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 기분은 어떨까. 그 사람이 지켜야 했던 어린 동생이라면?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다면?
잃은 것이 없는 내가 그 상실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한결이의 머리를 들고 서 있는 PK를 흘끗거렸다. PK는 무표정한 낯으로 눈 감은 한결이의 머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끄으으윽-.
머리에 총을 맞은 괴물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다. PK는 한결이의 머리를 베개 위에 올려두고 총을 들었다.
탕-!!!
비틀거리며 다가오던 괴물이 다시 한번 총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괴물치고는 이상하게 약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저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많은 경찰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괴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족히 수백 대는 될 법한 CCTV에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게 저 괴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총 몇 방 맞았다고 빌빌대고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괴물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상했다.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쓰러진 괴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총 몇 방 맞고 쓰러질 정도로 호락호락했다면 타워 1층의 터줏대감으로 어떻게 지냈지?
바닥에 쓰러진 괴물은 신체 일부를 꿈틀거리며 질긴 생명력을 증명했다. PK는 괴물의 머리통을 퍽 걷어차고 침대로 다가갔다. 그 위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편안해 보이는 한결이의 시체가 있었다.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이불을 펼친 PK가 한결이의 시체를 조심히 감싸 안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몹시 낯설었다. 그동안 보아온 모습과 확연히 차이 나는 모습이었다.
한결이의 시체를 챙긴 그는 병실에 남은 괴물과 나를 뒤로 한 채 방을 떠났다. 한결이를 수습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머리에 총 맞고 쓰러진 괴물은 PK가 떠난 후에도 바닥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공익을 위해 연장을 챙겨 괴물 앞에 다가가 앉았다. 괴물은 망치로 머리를 맞아도 죽지 않았다. 너무 단단한 나머지 머리보다는 철을 두드리는 감각이었다.
병원 밖이 사이렌 소리로 소란스럽다. 얼마 안 가서 경찰이 이곳에 들이닥치겠지. 나는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선수 쳐서 도주했다. 괴물이 CCTV를 죄다 깨놔서 다행이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얻은 게 하나도 없다. 나는 여전히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타워를 보며 생각했다.
하루 빨리 특성을 되찾아야 한다.
* * *
그날 병원 18층에 들이닥친 경찰은 바닥에 쓰러진 괴물을 보게 되었다. 괴물은 회복을 위해 처음 본 경찰의 머리를 집어삼켰고, 그대로 도망갔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인간을 해치고 잡아먹는 기괴하게 생긴 생물. 날붙이는 물론 총으로도 죽이지 못하는 괴물.
사람들은 괴물에 대해서 마구 떠들어댔다. 괴물이다, 도깨비다, 신이다, 요괴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인간의 적임은 확실했다. 사람들은 머리를 씹어 먹는 그것에게 두억시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억시니라니, 누가 붙인 건지는 몰라도 정말 딱 맞는 이름이에요.”
평소보다 몇 배는 일찍 온 이예단이 카운터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대걸레로 바닥을 쓱쓱 밀며 물었다.
“두억시니가 뭔데요?”
인터넷 뒤져보다가 우리나라 요괴 이름이라고 누가 댓글에 써놓은 걸 보긴 했는데,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야담에 나오는 요괴 이름이에요. 이름 자체는 머리를 짓누르는 귀신이라는 뜻이고, 전승에서는 사람의 머리를 으깨어 죽이는 정체불명의 존재로 나온다네요.”
그동안 유독 머리를 집어 삼키는 모습을 보였던가. 현장에서 먹힌 경찰도 머리만 떼 갔지 몸뚱이는 남겼다고 하고.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에요. 지금 그걸 못 잡으면 난리 난다는 게 문제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이예단이 20분 전에 왔던가. 오늘은 지나치게 일찍 왔네. 싫은 건 아닌데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배알이 뒤틀렸다.
“낙원교 쪽에서는 반응이 어때요? 그동안 천벌을 내리던 존재의 등장인데?”
기왕 시간이 난 김에 저쪽 상황부터 물어봐야겠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멸망의 징조라고 기뻐하죠.”
“자기들이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기뻐한다고요?”
“그 사람들은 믿음 없는 자만이 천벌을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어요. 죽는 순간에도 그렇게 생각하겠죠. ‘아, 나는 믿음이 부족해서 죽는구나.’”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이예단이 변함없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평소에 학교에 갔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목소리였다. 그 비정상적인 것들이 저 사람의 일상이기 때문이겠지. 새삼스럽게 소름이 끼쳤다.
“교주가 거짓말했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남은 사람들은 이미 선을 넘었어요. 지금 죽어야 낙원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하면 그대로 집단 자살 사건이 벌어지겠죠.”
“미치광이가 따로 없네요.”
눈앞에서 교주가 천벌 받는 꼴을 봐야 하는데. 천벌? 나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머리가 터져 죽으면 그걸 천벌이라고 불렀던가.
특성을 되찾을 때 다른 사람들도 특성을 되찾는 거라면, ‘천벌’에 딱 맞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딸랑-.
편의점 문짝에 달린 종이 크게 한번 흔들렸다. 휴대폰에 고개를 박고 있던 이예단이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매장 안으로 들어온 건 새까만 바람막이를 입은 손님이었다.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쓴 그 손님의 모습이 제법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제법 익숙한 게 아니지. 내가 아는 바깥의 그 사람은 언제나 저런 식으로 입고 다녔으니까.
