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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69화 (69/175)

제69화

PK가 안내한 2층의 카페는 ‘얘가 이런 곳을 일주일 전부터 예약했다고⋯⋯?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헌터 전용 매장 때문에 이 백화점에 들르는 헌터들을 염두에 둔 카페겠지. 자리까지 안내해 준 직원의 말에 따르면 자리마다 밖으로 대화가 새지 않게 해 주는 아티팩트가 부착되어 있다고 한다.

그걸 자리마다 붙이려면 대체 얼마가 들었을까. 나는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뭐 먹을래? 여기 타르트가 유명한데.”

자리를 예약하는 데 드는 값과 디저트 값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손가락테크닉의 수익이나 건물주 수익으로는 아직 이런 터무니없는 방식의 사치를 즐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일주일 전부터 예약 안 하면 못 온다고?”

“정확히는 예약 일주일 전에 티켓팅 해야 하는 거지.”

“이런 곳에 나랑 오려고 네가 그런 수고를 했다고? 웃기고 있네.”

나는 빈정거리며 메뉴판을 넘겼다. 내가 쟬 오래 봐서 아는 건데, 절대 그럴 인간 아니다.

그리고 그 추측이 맞았는지, PK는 순순히 진실을 실토했다.

“물론 일주일 전에 예약한 건 아니야.”

“그럼 어떻게 예약한 건데?”

“영업 비밀이야.”

시계를 찬 손이 내 손에서 메뉴판을 쏙 빼간다. 나는 코웃음 치며 중얼거렸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알고 지낸 시간이 5년에 달하는 데도 그동안 서로 밥 한 끼 안 사 준 게 우리 관계였다.

칼 같은 5:5 더치페이가 뜻하는 피의 비즈니스 파트너 자식이 갑자기 이렇게 잘해 줄 리가 없다. 분명히 뭔가 개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뜻이다.

“난 오렌지 타르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PK를 흘끗거리며 내 몫을 골랐다. 임시 거처에서 라면 끓여 먹을 때도 치즈 사 오라는 놈이 이런 걸 그냥 사 줄 리가 없는데.

“그거 가지고 되겠어? 더 시켜도 돼. 여기 대표 메뉴가 체리 피스타치오 타르트라더라.”

“⋯⋯너 뭐 잘못 먹었어?”

아닌데. 아까 나랑 햄버거 먹었는데. 나는 이 기막힌 상황을 앞에 두고 떨떠름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평소엔 자기 집도 없다면서 징징거리던 인간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런 파격 소비를.

나는 저 새끼가 대체 뭘 부탁할지 감도 안 잡혀서 슬슬 두려워졌다. 이 모든 것이 운수 좋은 날이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에 파멸을 맞이하는 스토리인 거지.

“아니? 나 베이컨 치즈버거 먹었어.”

그러나 파멸을 부를 장본인은 끝까지 모른 체하려는 것 같았다.

엄마가 먹을 거 사 주는 사람 함부로 따라가지 말랬는데, 왜 그런 건 따라가고 나서야 생각나는 걸까.

이래서 자식은 다 커도 애라고 하나 보다. 어차피 고생하게 될 거라면 뜯을 수 있을 때 다 뜯어 둘까.

“그럼 디저트 종류 다 시켜 봐.”

“다?”

“응. 열심히 먹어 볼게.”

나는 PK가 쥔 메뉴판을 가리키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직원을 부르는 것부터 모든 메뉴를 시키는 순간까지 불평이나 불만 하나 없이 매끄럽다.

대체. 대체 뭘 시키려고 이런 짓을.

이유 없는 호의는 사람을 되레 찝찝하게 만든다. 나는 숨이 턱 막힌다고 생각하며 황당한 주문에도 방긋 웃는 얼굴로 떠난 직원의 뒷모습을 보았다. 진정한 프로였다.

아니면 여기서 돈지랄하는 헌터들이 많던가. 이쪽이 더 그럴싸하나?

저 위에 있는 헌터관에서 돈지랄 못 하는 친구들이 이쪽으로 내려와서 할 수도 있지. 원래 돈 많이 벌면 어떤 방법으로든 과시하고 싶잖아.

“야.”

주문 후에는 소소한 잡담도 없었다. 나는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슬슬 말해 봐. 여기 앉아 있으면 남들이 엿듣지도 못한다며.”

