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네가 모르면 누가 아냐. 내가? 이 사탕을 집어삼킨 내가?
뭐, 누가 여기다 잘못 던졌나 보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서 살기에는 세상에 이상한 일이 너무 많았다. 허공에서 사탕이 생겨난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만 문제는 그 뒤에도 이상한 일이 계속 생겼다는 거다.
“내 펜 네가 가져갔어?”
“아니.”
펜이 사라지거나,
“네 소매 끝 말이야, 원래 잘려있었어?”
“엥. 옷이 언제 잘렸지? 멀쩡한 옷이었는데?”
옷에 문제가 생기거나,
“오늘따라 비둘기가 많이 보이네.”
“그러게.”
평소에도 자주 보이는 비둘기가 하늘에서 막 추락하거나.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비둘기는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서울에서 볼 수 있는 비둘기는 이것저것 다 주워 먹고 통통하게 살찐 새들이다. 어릴 때 이후로는 비둘기가 나는 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 뒤뚱뒤뚱 걸어 다녔지.
다가가서 위협해도 눈길조차 안 주는 시크함. 그러나 먹을 걸 들고 있으면 지구 끝까지 쫓아올 것처럼 눈을 빛내는 탐욕스러움.
비둘기를 보고 있으면 인간이나 비둘기나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나는 다섯 번째로 추락한 비둘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내가 만든 지도가 옳은지 확인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마침 이 근처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난 이따 편의점 알바를 가야 하거든.
어제 반서준을 단단히 놀려 놔서 오늘은 반서준을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 이제 번호가 있으니 안 봐도 상관없다지만.
반서준 같은 경우에는 특성 첫 랭크도 S였으니 그쪽에 손을 벌리기 전에 PK가 특성을 되찾을 거다. 하람도 첫 시작이 S는 아니었으니 특성을 찾아 반서준까지 볼 일은 없었다.
저점이 낮을수록 되찾는 속도가 빠르니 첫 랭크를 아는 게 중요한데, 여기 사람들이 그걸 알 턱이 있나. 밖에 나가서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답이 없다고밖에 말 못하겠다.
“넌 네 첫 랭크가 몇이었을 것 같아?”
두억시니는 사람이 많은 장소를 좋아한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서울의 한 영화관이었다. 며칠 전에 여기서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낭설이 돌았지. 사실 낭설이 아니라 진짜지만 말이다.
“처음에 공중에 떠 있었다고 했나?”
“그랬지.”
“그럼 A랭크.”
“왜?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 했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성실한 편은 아니라서.”
누군 성실해서 랭크가 급성장했나. 기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네정좋을 봐라. 극야가 충격 요법을 가했더니 단번에 치고 올라왔지 않나.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었길래 그만한 성장을 이루었던 걸까. 나는 평생 가도 알 수 없는 부분이라 그저 궁금하기만 했다. 평범한 인간은 죽은 다음에야 알 수 있는 부분 아닌가.
나란히 걷고 있던 PK가 잠시 멈춰서더니 뒤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으로 일곱 번째였다.
“왜 자꾸 뒤를 돌아봐? 따라오는 사람이라도 있어?”
“있어.”
“뭐?”
충격적인 대답을 한 PK가 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그 뒤를 후다닥 쫓아가 그의 옆에 찰싹 붙었다.
“다시 말해 봐. 우릴 미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눈감아 주려고 해도 너무 티가 나서 못 감아주겠어.”
백화점 엘리베이터에는 언제나 사람이 빽빽하다. PK는 방금 떠나간 엘리베이터를 보며 아쉬운 얼굴을 했다. 엘리베이터 세 대의 버튼을 꾹꾹 누르는 게 여간 신속한 게 아니다.
“미행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왜 이렇게 태연해? 그러게 내가 착하게 살라고 했잖아. 미행 당할 건수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네가 언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PK가 냉담하게 대꾸했다. 아, 여기선 착하게 살라고 말한 적이 없던가. 너무 자연스럽게 반말하고 있어서 바깥이랑 헷갈렸다. 오래 알고 지낸 데다가 생긴 게 똑같다 보니 헷갈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모르는 사람들이야. 너한테 용건이 있어 보이는데?”
