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혼신의 힘을 다한 대처는 결국 실패했다.
패인은 비눗방울의 성격 파악을 다 못 한 부분이라고 해야 하나. 비눗방울은 그날 밤에 자취를 감췄다.
아침에 다리몽둥이 하나 분질러 놓으려고 복면을 쓰고 침입한 내가 얼마나 허탈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저 퇴사합니다.’
‘예?’
‘누가 물어보면 적당히 죽었다고 해 주세요.’
지금 비눗방울이 인천으로 튀었는데 출근이 중요하냐.
나는 출근 대신 하람을 찾아가 일방적인 퇴사 통보를 하고 왔다.
‘잠시만요!! 군신 님, 잠시만요!!’
날 애타게 부르는 하람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당신 회사 동료가 벌인 일인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당신이 책임지십쇼.
나는 하람의 말을 듣지도 않고 새벽 길드를 탈출했다. 이제 못 받은 월급 같은 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션 실패해서 마법을 못 배우면 지금까지 고생한 게 다 물거품이 된다. 그 상황만은 어떻게든 막아야만 한다.
아는 건 비눗방울이 다음 날 송도 게이트에 나타날 거라는 정보와 인천에 함정이라는 이름의 빅엿이 도사리고 있다는 추측뿐인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눈앞에 벽이 있으면 부딪혀서 깨지더라도 일단 부딪혀 보는 게 좋다.
나는 그대로 인천으로 직행해 하루 종일 함정을 찾아 돌아다녔다.
근데 이 동네는 크레이터가 없어서 그런지 딱히 볼 만한 것도 없더라고.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닌다고 해도 단서 하나 없이 무언가를 찾긴 어려운 법이다. 나는 빠른 포기의 참맛을 알았다.
도시에서 일이 크게 터지면 당장 달려가면 되겠지. 호텔 방에 누워서 즐기는 휴대폰 게임은 소름 돋게 재밌어서 사람을 게임 중독으로 만들었다. 하마터면 인생을 또 갈아 넣을 뻔했다. 제때 정신 차려서 다행이지.
“저기 봐. 비눗방울이야.”
“잘못 본 거 아니야? 비눗방울이 왜 여길 와?”
게이트가 열리기로 예정된 곳은 송도에 자리한 대학 캠퍼스 근처였다.
근처에 지하철도 있고 아웃렛도 있어서 은근 볼 게 많았다.
대학생들 학교 안 간다고 쾌재를 부르는 게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나는 오는 길에 장난감 선글라스를 사서 얼굴을 가렸다.
진짜 선글라스를 끼면 괜히 있어 보일까 봐 한 선택이었다. 여긴 심해니까 있어 보이는 티 내면 곤란해진다.
“고랭크 헌터들은 다 저런가? 포스가 장난 아닌데?”
“그 새벽 소속이잖아. 당연히 저 정도는 되어야지.”
대기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비눗방울을 흘끗거리며 수군거렸다. 나는 비눗방울의 눈길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포스 같은 소리 하네. 그냥 사람 많은 곳 싫어서 쫄아 있구먼.”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비눗방울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잘 보면 손끝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본 적도 없는 인간 구하겠다고 달려 나온 용기가 가상하다.
하지만 나대는 놈이 제일 빨리 죽는다는 공포 영화의 법칙을 알기나 하는 건지.
나는 대기 장소 구석으로 걸어가며 계획을 세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끌고 가고 싶지만, 여기는 보는 눈이 많아서 곤란하다.
역시 던전 안에서 습격하는 방법밖에 없나. 던전 안에서 비눗방울을 제압하고 기절시킨 뒤 꽁꽁 묶어서 게이트를 나와야겠다.
그대로 서울로 배송하면 뒷일은 하람이 알아서 해 주겠지. 그것도 안 해 주면 사람이게?
“헌터님들! 곧 게이트 열립니다! 준비해 주세요!”
계획을 세우는 사이 게이트 열릴 시간이 다 됐는지 공무원 헌터가 목청 좋게 소리쳤다.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대기하던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와우.”
나는 그들이 벌이는 촌극을 뒤에서 쭉 지켜보며 선글라스를 올렸다.
“아저씨! 저희가 먼저 왔다고요!! 새치기하지 마세요!”
“새치기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했지!!”
