에 그럭저럭 만족했다. 남의 생각을 읽는 것은 전투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럼 이번에 극야와 계약하며 얻게 된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영혼을 보는 눈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괴물을 상대하려면 뭐라도 있어야 해요.

내가 지금 죽은 네정좋을 보고 있는 걸 보면 대충 답이 나왔다.

-저번에 싸웠다가 죽을 뻔했어요. 지금은 죽었지만요.

띄엄띄엄 놓인 수풀 사이로 동물의 작은 발이 쏙 나왔다가 사라졌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개나 고양이의 발 같았다.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조잘조잘 떠들던 네정좋이 그 발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떨어지는 머리를 재빨리 잡아채는 모습에서 능숙함이 묻어났다. 익숙해진 모양이다.

“항구엔 갑자기 왜 온 거야?”

불어 닥치는 바닷바람이 매서웠다. PK는 계속 1km 간격을 유지하며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귀신이랑은 동행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여기 괴물이 나온다고 들어서.”

괜히 한 번씩 틱틱거리는 하람과는 지금도 쭉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저번에 보복하겠답시고 새벽 2시에 연락했더니 저쪽도 똑같이 새벽 5시에 연락이 온다.

“영화관에서 괴물을 물리친 건 내가 아니라 악마야. 나는 악마처럼 괴물 못 물리쳐. 타워에서 문제 생기기 전에 확인하러 온 거라고 할 수 있지.”

휭 부는 바람에 맞춰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흩날렸다. 나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에 뺨을 찰싹찰싹 맞아가며 말했다. 줄곧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던 PK가 손을 빼는 걸 보니 바람이 어지간히 심하게 분다 싶었다.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소리 중에서 가장 미친 소리긴 하네.”

주머니에서 손을 뺀 PK가 앞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래서 엑소시스트는 누군데?”

나는 동물에 정신 팔린 네정좋에게 손짓하며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인생은 엑소시스트 나오는 장르가 아니거든.”

“그럼 뭔데?”

“엑소시스트는 모르겠고 짭새는 뜰 수도 있겠다.”

악마와의 전쟁은 몰라도 범죄와의 전쟁은 터질 만하지. PK가 계속 지금처럼 산다면 말이다.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특성이 없어서 그럭저럭 멀쩡하게 산 것 같은데, 특성을 되찾으면 또 모르겠네. 나는 땅과 땅 사이에 놓인 다리를 향해 다가갔다. 바다 위에 보이는 검은 그림자 사이로 옅은 녹색 불꽃이 일렁였다.

수산 시장이 위치한 이 항구는 드라이브나 데이트 코스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사람이 많아서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지던 곳이었는데, 요새는 도둑까지 생겼다고 했나.

사람이 없는 밤을 틈타 무언가 자꾸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진 것에는 생선이나 인간뿐만 아니라 배나 자동차 따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게 그 소문의 도둑인 모양인데.”

나는 검고 딱딱한 껍질을 가진 갑각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PK가 미간을 팍 일그러뜨렸다.

“저게 뭐야.”

“검은색 랍스터?”

“저건 진짜 괴물이잖아. 그것도 저번에 본.”

혀를 내두를 만큼 거대한 크기의 랍스터가 바닷물을 가르며 움직였다. 옆으로 쪼르르 다가와 선 네정좋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으면 아플 것 같아요.

저렇게 큰데 당연히 아프겠지.

-세상에는 덜 아프게 죽는 방법이 많아요.

대체 뭐라는 거야.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 유령은 내가 죽으러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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