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잠실 타워가 다르게 보여요>
안녕하세요. 저만 이상한가 싶어서 혼자 의문만 품고 살다가 이런 거 올리는 게시판이 있길래 글 남겨 봅니다.
서울에 있는데 엄청 높아서 경기도에서도 보이는 그 타워 있잖아요. 대기업 자본의 탑.
그게 이상하게 보여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고철 탑? 거대한 철조물이 층층이 쌓인 SF형 마천루로 보입니다. 밤이 되면 LED가 현란해서 눈까지 아파요.
처음에는 저걸 지은 대기업이 미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사진으로 보니까 멀쩡하더라고요. 그냥 제가 이상한 건가 봐요.
안에는 안 들어가 봤는데 주말에 시간 나면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저랑 비슷한 일 겪고 계신 분 계시나요?
- 오 이거 되게 오래된 괴담 아닌가? 잠실 타워 이상하게 보인다는 거 ㄴ 맞음 괴담 유튜버들 맨날 이거 한 번씩은 다루잖아ㄴ 누구나 한 번씩은 다루는데 증거는 안 나오는 그 타워ㅋㅋㅋㅋ- 이거 잊을 때 되면 누가 또 끌고 나오네 - 얼마 전에 사람 죽었다는 기사 또 나지 않았나? 1층에서 반토막 났다며 ㄴ 사람들 다 보는 데서 반절로 잘려 죽었다던 그거?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
ㄴ 그거 진짜래 아는 사람이 그랬음
- 우리 엄마 무당인데 잠실 타워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음 심지어 여기 대구임ㄴ ??????
ㄴ 거기 최상층에 다른 세계의 존재가 있대 완전 센 거 ㄴ 아 맞아 내 동생도 그쪽 일하는데 그 근처에는 가지도 말라고 했어 ㄴ 아무것도 못 느끼면 모를까 그런 거 잘 보는 사람은 거기 있는 귀신한테 잡아먹힌다고 ㄴ 사실이면 진짜 무섭네]
시간 날 때마다 인천 게이트 조사하던 짬으로 잠실 타워를 조사했다.
이 세계에는 저걸 보는 사람이 생각보다 더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색욕왕이 풀어 둔 몬스터는 그런 규격 외 존재가 나타날 때마다 열심히 먹어서 증거인멸 중이고.
세상에는 자각몽이라는 게 있다. 꿈이라는 걸 알아도 꿈에서 깨지 않는 것.
극야가 이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깥의 내가 꿈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잠은 흔히 죽음의 친구라고들 하니까. 그게 아니면 편애가 간섭하지 못하는 게 설명이 안 되는데.
아는 게 적으니 이래저래 잡생각만 는다. 나는 레터가 찍어 준 건물 2층에 올라가 그의 닉네임을 댔다. 이 건물 2층은 각각의 룸으로 이루어진 카페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카페 종업원이 여러 개의 방을 지나 가장 안쪽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문부터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돈을 처바른 걸 보니 가장 비싼 예약제 방이구나.
하긴 잘나가는 유튜버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 오셨네. 안녕하세요.”
방 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드는 레터와 뚱한 얼굴의 네가정말좋아. 지금은 차세형과 유주하라고 부르는 게 맞으려나.
“안녕하세요. 저쪽은…….”
“얘요? 그냥 공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희는 미리 시켰는데 뭐 시키실래요?”
“차가운 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차가운 거라도 안 먹으면 속 터질 것 같으니까.
나는 두 사람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종이 빨대로 코코아 위의 마시멜로를 콕콕 찌르고 있던 네정좋이 고개를 들었다.
티비에서 보던 비즈니스용 미소는 어디 갔는지 그는 평소 내가 아는 그와 다를 것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메이크업한 모습을 봤을 땐 인상이 밝길래 다른 사람 같았는데, 평소 모습을 보니까 다를 거 하나 없네. 메이크업은 사람을 대체 어디까지 바꾸는가.
