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특성 랭크를 올리는 방법이요?”
급하게 소환된 극야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물었다. 자기 말로는 다급하게 달려왔다는데, 평소처럼 흐트러짐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네. 다음 층에 가려면 슬슬 특성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PK가 가진 총만 믿고 돌파한 29층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총도 안 박히는 단단한 외피를 가진 몬스터가 나올지 누가 알았겠어.
사실 몬스터한테 총이 안 통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PK에게 넘겨 받아서 쏴본 총은 지나치게 묵직하고 위협적이었다. 민간인인 내가 총을 들고 있는데 왜 도망가지 않는 거냐고. 조금 더 무서워 해달라니까?
‘제대로 조준해서 쏴야 해. 실패하면 알지?’
험악하게 얼굴을 구긴 PK의 모습이 떠오른다. 난 총기를 잡아본 적도 없는데 제대로 조준은 무슨. 이 친구 농담 참 잘하네, 하하하.
탕-!!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발사된 탄환은 몬스터의 단단한 외피에 맞고 튕겨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우리 쪽으로 튀지 않은 건 천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걸 그대로 맞았으면 내가 쏜 총 맞고 가는 수가 있었다니까.
“저번 층에서 고생 많이 하고 왔거든요.”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슬슬 특성을 되찾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시점이다. 아는 사람 중에 특성을 되찾은 사람이 나왔으니 위험천만하게 특성 없이 도전하는 것보다 네정좋을 섭외하는 게 좋겠지.
“그래서 제가 근처에 특성을 되찾은 사람이 있는지 알아봤어요. 마침 네가정말좋아 님이 특성을 되찾으셨고요.”
“그런가요?”
“네. 그래서 물어보는 거죠. 그 사람 F급에서 S급으로 랭크가 팍 올라서 난리가 났었잖아요. 그렇게 성장시킨 사람은 당신이고.”
한낱 F급에서 세계 정상의 S급 헌터까지. 네정좋이 보여준 랭크 상승의 기적은 네정좋의 인성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는 사연이었다. 그 이상한 닉네임도 유명세를 널리 떨치는 데 한몫한 것 같고 말이다.
사람들은 F급이 S급이 되었다는 엄청난 사실에 열광했다.
거지가 왕이 된 동화 아시는지? 몇몇 사람들은 네정좋의 기적을 그 동화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그만큼 엄청난 신분 상승이었다는 소리지.
“그 방법이 대체 뭐죠?”
특성의 발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정확히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이나 무협 소설에 나오는 무공과 비슷한 것 같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꼭 계기가 필요했다.
계기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것부터, 생사를 넘나드는 커다란 것까지.
네정좋은 어떤 계기를 통해 그렇게나 큰 발전을 이루었던 걸까. 이건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묻는 게 아니라 예전부터 내심 궁금했던 점이었다.
“특성 랭크라…….”
팔짱을 끼고 선 극야가 과거를 회상하듯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하얀 낯 위로 묘한 미소가 걸리는 게 참 불길해 보였다.
“인간의 정신은 아주 연약해서, 인지를 벗어난 광경을 보여주면 세 가지 반응을 보이곤 하죠.”
“예?”
“미쳐서 날뛰거나, 백치가 되거나, 둘 다 아니거나.”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나는 침착하게 손을 들어 눈을 비벼보았다. 극야는 여전히 불길하게 웃고 있었다.
“주하는 둘 다 아닌 케이스에 속했어요. 보기 드문 정신력을 가진 인간이죠.”
“살아있는 사람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죽음 너머를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극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만 저 말에 기가 막히냐. 저 악마는 멀쩡히 살아있는 인간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죽은 인간은 되돌아올 수 없다. 이건 특성이 생기기 전에도, 특성이 생긴 후에도, 그리고 지구가 멸망할 날까지 불변할 법칙이었다.
인간은 직접 겪지 않아도 기록을 통해 간접적인 경험을 얻었다. 문자의 발명은 지금도 늘 거론되는 위대한 업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기록을 뒤져봐도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죽음을 겪은 인간은 절대로 돌아올 수 없으니까, 기록 또한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죽음 너머를 두려워했다. 원래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이다.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것도 한계치를 넘으면 고통이 되는 법인데, 두려움 같이 부정적인 감정은 오죽하겠는가. 접한 사람은 당연히 망가지겠지.
“네가정말좋아 님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죽음 너머를 보고도 미치거나 백치가 되지 않고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 F급에서 S급까지 단번에 도약한 사람. 그야말로 살아있는 기적이 된 사람.
“한낱 인간이죠.”
그 인간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 다 극야 때문이었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극야를 살폈다.
한낱 인간. 여러 의미로 비범한 네정좋도 극야에겐 한낱 인간일 뿐인가.
하긴 저쪽은 인간도 아니었고, 살아있는 생물도 아니었다. 편애의 말에 따르면 멀쩡히 숨쉬고 있어도 그저 인간을 흉내낸 모습일 뿐, 진짜 인간은 아니었다. 그들 종족은 인간같이 하찮은 종족과 궤를 달리했다.
“그래요……. 그렇군요.”
놀라운 특성 발전의 비화가 이런 거였다니. 놀라운 만큼 충격적이다. 그런데 죽음 너머를 본 네정좋이나 아직 보지 않은 네정좋이나 그게 그거 같지 않나?
성격 이상한 건 원래부터 저랬나? 정말 종잡을 수 없었다. 나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극야는 내 우스운 반응에 퍽 만족한 모양이었다.
“용건이 끝나셨다면 돌아가 봐도 될까요?”
“이번에도 일찍 돌아가시네요?”
“바깥에 볼일이 있어서요. 아직 정리가 덜 된 터라. 원하신다면 조금 더 머무를까요?”
