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주말의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카페에 나올래?”
엄마가 두부 부침을 간장에 콕 찍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알바 다니느라 저녁을 같이 먹지 않는다. 그러니 저번에 사온 식재료는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원래 참치 김치찌개와 두부 부침이 메인 메뉴였을 밥상에는 내 실수로 인해 고추 참치 덮밥과 두부 부침이 올라왔다. 참치를 고추참치가 아니라 살코기로 사왔어야 하는 건데. 실수했다.
“갑자기 카페에? 왜?”
나는 덮밥을 수저로 뒤적거리며 물었다. 마요네즈를 너무 넣어서 느끼한 맛이었다. 참치를 조금 더 넣을까?
“이번에 한 명이 그만둬서. 연희 너도 나중을 생각하면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잖아.”
참치를 넣으면 마요네즈가 부족한 것 같고, 마요네즈를 넣으면 너무 느끼하고. 나는 참치와 마요네즈의 굴레에 갇혀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다.
“참치 그만 넣어. 밥을 얼마나 먹을 생각인 거야? 다 먹을 수는 있어?”
“아니. 다 못 먹을 것 같아.”
“그러게 한 캔 더 깔 때부터 알아봤지.”
수북이 쌓인 고추참치 마요네즈 비빔을 엄마가 좀 덜어갔다. 나는 아직도 많은 참치를 뒤적거리며 밥 남길 궁리를 했다. 너무 많아서 못 먹겠다고 말하면 또 잔소리를 들을 것 같은데. 뭐 좋은 핑계거리 없나?
“그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언제 그만둘 거야?”
“응? 편의점 알바? 그건 왜?”
“그 동네 요즘 흉흉하잖아. 카페 나올 거라면 그만 두는 게 좋지 않겠니?”
엄마가 내 수저 위에 단무지를 올려줬다. 나는 단무지 조각이 올라간 덮밥을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카페 나간다는 대답을 한 적은 없는데. 엄마는 내가 알바를 그만두길 바라는 모양이다.
“당장 그만 두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고 뛰쳐나올 수는 없잖아.”
안 그래도 그 동네 흉흉해서 알바 구하기 빡세다고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일개 알바생인 내가 사장님의 입장에서 생각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알바를 그만두면 얼굴 보기 힘들어지는 사람이 있어서.
“적당히 시간 지나면 그만둘게. 지금은 좀 힘들 것 같아.”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별다른 말없이 두부를 간장에 찍고 있는 걸 보니 그리 문제 될 대답은 아니었나 보다. 하긴 엄마 카페 정도면 알바 구하기 쉬운 편이지. 가게가 작아서 만만해보이거든. 찾아오는 손님 수를 보면 절대로 만만하지 않지만.
“그래. 아르바이트 그만두면 말하고.”
“응. 알바 따로 구할 거지?”
“그래야지. 설거지 할 사람을 따로 구해야 할 것 같네.”
기름에 잘 지진 두부가 쇠젓가락 사이에서 반절로 쪼개졌다. 간장을 들이붓다시피 찍으니 엄마가 잔소리했다.
잔소리 피하려고 궁리하고 있었는데, 결국 잔소리를 들었네. 나는 머쓱한 얼굴로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평범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둘이 식탁에 마주 앉아 공유하는 시간. 주방에서는 음식 냄새가 나고, 거실에 켜둔 티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 오늘 오전 10시 경, 병원을 타깃으로 둔 습격이 또 한 차례 일어났습니다. 범인이 그동안 습격했던 병원은 다시 방문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저번에 습격했던 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밝혀져……
요새 뉴스에서 다루는 사건은 저것 밖에 없나. 나는 불어난 양의 고추 참치 덮밥을 꾸역꾸역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개인적으로 찔리는 점이 있어서 보기 좀 그랬다.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짓을 한담.”
엄마가 식사를 멈추고 뉴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밥을 씹어 삼키는 속도를 올렸다. 이따 체하더라도 빨리 먹고 들어가야만 했다. 괜히 저 주제로 대화 나눴다가 수상해 보이기라도 하면 그날로 끝장이다. 내가 연기를 제법 잘하는 편인데, 우리 엄마 앞에서는 안 통하더라고?