“아~ 진짜. 이 양반 말로 해선 안 되겠네.”
누가 먼저 던전에 진입하느냐로 게이트 앞이 시끌시끌했다. 이게 게이트 앞이야, 아니면 시장 앞이야?
원래 한국인 하면 빨리빨리라지만, 오늘은 유독 심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비눗방울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하늘에 계시는 분이 심해에 강림하니까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거 아니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꼴 보기 싫긴 한데, 저것도 다 밥그릇 챙기려고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이번 던전을 비눗방울이 싹 쓸어갈 건 자명한 일. 그들은 누구보다 빨리 진입해 쥐꼬리만 한 보상이라도 챙겨야 했다.
백 번 논해도 비눗방울이 잘못한 일이었다.
“죄송한데⋯ 잠시만요.”
하지만 강자한테는 한없이 약해지는 게 이 바닥의 실체.
나는 비눗방울의 조그마한 목소리에 헌터들이 썰물처럼 빠져 주는 광경을 보았다.
사람들이 양옆으로 물러나고, 게이트로 향하는 길이 텄다. 이게 무슨 시상식 레드 카펫도 아니고.
그러나 가장 놀라운 건 비눗방울이 그 길을 성큼성큼 걸어갔다는 점이다.
쟤는 가끔 보면 사람 앞에서 벌벌 떠는 게 컨셉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처음에 본 카페에서도 모자랑 마스크를 턱턱 벗지 않았는가.
궁금하긴 한데 하람한테 물어보고 싶진 않다. 남의 사정 깊게 안다고 좋을 것도 없고. 괜히 나중에 귀찮아지기만 한다. 비밀이라는 건 늘 그런 것이었다.
아웅다웅 다투던 헌터들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게이트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나는 자취를 감춘 비눗방울을 찾아 게이트에 발을 디뎠다.
공기가 조각나고 세상이 뒤집힌다.
[₩&급¿ 이트에 입 하 습 다.]
[시 템이 성화됩 다.]
[탐욕 의 영 에 진 였 니다.]
[주변 경 데이 를 집 중니다.]
[ 이터 확 중⋯.]
[@@ @@ @@@@ @ @@ @@@]
[추정 이트 크 ?]
[ 정 전 랭 ?]
[추 터 랭크 -]
[추 스 크 ?]
[ 정 합 D¿+]
[추정 D¿+ 전 - ‘ 만의 대수림’에 진 하 니 .]
이윽고 단말기에 비친 것은 미쳐 날뛰는 글자의 나열이었다.
* * *
습한 공기가 코끝을 맴돈다. 걸을 때마다 질퍽한 진흙탕이 발을 적셨다. 새 신발 신고 온 사람이 있다면 절규하고도 남을 환경이다.
기깔나는 하와이안 셔츠를 걸쳤더니 컨셉에 참고하라고 오지로 보내 준다. 누가 해 준 배려인지는 모르겠지만, 습하고 더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런 데서 사람이 어떻게 사냐. 나는 진흙탕에 푹푹 빠진 발을 뽑으며 주변을 살폈다.
내 키보다 세 배는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란 숲. 무성하긴 또 얼마나 무성한지 해가 보이지 않았다.
해만 안 보일까. 이 정도면 해뿐만 아니라 달도 안 보일 게 분명하다.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는 곳. 빛이라곤 허공을 떠도는 야광 포자와 땅 곳곳에서 빛을 내는 꽃밖에 없는 곳.
지옥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숲이었다.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게이트를 열었을까. 지독한 악취미다.
우드득.
진흙탕을 밟고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숲 어딘가에서 와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목덜미를 섬뜩하게 스치는 효과음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런 말 하기 좀 뭐하지만, 대패 삼겹살 오돌뼈 씹어 먹는 소리 같았다.
아까 단말기 꼬락서니를 봤을 때부터 짐작했어야 하는데.
이 게이트는 추정 D+라는 비교적 수월한 랭크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단말기에 표시되는 건 종합 랭크였다.
등장하는 몬스터가 무엇인지, 보스는 또 누군지, 그리고 던전 안의 환경이 어떤지 같은 건 들어가 보기 전에 알기 힘들다.
추천 특성 같은 것도 다 통계의 산물일 뿐이고.