“응. 잠시만.”

“뭘 잠시만이야. 시간 많이 끌었잖아.”

“네가 봐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저기 봐.”

PK가 이 카페에서 유일하게 비어 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마침 우리 옆옆 테이블이었다.

“VIP석이야. 이 카페 최고 단골 지정석이지. 사실 이 카페가 다른 곳에 있다가 백화점 생기면서 자리를 이쪽으로 옮겼거든.”

“다른 곳에서 유명했어?”

“응. 타르트도 유명하고, 이 가게 단골도 유명해. 저 자리 주인 얼굴 한번 보겠다고 이 카페 예약하는 사람도 있어.”

말을 마친 PK가 고개를 휙 돌렸다. 동시에 직원 다섯 명이 우르르 몰려와 주문한 디저트를 올려 두고 갔다. 알록달록한 색색의 디저트 더미가 내가 수습하게 될 일의 무게 같아서 점점 초조해졌다.

그건 그렇고, 저 자리 주인이 누구길래 이 카페를 예약까지 해서 방문하지.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체리 피스타치오 타르트를 자르며 생각했다. 어디 유명 연예인이라도 되나?

그런 게 아니면 말이 되지 않는데. 유명 연예인이 아니라 유명 헌터인가?

하긴 여기는 헌터들이 많이 오는 곳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자른 타르트 조각을 입에 넣었다. 꾸덕하게 졸인 체리 필링과 슬슬 녹는 피스타치오 크림이 신기하게 어울렸다.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말이야.”

내가 타르트를 우물거리던 꼴을 지켜보던 PK가 내 눈치를 보며 입을 뗐다. 그럴 줄 알았지. 나는 오렌지 타르트를 반으로 자르며 턱짓했다.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당분간 나 대신 저 자리의 주인을 감시해 줬으면 좋겠어.”

열심히 움직이던 포크가 우뚝 멈춰 섰다. 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PK를 바라봤다.

“저번에 라이프 베슬을 구해 달라고 말했었지?”

“그랬지. 못 구했지만.”

“맞아. 그래서 세워 둔 계획을 싹 지우고 협력자를 막을 다른 방법을 찾는 중이거든.”

PK가 반듯하게 자른 마롱 타르트 접시를 내 앞에 놓아 주며 말했다. 나는 포크로 잘린 타르트 조각을 찍었다. 여기 타르트는 내용물보다 타르트지가 더 맛있는 것 같다.

“적당히 먹이나 던져 주고 사육하려고 했는데, 욕심이 과하더라고. 이러다간 나라 망하겠어.”

“인간 주제에 호랑이를 기르려고 하니까 그렇지. 평소처럼 개나 기를 것이지.”

전군단장이라고 해도 군단장인데 그거랑 짝짜꿍해서 사회에 혼란을 불러오는 게 말이 되냐. 아, 이거 맛있네.

“그래서 나한테 감시를 부탁하는 이유가 뭐야? 너도 수족은 있잖아.”

“벌인 일을 적당히 수습하다가 협력자를 약화시켜서 끝내려고 했는데, 저쪽에서 너무 깊게 파더라고. 어지간하면 적당히 처리하고 말겠는데⋯⋯ 그게 안 되는 사람이라서.”

포크를 든 그가 한숨을 폭 내쉬며 중얼거렸다. 나는 예쁜 원 모양의 살구 타르트를 포크로 쿡쿡 찔러 살짝 맛을 보았다. 고소한 아몬드 크림이 혀끝에서 녹았다.

“당분간 감시해 주면 돼. 뭘 하든 상관은 없는데 인천 쪽으로 못 오게 막아 줘. 너도 인천엔 오지 말고.”

“인천?”

“응. 거기 요즘 흉흉하거든.”

내가 찌르던 살구 타르트 접시를 가져간 PK가 타르트를 예쁘게 잘라 내놓았다. 나는 잘린 조각을 홀랑 집어먹으며 생각했다.

인천이라면 저번에 조사하다가 본 지명이다. 얘가 거길 흉흉하다고 말하는 거 보면 진짠가?

그냥 넘긴 단서인데, 다시 조사해 볼 가치를 느꼈다. 역시 마계.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구나.

