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지옥같은 정적이 흐른다. 짧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숨을 들이킨 이예단이 어깨를 덜덜 떨며 내 손을 꽉 잡았다. 그의 눈꼬리 끝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괜, 괜찮아요?”
이예단은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울상인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진다. 숨을 들이키고 내쉴 때마다 목울대가 움직였다. 불안한지 눈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게 보인다.
괜찮은지는 내가 물어야 하겠는데. 나는 말없이 잡힌 손에 힘을 주었다. 숨을 몰아쉬던 이예단이 손가락을 꼼질거리더니 이내 깍지를 꼈다.
나는 그가 불안해하든 깍지를 끼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밖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머리 없이 상체만 남은 몸뚱이가 단상 위를 구른다. 흰 옷을 입은 모든 사람이 끔찍한 천벌을 목격했다.
“천벌이라.”
나는 혼잣말을 짧게 중얼거렸다. 괴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땅히 천벌로 보일 만한 일이었다. 괴물은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만 잡아먹는다. 저 사람은 괴물을 보았기 때문에 괴물에게 잡아먹힌 거지만, 저기 있는 대다수는 괴물을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갑자기 머리가 으깨지고 하반신이 날아간 것으로 보일 테다. 말 그대로 ‘천벌’이었다.
“으아아악-!!”
괴물의 식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누군가가 괴물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다. 순식간에 피가 튀고 살점 조각이 흩어진다.
“스파이다!! 스파이가 숨어 있었어!!”
웅성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단상 위의 남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천벌이 내리지 않습니다. 천벌은 오직 배반자에게만 내립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겁니다!!”
그 말에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뜀박질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은 얼마 가지 못해 괴물에게 머리가 잘려 죽었다.
광란의 식사는 총 세 사람이 죽고 나서야 끝났다. 나는 괴물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곤 급하게 비상구 문을 닫았다.
“보여주려고 한 게 이거에요?”
이 탑의 진짜 모습을 보는 사람들을 잡아와서 괴물에게 죽게 만든 후, 다른 사람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것? 그것을 토대로 쌓인 믿음이 광기로 변질되는 과정?
저 사람들이 죽은 것은 괴물을 보았기 때문인데, 그게 다 믿음이 없어서 천벌을 받은 것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놨다. 낙원교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고 잔인한 곳이었다. 퍼포먼스 때문에 죄없는 사람 셋을 죽이지 않았는가.
“네, 네. 네…… 맞아요.”
일그러진 얼굴의 이예단이 재빨리 수긍했다. 꽉 닫힌 문에 머리를 받은 그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연신 헛구역질했다.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비상계단은 2층과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환한 반면에 지하로 향하는 길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쿵-!!
닫힌 문이 거세게 흔들리며 소음을 만들었다. 나는 이예단의 팔을 잡고 그를 뒤로 끌어당겼다. 동시에 문이 더 크게 흔들렸다.
쾅-!!
두꺼운 금속으로 된 문이 형태를 잃고 어그러졌다. 창백한 안색의 이예단이 내 손을 급하게 잡아끌었다.
“위로 올라가야 해요. 곧 괴물이 들이닥칠 거예요.”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요? 그럼 밖으로는 어떻게 나가죠?”
“내려올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올라가서 다른 쪽으로 내려오면 돼요!”
쾅!!! 문이 다시 한번 찌그러지며 구멍이 뻥 뚫렸다. 뚫린 구멍 사이로 빼꼼히 나온 것은 괴물의 눈이었다.
흰자가 없는 시커먼 눈이 우리 두 사람을 응시했다. 나는 그 눈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망설이지 않고 뛰었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문이 떨어져나갔다. 목에 문을 끼운 괴물이 벌레처럼 사사삭 움직였다. 나와 이예단은 급하게 계단을 뛰어올랐다. 괴물이 움직일 때마다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저걸 물리칠 방법은 없어요?”
괴물의 길쭉한 혀가 방금 밟았던 계단에 가서 박혔다. 나는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죽여도 밖으로 나갔다 오면 다시 살아 움직여요. 파괴된 기물도 마찬가지에요. 밖으로 나갔다 오면 원래대로 복구되어 있을 거예요.”
긴 다리로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올라간 이예단이 2층 문고리를 잡았다. 덜컹. 손잡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
안 그래도 창백한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우릴 뒤따라오던 괴물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입꼬리를 찢어 히죽 웃었다. 나는 천장 위로 펄쩍 뛰어오르는 괴물을 확인하고 소리쳤다.
“위로!!”
천장에 붙은 괴물이 혀를 휘둘러 2층 문 앞을 내리쳤다. 가까스로 혀를 피한 이예단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한 발짝만 덜 움직였어도 목을 꿰뚫렸을 거다.
2층 문을 앞에 두고 윗 계단에는 이예단이, 아래 계단에는 내가.
두 마리의 먹잇감을 앞에 둔 괴물이 여유를 부렸다. 아까 천벌을 내릴 때도 느낀 거지만, 저 괴물은 지성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일부러 천벌 소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을 테니까.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고 웃고만 있는 것도 그런 거겠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거다.
지독한 악취미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이예단을 보았다.
“무기 같은 거 없어요? 평소에는 어떻게 살아 나갔어요?”
“……보통은 2층이 열려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갔어요. 저건 1층에서만 움직일 수 있거든요.”
이예단은 고철 로봇처럼 삐그덕거리며 말했다. 천장에 붙어 있던 괴물은 어느새 밑으로 내려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2층 문을 등진 걸 보니 멍청하진 않았다.
