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이 세계에 온 첫날처럼 비가 내렸다. 나는 비를 쫄딱 맞은 야간 타임 알바를 올려다보았다. 단정한 까만색 머리카락 끝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름이 이예단이라고요?”
“네. 제 이름이에요.”
이예단은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는 악마가 인간 세계에서 쓰는 이름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혹시 인간 맞으세요?”
그, 혹시 종족이 악마 같은 게 아니신지……. 나는 꿋꿋하게 질문했다.
저쪽은 당황하다 못해 황당한 모양이었지만, 이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 중 하나였다.
물론 이곳은 색욕왕의 환영 안이고, 극야는 이런 식으로 모습을 바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지금 비 맞아서 입술이 파랗긴 한데, 확실히 인간이거든요. 설마 제가 귀신 같아 보이세요?”
“그런 의미로 물어본 게 아니긴 한데, 충분한 답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게, 내 촉이 단순한 동명이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야라고 아세요?”
“고위도 지방에서 해가 뜨지 않고 밤만 계속되는 현상이죠?”
“그럼 게이트나 몬스터 같은 건요?”
“만화나 소설 같은 거 좋아하세요?”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꼬박꼬박 대답했다. 대답만 봐서는 극야를 완전히 모르는 사람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비장의 한 수를 꺼냈다.
“혹시 낙원교라고 알아요?”
별다른 반응 없던 그가 눈에 띄게 큰 반응을 보였다. 우산을 든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인다. 명백한 공포로 물든 눈이 조급하게 내 시선을 쫓았다.
입술을 꽉 깨문 그가 주변을 살피며 속삭였다.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파랗게 질린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알아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요.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걸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낙원교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현실에서 그 집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
우리 둘의 머리만 겨우 가리고 있는 우산이 마구 떨렸다. 창백하다 못해 시퍼런 안색이 가엾기 짝이 없다.
나는 혀를 차며 손을 뻗었다. 내 우산을 되찾아올 셈이었다.
뻗은 손이 우산 손잡이를 쥐고 있는 그의 손 위를 스쳤다. 내게 우산을 넘기지 않겠다는 듯이 손에 힘을 준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요. 누나는 신도가 아니잖아요.”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신도였다면 이 편의점에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내가 모를 리가 없어요. 나를 모를 리도 없을 테고요.”
까만 속눈썹 끝에 빗방울이 걸려 아롱거렸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그의 까만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낙원교 소속이에요?”
“…….”
“저는 낙원교 신도가 아닌 게 맞아요. 애초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 사이비 종교가 대체 어떻길래 과민반응하고 난리야.
나는 힘 풀린 그의 손에서 내 우산을 빼앗아왔다. 가방은 이미 다 젖은 상태였다.
이미 젖었다고 계속 맞고 있을 수는 없지. 산성비일 게 분명하지 않은가. 나는 우산을 바르게 고쳐 쓰고 다시 그를 보았다.
우산을 잃은 야간 타임 알바는 떨어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우수에 젖은 까만 눈이 주변을 배회하다 정면을 응시한다.
같은 이름의 누군가와 지독하게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보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비에 젖어 떨어질락 말락한 밴드 밑으로 상처가 보인다. 자국을 보니 단순하게 긁힌 상처는 아니다. 그렇다면 무언가에 찢기거나 찍힌 상처였다.
“……혹시 누가 집으로 찾아왔어요?”
터진 입술이나 거즈를 붙인 뺨 쪽은 주먹으로 맞아서 난 상처 같은데, 저런 자잘한 상처들은 맞아서 난 상처가 아니다.
“아니요. 저희 집엔 아무도 안 왔는데요.”
“아니면 가족한테 접근해서 어디 같이 가자고 하던가요?”
“저희 엄마한테는 그런 거 안 통해요.”
우리 엄마가 낯선 사람을 따라갈 사람은 아니지. 내가 따라가면 모를까.
종교 권유 같은 건 이미 종교가 있으니 거부하셨을 거고, 행복이고 뭐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이랑은 상종도 안 하신다. 오히려 나한테 요즘 그런 거로 사람 납치해서 장기 빼가는 범죄 집단이 있다면서 조심하라고 하던데?
나는 창백한 그의 얼굴을 구석구석 뜯어보며 대답했다.
저런 상처는 누군가한테 구타 당했다고 봐야 한다. 자잘한 상처는 나중에 생겼으니 주먹으로 먼저 맞고 후에 도구를 이용한 폭력에 휘말렸군.
도구? 도구라고 표현하기 애매한가?
“질문 다 하셨으면 이번엔 제가 질문해도 되죠?”
저건 알 굵은 반지를 낀 채로 맞았을 때 찍혀서 나는 상처니까.
“누구한테 맞았어요?”
어른들이 끼고 다니는 알 굵은 반지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너클이랑 비슷한 쓰임새라고 해야 하나. 그런 반지 다섯 개를 빠짐없이 끼고 사람을 떡이 될 때까지 패면 반지에 남의 피랑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다.
잔인한 것도 잔인한 건데, 보통은 반지가 아까워서 그런 짓 안 하지. 돈 많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는 그의 얼굴에 깔린 저 상처와 낙원교가 연관되어 있을 거라 짐작했다. 아니면 저렇게 과한 반응이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복잡한 표정의 그가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우산을 까딱거리며 생각했다.
