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폐가 쪼그라드는 것 같고, 입 안에서는 단맛이 난다. 왠지 모르게 옆구리까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다.
이게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 한 대가인가. 이래서 사람은 운동을 하고 살아야 하는 건데. 특성이 없는 삶도 얼추 익숙해졌다지만, 이 저질 같은 체력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 특성이 다른 사람의 특성보다 빼어나게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소소한 면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었구나. 원래 있을 땐 다들 모른다. 없어져야 겨우 실감이 나는 거다.
나는 숨을 헉헉 몰아쉬며 층수를 확인했다. 10층. 한결이의 병실이 있는 18층까지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상황의 급박함을 깨닫고 달리기로 했다지만, 두 번은 못 할 것 같았다.
여기서 멈추고 포기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머리가 띵하다.
계단으로 한 층, 한 층 오를수록 어지러운 소리가 났다. 너무 숨이 찬 나머지 환청이 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나? 나는 입술을 깨물고 14층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풍겼다.
쾅-!!
괴물이 14층을 지나간 모양이다. 나는 재빨리 문을 닫고 그 뒤에 기대어 섰다. 괴물은 지금 어디 층에 있지? 위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건가? 아니면 밑에서부터?
밑에서부터면 1층 로비에 있던 사람들을 공격했겠지. 그걸 내가 몰랐을 리 없다. 아니다. 이 병원은 건물이 여러 개에 지하까지 있구나. 일단은 내가 있는 동관을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역시 위에서부터 내려왔을 확률이 가장 높은가? 그럼 내가 지금 뛰어 올라가도 늦은 게 아닌가?
나는 다시 14층 문을 열고 그 안을 살펴보았다. 동관에는 7층부터 18층까지 빠짐없이 입원실이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곳은 입원실 복도였다.
스산한 기운이 흐르는 하얀 복도.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그 위로 겹쳐지는 것은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 소름이 쭈뼛 돋을 정도로 기괴한 소리였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더 듣고 있다가는 공포에 사로잡힐 것 같았다.
눈앞에서 몬스터가 이를 세우고 달려드는 것이 차라리 낫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목표가 제시되어 있으니까.
반면에 저런 식으로 은근한 공포를 유발하는 것들은 참을 수 없이 소름끼친다. 본래 인간이 미지로부터 공포를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두려운 거지.
나는 14층 계단에 주저앉아 가방을 열었다. 무기로 쓰기 위해 온 집안을 뒤져서 챙겨온 연장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망치, 송곳, 드라이버, 장도리.
식칼을 챙겨올 용기는 없어 공구만 열심히 챙겨왔다. 이걸 들고 나오는 꼴을 엄마한테 들켰다면 다시는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겠지. ‘우리 딸이 미쳤어요!’ 수준이다.
나는 가방에서 장도리와 송곳을 챙겨들고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망설이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찔리는 순간 파상풍을 입게 될 것 같은 송곳과 무게부터 장난 아닌 장도리. 두 개의 무기가 내게 힘을 줬다. 극야 없이 괴물의 머리통을 깨부술 수 있을까? 과연 고3 시절에 펼쳤던 무림 고수적 활약을 지금도 할 수 있을 것인가?
긴장을 풀기 위해 속으로 끊임없이 주절거리는 동안 4개의 층을 지나쳤다. 지금이 17층, 조금만 더 오르면 18층이었다.
18층의 상황은 17층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겠지. 나는 송곳을 제대로 고쳐 쥐고 17층 문을 열었다.
“흐아아악-!!!”
쩌렁쩌렁한 비명이 고막을 때렸다. 다리에 깁스를 한 환자가 바닥을 기어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른 움직임. 엉금엉금 기어가는 사람 바로 위 천장에서 히죽 웃음 지은 괴물이 긴 혀를 날름거렸다.
“안 돼!!!”
괴물의 혀가 환자의 목을 휘감고 비틀었다. 환자가 짧게 내지른 비명은 단말마가 되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환자가 목 잘린 시체가 되었다. 괴물은 병실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다른 환자를 흘끗 바라보았다. 환자는 눈을 질끈 감고 닥쳐올 고통을 기다렸으나, 괴물은 그 앞을 유유히 지나갔다. 아무 환자나 죽이는 건 아니고 기준이 있는 것 같았다.
저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기준이라면 저번에 짐작했었지. 아마 밖에서 몬스터로 인해 죽은 사람을 먼저 죽이는 모양이라고.
균형을 이렇게나 잘 맞춰주다니. 세계의 수호자 납시었네, 진짜.
나는 17층 문을 닫고 계단을 마구 뛰어올랐다. 바로 위가 한결이가 있는 18층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선 18층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크고 널찍한 휴게실도, 깔끔한 복도도 여전했다.
단지 사람만 없었다. 휴게실에도,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도, 그리고 직원들이 근무하는 곳에도.
이 넓은 공간에 오직 나만이 존재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병실의 문을 열었다. 이불을 턱 끝까지 덮은 환자가 얌전히 자고 있는 그 병실에서는 피 냄새가 났다.
그래도 겉으로 볼 때는 문제가 없다. 나는 그 병실에서 나와 그 다음 병실도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이번 병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빈 병실인 듯했다.
똑같은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이곳은 아수라장인 밑층들과는 다르게 너무 고요했다. 그 고요함이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겉으로 달라진 게 없으니 초조함이 사라져갔다. 나는 공구를 쥔 손에 힘을 준 채로 한결이의 병실을 향해 뛰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빨리 한결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조용한 복도에 내 숨소리가 흩어졌다. 나는 한결이의 병실이 있는 복도를 달렸다. 안 그래도 숨이 차서 죽겠는데 누가 어깨 위에 손을 올린 것처럼 어깨가 무겁다.