“혹시 여기서 죽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 있어요?”
나는 히죽 웃는 괴물과 시선을 마주한 채로 물었다. 괴물이 입을 벌려 혀를 뽑는다.
“저는 없어요.”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뇌를 헤집는다.
산 사람을 죽이고 광기를 이끌어 내는 낙원교의 잔인한 술수, 그리고 그 광경을 내게 보여줘 겁주려고 한 이예단.
사람 머리 날아가는 꼴은 징그럽게 많이 봤다. 사이비 종교의 광기 넘치는 집회 같은 건 이제 무섭지도 않았다.
하지만 힘이 없다는 이유로 여기서 죽게 된다면, 내가 지켜야 하는 것들은 누가 지켜주지?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을 불렀다.
“필요하면 부르라고 했었죠. 내가 보기에 당신이 필요한 순간은 지금 같은데.”
길게 늘어난 괴물의 혀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꾸물거리는 모양새가 아주 징그러웠다.
“그런데 이제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어.”
그를 가리키는 명칭인 자색 눈의 악마? 아니면 직접 지은 닉네임 극야?
뭐가 됐든 이예단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아직 이름을 빼앗기지 않은 이예단이 저기에 있으니까.
고개를 돌리자 공포에 굳은 진짜 이예단이 보였다. 나는 쇄도하는 괴물의 혀를 피하기 위해 난간을 붙잡았다.
어디선가 싸한 향기가 난다.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 난간을 붙잡은 손 위로 차가운 손이 겹쳐진다.
따앙-!!
코앞까지 다가온 괴물의 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튕겨나갔다. 무언가를 본 괴물의 눈이 커다래진다. 괴물이 주춤거리며 몸을 뒤로 빼기 무섭게 그것의 몸이 오그라들었다.
캬아아악-!!!
그래도 사람과 비슷한 형체를 갖추고 있었던 그것이 순식간에 형체를 잃고 찌그러졌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한계까지 압축된 그것은 뒤이어 타오른 보랏빛 불꽃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바로 뒤에 누가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불러야 해요?”
이쪽을 바라보는 진짜 이예단의 눈에 그의 모습이 비쳤다. 경외와 두려움을 담은 검은 눈이 자색 눈의 악마를 비춘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나는 난간에서 손을 휙 떼고 몸을 돌렸다. 웃는 얼굴의 악마가 거기에 서 있었다.
“부르니까 진짜 오셨네요.”
“부르면 오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알바할 때 부르면 안 왔잖아요.”
어두침침한 조명이 비상계단을 밝혔다. 조명발이라곤 전혀 못 받는 상황인데도, 극야의 얼굴은 변함없이 화사했다. 왜 네가정말좋아가 죽고 못 사는지 알 것 같다.
“제가 어떤 심정으로 불렀는 줄 아세요?”
“제가 안 와서 속상하셨나요?”
“아뇨. 그냥 심심해서 불렀어요.”
피크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할 게 없는 게 우리 편의점이다. 앉아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여기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다들 열심히 사는데 나만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단 말이지.
그럴 때면 아주 가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극야의 이름을 외쳐봤다. 그런다고 극야가 나오겠냐마는, 그래도 덜 심심하니까. 누가 봤으면 저 사람 미친 거 아니냐고 할 소리였다.
“그런가요? 그래도 요새는 장난감 가지고 잘 노시는 것 같았는데요.”
“그걸 다 보고 계셨어요?”
“…….”
극야가 웃는 얼굴로 노코멘트를 선언했다. 내가 손님 없을 때 슬라임 가지고 노는 걸 봤다 이거지? 그럼 그 전에 허공에 대고 자기 이름 부르는 것도 다 봤을 거 아니야. 그걸 듣고도 아무런 반응도 안 해줬다고?
부를 때마다 오는 건 아니고 선택제로 오겠다는 건가. 귀찮아서 안 오는 걸까, 아니면 이유가 있어서 안 오는 걸까?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극야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며 사색을 이었다. 이예단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몇 년 전에 제 꿈에 나왔던 사람, 맞죠?”
극야와 이예단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서로 닮은 부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이었지만, ‘이예단’이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예단이 극야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네가정말좋아처럼 얼굴에 홀라당 넘어가는 스타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꿈에서 하신 말씀은 아직도 유효한가요?”
이예단은 퍽 비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죽음이라도 각오한 사람처럼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그러나 극야는 영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글쎄요.”
극야가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을 얼렁뚱땅 넘기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극야의 팔을 툭 쳐서 그의 주의를 돌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극야는 마침 잘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안 되겠네요. 한 번 더 그런 일을 했다가는 지금보다 더 미움받을지도 몰라서요.”
“미움받는다는 자각은 하고 계시네요?”
“들으셨죠?”
극야가 이예단을 향해 눈짓했다.
이예단은 조금 어이없는 눈빛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 시비 걸린 걸 왜 다른 애한테 가서 푸냐. 나는 극야의 팔을 다시 툭 쳤다. 이예단은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어요.”
“…….”
“그냥…… 전부 꿈인 것만 같아요.”
평소에는 잘만 열리던 2층 문이 잠겨있던 것도, 극야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극야가 괴물을 태워 죽인 것도, 그리고 우리가 아는 사이인 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이예단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일 만했다. 나는 축 늘어진 이예단을 빤히 바라보다가, 잠깐의 사색을 멈추고는 물었다.
“혹시 이 세상이 가짜라고 말한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