따듯한 공기가 머무르는 방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들어온 종업원에게 딸기치즈크림쿠키시나몬…… 어쩌구를 아이스로 주문한 레터가 내게 질문을 던질 때까지, 네정좋은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오기 전에 타워에 들리셨다고 했죠? 내부는 어떻던가요?”
“내부요?”
나는 무심코 필터링 없이 혀 길게 뺀 괴물이 내 대가리를 똑 따서 먹으려고 했다고 말하려다가,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아서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근데 솔직히 이거 말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현재 그 마천루는 색욕왕의 본거지고, 입구부터 사람 잡아먹는 문지기가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다.
그걸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건…… 듣게 되면 이제 목숨을 걱정하셔야 되거든요.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내 어이없는 경고에 레터의 눈가가 찌그러졌다.
이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게 무슨…….”
“지금 알고 싶어 하시는 건 이 세계의 비밀이에요. 그것도 아주 위험하고, 알게 되시면 황천길 급행 탈 수도 있는 거요.”
“…….”
“그래도 궁금하시면 말씀드리고요.”
유튜버랑 모델은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애초에 이 세계를 무너뜨리는 일을 그들이 도울까?
나는 일부러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다. 원래 두 명 다 낙원 길드 소속이니까 이런 소리에도 면역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말고.
동료를 만드는 아이템이 있다고 누구나 동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를 도울 조력자가 필요했다. 이건 일종의 시험이었다.
차분한 침묵이 방 안에 흘렀다. 입을 연 것은 레터가 아니라 네정좋이었다.
“사람을 하나 봤어요.”
인간 사회에 적응해 못생긴 인간하고도 말을 섞는 게 가능해진 업그레이드 버전 네정좋이다. 나는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하얀 머리에 보라색 눈을 가진 남자였는데.”
어, 잠시만.
“저랑 눈이 마주치니까 웃어 줬어요. 그래서 말을 걸어 보려고 했는데…….”
말을 멈춘 네정좋이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연기처럼 사라졌어요.”
우수에 젖은 눈이 촉촉하다.
아니 그, 신데렐라? 그 양반 무슨 신데렐라인가? 왜 얘랑 동화를 찍고 앉았어.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저는 운명을 느꼈어요.”
“그러시군요.”
“죽더라도 죽기 전에 만나고 죽을래요.”
고저 없이 무덤덤한 목소리가 진실되게 울렸다.
나는 뭘 마시기 전에 이 개소리를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요? 잘생겨서요?”
“네.”
유리 구두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신데렐라와 딱 한 번 본 신데렐라를 그리는 왕자님.
나는 코코아를 홀짝이는 네정좋을 보며 침묵했다. 들척지근한 냄새가 여기까지 났다.
극야가 좋은 건 알겠는데, 그게 목숨을 포기할 이유까지 되나. 나는 모르겠다.
“좀 웃기죠?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할 말이 없으니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망한 분위기는 레터가 애써 뒷수습했다. 닉네임 없는 곳에서도 닉값하는 너 정말 ㅈ같아는 혼자 태연한 낯을 하고 있었다.
“저 친구가 뭐 하나에 빠지면 끈질기게 집착하는 성격이라서요.”
“그거 완전…….”
“네?”
“아닙니다.”
그거 완전 로판 남주인데. 닉값으로 모자라 얼굴값까지 하네.
나는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일단 신데렐라가 일을 치고 갔다. 간 보기는 성공한 건지 실패한 건지 모르겠다.
“일단 제가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타워의 진짜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요.”
음료가 도착했는지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방 안에 들어온 종업원이 음료수 잔을 내려놓고 나갔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비주얼도 끔찍하게 달 것 같은 음료수였다.