낙원교는 극야가 길드를 만들기 전부터 존재하던 사이비 종교다. 정확히는 게이트가 터지기 전에도 존재했다. 분명 사이비 종교의 교주 이 모씨가 세계 멸망을 예언했다는 기사를 봤거든.
그럼 게이트가 터지기 전에도 나름 영향력 있는 사이비 종교였다는 건데…… 왜 들어본 기억이 없지?
나는 눈가를 찡그리고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서울 복구 이후에도 낙원교 이야기는 잘 안 나왔다. 낙원 길드 본진이 거기라는 사실만 알았지.
왜냐? 그야 극야가 거기 교주니까. 그리고 그의 낙원 길드는 정말 크고 유명한 길드니까.
근데 정작 본진인 낙원교가 뭐하는 종교인지는 모른다. 신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고, 어디에 모이는지도 모르고, 하는 게 뭔지도 모른다.
결국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저번에 네정좋이 지나가듯 언급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야간 타임 알바를 불렀다.
“일단 비가 많이 오니까 자리부터 피할까요?”
그 말에 고개를 든 야간 알바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시선이 어쩐지 매우 꺼림칙해서, 나는 재촉하듯 우산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내 재촉에 못 이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따라오세요.”
마왕성이 안 보이는 사람은 보통 마왕성 안으로 들어가겠지? 그렇겠지.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인데.
하지만 마왕성 안에는 사람 먹는 괴물이 있었다.
나는 일부러 걸음을 느리게 뗐다. 어떤 핑계를 대서 마왕성 아닌 다른 곳으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이 거대하고 독보적인 랜드마크는 저녁에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저마다 입구로 향하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 걸으니 마왕성의 유일한 입구가 보인다.
본래 이 건물의 출입구는 여러 곳이지만, 내가 보는 것은 마왕성. 마왕성에는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있겠지.
이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 괴물을 또 보아야 한다. 나는 뒤따라오는 야간 타임 알바를 흘끗거렸다. 그는 입구로 향하는 내 손을 꽉 잡아 나를 멈춰 세웠다.
“저긴 못 가요.”
“네?”
“저 안에는 괴물이 있어요. 들어갈 수 없어요.”
괴물을 논하는 목소리가 사뭇 진지하다. 단순히 괴담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단순한 타워잖아요. 그럼 저 사람들은 괴물의 아가리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거게요?”
나는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척 운을 뗐다.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들은 괴물을 볼 수 없으니까 웃는 거겠죠. 이 세상에는 오직 특별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사이비 종교인 같아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말하는 꼬락서니가 내가 아는 악마랑 똑같다.
나는 그의 의견에 따른다는 의미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는 그제야 내 손을 놔주었다.
“거대한 철골의 탑이죠? 전광판에서 붉고 푸른 빛이 쏟아져나오고,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처럼 아슬아슬한.”
“……저게 보이는 모양이죠?”
“들어가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있잖아요. 거기까진 아는데요.”
그 위로는 올라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고. 나는 타워를 뒤로하고 걸었다.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었다. 가까운 가게도 있었지만,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 알면서 저를 떠보신 거네요?”
불만스러운 표정의 그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나는 턱과 어깨 사이에 우산을 끼우고 백팩 앞주머니를 열었다. 볼펜과 늘 세트로 굴러다니는 립밤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저 타워가 제 눈에는 마왕성으로 보인다고 아무 데나 말하고 다닌다면 머리에 총 맞은 사람 취급당했겠죠.”
“그렇게 사셨다면 저희가 진작 만났을 수도 있겠어요. 낙원교가 틀림없이 접근했을 테니까요.”
“이제 사이비 종교 소속이라는 걸 가감 없이 드러내시네요.”
나는 앞주머니 지퍼를 닫고 그를 향해 립밤을 던졌다.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날아가는 립밤을 잡아챈 그가 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미 알고 계시니까 말하는 거예요. 오래 살고 싶으면 더 이상 접근하지 마세요.”
“그거 살인 예고인 거죠?”
“누나는 안 죽겠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립밤 뚜껑을 연 그가 터진 입술 위에 립밤을 발랐다.
비가 내리고 있으니 금방 씻겨 내려가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저걸 볼 수 있다는 것을 들키게 되면 주변 사람이 위험해질 거예요.”
간담 서늘해지는 경고였다. 립밤 뚜껑을 닫은 그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아마 빗물이 눈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알바는 하루빨리 관두세요. 저랑 함께 있으면 교단에 노출될 위험이 크거든요.”
“신도 집중 관리 같은 건가요? 와우.”
감탄사랍시고 내뱉었는데, 고저가 없어서 그런가 흥미 없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야간 타임 알바는 그 점이 매우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흘려 들으셨다간 후회할 거예요. 개미굴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 사람 같으니라고.”
“개미가 아닌데 개미굴을 어떻게 알아요. 개미로 살아봤어야 알지.”
비유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그의 경고에 순순히 따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저걸 보는 사람에게 낙원교가 접근한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낙원교는 저걸 보는 사람을 모아서 뭘 하려는 거지?
저것을 보는 사람의 실종에는 그 집단이 연관되어 있나?
마천루를 조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단서였다. 이곳에만 해도 저걸 보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나는 길을 걷는 그의 옆모습을 대놓고 쳐다봤다. 그는 내 노골적인 시선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걷다가 지하철 역에서 헤어졌다. 립밤을 돌려받지 못한 것을 깨달은 건 집에 다 와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