……어깨가 왜 무겁지?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송곳을 위로 휘둘렀다. 어깨에 실렸던 무게가 단숨에 쏙 빠져나갔다.
눈치 채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았다.
기다란 혀가 천장에서 꿈틀거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사건의 범인을 마주했다.
저번에 봤던 괴물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하도 본 상황이라 이제 지긋지긋하다. 이 정도면 클리셰 아닌가? 몬스터들이 나만 보면 좋아서 달려드는 거.
혀를 길게 뺀 괴물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괴물이랑 마주치는 상황은 오기도 전에 예상하고 왔다. 불규칙하게 들리던 심장 뛰는 소리가 평소처럼 고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때건 진짜 위기 앞에서는 도리어 차분해진다. 나는 지금 내가 해야하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한결이 찾기. 그리고…… 괴물 죽이기?
저걸? 어떻게?
타워는 저 괴물에게 있어 감옥이었다. 특성이 있었다면 한 주먹거리일 허접이지만, 특성이 없는 지금은 내가 허접.
타워에서 마주쳤을 때보다 더 빨라진 괴물이 혀를 꿈틀거리며 달려들었다. 나는 미간을 팍 찌푸리고 송곳을 휘둘렀다. 채찍처럼 휘둘러진 괴물의 혀가 송곳을 낚아채 그대로 던진다.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송곳이 슉 날아가 벽을 뚫고 박혔다.
콰직-!!
듣기만 해도 섬뜩한 소리였다. 나는 창백하게 질렸을 게 분명한 얼굴을 더듬거렸다. 벽에 박힌 송곳을 중심으로 벽에 금이 가 있다. 괴물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저 멀리서부터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났다. 괴물은 발소리를 내지 않으니 저건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흔적이나 다름없었다.
내 목숨 부지하기도 힘든데 다른 사람이라고? 나는 미간을 팍 찌푸린 채로 극야를 불렀다.
“거기 있어요?”
별다른 반응이 없다. 보고 있지 않거나 나오지 않아도 될 상황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파바바박!!
괴물이 긴 혀를 휘두르며 천장을 기었다. 나는 내 뒤로 떨어지는 혀를 향해 장도리를 휘둘렀다. 괴물은 이번에도 장도리를 낚아채 다른 곳을 향해 던졌다. 복도 한 곳에 떨어진 장도리가 땡그랑 소리를 냈다. 눈을 희번뜩하게 뜬 괴물이 텅 빈 복도를 향해 돌진한다.
탕-!!
이윽고 총소리가 났다.
“이 정도로는 안 죽나 봐?”
복도 코너에서 권총을 든 남자가 나타났다. 총에 머리를 꿰뚫린 괴물이 몸을 파드득 떨었다. 나는 여유 없는 얼굴의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PK…….”
워낙 조용한 공간이라 작은 중얼거림도 제법 크게 들렸다. 귀여운 이름과 다르게 귀엽지 않은 표정의 봄결이가 날 보며 말했다.
“그 닉네임은 어떻게 아셨어요? 슬슬 연희 씨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요?”
평소의 여유는 어디 갔는지 표정이 보통 험상궂은 게 아니다. PK는 바닥에서 거칠게 꿈틀거리는 괴물을 향해 총을 한 발 더 쐈다.
탕!!
시원한 소리와 함께 괴물의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 그러나 괴물은 아직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곰 머리통도 꿰뚫는 거로 가져올 걸 그랬어요. 안 그래요?”
괴물의 피는 붉은 색이 아니었다. 나는 바닥에 붙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괴물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총 들고 설치는 민간인을 보게 될 줄이야. 반서준보고 저 새끼 빨리 잡아가라고 하고 싶었다.
“곰 머리통도 꿰뚫는 총을 가지고 다니세요?”
“개조한 지 좀 된 거라서 가지고 다니지는 않아요.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으면 가지고 다니는 건데 말이에요.”
내 질문에 가볍게 대답해 준 PK가 꿈틀거리는 괴물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총알이 머리를 관통한 관계로 당장 움직이긴 힘들 것 같았다.
괴물이 쓰러진 걸 확인한 PK가 조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가는 방향이 한결이의 병실이 있는 쪽이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걸어 PK의 뒤를 따랐다.
PK의 발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진다. 한결이의 병실 앞에 선 PK가 문 앞에서 몇 번이나 헛손질을 했다. 나는 PK의 뒤에 붙어 서서 병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끼익-.
문 열리는 소리가 마치 공포영화 효과음 같다. 익숙한 병실 안에서는 묘한 피비린내가 났다. 분명히 아까 들어간 병실에서도 맡은 냄새다.
턱 끝까지 이불을 덮은 한결이는 저번에 봤을 때와 같이 곤히 잠자고 있었다. PK는 느린 걸음으로 한결이의 침대 앞까지 걸어갔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한낮의 병실. 차가운 공기와는 다르게 따듯한 햇빛이 두 남매의 위로 내려앉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한결이와 그 앞에 멈춰선 PK. 나는 잠자는 한결이의 모습을 흘끗거리다가 침구에 붉은 피가 흠뻑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피?”
자는 모습이 저렇게 평온한데, 피라고? 도통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무표정한 낯으로 한결이를 내려다보던 PK가 한결이의 뺨 위에 손을 올렸다.
불길함이 엄습했다. 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고 PK의 곁으로 다가갔다. 두 손을 한결이의 뺨 위에 올린 PK가 그대로 한결이를 들어 올렸다.
한결이를, 들어 올렸다.
잘린 단면을 타고 피가 흘렀다.
PK가 들어 올린 건 이미 잘린,
한결이의 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