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안녕하세요.”
편의점 바로 앞까지 온 반서준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밖이 추워서인지 코끝이 붉었다.
“오늘은 안에 안 계시네요?”
“잠깐 이야기 할 사람이 있어서요. 마침 다음 타임 친구가 빨리 와서 카운터를 부탁했어요.”
“아…….”
반서준의 눈길이 PK에게 가서 닿았다. 반서준의 표정이 몹시 미묘해졌다.
“……그렇군요.”
반서준의 시선을 받은 PK가 재빨리 모자를 눌러썼다. 반서준의 시선이 끈질기게 PK의 얼굴을 쫓았다.
둘이 아는 사인가? 바깥에서 아는 사이면 안에서도 아는 사이긴 하던데. 두 사람이 바깥에서 아는 사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반서준의 인사에 웃으면서 대답해줬다. 반서준은 끝까지 PK를 쳐다보다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유리창 너머로 반서준의 모습이 보였다. 반서준은 평소처럼 커피 두 잔을 사서 매장을 나왔다.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 둘을 보며 고개를 까딱이고 가는 모습이 한결같았다.
“형사랑도 알아?”
PK가 입을 연 것은 반서준이 환한 밤거리로 들어서고 난 후였다.
“형사? 저 사람 말하는 거야?”
“그래. 이 근처에서 좌표가 하나 잡혔던가. 그것 때문에 이 근처를 뒤지고 있는 모양이네.”
시큰둥한 얼굴의 PK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나는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무는 모습을 지켜봤다. 입김만큼이나 뿌연 연기가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그 괴물 어디 있어?”
아주 위협적인 목소리였다.
나는 미간을 팍 찌푸린 채로 PK를 노려보았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담배 연기가 자꾸 내 쪽으로 왔다. 비흡연자한테 간접흡연을 시키는 쓰레기 같으니. 천벌을 받아도 모자랄 인간이었다.
“맨 몸으로 살인범을 제압하고, 낙원교의 뒤를 캐며, 괴물이 병원에 들이닥칠 것을 알린 사람. 네가 수상한 건 너도 부정할 수 없겠지. 안 그래?”
담배를 바닥에 휙 던진 PK가 발로 불씨를 비벼 껐다. 나는 PK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지금 수상한 게 누군데 그래.”
닉네임은 PK면서 이름은 봄결이고, 낙원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다가, 마약이나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 PK가 말한 것처럼 반서준이 진짜로 형사라면 PK를 알아볼 수도 있겠다 싶다. 일단 총기 소지 이전에 마약 유통부터 입이 떡 벌어지는 중범죄였다.
“선의를 베풀었더니 협박하러 오고 난리네.”
한결이와 관계를 이어 나간 건 순전히 선의에서 비롯된 일이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흔히 생기는 게 미아다. 그 애의 보호자를 찾아준 것, 그 뒤로 쭉 놀아준 것, 그 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병원에 간 것 모두 내가 그 애를 좋게 보았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한결이에게 접근했다면 이 상황이 억울하지도 않았겠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PK는 지금 당장 내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대도 이상하지 않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기 싸움에서 밀리는 것은 곤란했다. 나도 PK에게 요구하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거래는 동등한 위치에서나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괴물의 위치를 알려주면 뭘 할 건데?”
지금 저쪽에서 요구한 것은 괴물의 위치. 나는 괴물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확신을 줄 필요가 있었다.
“찢어 죽일 거야.”
PK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완전히 으깨서 땅에도 묻히지 못하게 해야지. 그 전에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해줄 생각이고.”
“그건 인간이 아니라서 네가 바라는 대로 하지는 못할걸.”
“인간이 아니라고?”
PK가 눈가를 찡그리며 물었다. 그 괴물이 인간이 아니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혀가 그런 식으로 늘어나는데 그걸 어떻게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 나는 새삼 놀랐다.
“처음부터 괴물이라고 불렀잖아. 그건 인간과 닮았지만 인간이 아니냐. 애초에 인간과 닮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인간과 비슷한 형체긴 하지만 인간과는 좀 달랐다. 늘어나는 혀나 큰 눈, 흐느적대는 사지까지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질 정도로 조잡하고 기괴하게 생긴 그것.
