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못된 심보기는 한데, 원래 반응이 좋을수록 더 놀리고 싶다. 그런 면에서 하람은 반응이 아주 좋은 편에 속했다.
“노래방 시간 아까우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그래서 그 집단은 대체 뭐예요?”
리모컨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댔더니 반주가 트로트풍으로 바뀌었다. 하람은 노래가 이상하게 바뀔 때마다 질색했다.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까탈스럽기는.
“별거 없어요. 그냥 사람들 돈 뜯어 먹는 사이비 종교죠. 그래도 수상쩍은 면이 있긴 했어요.”
“어떤 면이요?”
“이 세상은 가짜고, 곧 멸망할 것이다.”
하람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오직 진실된 세계를 보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며, 교주는 우매한 자들을 눈 뜨게 하기 위해 강림한 사람이다. 이 세계는 가짜이므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의미가 없고, 오직 교주만이 가치 있다.”
허황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진실과 가장 가깝게 엮여 있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의 결론이 뭔지 아세요?”
“모르죠. 저는 한 평생 사이비 종교랑 엮여본 적이 없어요.”
“결국 이 세상은 가짜니까 그 쓸모없는 돈을 내게 바치면 구원 받을 것이다, 이 소리잖아요.”
하람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짚었다. 하긴 사이비 종교 창설의 주목적은 돈이었다.
“그럼 낙원교는 저걸 내세우면서 신도들의 돈을 뜯고 있다는 거죠? 진짜 세계로 데려다주겠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반주 볼륨을 높이며 물었다. 하람이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리는 게 보였다.
“저쪽에서는 진짜 세계를 낙원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낙원교인 모양이에요.”
“진짜 세계도 낙원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아닌데. 작명 센스가 장난 아니네요.”
“그것까진 모르죠. 어쨌든 낙원교에서는 돈을 많이 내는 신도에게 일시적으로 '진짜 세계'를 보여준다고 해요. 한번 '진짜 세계'를 본 신도들은 다시 '진짜 세계'를 보기 위해 목숨을 건다고 하던데, 수상하지 않아요?”
“정말 수상하네요.”
듣다 보니 각이 딱 나왔다. 저번에 낙원교 교주 아들이 말했지. 낙원교는 마약 밀수범과 엮여 있다고.
아마 환각 작용이 있는 마약을 먹여 사람들을 중독자로 만든 게 아닐까? 그러면 계속 마약을 얻기 위해 돈을 가져다 바칠 거 아니야.
하지만 사람은 소모품이 될 수 없다. 그런 종류의 집단은 그 어떤 것보다 행동력이 중요할 텐데, 그런 식으로 사람을 소모품 취급한다고?
“아마 마약을 먹이는 거겠죠?”
나는 디스코 버튼을 눌러 발라드 반주를 디스코 풍으로 바꿔버렸다. 하람의 미간이 노골적으로 구겨진다.
“아마도요. 그것 외에도 특정 인물을 감시하거나 납치하는 모양인데, 살아 나온 사람이 없어요.”
“아, 그건 알아요. 천벌이랍시고 사람을 죽여서 결속력을 강화하는 모양이던데요?”
나는 실실 웃으며 목 위로 선을 그었다. 하람은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자기 목을 더듬거렸다. 아직 목이 붙어있는지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그걸 왜 그렇게 태평한 얼굴로 말해요? 그건 또 어디서 알아온 거야? 설마 직접 봤어요? 그래서 나보고 낙원교가 뭐하는 곳인지 알아오라고 한 거야?”
“대충요.”
“진짜 미쳤어요?”
하람은 내 생각보다 더 겁이 많았다. 바깥에서는 이 정도로 겁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역시 특성이 있어서 그런가?
하긴 델리키아와의 결전 때 안을 들여다보자마자 문을 쾅 닫았다.
나는 하람이 기겁하는 모습을 보며 킥킥 웃었다. 하람은 누가 자기 목이라도 노릴까 봐 그새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어차피 가짜인데 죽으면 좀 어때요?”
“나한테 이 세상이 현실이라고요. 죽으면 그대로 죽는 거라고!”
“근데 세상이 사라지면 죽는 건 똑같잖아요.”
“아프게 죽는 거랑 고통도 못 느끼고 사라지는 거랑 같아요?”
억울한 얼굴로 쏘아붙이는 모습이 볼만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망한 인생, 저한테 투자해보시는 건 어때요? 하람 씨는 정말 드문 인재거든요.”
“밖에서도 그런 식으로 꼬셨어요?”