점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던 손님이 내 앞까지 다가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게 대놓고 범죄자의 행색이다. 이예단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손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눌러쓴 모자 아래로 피딱지가 앉은 입술이 보였다. 그는 점퍼에서 손을 빼내더니 내 멱살을 홱 잡아 올렸다.
“너.”
카운터에 앉아 있던 이예단이 우당탕 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저 인간의 돌발행동에 놀란 모양이었다.
“정체가 뭐야?”
스산한 감각이 목덜미를 스쳤다. 다른 사람을 압박하기 위해 낮게 내리깐 목소리였다.
나는 답지 않게 위협을 가하는 그를 멀뚱히 올려다보았다. 의외네. 내가 아는 그라면 눈에 거슬린 순간부터 깔끔하게 치울 생각을 했을 텐데.
특성은 없지만 총과 칼이 있으니까 치우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냥 날 미행하다가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접어들었을 때 죽이면 되는 거니까. 물론 극야가 있으니 그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왜? 이제 와서 그런 게 궁금한가?”
카운터 안쪽에서 넘어진 이예단이 끙끙대며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내 멱살을 쥔 그의 손등 위를 톡톡 두드렸다.
“원하는 게 있지? 그래서 지금까지 안 죽인 거 아닌가?”
이쪽으로 달려온 이예단이 나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우리를 갈라놓았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손을 뻗어 남자의 모자를 벗겼다.
“당신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이예단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번에 봤을 때와 비교해 눈에 띄게 초췌해진 얼굴. 시뻘겋게 실핏줄이 터진 눈이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 같았다.
“……당신이 여기 왜?”
이예단은 사자를 경계하는 생쥐처럼 날을 세웠다.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는 PK는 그런 이예단의 모습이 우스운 모양이었다.
“이거 가출한 도련님이잖아?”
빈정거리는 말투로 이예단을 조롱한 PK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나는 완전히 일그러진 얼굴의 이예단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카운터 좀 맡아 줄래요?”
“안 돼요. 저 사람은 위험해요.”
“저도 알아요. 그래도 저쪽에서 저를 해치지는 않을 걸요. 지금 간절한 건 저 사람일 테니까.”
무엇을 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한결이와 관련된 일이라는 데 내 손목을 걸 수 있었다. 나는 불안해하는 이예단의 등을 밀었다. 이예단은 편의점 밖으로 나가는 우리 둘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덧 한겨울이다. 나는 하얗게 새는 입김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다. 이번 달이 지나면 조만간 새해가 밝겠지. 그 전에 이 환영 세계에서 나갈 수 있을까.
“이쪽으로.”
슬슬 매장 밖에 있는 테이블 치울 때 안 됐나? 나는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테이블 앞에 앉았다. 겨울인 데다 밤이라 그런지 테이블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PK는 언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었냐는 듯이 제법 얌전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은 그가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연희. 올해로 스물여섯. 직업은 따로 없고 현재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
“오, 신상 조사 좀 했나 봐?”
“어머니는 카페를 차렸고, 아버지는 서울역 무료 급식소 근처에서 지내다가 괴물의 습격으로 사망.”
“내가 모르는 것도 아네.”
중학생 때 마지막으로 본 아빠 소식도 알고. 이쪽에서 괴물 때문에 죽었다는 건 바깥 세계에서는 몬스터로 인해 죽었다는 뜻이겠지.
분명히 슬퍼해야 할 상황인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 사람과는 남보다 먼 사이였다. 나는 PK가 죽을 때 억지로라도 눈물 한 방울 짜내어 울어줄지언정, 그 사람이 죽어 흘릴 눈물 같은 건 없었다.
그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한 사람이니까.
바깥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그래도 네 아빠라면서 뒤늦게라도 장례를 치러주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미 땅 깊숙한 곳에 묻어둔 과거를 굳이 파낼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모난 곳 없이 지극히 평범한 인생이야. 고시생으로 부모 등골 빨아먹으면서 지내다 20대 후반에 정신 차린 것까지 아주 평범해.”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싸우자고?”
“이 정도로 평범하면 조만간 기사에 나겠어. ‘천운으로 괴물에게서 살아남은 평범한 사람’ 같은 타이틀로 말이야.”
아직 환한 밤거리를 보며 빈정거린 PK가 내 손에서 모자를 빼앗아갔다. 자기 모자를 가져간 거니 되찾아 갔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했다.
“아, 기사라면 이미 났던가? 7년 전 이맘때 말이야.”
“뭐?”
“LSD 빤 미치광이가 칼로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그걸 네가 제압했지.”
PK는 여전히 밤거리를 보고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다. 나는 PK의 표정이라도 살피기 위해 그의 옆모습을 흘끗거렸다.
“그 사람은 잘 훈련 받은 군인이었어. 모로 보나 일개 학생 따위가 제압할 수 있는 피지컬은 아니야.”
“…….”
“칼 들고 난동 피우는 사람을 상처 없이 맨 손으로 제압하는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 아닌가? 어떻게 그게 현실일 수가 있지?”
줄곧 밤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던 PK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가져간 모자를 쓰지 않은 상태라 얼굴 표정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래서, 너.”
아직 불이 환한 거리 쪽에서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다가오는 사람을 확인했다.
“정체가 뭐야.”
PK는 질문하지 않았다. 정체가 뭐냐고 물으면서 정체를 얼핏 확신하고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글쎄.”
나는 저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사람을 보며 말했다.
“부모 등골 빨아먹고 있는 전직 고시생?”
지척까지 다가온 그가 날 확인하고는 손인사를 건넸다. 나도 손을 흔들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언제나 이 시간쯤에 오는 반서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