알고 보면 엄마도 특성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밖에서도 엄마한테 등짝 맞으면 아팠던 것 같다. 원래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지.
“연희 너는 어디 가서 다치고 다니지 마. 요새는 병원이 더 위험하네. 세상이 대체 어떻게 되려고 이런대.”
이 세상은 조만간 멸망할 예정인데. 나는 근질거리는 입을 다물고 음식물을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밥을 먹다'보다 '밥을 마시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좋을 속도였다.
“잘 먹었습니다.”
“벌써 다 먹었어?”
뉴스에 집중하고 있던 엄마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나는 싱크대에 접시를 가져다 둔 후에 내 방으로 쏙 들어왔다. 속이 벌써 부글부글 끓는 걸 보니 조금 이따 나가서 소화제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책잡힐 일이 안 생겨서 다행이다. 물론 나는 연기를 잘하지만, 엄마는 그런 게 안 통한다니까? 특성이 있었다면 진작 알았을 테니 역시 창조주라서 안 통하는 게 분명하다.
해가 져 깜깜한 창밖을 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요새 정말 열심히 살았다. 밖에서 이렇게 살았다면 다들 놀라다 못해 기절할걸.
가진 게 없으면 그만큼 일을 해야지. 여유는 가진 게 있을 때나 부릴 수 있는 거다. 아니면 허세라고 말해야지.
그동안 이렇게나 열심히 살았는데 진전은 별로 없다. 결국 내 목표는 특성을 되찾아 색욕왕을 물리치고 밖에 나가는 건데, 그게 참 어렵다.
혼자 오르긴 힘드니 동료 구하겠답시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 나는 진동하는 휴대폰을 쥐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람으로부터의 전화였다.
* * *
안 그래도 범상치 않은 인성의 소유자였던 하람은 안으로 오면서 싸가지 없음의 정점을 찍었다. 증인으로 레나를 세우면 밤을 새서라도 한을 토로하겠지.
“왜 그렇게 보세요?”
물론 그런 인간인 것치고는 약간 귀여운 구석이 있긴 하다. 이 인간이 캐릭터를 예쁘게 꾸미고 마을에 석상처럼 서서 대화나 나누는 게임을 한다는 걸 누가 알았겠어. 아무도 모르니까 나보고 비밀로 하라고 했겠지.
저번에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약속했던가? 아니다. 그런 약속은 한 기억이 없다. 그럼 나중에 어디다 말하고 다녀도 되겠네?
나는 방긋 웃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게임하는 게 뭐가 부끄럽다고 저러냐. 하긴 그런 게임을 하는 점보다 그걸 부끄러워하는 점이 귀여운 거였다.
“오늘은 안경을 안 끼셨길래 신기해서요.”
“그때는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었으니까요.”
퉁명스레 대꾸한 하람이 입술을 비뚜름하게 올렸다. 대놓고 '나 불만 있소'하고 말하는 얼굴이었다.
“제가 왜 없는 시간 쪼개가면서 그쪽을 도와야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네요.”
“그건 저희가 자주 만나고, 어디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고, 제가 하람 씨 어머니를 뵌 사이기 때문이죠.”
“정확하게 말씀하셔야죠.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네. 바깥에서 말이에요.”
나는 미간을 구기는 하람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재수는 없어도 부탁은 착실하게 들어준 사람이었다. 얻을 정보가 있는데 넙죽 기지 않을 이유도 없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근데 생각보다 일찍 알아오셨네요? 저는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부탁한 건 별거 아니면서도 내부인이 아니면 알아내기 힘든 것들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람을 쭉 훑었다. 저번처럼 후줄근한 모습이 아니라 제법 정돈된 차림이다. 바깥의 하람처럼 대놓고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걸친 옷 모두가 고가였다.
“일단 자주 보긴 했으니까요. 드디어 경계심을 풀었다고 생각한 거겠죠.”