하람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내 얼굴을 흘겼다. 죽어도 자기가 먼저 달라붙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건 좀 억울한데.
“밖에서는 하람 씨가 먼저 달라붙었죠. 여기선 한낱 알바생이지만 밖에서는 끝내주게 능력 있었거든요.”
“능력이요? 그쪽이?”
“안 믿기시나 봐요? 사실 저도 그렇긴 해요.”
“어딜 봐도 뛰어난 구석이 없잖아요.”
하람은 팩트로 사람을 후려쳤다.
나는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웅장한 뮤지컬 노래를 선곡했다. 범상치 않은 리듬이 고막을 때렸다.
“제가 이래 봬도 마약 중독자 살인범을 맨손으로 때려잡았거든요?”
“네? 그걸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안 믿기면 믿지 마시든가요.”
사실 반서준이 말해준 거라 나도 이게 진실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반서준이 없는 일을 지어서 말할 사람도 아니니까 믿어도 되지 않을까. 참 어이없는 역사 개편이었다.
“바깥의 저는 단단히 미친 모양이에요.”
하람은 내 말을 개소리로 치부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구겨진 하람의 얼굴을 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그래서 비눗방울 님이랑 같이 다니시나 보죠.”
“비눗방울? 그게 누군데요?”
“도윤 형이라고 부르시는 분이요.”
“그 형이랑 밖에서도 친하다고요? 그래서 접근하신 건 아니죠?”
“그 사람이 뭐라고 하람 씨한테 접근해요? 그리고 접근해도 그 분한테 접근하지, 하람 씨한테 접근했겠어요?”
이 동네 비눗방울은 뭐하는 사람이길래 반응이 이러냐.
나는 하람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가볍게 넘겼다. 속고만 살았나. 이제 별로 화나지도 않았다.
“아무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모르고 부딪힐 일은 없겠네요.”
“부딪힌다고요?”
“교주 암살 의뢰가 들어와서요. 제가 알고 보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암살까지는 아니지만 교주를 죽이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웃으면서 말한 탓인지 하람은 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람 씨는 위험해지는 게 싫다고 하셨죠? 그럼 더 파고들지 말고 얌전히 계세요. 낙원교의 미치광이들은 진실을 보는 사람을 끌고 가서 죽이거든요.”
“그게 아까 말씀하신 천벌이죠?”
“그쪽에선 그런 식으로 불렀어요. 이제는 천벌을 내리는 괴물이 풀려나서 써먹을 수 없는 방법이지만요.”
“괴물이 풀려났다고요?”
“아, 그 말을 안 했구나.”
나는 휴대폰 화면을 켜서 포털 사이트로 들어갔다. 메인은 여전히 병원 습격 사건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요새 뉴스에서 떠들썩한 사건인데, 아세요?”
휴대폰을 건네받은 하람이 눈으로 기사 몇 개를 훑었다. 바로 휴대폰을 돌려주는 걸 보니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인 듯했다.
“앞으로 이런 괴물이 늘어날 거예요. 많은 사람이 죽을 거고, 끝에 가서는 세상이 무너지겠죠. 그때가 되면 저는 밖으로 나갈 테고요.”
“그건 그쪽이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아니면 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거?”
“전자죠.”
타워를 한 층씩 정복할 때마다 저런 괴물이 늘어날 거다. 특성을 되찾는 날이 오면 이 세상에도 특성이 생기겠지. 그렇다면 색욕왕과 PK가 꿈꾸었던 세상은 실패한 세상이 되는 거다.
“저 괴물은 자기를 보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죽이니까 조심하세요. 병원만 골라 다니는 것 같으니까 병원 근처에는 접근도 하지 마시고요. 아프게 죽긴 싫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조금 전처럼 손가락으로 목 위를 그었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린 하람이 자기 목 위를 만지작거렸다. 목 잘리는 게 어지간히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목 잘려 죽는다는 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 이 세상에는 몬스터가 없고, 이곳의 하람은 줄곧 몬스터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왔으니까.
1시간에 22,000원인 노래방은 서비스 시간도 짜게 줬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5분만 남은 상황에서 들어온 서비스 10분을 즐기기 위해 노래를 뒤적거렸다.
“진짜 세계는 어떤 모습이죠?”
남들 앞에서 부르기 힘든 애절한 발라드 한 곡을 선곡한 시점이었다. 하람은 퍽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거기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죠. 자본주의의 노예들이 괴물마저 때려잡는 동네?”
“당신이 사는 세상에는 저 괴물이 존재해요?”
