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항상 사람이 붐비는 2호선이 기막히게 한산했다. 나는 플랫폼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네가정말좋아 님. 거기 무슨 일 있어요?]
◀[지금 저희 집 악마가 실종됐거든요?]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는 게 사람인데, 멀쩡한 악마를 잃어버렸으니 어찌 안 찾을 수 있겠는가.
나는 낙원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한테 메시지를 날렸다. 그러나 메시지는 지하철이 들어올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왜 이러지.”
혹시 몰라 이름까지 조용히 불러봤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저쪽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압수 수색, 뭐 이런 거?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들어온다. 나는 기이할 정도로 한산한 지하철에 올라탔다. 주말의 2호선이 이렇게 사람이 없었나. 얼핏 보면 다른 호선인 줄 알겠다.
좌석은 많았지만 앉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문 근처에 기대어 서서 연락할 사람을 찾았다.
러브리스? 그나마 러브리스가 나을 것 같은데.
저번에 받은 그녀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자 익히 아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왔다. 나는 무심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이곳이 공공장소라는 걸 깨닫고 입을 닫았다.
군데군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내게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입 꾹 닫고 휴대폰을 바라보는 모습이 ‘스마트폰 중독의 폐해!’ 하면서 공익 광고에 나올 것만 같다.
흘러나오는 캐롤이 무척 흥겹다.
11월도 안 됐는데 벌써 캐롤이라니. 러브리스는 크리스마스가 무척 기대되는 모양이다.
나는 휴대폰을 어깨와 얼굴 사이에 끼우고 역을 확인했다. 얼마 안 가 지하철이 정차하고 문이 열린다.
신나는 캐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러브리스는 내가 지금 노래를 듣고 있는지, 아니면 전화를 걸고 있는지 혼동될 정도로 오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반복되던 캐롤이 멈추며 러브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전…… 거기…… 나오…… 면-”]
전화가 가까스로 연결되었으나, 너무 엉망이라 이게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저쪽에서 폭탄이라도 터지고 있는지 쾅-!! 하고 폭발음이 연이어 샜다.
“러브리스 님? 저기요?”
지하철 안인 걸 감안해도 지나치게 안 들렸다.
러브리스는 한참 무언가 중얼거리다가 입을 닫았다. 자신의 말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콰과과광-!!!
귀청을 때리는 폭발음이 이어진다. 단체로 게이트라도 들어간 건가?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추측했다. 아니. 게이트였다면 전화를 받을 수 없었을 거다. 웨이브가 터졌다는 쪽이 맞겠지.
[“전하.”]
소란스러운 배경음을 뚫고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 러브리스는 애타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쥐어 짜냈다.
["……를 조심하세요."]
앞의 말이 뭉개져 들렸다. 전화는 복잡한 소음이 반복되다 뚝 끊겼다.
나는 고개를 들어 지하철 내부를 살폈다. 사람들은 여전히 휴대폰만 하고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몰상식한 짓을 하는 사람에게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잘 됐다. 내심 찔렸는데.
나는 휴대폰 화면을 느리게 문지르다가 벚꽃나비의 연락처를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벚꽃나비 또한 답장하지 않았다.
세상이 지나치게 고요했다.
나는 지하철 안에 우뚝 서서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이번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하차할 장소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나는 아무도 내리지 않는 지하철에서 혼자 빠져나왔다. 역 플랫폼에는 아무도 없었다.
역에서 빠져나와 거리에 나올 때까지 어떤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강남역에 이렇게 사람이 없다고?
나는 약속 장소까지 걸어가며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을 살폈다.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제각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지나치게 고요했다.
편애가 사라진 탓인가?
타인의 생각이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렇게나 싫었는데, 그새 적응된 모양인지 고요한 세상이 어색하기만 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쑤셔 넣고 약속 장소인 카페 앞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예솔이가 카페 유리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었다. 변함없이 예쁜 얼굴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딸랑딸랑.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소한 커피 냄새가 풍겼다.
나는 예솔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앉았다. 내 몫까지 주문해 둔 예솔이가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올려 묶은 예솔이가 따듯한 커피잔을 손에 쥐며 물었다. 나는 플라스틱 빨대를 입에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요새 일이 많이 바쁘다더니, 괜찮아?”
“입사 이후로 야근 안 한 적이 없기는 한데, 괜찮아! 돈은 많이 받거든.”
“그러다 죽어…….”
예솔이는 말없이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변함없이 예뻐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조금 달라진 면이 있긴 하다. 일단 손톱의 매니큐어가 사라졌고, 머리도 고데기해서 풀어내리는 게 아니라 하나로 질끈 묶고 있었다.
귀걸이와 반지도 사라져 귀와 손이 비어 있었고, 옷도 예전에 입은 적 있었던 옷을 입고 나왔다. 예전에는 언제 만나든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 옷을 입고 나왔는데 말이다.
“요새 많이 힘들구나.”
사람이 이렇게 바뀌다니.
내가 아는 예솔이는 교복을 입더라도 그 위에 걸치거나 안에 입는 옷을 매번 바꿔 입고 오는 애였다.
모두가 예솔이의 지갑 사정을 궁금해했던 게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 어땠더라.
“별 거 아니야. 일하는 건 재미있으니까.”
‘별 거 아니야. 옷 사는 건 재미있잖아.’ 지금처럼 별 거 아니라는 말을 하고 넘어갔지.
