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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92화 (92/175)

제92화

내가 봤을 때 편애와의 계약으로 얻게 된 패시브는 장점이 거의 없다.

【“왜?!”】

물론 본인은 억울함을 토로할 만큼 자기 특성에 자신 있는 모양이지만, 내 생각에는 그랬다.

일단 이 특성 때문에 사람 많은 곳에서는 대가리가 쪼개질 것 같다. 자긴 익숙해져서 모르는 모양이지만, 죽을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남이 육성으로 말하는 거랑 생각하는 걸 구분하기 어려웠다.

둘 다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뭘 어떻게 구분하냐?

차이라고 해 봤자 이건 말하는 거고 이건 생각 같다! 하는 느낌이 전부였다.

또 머리가 쪼개질 것처럼 아프다는 건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란 소리다.

싸울 때 컨디션 좋은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상시 두통은 페널티랑 다름없잖아.

그리고 저 쉴 새 없는 소음은 두통에 이어 반응력 저하까지 불러왔다. 이렇게 두고 보니 그냥 페널티 덩어리였다. 빨리 추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이걸 들먹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간을 넘어 접근하는 것은 그냥 접근하는 것보다 다섯 배쯤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뭘 알아야 대응을 하지 않겠는가. 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무슨 대응을 해.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화나게 만들잖아요, 이 개만도 못한??.”

“제가 귀엽긴 해요. 감사합니다.”

네정좋이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기가 차서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저 얼굴에서 귀여움을 찾는 것보다 내 얼굴에서 귀여움을 찾는 게 더 빠르겠다.

늘 말하지만 네가정말좋아는 로판 남주인공처럼 생긴 편이었다.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왜 귀엽다는 말이 돼요?”

저 말을 들으니까 전 세계의 모든 개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졌다.

개는 죄가 없지. 죄는 네가정말좋아가 지은 거다.

“개는 귀엽잖아요.”

“네.”

“저는 개보다 덜 귀여워도 더 충성스러우니까 어떻게 보면 귀여운 거예요.”

대체 뭐라는 거야.

【“?쟤가 지금 뭐라는 거야?”】

이상하게 느낀 게 나뿐만이 아닌지 외계인마저 의문을 표했다. 아! 그건가? 4차원 이미지를 잡아서 컨셉질을 하는 건가?

【“그냥 뇌가 이상한 거 아닐까?”】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데 팩트로 명치를 때리면 어떡하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네정좋이 날 끌고 온 곳은 평소에 보던 비밀 기지가 아니었다.

다른 길드처럼 많은 사람이 근무하는 제대로 된 건물. 나는 내가 오게 된 곳이 낙원 길드가 쓰는 길드 건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기가 바로 가을클래식 선생님이 집중단속 하시는 그곳?

이 건물에 극야가 붙어 있는 꼴을 도통 못 봤다고 하셨지. 낙원 길드는 수뇌부가 죄다 자리를 비우고 있는 신비한 곳이었다.

【“아무래도 시키는 일을 해야 하니까 그렇지. 나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꼼짝 말고 거기에 있어”】지금 여기 있어?

【“어. 넌 지금 8층이고 난 2층.”】

밥값 못하는 외계인이 어쩐 일로 밥값을 다 한담. 근래 들어 가장 잘한 일이었다.

낯선 장소에 뚝 떨어져도 금방 적응해 내야 하는 게 헌터의 일이다. 오지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정도 환경이면 나쁘지 않지.

나는 사무실로 보이는 내부를 잠깐 둘러보다가 근처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나를 따라 옆에 앉은 네정좋이 새삼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오는 곳인데 당황하지 않으시네요.”

“왕의 덕목이죠.”

“멋있어요.”

짝짝짝. 네정좋이 손뼉 치는 소리가 사무실 안에 가득 울렸다. 영혼이 하나도 없어서 정말로 멋있어하는 건지 가늠이 안 간다. 진짜 이상한 인간이었다.

“벚꽃나비 님은 어디로 보냈어요?”

“회유 담당한테 보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빌어처먹을 러브리스요.”

욕이랍시고 탈모 타령을 하던 인간이 빌어처먹을이라고 말했다.

??러브리스랑 사이가 얼마나 안 좋은 거지? 저 둘을 같은 길드에 데리고 있어도 되는 건가?

나는 새삼 극야의 넓은 포용력에 감탄했다.