“나한테?”
나처럼 착하고 무난하게 산 사람이 어디 있다고 미행이 붙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야?”
“두 명이야. 한 명은 수상할 정도로 꽁꽁 싸매고 있어. 유명한 사람인 모양인데.”
백화점 엘리베이터는 오늘도 개미 기어가는 속도로 움직였다. 층마다 서는 것까지 평소와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사람이 많다는 소리겠지. 8층의 영화관에도 서는 걸 보니 영화 보려는 관객도 많은 모양이고.
여기서 머리 없는 시체가 나왔다는 말이 나왔으면 이렇게 사람이 많았을까? 보지 않아도 뻔하다. 난리가 났겠지.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갈 텐데, 세상은 평화롭다. 이 세계는 지나치게 안일한 면이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게 아니면 몬스터에 관심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 다했지. 몇몇은 도시 전설로만 알고 있을 거다.
몬스터가 입히는 피해가 축소되거나 말소되고 있는 것은 세상의 분위기와 관련이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사색에 잠겨있다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니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나는 PK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새 몰린 사람들이 우리 뒤를 이어 엘리베이터 안을 꽉 채웠다.
“영화관이 10층이었나?”
사람이 많다 보니 처음에 올라탄 우리는 가장 안쪽까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8, 9, 10층인데 매표소는 8층. 9층이랑 10층에는 상영관만 있어.”
“8층에 먼저 가야겠네.”
구석에 붙은 PK가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렸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고개를 들이밀고 층수 버튼을 보았다. 거의 다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인지 5층과 8층 두 개만 눌려 있었다. 하긴 쇼핑하러 온 사람은 에스컬레이터를 주로 이용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건 고층에 가려는 관객들이 대다수지.
엘리베이터는 별다른 문제 없이 매끄럽게 올라갔다. 나와 PK는 문이 열리자마자 우르르 빠지는 사람들을 따라 8층으로 나왔다.
“이제 해야 하는 게 뭐야?”
PK가 목깃을 쥐고 펄럭펄럭 흔들었다. 넓은 곳으로 나오니 숨통이 좀 트이는 모양이다.
“5관 상황 확인하기.”
어제 집에 돌아가서 최선을 다한 웹서핑을 했다. 내가 또 이런 거 전문이지. 델리키아 사건 때 이미 한번 해보지 않았던가. 물론 그때는 키보드 배틀 조지게 뜨다가 비눗방울의 순정을 짓밟고 말았지만.
그때를 생각하니 쓸모가 없어지는 바람에 미국 간 마리 씨가 떠오른다. 원래 마리 씨는 잘 살고 있을까. 악랄한 PK 자식이 마리 씨를 살려뒀을 리가 없지. 사후 세계에서라도 잘 살고 계시길 바랄 뿐이다.
매표소와 상영관이 함께 있는 8층에는 넓은 홀과 매점이 있었다. PK는 자연스럽게 매점으로 가려는 날 붙잡고 영화 상영 시간표 앞으로 다가갔다. 상영 시간표는 대문짝보다 더 크게 띄워져 있는 터라 확인이 쉬웠다.
“확인해야 할 게 5관이라고 했지?”
“응. 5관에서 시체가 나왔다고 했는데…… 시간표에 5관이 없네.”
나는 영화 상영표를 쭉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8층에 있는 1관부터 10층에 있는 10관까지 빠짐없이 나와 있는 상영표에는 5관만 텅 비어 있었다.
기기 고장으로 5관은 잠시 폐쇄한다고 써있는데 내부 사정을 아는 우리가 그걸 믿을 리가. 괴물은 이 영화관에서 사람을 사냥하고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았다.
