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엄마가 듣는 뽕짝 중에는 ‘이 한 많은 이 세상~ 어찌 살다 가리오~’ 하는 노래가 있다.
지금도 내 휴대폰 벨 소리로 지정되어 있는 명곡 중의 명곡인데.
▶ 야 이 개새끼야
▶ 통보하고 나르면 다야? 다냐고
▶ 날 떡볶이 따위로 낚아 놓고서 뒤지겠다고 인천에 기어 들어가?
▶ 너 죽었어
▶ 내가 너 잡아서 입에 치킨 처넣을 거야
▶ 빚 갚아 주고 평생 형님하고 모시게 만들 거라고
살다 보면 이 곡이 참 명곡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한 많은 세상에서 살다 보면 얼기설기 엮여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관계라는 게 일방적으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메시지로 지랄 발광하는 비눗방울이 그 점을 아주 잘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미치겠네.
“거기 계시지 말고 이쪽으로 오세요.”
커피 두 잔을 든 하람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나를 불렀다. 나는 하람을 따라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 길드의 지하에는 1공대 소속 헌터만을 위한 훈련장이 있다. 시간을 정해 쓴다고 하는데, 이곳만큼 방음이 철저한 곳이 없다는 소릴 들어 여길 방문하게 되었다.
“비눗방울 님을 떠보겠다고 하셨잖아요. 어때요?”
훈련장 문을 닫고 들어온 하람이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나는 하람이 건넨 커피를 받아 들고 훈련장 구석에 기대앉았다.
“앞부분은 못 들은 모양이에요. 다 망했다고 펑펑 울기만 하더라고요.”
옆으로 다가온 하람도 마찬가지로 벽에 기대앉았다. 나는 차가운 커피잔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비눗방울의 근황을 물었다.
“그런 것치고 며칠 잘 안 보이셨는데,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니죠?”
일해서 바쁘다는 핑계로 비눗방울의 메시지를 씹기 시작한 지 벌써 사흘. 이틀 전에 온 메시지는 어떻게든 널 조지고 말겠다는 경고장이었다.
“다른 쪽에 문제가 생겨서 그럴 거예요. 덜 쫓아다녀서 편하시지 않나요?”
“다른 쪽이요? 무슨 문제가 생겼는데요?”
“잘은 모르겠는데, 그 형이라는 사람이 또 인성질 한다고 했었나⋯⋯.”
하람이 약간 아리송한 낯으로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나는 입 안이 마르는 감각에 커피를 들이켰다.
거의 하루 종일 김마리 씨를 보러 기웃거리던 비눗방울이 요새 코빼기도 안 보였다. 물론 아침에 보는 거야 그대로지만, 길드 건물 내에서 본 적 없는 걸 생각하면 다시 출근을 안 하는 듯했다.
경고하듯 날아온 메시지와 출근 안 하는 비눗방울, 그리고 이틀 뒤에 열릴 송도 게이트.
단서를 차곡차곡 조합해 보면 단 하나의 답이 나왔다.
“하람 님.”
“네?”
“인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비눗방울은 용병을 모집한 송도 게이트에 갈 생각인 거다. 그것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찾으려고.
자기가 인천에 대놓고 함정이 있으리라고 말해 놓고서, 거기에 기어 들어가는 게 말이 돼?
형한테 미쳤냐고 메시지 보낸 게 대체 누군가 싶다.
물론 빌미를 제공한 내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인천이요?”
갑작스러운 화제였는지 하람이 생각에 잠긴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 비눗방울이 인천에 가면 난 조지는데.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PK가 마법을 걸고 부탁한 건 비눗방울이 인천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인천에 대체 뭘 해 놨길래 그 동네가 사람 잡아먹는 마계로 변한 건지 궁금해 미칠 것 같다.
“인천이면 아무래도⋯ 함정이죠.”
“그렇죠?”
“네. 범인이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들을 죄다 불러 모아 묻어 버리려고 파 둔 함정일 거예요. 혹시 가보실 생각이세요?”