“판단은 직접 보시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마침 방에 있는 창문으로 타워가 보였다. 나는 외알 안경을 꺼내 네정좋에게 내밀었다. 외알 안경을 받은 네정좋이 자연스럽게 눈가에 가져다 대고 밖을 내다보았다.
“와.”
영혼 없는 감탄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화려한 음료수 잔 위에 꽂혀 있는 쿠키를 집어 와작 깨물었다. 네정좋을 툭툭 쳐 외알 안경을 빼앗은 레터도 곧이어 놀라는 소리를 냈다.
“저, 저게 대체 뭐예요?!”
“저 타워의 진짜 모습이요.”
수많은 괴담을 낳은, 극소수의 눈이 좋은 사람만 보이는 그 모습 말이다.
눈이 좋다니까 하람이 생각나네. 그쪽은 진작 잡아먹혔을 수도 있겠다.
나는 놀라는 두 사람에게서 안경을 회수했다.
타워의 본모습을 본 사람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 정정한다. 정확히는 레터만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 안에는 뭐가 있죠? 애초에 저 깡통 탑에 입구는 있나요?”
“들어가면 혀 길고 입 큰 괴물이 자길 보는 인간들을 잡아먹어요. 사람이 실종됐다거나 반으로 잘려 죽었다는 소문은 아마 진짜일 거예요.”
왜냐면 내가 실제로 머리를 똑 따일 뻔했으니까.
나는 대충 대답해 주며 음료를 마셨다. 뭔가 엄청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결국 시나몬 맛밖에 안 나는 신비한 음료수였다.
타워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내게 들리지 않는 크기의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하긴 두 사람은 소재 찾으러 나온 유튜버랑 우연찮게 귀신을 본 사람일 뿐이었다. 머리 똑 따 먹는 괴물이랑 얽히면 저들만 피곤해진다.
진실을 보여 주겠다고는 말했지만, 정말로 진실을 알게 된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은 아직 빠져나갈 기회가 있었다. 나도 저 두 명을 끌고 움직일 자신은 없었고.
하지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들어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인지도가 있으니 사람들을 대피시키거나 하는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엔 결국 저 마천루를 올라야 하니까.
“여생 편하게 보내고 싶으시면 더는 접근 안 하시는 게 좋아요.”
할 게 없어서 빨대를 물고 있었더니 음료수 잔이 그새 반이나 비었다.
“두 분한테 이득 될 것도 별로 없을뿐더러, 저 안에 있는 괴물이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틀림없이 목숨이 위험해질 테니까요. 그냥 손 떼시는 게 나을 수도 있죠.”
아는 사람이 죽는 모습은 진짜 세계가 아니라고 해도 껄끄럽다. 나는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경고했다.
“하얀 머리의 남자는 저 타워와 관련이 있나요?”
하지만 여기에는 나사 제대로 빠진 인간이 있었다. 나는 끝까지 극야의 신상을 묻는 네정좋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렇죠.”
“아는 사이인 거죠?”
“그렇죠?”
끈질긴 인연이었다. 아는 사이인 것을 부정해 보고 싶을 정도로.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 다시 한번 운명을 만난 사람이 있다.
줄곧 멍했던 네정좋의 눈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가진 사람의 눈이었다. 그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극야를 다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괜찮겠어?”
레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네정좋의 어깨를 툭 쳤다. 네정좋은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야 해요.”
이 세계는 색욕왕이 만들어 낸 거짓 세계일 뿐인데, 왜 그는 이곳에서조차 극야를 이렇게나 따르는가.
나는 알 수 없었다.
“저희는 사람 잡아먹는 저 탑을 부술 거예요.”
하지만 저쪽에서 저렇게 나온다면, 써먹을 수 있는 만큼 써먹어야지.
“도움을 주실 생각이라면 다시 연락주세요. 위험하니까 저 타워 근처에서 얼쩡거리진 마시고요.”
음료수 잔은 그새 텅텅 비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연락은 얼마 안 가서 오겠지. 굳이 회귀자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