“숙소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이야. 감시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대신 집에서 잠깐 나와 줘야겠는데. 어머님께 잠깐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한다고 하면 어때?”

“내가 출가를 왜 해. 집 나가면 개고생인 거 몰라?”

대체 누굴 감시하는 거길래 멀쩡한 사람 속세 탈출을 시키냐. 나는 여전히 빈자리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갑자기 집 나간다고 말하면 엄마가 퍽이나 믿겠다.”

“아까 건 농담이야. 변명거리는 제대로 만들어 줄게.”

“그런 거 말고 보수나 말해 봐. 집까지 나오게 시키면서 아무것도 안 주지는 않겠지. 안 그래?”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았다. 접시와 포크가 마주쳐 내는 딸그랑 소리가 유독 컸다.

“당연하지.”

답지 않게 유한 미소를 지은 PK가 입을 열었다.

“마법이라고 알아?”

그 입에서 나온 튀어나온 말은 생각 외의 것이었다.

“우리가 쓰는 특성과 비슷하지만, 특성과는 조금 다른 힘이야. 심장에 축적한 마나를 소모해서 부리는 이적이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영업 비밀이야.”

영업 비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얼음을 물었다.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마법도 특성처럼 타고나야 한다던데, 넌 어떨까 궁금하네.”

“왜? 넌 재능 없고?”

“재능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 최악이라던데? 계열이 일곱 개나 있는데 일곱 개 다 최악이래.”

최악에 악센트를 넣어 강조까지 한 PK는 최악인 것치곤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래. 살다 보면 재능 없는 분야도 있겠지. 나는 저 마법에 입문해 얻을 이득을 생각해 보았다.

마나를 소모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나를 쌓아야겠지. 저번에 편애가 외부 차원으로 가는 게이트를 열기 위해 서클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잘만 하면 내가 게이트를 열 수도 있겠다.

부수적으로 마법을 익히면 지금보다 강해질 수도 있을 거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임무 완수하면 마법 쓰는 법을 알려 준다고?”

“응. 알려 줄게.”

나는 웃는 낯짝의 PK를 가만히 바라봤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또 배후좌가 있는 인간이니 저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 굳이 따져 물을 필요도 없었다. 외부 차원의 정보니 당연히 외부 차원에서 온 생물이 알려 줬겠지.

“집에서 얼마나 나와 있어야 하는데?”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정해진 숙소로 가서 다른 사람인 척해 줬으면 좋겠어. 변장 도구랑 정보 같은 건 이쪽에서 다 줄 거야. 아, 물론 너희 어머님한테 둘러댈 변명거리도 만들어 줄게.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니겠어?”

“그렇지.”

한 달에서 두 달. 그동안 어떻게 보면 짧고, 또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었다. 나가기 전에 대충 방비를 해 두고 나가야겠다. 여기 위층 헌터관인가 뭔가에 쓸 만한 게 있나 보고 가야지.

“그럼 수락하는 거지?”

긍정적인 검토에 신난 PK가 환한 낯으로 물었다. 나는 곰곰이 고민하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을 꺼내 놓았다.

“그런데.”

“응.”

“그래서 누굴 감시하라고?”

홀랑 넘어간 줄 알고 웃으시면 곤란하죠. 나는 다시 포크를 집으며 물었다. 그와 동시에 PK의 뒤로 헐렁한 무지 티를 입은 남자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한 남자가 비어 있는 테이블에 가 앉았다. 얼굴을 가리는 용도인 모자를 슥 벗으니 노란색에 가까운 연한 갈색 머리카락이 쏟아져 나왔다.

동그란 선글라스를 벗자 보이는 눈 색이 머리색처럼 연한 갈색이다. 조명과 각도에 따라 노란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 눈에는 조금 전에 한 하품 때문인지 물기가 살짝 고여 있었다.

“야.”

“응.”

“저거.”

VIP 자리에 착석한 남자에게로 카페 직원이 쏜살같이 달려간다. 이 매장 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꽂혀 있었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우리나라에서 저 얼굴 모르면 간첩이다.

“비눗방울이잖아, 이 개새끼야⋯⋯.”

이 카페 초특급 VIP가 누군가 했는데 쟤였냐. 나는 손에 쥔 포크를 90°로 꺾는 묘기를 펼쳐 PK를 위협했다.

PK는 이 순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비굴하게 머리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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