충격 요법으로 인간 하나를 정상에 올려둔 특성의 달인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런데 아까 보기 드문,”
“하실 말씀이 더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보기 드문 정신력을 가진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기 드문’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붙진 않을 텐데. 그 말은 한 사람한테만 시도한 게 아니라는……?
나는 오늘 알아서는 안 될 무언가를 알아버린 걸지도 모른다. 낙원 인간들이 정신 나간 것처럼 구는 이유와 관련 있는 걸까.
솔직히 너무 궁금했지만,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다.
극야라면 웃는 얼굴로 나한테도 보여주겠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 아직 죽음 너머를 보고 그럴 시기가 아닌 것 같거든요?
궁금함을 해소하려고 했다가 지뢰를 밟았다. 나는 급하게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네가정말좋아 님이 그쪽을 애타게 찾고 있거든요.”
“주하가요?”
“예. 괜찮으시다면 유주하 씨 얼굴도 보시고 이 동네 유주하 씨한테도 사후 세계 구경도 시켜주시면 어떠세요? 아까 말했다시피 다음 층으로 가려면 특성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S급 유주하면 몇십 층은 껌일 거다. 그 정도 오르면 다른 사람들도 특성을 얼추 되찾겠지. PK가 특성을 되찾을 수도 있고.
PK가 아니라 하람이 특성을 되찾아도 좋을 것 같다. 하람의 능력이라면 몬스터 상대로 굉장히 효과적이고, 설득하기도 쉬우니까.
그 사람은 뭐랄까…… 도와달라고 하면 틱틱대다가 결국 도와줄 것 같지. 바깥에서는 완전 능구렁이인데 이쪽에서는 조금 깜찍하다. 공부만 하느라 사회 생활 한 번도 안 해본 도련님이다 이거겠지.
생각해 보면 반서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도 변함없이 정의감 넘치는 성격이잖아. 사정을 설명하면 순순히 도와줄 것 같은 데다가 나와의 접점도 있었으니까.
바깥의 반서준이랑은 보기 어색한 사이였지만, 여기서는 그런 문제도 없다! 여기서는 반가면을 쓴 적 없으니까! 내 본모습 따위는 보지도 않을 테니까!
과거의 그 일을 계기로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된 것 말고는 엮인 게 더 없으니까!
“인상 쓰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바깥의 반서준을 생각하느라 인상을 쓰고 있었더니 극야가 미간을 꾹 눌러 펴줬다.
“그거 게르마늄 팔찌급 미신 아니에요? 요즘 악마는 그런 것도 믿어요?”
“슈브가 이런 걸 좋아해서요. 종종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화 안 된다는 말을 해요.”
“소화 안 되는 악마라니, 그거 귀하네요.”
저 정도면 너무 인간처럼 산 나머지 자기가 진짜 인간인 줄 아는 거 아니야?
종종 등장해서 이상한 소리나 하고 가는 극야랑 달리 상시 대기 백과사전으로 일곱 배 더 쓸모 있는 편애.
있을 땐 몰랐는데 없으니까 그리워졌다. 악마 출입이 한 명밖에 안 되는 거라면 극야 반납하고 편애 빌려달라고 하면 안 될까?
“굉장히 불온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극야를 흘끗 보았다. 이런 건 또 귀신같이 맞추는구만.
“착각이에요. 바쁘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유주하 씨 업그레이드 요청 사항만 처리하고 가시면 될 것 같은데요.”
사람이 어쩜 저리 변함없이 똑같을 수가 있냐. 아, 사람이 아니었던가?
나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렸다. 극야는 변함없이 매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싫어요.”
“예?”
뭐든 들어줄 것처럼 웃었으면서 거절을 한다고? 세상에 다시 없을 선량한 사람처럼 웃으면서?
“왜요?”
나는 극야의 옷을 꽉 쥐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 세계를 떠날 때 나타나는 징조였다.
극야가 눈을 살짝 내리깔자 긴 속눈썹이 팔랑였다. 그는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요.”
“예?”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재차 물었다. 이 악마가 지금 뭐라는 거야?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늘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줄 것처럼 말하면서, 내가 바라는 걸 해준 적은 없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내게 도움이 될 거라면서 자기 멋대로만 했지.
잡고 있던 옷소매가 완전히 흐려졌다. 나는 극야에게서 손을 떼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기막히게 예쁜 얼굴이 순간적으로 무표정을 띠었다.
“말하기 싫어요.”
“……왜요?”
“당신이 질투하는 건 추하다고 했으니까.”
이번엔 또 뭐라는 거야. 나는 구겨지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극야는 언제 무표정한 얼굴이었냐는 듯이 금세 다시 미소를 지었다.
“특성 때문에 주하 이야기를 하시는 거라면 굳이 제게 부탁하실 필요는 없어요. 준비는 이미 되어 있으니까요. 조만간 알게 되실 거예요.”
극야는 마지막 말을 남긴 후에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극야가 떠난 자리에 서서 그가 남긴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준비는 이미 되어 있다. 조만간 알게 될 거다?
여전히 아리송한 말이었다. 저 악마는 왜 말을 저렇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탐정 만화 같은 걸 많이 봤나? 그래서 모든 인간이 돋보기를 들고 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다른 세계의 나는 저 악마의 언어 습관을 안 고치고 뭐했냐. 나는 뒷목을 긁적거리면서 극야가 남긴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질투는 추하다……. 그거 지금 자기가 질투한다는 소리인가?
누구한테? 네정좋한테? 에이.
요즘 타워를 올랐더니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나는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골목길을 나왔다. 전화를 끊지 않은 걸 깨달은 건 본능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켠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