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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74화 (74/175)

제74화

새벽 길드 소속 헌터, 김마리는 오전 일곱 시에 기상한다.

부스스한 몰골로 시간 맞춰 현관문을 열면 아침이 배달 와 있다. 기숙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식사였다.

“안, 안녕하세요⋯⋯.”

이때 문을 열면 비슷한 시각에 반대편 집도 문을 연다. 나는 수줍게 인사하는 비눗방울에게 욕을 내뱉는 대신, 방긋 웃는 얼굴로 마주 인사해 줬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네에⋯⋯.”

튼튼한 옆집 문짝 너머로 순진하고 예쁘장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덩치가 보인다. 수줍어하는 꼴이 기막히게 보기 싫다.

“그럼 아침 맛있게 드세요.”

나는 아침을 챙기고 집 문을 쾅 닫았다. 이렇게 하면 아침의 고행이 끝난다. 상냥한 김마리 씨 연기가 이렇게 힘들다. 게으르고 폭력적인 데다 인성까지 더러운 우연희만큼 살기 편한 캐릭터가 또 없다. 하⋯⋯ 인생.

나는 오늘 아침 후식인 토마토 주스를 맥주처럼 마셨다. 크으, 인생이 쓰다. PK를 이 토마토 주스처럼 갈아 마시고 싶다.

아침밥을 먹고 난 후에는 출근 준비를 한다. 출퇴근 시간은 교대 일정에 따라 매번 바뀐다. 출퇴근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S급 찍고 1공대 들어가면 된다.

근데 거기 들어가느니 그냥 A-급 하고 말지. 나는 씻고 옷 갈아입는 과정을 거친 후 준비물을 챙겼다.

준비물 1, 부끄러운 야잠.

준비물 2, 김마리 씨 단말기.

준비물 3, 업무용 휴대폰.

준비물 4, 지갑.

준비물을 다 챙기면 나가기 전에 엄마한테 톡 하나 보낸다. 내용은 ‘밥 먹었어?’나 ‘여기 완전 별로야~ 엄마 보구 싶당.’ 정도.

전화를 걸고 싶지만, 전화를 걸었다간 해외가 아닌 게 티 나니까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도록 한다.

엄마한테는 국제 전화 비싸니까 통화하지 말자고 말해 둔 상태다.

“PK 이 새끼⋯⋯.”

변명을 뭐 그따위로 쳐 놨냐. 오랜만에 뜬 S급이라 차원 학회 세미나에 초청받았다니. 차원 학회가 새내기 S급을 대체 왜 불러? 손가락테크닉이면 모를까.

나는 졸지에 세미나에 참석하러 미국으로 떠난 새내기 헌터가 되었다.

헌터들은 그게 뭔 개소리냐고 하겠지만, 일반인인 엄마는 저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엄마는 PK가 보낸 초청장을 보곤 그대로 넘어갔다. 그 초청장이 정말 그럴듯하게 보인 탓이었다.

나는 오늘도 출근 전에 PK를 욕한 뒤 집을 나섰다. 출근길은 지극히 평범하다. 길드 건물이랑 기숙사랑 가까운 탓에 대중교통도 필요 없다.

“좋은 아침이에요, 마리 씨.”

가끔가다 타이밍이 맞으면 이렇게 반서빈을 만나기도 한다.

“캔 커피 1+1이라 한 개 더 있는데, 드실래요?”

“주시면 감사하죠.”

변함없는 새벽 야잠 차림의 반서빈이 캔 커피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캔 커피를 받아 들고 길드 건물을 향해 걸었다. 반서빈이 보폭을 맞춰 걷는 게 보인다.

“요새 힘들지 않아요? 두 사람이 계속 찾아오잖아요.”

둘 중 먼저 입을 연 건 반서빈 쪽이었다. 나는 캔 커피를 손안에서 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쩔 수 없죠. 다쳐서 오시는 건데 치료를 안 해 드릴 수도 없고.”

첫날부터 2주가 지난 오늘까지.

하람과 비눗방울 두 사람은 지들끼리 뒤지게 싸운 다음에 어디 하나씩 찢어져서 왔다.

‘안녕하세요, 김마리 씨.’