“러브리스 님이 회유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

이런 거 물어볼 생각은 없었는데, 이 길드의 길드원 충원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그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광신도가 되어 이곳에 남는가? 나는 조금 전처럼 펄떡거리던 벚꽃나비도 이 길드 소속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보통 둘로 나뉘어요. 길드장 님이 나서시거나, 그냥 보내 주거나.”

“차이가 있어요?”

“직접 나서시는 거면 대체재가 없는 거고, 아니면 대체재가 있는 거예요.”

아, 극야 님께서는 다 생각이 있으시구나~ 같은 건가. 정말 사람을 필요와 쓸모에 의해서 모으는군.

사실 길드라는 게 다 그런 거니까 문제 될 점은 없다.

다만 다른 길드는 그 헌터의 능력을 보고 영입하는 거지만, 여기는 그 헌터의 어떤 점을 보고 영입하는 건지 몰라 두려운 것뿐이지.

“기준이 철저하네요.”

“그런 편이에요.”

네정좋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가만, 그러면 지금 극야가 이곳에 없다는 뜻 아닌가?

가을클래식 여사님이 말하기를 극야가 이곳에 머무는 건 아주 드문 일이라고 했으니까.

“지금 댁네 길드장 여기에 있어요?”

나는 의심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네정좋은 아주 태연한 낯으로 대답했다.

“오늘은 여기 안 계세요.”

“저 끌고 올 때 댁네 길드장이 절 데리고 오라고 했다는 핑계 대셨잖아요.”

“아??.”

네정좋이 말꼬리를 끌며 눈을 돌렸다. 그 순간, ‘음??.’이 아닌 다른 속마음이 들려왔다.

‘맞다. 그랬지.’

듣는 입장에서 그저 기가 찬 생각이었다.

“방금 맞다 그랬지 같은 생각하셨죠.”

다른 건 참아도 이건 못 참는다. 나는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 네정좋을 보며 추궁하듯 물었다. 떨어진 고개가 올라올 생각을 안 했다.

“저는 무고해요.”

“사람을 이유도 없이 끌고 오는 게 어딨어요? 말이라도 하고 그러던가. 이건 납치라고요.”

지나가던 악마도 안 믿을 무고를 주장한 네정좋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생각은 막 ‘으??.’가 된 참이었다.

“저희가 이유가 있어야지 얼굴 보는 사이였어요?”

네정좋이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늘 생각하지만 자기 얼굴 활용 못 하기로는 1순위였다.

애써서 귀여운 척하기보단 그냥 협박하는 게 더 잘 먹히지 않을까.

물론 내 앞에서 협박을 했다간 하람 같은 꼴 나는 수가 있다.

“네. 그런 사이인데요.”

나는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 괜히 여지를 남겼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잘라낼 거면 아주 칼같이 잘라 내야 했다.

“아??.”

입술을 빠끔 벌린 네정좋이 넋 놓고 탄식했다.

우리 대화에서 그럴 부분이 대체 어디 있다고?

나는 여전히 그의 반응을 따라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너무해요.”

“예?”

“제 순결을 가져가셨잖아요.”

“예?”

“막? 막 비비셨잖아요. 제 하반신이 막?.”

예? 나는 황망하게 말을 더듬었다. 예? 뭐라고요? 예? 방금 뭐라고 하셨죠?

【“그런 사이였어?”】

그동안 입 다물고 있던 외계인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나는 흑흑 우는 척을 하는 너정ㅈ을 보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와 진짜 닉값하시네요.

“제, 제가 언제요.”

아니, 그, 자기 순결을 왜 나한테서 찾냐고.

남의 순결은 알 바가 아니었지만, 저 인간 순결은 더 알 바가 아니었다. 우리 엄마 이 꼬락서니 보면 뒷목 잡고 쓰러진다, 이 새끼야.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지둥댔다.

줄곧 우는 척하던 네정좋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더니 입술을 우물거렸다.

“기억 안 나세요? 분명 시뮬레이터 안에서??.”

“아, 그거.”

아, 그? 슈퍼주니어? 베갯머리송사? 영앤리치앤핸썸앤빅?.

잊고 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는 가출할 뻔한 정신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 그 슈퍼주니어 사건은 본의가 아니었다. 게다가 고작 그거 가지고 뭐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세상 말세였다.

“네가정말좋아 님.”