“우리 추측이 맞는 것 같아. 5관만 비어 있잖아.”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데 버터구이 오징어 냄새가 훅 풍겨온다. 지나가는 커플이 팝콘과 오징어를 들고 상영관 안으로 입장하는 게 보였다. 나는 무심코 매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반사적으로 PK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 그 인간들 영화관까지 따라왔어.”
한눈판 것 때문에 한소리 들을까봐 쫄아 있었는데 PK도 다른 곳을 보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PK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영화관 매점의 맞은편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었다.
“저기에 앉아 있는데 어쩔래? 확인할 거야?”
가게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여기에서는 미행하는 사람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었다. 특성이 있어서 시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여기에 괴물이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볼일 더 없잖아.”
“넌 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미행이 붙어? 그러게 내가 착하게 살라고 했잖아.”
PK는 내가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똑같이 돌려주며 이죽거렸다. 나는 PK의 정강이를 걷어차려다가 그만 허공에 헛발질했다. 특성이 없어 PK가 피할 수 있을 만큼 느렸기 때문이다.
“난 인간 쓰레기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나도 착하게 살라는 소리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은데.”
“그럼 말하기 전에 착하게 살지 그랬어. 쓰레기처럼 사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너보단 낫지. 나는 부모 등골 빨아먹는 고시생 같은 건 아니니까.”
부모 등골 빨아먹는 고시생 대 마약 유통 범죄자라니. 이건 vs도 붙이기 힘들 만큼 차이 나는 문제 아닌가?
전자는 양심적 쓰레기고 후자는 사회적 쓰레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쓰레기라는 점은 똑같긴 하네. 밖에서는 돈 될 것 같다고 잘해주더니만 안에서는 돈이 안 되니까 막말하는 거 봐라. 이 동네 와서 아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서로 틱틱대긴 해도 우리는 일단 같은 목표를 가진 동맹. 나와 PK는 말싸움이 심화되려는 낌새가 보이면 입을 봉인하는 암묵적 약속을 한 상태였다.
지금 중요한 건 PK와 싸우는 게 아니라 내 뒤를 밟았다는 인간들을 확인하는 거다. 우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프랜차이즈 카페를 향해 걸었다.
툭-.
눈앞으로 무언가가 휙 하고 떨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내 앞에 떨어진 것을 주워들었다.
“사탕?”
아까 카페에서도 사탕이 떨어지지 않았나. 이번에 떨어진 사탕은 청포도 맛이 아니라 자두 맛이었다.
“방금 눈앞으로 사탕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생각해?”
나는 자두 맛 사탕을 PK에게 건네며 물었다. 사탕을 건네받은 PK가 사탕을 까서 자기 입 안에 냉큼 집어넣었다.
“맛있네. 나는 청포도보다 자두가 맛있더라.”
“누가 너보고 맛 평가해달래? 이걸 누가 떨어뜨렸냐가 문제지.”
사탕을 입 안에서 굴리고 있는지 자꾸 달칵거리는 소리가 났다. PK는 불만 가득한 내 얼굴을 흘끗 보고는 말했다.
“그거야 간단하잖아. 앞으로 다섯 걸음만 나가 봐.”
“이렇게?”
나는 PK의 말에 따라 앞으로 한걸음 씩 나아갔다. 딱 네 번째 걸음을 뗐을 때였나?
툭-.
눈앞으로 사탕이 하나 더 떨어졌다. 이번 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버터 스카치 캔디였다.
나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사탕을 주워 들었다. 분명히 카페 쪽으로 가고 있었지. 그리고 PK는 그곳에 우리를 미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고.
특성이 없었을 때라면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몇몇에게 특성이 돌아온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이런 작은 물건을 옮기고, 나를 미행할 만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사탕 떨어뜨리고 도망가는데? 따라갈 거지?”
눈치 빠른 PK가 도망가는 그들의 뒤를 쫓았다. 나는 PK에게 사탕을 던져주며 대답했다.
“응.”
이게 무슨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하는 짓이 너무 뻔해서 웃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