“그게 어딜 봐서 인간이야? 괴물이지. 이 세계에는 없는 존재라고 설명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
그래. 이 환영 세계에는 몬스터가 없으니까 이 세계에는 없는 존재라고 설명하는 게 정확했다. 우리는 지능을 가진 다른 세계의 존재를 몬스터라고 부르고 있었으니까.
“하.”
새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낀 PK가 어이없다는 듯한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내가 한 말이 퍽 웃긴 모양이었다.
“다른 세계의 존재? LSD 빨고 집회하는 그 미치광이들이나 하는 말을 믿으라고?”
“그게 누군데?”
“낙원교. 너도 그 정신 나간 놈들이 말하는 ‘보는 자’였나?”
조소하는 PK의 목소리에 혐오가 가득 실려 있었다.
낙원교의 ‘보는 자’, 타워의 본 모습을 보는 사람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쪽 교리에 실린 거짓말을 말하는 건지.
“그쪽 교리는 잘 몰라서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그 괴물을 보고도 인간이라 믿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가짜라는 말을 할 수 있나? 그 말을 한다고 해서 PK가 그걸 믿을까? 한 눈에 봐도 인간은 아닌 괴물을 인간으로 믿고 있던 사람이다. 더해서 낙원교의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교주가 지껄인 거짓 교리에 수많은 사람이 놀아나는 광경을 보았을 거다. 약에 취해 정신 나간 사람들이 어떻게 미쳐 가는지 보아왔을 테지.
내가 아무리 수상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내 말을 믿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말하고 미치광이 취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게 수없이 많다는 거지. 내가 그쪽으로 아는 게 많거든. 믿기 싫으면 말던가.”
지금이 딱 극야가 준 외알 안경을 사용할 타이밍인데, 집에 두고 와버렸다.
그 아이템은 동료 만들기에 최적화 된 귀한 물건이라 평소에 들고 다니지 않았다. PK가 오늘 찾아올 줄 몰랐지. 내가 미래를 아는 극야도 아니고.
“쓸데없는 말은 됐으니까 괴물이 어디 있는지나 말해.”
아까 꺼냈던 담배를 다 태운 PK가 새 담배를 꺼냈다. 아이고, 저 꽁초를 대체 누가 치운담. 이예단이 치우려나?
“사실 봄결 씨 태도가 웃기기는 해. 낙원교 미친놈들 같은 소리는 안 믿는다면서 나한테 괴물 위치를 털어놓으라고 말하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가 괴물이랑 동업하는 것도 아닌데 괴물의 현재 위치를 어떻게 알겠어. 그 괴물이 날 죽이려고 하는 거야 병원에서 봤을 테고…… 그래서 지금 내 머리통 안 쏜 거잖아. 그렇지?”
PK가 담배를 문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내뿜은 연기가 바람에 실려 이쪽으로 밀려왔다. 위치가 참 안 좋았다.
“나한테 이걸 묻는 이유는 내가 괴물의 위치를 알 거라는 심증이 있어서 아니야? 그럼 낙원교식 심령 현상을 어느 정도 믿고 있다는 소린가?”
“말하는 거 보니까 물에 빠져도 입만 둥둥 뜨겠어.”
“그거 내 대사인데.”
저 범죄자가 이젠 내 대사도 강탈해가네. 보통 주절주절 떠드는 건 PK 쪽이었는데, 이 세계로 오더니 상황이 바뀌었다. 역시 무게 잡는 건 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나? 오늘도 특성의 소중함을 한번 더 깨달아 갑니다.
“실없는 소리는 이쯤 하고 제대로 말할까.”
나는 내게 몰려오는 담배 연기를 피하기 위해 의자를 뒤로 밀어 앉았다. PK의 시선은 이제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것처럼 바뀌어 있었다. 어지간히 우스꽝스러운 모양이다.
“내가 위치를 알려줘도 너는 괴물을 죽일 수 없을 거야.”
시간을 더 끌었다간 이예단이 매장 밖으로 뛰어나올 것 같다. 나는 타는 듯이 뜨거운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째서?”