만나기로 한 장소는 번화가의 지하철 역 앞이었다. 워낙 사람 많은 동네라 그런가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람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저희는 어디로 가요? 이건 개방된 장소에서 말할 수 없어요.”
“저도 알아요. 그래서 대화를 나눌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노력했죠. 그리고 마침내!”
나는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서서 하람에게 손짓했다. 건물을 올려다 본 하람의 표정이 팍 찌그러졌다.
“이렇게 완벽한 장소를 찾아낸 겁니다.”
통유리 너머로 신나서 뛰노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번쩍거리는 조명이 비산한다. 내가 멈춰선 곳은 4층짜리 노래방 건물 앞이었다.
“……노래방?”
목소리를 내리깐 하람이 미간을 좁힌 채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희가 이런 곳에 다녔나요?”
하람은 대놓고 불만스러운 티를 냈다. 살면서 단 한번도 노래방 안 가본 사람 같았다.
“아니요. 조금 더 점잖게 놀았죠. 서점이나 캐릭터 스토어 같은 곳에 갔던가?”
보통 노래방은 조금 더 편한 사람이랑 가지. 하람이랑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노래방까지 같이 다니지는 않았다. 하람 말고 편애랑은 가본 기억이 있네.
하람을 생각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게 스토킹 당했던 나날들. 일부러 하람이 안 다닐 것 같은 장소만 골라 다녔는데도 오락실까지 잘만 쫓아왔더랬지.
나는 노래방 건물 옆에 붙어 있는 오락실을 아련하게 바라봤다. 너는 모르겠지만 네가 저기까지 따라왔단다. 반응이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혼자라도 그냥 노래방에 갈걸 그랬어.
“그럼 지금은 왜 여기 오셨는데요?”
하람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내가 노래방에 온 이유? 별거 없었다.
“비밀 얘기하기 좋아 보여서요.”
이 거리는 알아주는 번화가라 사람이 무척 많다. 그리고 이 노래방은 거리의 랜드마크로 취급할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
당연히 안에는 사람이 많다. 노래방인 만큼 사람들로 인해 시끄럽고, 노래방이기 때문에 따로 공간을 얻을 수 있다.
반주 시끄럽게 틀어놓고 대화하면 무슨 말하는지 아무도 모를걸.
나무는 숲에 숨기라고 했던가. 시끄러운 곳에서 이야기하면 누가 엿듣기 힘들겠지. 극야 말고 대체 누가 우리를 주시하겠냐마는, 대충 그런 의도였다.
“이의 없죠? 그럼 갈까요?”
나는 방긋 웃으며 하람의 팔을 잡아 끌었다. 하람은 가기 싫어 죽겠다는 얼굴로 질질 끌려왔다.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진 걸 보니 정말로 가기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근처에서는 이만한 장소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 내가 하람이랑 대화하겠다고 모텔 들어가는 게 더 웃기지 않나.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가는 진짜로 경멸당할 것 같기는 한데.
그걸 지켜보는 극야의 반응도 어떨지 잘 모르겠네.
나는 노래방 비용을 결제하고 마이크 커버를 받았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통유리 창이 없는 안쪽이었다.
하람을 끌고 방 안까지 들어오니 딱 좋게 히터가 켜졌다. 나는 겉옷을 의자에 벗어두고 마이크 커버를 뜯었다. 마이크에 커버를 주섬주섬 씌우고 바로 노래를 선곡했다.
안내음이 흘러 나오던 노래방 기계가 신나는 아이돌 노래 반주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인기 차트에 있는 곡 몇 개를 연달아 예약한 뒤, 하람을 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이야기를 해볼까요?”
볼륨 빵빵한 반주가 고막을 두드렸다. 리모컨 버튼을 눌러 코러스까지 넣어주니 퍽 웃긴 상황이 되었다. 물론 재미는 나만 있겠지만.
뚱한 표정의 하람이 구석에 앉아 겉옷을 벗었다. 표정이 볼만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모습을 레나가 봐야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