‘성 떼고 이름으로도 충분합니다.’

‘죄송하지만 김마리 씨의 이름만 부를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요. 이해해 주세요, 김마리 씨.’

하람은 자꾸 풀네임을 불러서 사람을 화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아이템을 빼고 잠깐 손가락테크닉이 되어 하람을 전치 12주로 만들어 버리려다가 참았다.

그랬다간 그 상처까지 내가 다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상처를 봐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그 하람보다 껄끄러운 게 비눗방울.

3공대 사람들이 꼽은 위험한 인간 랭킹 1위를 차지한 비눗방울은 범상치 않은 특징이 있었다.

‘도윤이는 다른 사람의 호의에 약해요.’

‘호의요?’

‘네.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한데⋯⋯.’

비눗방울이랑 하람이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진 후, 나는 졸지에 슈퍼스타가 되었다.

일 바쁜 반서준과 외국 출장 중이라는 론도만 못 봤지, 이 길드에 속한 헌터란 헌터는 다 본 것 같다.

쏟아지는 헌터들의 관심 앞에서, 초코우유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따로 불렀다.

‘설명하려면 도윤이의 특성부터 이야기해야겠네요. 마리 씨, 도윤이의 특성이 뭔지 알고 계시나요?’

‘커다란 까마귀 모양의 소환수를 소환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붙은 이명도 큰까마귀다. 너무 평범해서 왜 랭킹이 그렇게 높은지 이해 못 했던 기억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도윤이의 진짜 특성은,’

초코우유가 말을 잠깐 끊었다. 그는 주변을 살핀 후 아주 작게 속삭였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힘이에요.’

아하, 그러니까. 저번에 들은 용언이나 만화에 나오는 언령 같은 건가.

말하는 대로 모든 게 이루어진다면 보통 강력한 특성이 아니었다.

별 볼 일 없는 까마귀 소환수 끌고 그 자리에 있는 게 단숨에 이해됐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그러면 아무 말이나 막 하면 안 되겠네요. 말수가 적으신 건 그것 때문인가요?’

‘그런 것도 있고, 처음에 특성을 얻게 되었을 때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그것 때문에 늘 방에 틀어박혀서 지내게 된 거고요.’

일하기 싫어서 날백수처럼 사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런 뒷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세상에나 딱한 사정이.

다음부터는 개백수 밥버러지라고 부르지 말아야지. 나는 적당히 인식을 수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특성이랑 호의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요?’

‘아, 그건.’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린 초코우유가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는 한동안 주변을 살피다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집 밖에 자주 안 나오다 보니⋯⋯ 사람 만날 일이 드물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그런 이미지 때문에 하도 욕을 먹다 보니까 애가 점점 의기소침해졌나 봐요. 특성을 아는 사람이면 무서워서 말 섞기를 꺼리고, 모르는 사람이면 집 밖에 안 나오는 이미지 때문에 욕하고. 그러다 보니 작은 호의에도 과하게 반응하게 되고⋯⋯ 그런 거죠.’

초코우유 왈, 비눗방울의 특성은 자신과 동급인 사람이나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문제는 비눗방울의 특성 랭크가 S+라는 것이다.

헌터 랭크는 다른 요소들이 포함된 종합 점수라서 특성 랭크보다 낮을 수 있다. 마치 김마리 씨의 특성 랭크는 A인데, 김마리 씨는 A-급 헌터인 것처럼.

우리나라에 특성 랭크 S+ 이상인 사람이 누구누구 있냐? 나, 반서준, 회귀자, 네정좋. 그리고 더 없지?

모든 사람이 내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건 무슨 기분일까?

내가 웃으라면 웃고, 내가 울라면 울고, 심지어 내가 죽으라면 죽기까지 하고.

비눗방울이 무슨 고초를 겪었을지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 심정만큼은 이해했다. 물론 이해한다고 호감이 생긴 건 아니다. 왜 그렇게 금사빠냐고 따지고 싶었다.

‘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비눗방울 님이 하람 님이랑 대화하실 때 ‘하지 마’라고 말하신 적 있거든요. 그때 하람 님이 멈추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럼 비눗방울 님보다 하람 님이 더 강한 건가요?’