하람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하람의 눈을 피하며 입을 뗐다.
“아뇨. 전 아니고⋯ 비눗방울 님이 인천에 가려는 것 같아서요.”
“도윤 형이요? 인천이 함정인 건 그 형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런 게 있어요. 요새 출근 안 하는 것도 그거 준비하느라 그런 거거든요.”
함정이라고 예쁘게 써 있는 구덩이가 있다. 사람들은 보통 그 구덩이를 피해서 가기 마련이지만, 가끔 알면서도 함정에 걸려 줘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 구덩이가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빠졌을 때 얼마나 다칠지 모르는 상태인데도 발을 디뎌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들어 버린 최악의 상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하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저도 모르는 일인데.”
“영업 비밀이에요.”
“예?”
“대충 그런 게 있어요. 우리 그냥 넘어갑시다.”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말장난 같은 건 넘겨 버리고, 비눗방울을 이곳에 묶어 둘 방법을 논해야 한다.
“저는 비눗방울 님이 인천에 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하람 님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PK는 왜 비눗방울이 인천에 오지 못하게 막아 달라고 했을까?
다른 사람들을 처리해 버린 것처럼 비눗방울도 처리해 버리면 되는 것을.
나는 어젯밤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답은 매우 빨리 나왔다.
이 사건을 파고 있던 건 비눗방울만이 아니다. 나도 이 사건을 파고 있었지.
시작은 편애의 말이었으니 편애도 이 사건을 알고 있는 게 된다. 그럼 내 주변에서 사건을 아는 사람만 벌써 네 명이다.
그리고 이 넷의 공통점은 함부로 건들기 힘든 고랭크 헌터라는 점이다.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 함정에 들어가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에요. 완전히 대비하고 들어간다면 모를까.”
유명인인 비눗방울이 이 사건을 조사하다 죽으면 일이 너무 커지겠지.
불나방처럼 인천으로 향하는 ‘아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 있다면 나와 비눗방울, 그리고 하람 또한 함정의 실체를 알게 될 거다.
PK는 비눗방울이 그 함정에 걸려 죽을까 봐 막아 달라고 한 걸까, 아니면 그 함정을 망칠까 봐 막아 달라고 한 걸까.
일단 나한테 오지 말라고 한 이유는 확실히 후자일 것 같다.
“가려면 인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사하고 가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애꿎은 목숨만 잃고 돌아올 수도 있잖아요. 하람 님도 아는 사람이 함정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으시죠?”
나는 최선을 다해 하람을 설득했다. 비눗방울이 멋대로 튀는 거 제어 못 하면 인천까지 따라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고생할 조짐이 보였다.
안 그래도 집에 가고 싶어 죽겠는데 뭐 하러 인천까지 따라가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하람의 대답을 기다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대답 없이 얌전히 생각만 하고 있는 게 아주 불길했다.
“말씀하신 것 잘 알겠어요. 저도 인천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렇죠?”
“근데 그게 형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예? 왜요?”
위험한 거 알면 막아야지, 이게 뭔 개소리야. 나는 기가 막혀서 반문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잖아요. 자기 목숨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죠.”
“두 분 안 친하세요? 비즈니스 프렌드신 건가?”
“아마 이 길드에서 제일 친할걸요?”
“진짜 친해지기 싫은 성격이시네요.”
내가 어지간하면 다른 사람한테 이런 말 안 하는데, 이 새끼는 진짜다. 진짜 친해지기 싫은 인간이다.
나는 웃는 얼굴의 하람과 적당히 거리를 뒀다. 하람은 그 모습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농담이에요. 설마 믿으신 건 아니죠?”
“믿고 있는데요. 저희가 농담할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렇긴 해요.”
저게 장난하나. 저번 게이트에서 봤던 선량한 모습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다.
낯짝에 철판 잘 까는 인간들은 주로 낙원이었던 것 같은데, 이쪽에도 이런 생태계 교란종이 있었을 줄이야.