‘뭘 하든 상관은 없는데 인천 쪽으로 못 오게 막아 줘. 너도 인천엔 오지 말고.’
‘인천?’
‘응. 거기 요즘 흉흉하거든.’
오지에서 조난을 당하니 이 일의 원흉이 떠오른다. 네가 말한 흉흉하다가 이 흉흉하다임? 인천 쪽 던전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거?
나는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앞길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몬스터라곤 코빼기도 안 보이는 이 숲에서 나가려면 뭘 해야 하지?
힘이 있고 주먹이 있으면 뭐 하나. 결국 나가려면 이 게이트를 연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데.
보통은 몬스터가 사람 앞에 나오니까 문제가 없지. 하지만 가끔씩 이번 던전 같은 경우가 생긴다.
복잡한 지형지물이나 환영 같은 방해 요소를 돌파하고 보스 몬스터를 잡아내야 하는 경우.
‘연희 넌 저거 안 들어도 돼?’
‘저게 뭔데?’
‘초보 헌터를 대상으로 하는 던전 적응 특강이라는데?’
[초기 각성자 지환 쌤이 알려 주는 초보 헌터들을 위한 던전 적응 특강!]
엄마가 말하는 걸 듣고 고개를 돌려 보니 대문짝만한 학원 광고가 버스 옆면에 착 붙어 있었다. 요즘도 학원 광고 저렇게 하네.
나는 토익 학원 광고랑 별 다를 바 없는 헌터 학원 광고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건 실전에 도움 하나도 안 된다.
그래도 실전 경험 없는 초보들은 저런 광고에 홀려 학원에 등록한다고 들었다. 그만큼 던전 안 극한 상황은 베테랑마저 대처하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저 지환 쌤이라는 헌터가 ‘머리를 써! 머리를 써야 몸이 덜 고생하고, 그래야 그 힘으로 보스를 때려잡을 거 아니야!!’ 하고 윽박지르는 게 밈으로 떠돌고 있을까.
초보들이 게시판에 힘들다고 징징대면 흔히 달아 주는 게 ‘네가 선택한 헌터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따위의 드립이었다.
하지만 머리를 쓰는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생각이고, 진정한 프로는 머리 같은 거 안 쓴다.
소프트웨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하드웨어가 부족하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머리는 힘없는 애들이나 쓰는 거야. 나는 손을 들어 옆에 선 나무 위에 올렸다.
파지지직-!!
다음 수순으로 거침없는 낙뢰가 나무 위에 내리꽂혔다.
던전 내부가 우르릉 쾅쾅 요란하게 울린다. 나는 점멸하는 시야에 눈을 깜빡거리며 번개를 더 끌어냈다.
쿠르릉-!!
새파란 낙뢰가 공기를 찢고 내려와 거대한 나무를 불태운다. 축축한 나무 기둥은 잘 타지 않고 연기만 폴폴 났지만, 가장 위에 있는 이파리들은 활활 잘 타고 있었다.
숲에 거대한 규모로 불이 붙으니 앞이 아주 훤히 보였다. 나는 그 덕에 불타는 숲 곳곳에서 꾸물거리는 검은 덩어리들을 발견했다.
빠득. 와지직.
몸을 크게 부풀린 덩어리가 꿈틀거리자 오돌뼈 씹는 소리가 났다. 몇 번이고 몸을 비비 꼰 덩어리는 얼마 안 가 이물질을 밖으로 뱉어 냈다.
인간의 옷가지와 다소 얄팍한 방어 장비. 피 묻은 단말기와 각종 소지품이 든 작은 가방.
물건의 주인은 알 수 없었지만, 오돌뼈 씹는 소리가 왜 났는지 정도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소화를 마친 검은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나를 삼키려는 듯 내 쪽으로 꾸물꾸물 다가오던 그것이 돌연 행동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 옆에서 꿈틀거리던 덩어리가 그쪽으로 다가가더니, 두 덩어리가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진다.
다가오고, 멈추고, 합체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는 일련의 행동을 반복했다. 아무래도 날 소화할 수 있을지 간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언제까지 저럴지는 모르겠지만, 저러다 때 되면 덤비겠지.
나는 숲을 좀먹는 불을 등불 삼아 길을 걸었다. 합체와 변신을 반복하는 검은 덩어리가 애를 쓰며 뒤를 졸졸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