그날 후로 예솔이 금수저 설이 교내에 쫙 퍼졌다. 하긴 맨날 새 옷을 사는 친구를 걱정해서 뭐 하겠어. 지금 일도 재미있어서 하는 모양이다.
하긴 전공이랑 완전히 다른 분야긴 했지. 나는 예솔이의 일에 관해 더 이상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연희 너는 요새 어떻게 지내? 헌터가 됐다고 하지 않았어?”
“어? 나야 뭐 평소처럼 지내지.”
평범한 대화가 이어졌다.
최선을 다해 대화할 거리를 쥐어 짜내던 우리는 딱히 할 말이 없음을 깨닫고 휴대폰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예솔이랑은 너무 오래된 사이라서, 서로 모르는 게 거의 없었다. 있어봤자 최근 근황 정도.
대화가 끊겨도 같이 있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 그게 우리 두 사람의 관계였다.
나는 휴대폰을 툭툭 두드리는 예솔이를 흘끗 보고는 나도 휴대폰 자판을 두들겼다.
◀[낙원 쪽이 난리 난 것 같은데]
◀[혹시 아는 거 있음?]
수신자는 반서준이었다. 그쪽에서 가장 만만한 건 하람인데. 하람은 갑자기 외국으로 튀었으니 말 걸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낙원 놈들 답장 안 보내는 거야 러브리스와 연결 후 상황을 들었으니 그렇다 쳐도, 얘는 왜 답장을 안 보내?
나는 왼손에 턱을 괴며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사헌의 레나, 협회의 날강도, 협회 본부의 멜팅하트, 그리고 차원 학회까지.
연락 받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쯤 되면 날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싶은데.
나는 미간을 좁히고 PK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후에 달칵 소리가 났다.
쿠구구궁-!!
수화기 너머에서 건물 같은 게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예솔이가 칭얼거리듯 말을 붙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다른 사람이랑 통화하면 어떡해. 그렇게 심심해?”
“응? 그런 건 아니고, 잠깐 일이 생겨서.”
“이거 봐. 내가 오늘 저녁에 갈 식당 예약해놨거든. 가기 전에 다른 가게 들렸다 가자. 여기 마들렌이 맛있대.”
예솔이가 휴대폰을 쥔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PK와의 통화는 진작 끊겨 화면은 까맣기만 했다.
예솔이는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쥐여준 후 내 휴대폰을 화면이 아래로 가도록 내려놓았다. 푸른 혈관이 선명하게 보이는 하얀 손등이 눈앞을 슉슉 스쳤다.
나는 알록달록한 마들렌이 가득한 SNS 사진을 보며 호응해줬다.
“맛있겠다. 언제 찾았어?”
“네가 딴짓하고 있는 동안.”
방긋 웃은 예솔이가 마들렌 가게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었다.
예전에 인기 있었던 곳인데 야근하느라 가보질 못했다나. 인기가 한풀 꺾였으니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 핵심인 것 같았다.
“주차가 힘들다고 해서 차는 두고 왔어. 아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될 거야.”
“…….”
“어딜 그렇게 봐?”
미간을 살짝 구긴 예솔이가 내 손등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바깥을 보고 있다가 어영부영 고개를 돌렸다.
“응? 그냥,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뭔데?”
“오늘 사람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이 카페도 그렇고.”
대놓고 SNS 감성으로 꾸며진 이 카페는 딱 봐도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그러나 넓은 1층에는 우리밖에 없었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2층은 올라가 보지 않았지만, 아마 그쪽에도 사람이 없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밖에도 사람이 너무 없어. 주말 낮의 강남역이잖아.”
지하철에서부터 느꼈던 거였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사람이 너무 없다. 어쩐지 괜한 기우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거 알아? 다음 주에 할로윈 파티가 열린대.”
“어디에서?”
“여기에서. 다들 준비라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재밌겠지?”
다음 주에 열리는 할로윈 파티를 왜 지금 찾지.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할로윈 파티는 이런 곳보다는 이태원이나 홍대 같은 곳에서 하지 않을까?
할 말이 산더미였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싱글벙글 웃는 예솔이의 들뜬 기분을 박살 내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안대는 왜 낀 거야?”
“다래끼 나서.”
“그래? 눈 비비는 건 중학생 이후로 졸업한 거 아니었어? 아직도 애 같은 면이 있다니까.”
깔깔 웃은 예솔이가 쟁반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개의 음료잔은 텅 비어 있었다.
“심심한 것 같으니까 빨리 일어나자. 가는 길에 오락실 있나 찾아볼까?”
“요즘도 오락실 가?”
“나 말고 네가 좋아하잖아, 오락실.”
예솔이는 쟁반을 반납하고 후다닥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 그녀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사람 없이 한적한 거리는 다시 봐도 어색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고 있거나 바삐 갈 길을 갔고, 기계처럼 움직였다.
기계처럼 움직였다?
평소와 같은 광경인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이상하다.
“코인 노래방도 가자! 나 저번에 불렀던 노래 연습해왔어.”
“저번에 불렀던 게 뭐였지? 그 1인 2역 하는 뮤지컬 노래?”
“원래 야근하는 직장인은 마음속에 하이드를 품고 사는 법이야.”
씩 웃은 예솔이가 초록색 신호등을 보며 내 손을 팍팍 잡아끌었다.
나는 예솔이의 뒤를 따라 달리며 생각했다.
평소에는 예솔이가 거리를 걷기만 해도 무수한 명함과 번호 세례를 받았는데, 오늘은 아무도 예솔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