PK는 눈가를 한껏 찡그리며 물었다.
“몬스터는 특성이 없으면 죽이기 힘드니까. 그건 원래 이 세계에 없어야 하는 존재야. 오류 같은 거지.”
색욕왕은 세계의 오류를 커버하기 위해 타워를 세웠다. 하지만 나는 이 세계의 오류가 범람해야만 힘을 되찾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걸 죽이려면 특성이 필요해. 백날 총질 해봐라. 몬스터가 죽나.”
그게 됐으면 바깥의 헌터들은 죄다 실직했다. 인명 피해는 줄었겠지. 공장에서 잔뜩 찍어낸 총기를 보급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위치는 당장 알 수 없어. 내일 되는 대로 메시지를 보낼 테니까 확인해. 가서 원하는 대로 총질해 봐. 괴물이 그걸로 죽으면 다행이지만, 내 생각에는 안 죽을 것 같은데.”
나는 일부러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이 일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괴물이 죽든 말든 PK가 죽든 말든 상관없는 사람처럼.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괴물을 죽여 봐. 그리고 안 되면 돌아와서 말해. 내 말대로 괴물이 죽지 않았다고. 그럼 나는 네게 제안할 거야.”
무표정한 낯의 PK가 열심히 지껄이는 나를 빤히 응시했다. 그는 눈을 깜빡이는 법을 잊은 사람 같았다.
“네가 괴물을 죽일 수 있게 특성을 되찾아줄 테니, 내가 목적을 이루는 것을 도우라고.”
추운 겨울밤이었다. 환한 밤거리가 지척인 골목 가장자리의 편의점 앞에서, 그는 물었다.
“네 목적이 뭔데?”
그의 이름에 들어있는 계절과는 거리가 있는 날씨였다. 아닌가. 봄에는 꽃샘바람이 불던가.
어쨌든 봄과는 거리가 있는 날씨기는 했다. 나는 하얗게 새는 입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세상을 무너뜨리는 거.”
춥다. 제대로 된 외투도 없이 밖에 오래 나와 있었더니 조만간 얼어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추운 건 우리 사이에 흐르는 정적이었다. PK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겨우 입을 뗀 PK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약 달라고 쇼하는 미치광이는 봤는데 약도 안 먹고 미친 소리 하는 미치광이는 또 처음이네.”
나로서는 약간 발끈하는 말이었다. 나를 약쟁이들이랑 비슷하게 보다니. 님 지금 제정신?
바깥에서는 미친 스케일로 사고를 치던 인간이 안에서는 극현실주의자가 되다니. 이래서 사람은 다양한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낙원교랑은 다르거든?”
“관심 없으니까 위치나 정확히 보내.”
텅 빈 담뱃갑을 바닥에 버린 PK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자식 줄담배를 피우더니만 이제는 담뱃갑까지 버리고 가는구나.
“의외로 순순히 가주네. 난 총 들고 협박이라도 할 줄.”
“말하지 않으면 그럴 생각이었지.”
낮게 내리깐 목소리가 섬뜩했다. PK는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알려주지 않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러면 내일 밤에 다시 보게 될 거야.”
싸한 시선이 머리 위를 스쳤다. 벌써부터 머리에 총구가 들이밀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PK가 그렇게 떠난 뒤, 나는 하람에게 연락을 넣었다. 때는 밤 11시였고, 하람은 내 연락을 쿨하게 씹었다.
자기는 그 시간에 연락해도 되고 나는 안 된다 이거임? 이런 비양심적인 인간을 봤나.
나는 다음 날 새벽 5시에 하람에게 메시지 테러를 가했다. 하람은 보다 못해 전화를 받았고, 나는 하람에게서 괴물의 위치를 뜯어냈다.
괴물의 위치를 받은 PK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어디 가서 죽었나 몰라. 나는 편의점 테이블 밑에 끼어 있는 담뱃갑을 바라보며 PK의 명복을 빌었다. 죽었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괴물, 두억시니는 하루가 다르게 악명을 떨쳐갔다. PK가 다시 모습을 보인 건 그날로부터 일주일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