하람이 하도 김말이 타령을 해서 빡쳤던 적이 한 번 있다. 내 눈치를 살살 보던 비눗방울이 그때 하람에게 하지 말라고 했던 거로 기억한다.

하람이 그렇게 세졌나? 특성이 S+가 될 정도로?

배후좌랑 계약하면 다 저렇게 세지나. 나는 하람의 비약적인 성장세에 속으로 감탄했다. 그러나 초코우유가 내뱉은 답은 예상과 달랐다.

‘도윤이의 특성은 완전 랜덤이에요. 조절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아요.’

뭐야, 그거. 완전 폭탄이잖아.

그럼 너무 화났을 때 ‘죽을래?!’ 하면 ?%의 확률로 죽는 거냐고. 저 사람은 죽음과 동시에 죽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슈뢰딩거의 고양이야?

“오늘은 안 오셨으면 좋겠네요.”

나는 가까워져 가는 건물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토해 냈다.

“그럴 거예요. 혹시라도 곤란해지면 도와드릴게요.”

요즘 헌터답지 않게 훌륭한 인성을 갖춘 반서빈이 웃는 얼굴로 말한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곤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새벽 길드 로비는 늘 그렇듯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길드하면 헌터만을 떠올리지만, 헌터보다 더 많은 수의 일반인이 길드에서 일한다.

아무래도 가장 바쁜 건 헌터들을 지원하는 서포트 팀.

나는 서포트 팀 명찰을 매달고 전력 질주하는 사람을 보며 허허 웃었다. 오늘도 열심히 사시는구먼. 맨날 야근하는 사람들이라 특히 더 불쌍하다.

새벽 길드에는 일반 엘리베이터 외에도 방문자(헌터)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기본적으로 방문자만 쓰게 되어 있지만, 프로는 방문자 전용이건 뭐건 냉큼 타는 법이다.

나는 길드장 동생을 내세워 여유롭게 방문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매끄럽게 올라가 6층에서 섰다.

6층은 3공대 전용으로 마련된 층이다. 우리는 출근 시간 딱 맞춰 회의실에 도착했다.

“서빈이랑 마리 씨 같이 오셨네요? 서포트 팀에서 간식 남았다고 주고 갔는데 드실래요?”

“네. 감사합니다.”

어제 야근한 서포트 팀이 남은 야식을 돌렸나 보다. 아니면 제라늄이 강탈해 왔던가.

새벽 길드 초인싸 제라늄은 다른 부서에 갔다 하면 먹을 걸 얻어 왔다. 그의 인싸력은 이 길드를 넘어 다른 길드까지 미쳤다.

지난 주말에 사헌 길드 낚시 동호회랑 같이 낚시하러 갔다는 소릴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트로트 한 곡 부르고 매운탕을 얻어 왔다.

회의실에서 매운탕을 끓이는 제라늄도 제라늄인데, 다들 태평하게 오늘은 매운탕인가~ 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더 기막혔다.

나는 아무래도 마경에 들어온 모양이다.

“민주는 오늘 출석 일수 채우러 학교 갔어요.”

“그래요? 아쉽네요.”

“그렇죠? 민주 학교 간 기념으로 저희 말 놓을까요?”

“아니요.”

“마리 씨 오늘도 사회생활 잘하시네요.”

껄껄 웃은 제라늄이 상현이 형이랑 예리 누나를 불러오겠다면서 회의실을 나갔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하는 만담이다 보니 이제 대수롭지 않게 받아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아침 기사 보셨어요? 크레이터가 또 폭발했다는데.”

“네. 동탄 쪽이었죠? S1팀이 조사를 위해 파견된다면서요.”

오늘 새벽에 동탄 쪽에 있는 크레이터가 폭발했다. 저번 경주 크레이터에 이어 두 번째였다.

S1팀은 경주 크레이터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당연한 수순으로 정부와 S1팀을 마구 물어뜯었다. 지금 날강도 꼴이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

지이잉-

반서빈과 함께 크레이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휴대폰이 울렸다. 업무용 휴대폰이 아닌 터라 지금 확인하긴 좀 곤란하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껐다. 휴대폰을 다시 켠 건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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