나는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남은 커피를 원샷 했다. 차가운 얼음을 물고 있으니 열이 좀 식는 것 같았다.
“너무 곤란해 보이시길래 긴장 푸시라고 농담한 거예요.”
싱글벙글 웃는 낯의 하람이 입도 안 댄 자기 커피를 내밀었다. 나는 하람을 빤히 노려보다가 커피를 받았다. 소름 끼치도록 시원한 감각이 목구멍을 넘어간다.
“형이 무리하게 인천에 가려는 거면 당연히 막아야겠죠. 거기에 무슨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요.”
“예. 그렇죠.”
“하지만 의문점이 하나 있어요. 형이 인천에서 죽는다 한들 저희 길드 일인데, 군신 님께서 왜 신경 쓰시는지 모르겠네요.”
꿀꺽. 나는 입 안에 든 커피를 삼키고 하람을 보았다. 샷을 추가한 건지 더럽게 썼다.
“그건⋯⋯.”
“네.”
“그래도⋯ 비눗방울 님이랑 한 지붕에서 밥을 먹었는데, 당연히 신경 쓰이는 게⋯⋯.”
“저랑도 한 지붕에서 밥 드셨어요. 그리고 몇 번 본 것 가지고 정드는 타입은 아니시잖아요?”
하람은 맞는 말만 했다. 처맞는 말.
나는 시럽도 넣지 않아 더럽게 쓰기만 한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하람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 봤어요. 어지간한 일엔 꿈쩍도 안 하시는 분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분명 돌발 게이트 안에서도 일반인 흉내 내면서 아무것도 안 하시던 분인데.”
“뒤끝이 기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하람은 끝까지 웃는 얼굴로 답했다. 나는 스마일 맨만 보면 홧병이 도지는 타입이었다.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뒷목 잡고 쓰러지고 싶다.
“제 생각엔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도윤 형이 인천에 가면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고, 그걸 알고 계시거나⋯⋯.”
“⋯⋯.”
“아니면 도윤 형이랑 따로 교류를 하셔서 정이 붙으셨거나. 그 형이라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
“둘 중 하나 아닐까요? 저는 군신 님께서 그 형이라는 사람이라고 추측해 봤는데, 비약일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성별부터 다르니까요.”
와그작.
과하게 힘을 줬더니 플라스틱 용기 끄트머리가 살짝 구겨졌다. 김마리 씨로 변해 있어서 이 정도지 본 모습이었다면 틀림없이 터졌을 거다.
“하지만 그런 웹사이트는 익명으로 돌아가니까 상대가 거짓말했을 가능성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겠어요?”
“⋯⋯그렇죠.”
“전자 같은 경우는 후자처럼 답이 딱 나오지 않죠. 두 가지 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군신 님께서 인천에 있는 함정을 이미 알고 계시거나, 그 함정을 파 뒀을 사람을 잘 알고 계시거나.”
하람은 진짜 귀신 들린 사람처럼 답을 줄줄 내놨다. 나는 뒷목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저, 저 새끼 완전 미친놈 아니야.
계약하고 특성 발전을 이뤘다더니 진짜 샤먼이 된 거냐. 이게 바로 코리안 샤먼? 신내림 아닌 배후좌내림?
누가 내 머리를 악기 치듯 뚱땅뚱땅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곤란해하고 있는 티를 내지 않게 온 힘을 다했다.
하람은 계속 말하고 있었다.
“저는 저희가 지금까지 멀쩡히 남아 있는 이유가 처리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맞아. 범인도 그 생각하고 있을걸.
“인천으로 오라는 메시지는 이 사건을 파는 사람이면 언젠가 접하게 되어 있으니 범인이 인천에 함정을 파 뒀다는 건 자명하죠. 그리고 저희는 그게 함정임을 알고 가지 않을 머리가 있고요.”
쉴 새 없이 말하던 하람이 돌연 입을 닫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하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정할게요. ‘저’는 말이에요.”
잠깐 쉬었다 입을 뗀 하람은 ‘저’에 힘을 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