“백 원짜리 동전보다 훨씬 많이 있죠. 바깥의 사람들은 길 가다 괴물을 봐도 놀라지 않아요.”
게이트가 웨이브가 되었다는 말보다 로또 1등 당첨됐다는 말에 더 놀라지 않을까? 나는 심드렁히 대답했다.
“사람을 죽이는 괴물과 공존하면서 산다고요?”
하람의 미간이 다시 한번 구겨졌다. 뭘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다.
“괴물과 공존하는 게 아니라 괴물을 물리치면서 살고 있죠. 몇몇 사람들은 괴물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었거든요.”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던 그날, 세상에는 각성자가 나타났다. 특성을 발휘해 몬스터를 몰아내고 우리 세계를 지켜냈다. 그들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침략자였으니까.
종종 고민한다. 이 세계를 내키는 대로 휘젓고 다니는 나는 그들에게 있어 이방인인가? 괴물이 자신을 보는 사람만 골라 죽이는 것은 그들이 이 세계에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인가?
“초반에는 살짝 밀리긴 했는데, 그래도 나름 잘 물리치면서 버텼어요. 지금은 완벽하게 적응했고요.”
특성과 마법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 있다. 아주 강력한 특성을 가진 나한테는 뼈아픈 세상이겠지. 당장 여기서도 느끼고 있으니까.
색욕왕과 PK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알겠다. 이 환영 세계는 나를 설득하기 위한 장소일까, 아니면 그저 가둬놓기 위한 장소일까?
어느 쪽이든 불쾌하게 느껴진다. 멀쩡한 외부 차원을 멸망시키고 이 세계를 과거처럼 되돌린다고 해서 시간이 과거로 흐르지는 않는다.
지금의 평화가 있기까지 수많은 피가 흘렀지. 희생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그게 한 차원의 멸망과 동등하게 놓을 무게인가?
“가장 큰 전력인 제가 여기 있어서 곤란하긴 한데, 너무 늦지 않게 나가면 괜찮겠죠.”
나는 이번 사건의 주범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쪽도 뭐……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래 알았다고 해서 그쪽 사정을 이해해줄 필요까진 없지. 하물며 알지도 못하는 색욕왕이면 더욱더.
“한 곡 부르면 서비스 시간까지 끝날 것 같은데, 부르고 싶은 노래 있어요?”
노래방까지 와서 노래 안 부르고 가면 아깝지 않나?
나는 아까 선곡한 발라드 가사를 흥얼거리며 물었다. 리모컨을 가져간 하람이 어려운 제목의 팝송을 선곡했다. 부르지 않을 생각인지 마이크는 들지 않았다.
“노래 안 부를 거면서 이런 노래는 왜 틀어요? 줘 봐요. 제가 티얼스라도 한 곡 뽑아드림.”
“진짜 미쳤어요?”
“예. 괴물 보고 살았더니 좀 미쳤어요.”
하람이 다시 질색하며 의자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테이블을 탕탕 내리치며 선곡권을 요구했다. 2분 남았으니까 지금이라도 바꾸면 된다. 된다!
“바깥의 저랑 긴밀한 사이신 것 같으니까 밖에서 부르시던지.”
“제가 바깥의 하람 씨랑 노래방을 왜 가요? 우리는 이미지 관리해야 하는 사이거든요?”
“바깥에선 이미지 관리도 하면서 여기선 왜 그러세요?”
“제가 아니라 하람 씨가 이미지 관리해야 한다는 소리거든요?”
내가 이미지 관리를 왜 해. 밖에 나가면 완전히 내 세상인데.
나는 잠시 바깥의 하람이 그리워졌다. 물론 그쪽 하람은 이쪽 하람보다 속을 알 수 없어서 껄끄럽긴 했다.
“노래 부를 생각하지 마시고 빨리 나갈 생각이나 하세요.”
끝내 리모컨을 넘겨주지 않은 하람이 겉옷을 챙겨 들며 말했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팝송 후렴구를 흥얼거렸다. 자기가 나쁘다고 몇 번이나 어필하는 흥미로운 노래였다.
“제가 빨리 나갈수록 빨리 저승 가시는 건데요?”
“밖에서 저를 구하겠다면서요? 한 번만 믿어줄게요.”
퉁명스러운 말투와 그렇지 못한 내용. 진짜 이상한 데서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싫다면서 도와주는 것 봐라. 바깥의 하람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노래 못 부른 거 아까운데 코인 노래방이라도 갈까요?”
나는 노래방 건물 앞에서 겉옷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혼자 가세요.”
하람은 딱 잘라 거절했다. 단호박이 울고 갈 단호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