“주하예요.”

“어? 네. 주하 씨. 세간에서는 그런 거로 순결을 잃었다고 표현하지 않아요.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그리고 순결은 소중한 거니까 잘 간직하고 계세요.”

나는 개판이 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뱉었다.

던전에서 몬스터 때려잡는 것보다 이런 거 수습하는 게 더 힘들었다.

“먹고 버리시는 거예요?”

“예? 먹은 적이 없는데 뭘 버려요. 먹은 적이 있어야 먹버죠.”

“드셨잖아요. 잊으셨어요?”

“그러니까 먹은 적이 없다니까요.”

미쳐 돌아가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끊어진 정신줄을 다시 붙이기 위해 노력하며 내적 비명을 질렀다.

편애!!!

이 악마는 온다면서 왜 안 와?!

【“악마 지금 가는 중.”】

빨리 오라고!!

【“악마 30초 후에 도착.”】

네정좋과의 팽팽한 말싸움은 편애가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편애가 도착하자마자 편애 손을 붙잡고 튀었다.

“역시 저는 한낱 유희에 불과하고, 전하한테는 새로운 남자가??.”

“아!! 누가 외계인이랑 그런 짓 하냐고!!”

네정좋은 1절에서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닉값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편애를 붙잡고 도망가면서 생각했다.

원래 내가 추궁하고 있지 않았나?

분명히 내가 피해자인데 이상한 페이스에 휘말려 가해자가 되었다. 나는 먹은 적도 없는 인간을 먹버한 죄로 죽을힘을 다해 도망가고 있었다.

“그걸 이제 깨닫네.”

건물 밖까지 질질 끌려온 편애가 혀를 차며 말했다. 조용히 해, 이 악마야.

그냥 안 끌고 오면 될 걸 왜 굳이 끌고 와서 이렇게 쫓아내지?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고민했다. 낙원 놈들 하는 짓에 다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후의 일이다.

* * *

물밑은 흉흉해도 겉보기만 그럴듯하면 세상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네정좋한테 빅엿을 먹고 그 길드에서 뛰쳐나온 이후로, 나는 그 길드 방향으로 고개도 안 돌리기로 결심했다.

그 길드를 그 길드라고 불러 말조차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포부와는 다르게 그 길드의 일원에게 연락할 일이 생기고 말았으니.

그건 바로 PK의 생사 문제였다.

연락하라니까 왜 씹음?◀[손가락테크닉]

야◀[손가락테크닉]

2일 후까지 답장 안 보내면 신변에 문제 생긴 거로 알고 알아서 찾겠음◀[손가락테크닉]

알았다 찾으러 간다◀[손가락테크닉]

나한테 귀찮은 일을 떠맡긴 PK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인간 목숨 끈질기기가 바 선생이 따로 없으니 죽었을 거라곤 생각 안 하는데, 연락을 안 받으면 문제가 있다는 소리잖아.

단말기를 통한 연락 말곤 따로 연락을 취할 수단이 없으니 어떻게든 손을 써야 했다.

그럼 가장 빠른 게 추적 특성 각성자가 있는 본부 TF의 힘을 빌리는 건데??.

나는 본부 소속 TF를 생각해 보다가 마음을 접었다. 사고 칠 때마다 그 팀한테 압송당한 관계로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냥 TF말고 다른 쪽에다가 물어보자.

그리하여 선택한 게 바로 매번 소통 창구를 맡아 주는 낙원의 멜팅하트.

낙원 소속 헌터였다가 특성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본부로 가게 된 사람이었다.

다른 헌터 단말기 추적 가능?◀[손가락테크닉]

[멜팅하트] ▶ 누구요?

PK◀[손가락테크닉]

멜팅하트에게 위와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게 벌써 나흘 전.

나는 완연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그녀의 답장을 받게 되었다.

[멜팅하트] ▶ 게이트 안으로 파악되어서 확인이 조금 늦었습니다.

[멜팅하트] ▶ 계속 게이트 안이라고 뜨는 거로 봐서 게이트가 아니라 크레이터 안인 것 같아요.

[멜팅하트] ▶ 파악한 위치에 따르면

“군신 님.”

[멜팅하트] ▶ 서울역 크레이터 안이네요.

“밖에서 그렇게 부르면 들키니까 우연으로 부르세요.”

마침 하람과 함께 있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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