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 안녕하세요.
▶ 이 일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는 갑자기 온 채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얜 뭐지?
이 사건 파는 애들은 죄다 실려 나가고 있는 거 아니었나? 이렇게 직접적인 도킹을 해 오는 경우는 또 처음인데.
이걸 어쩔까. 받아 줘? 아니면 말아?
나는 의자를 앞뒤로 흔들거리며 고민했다. 저거 보낸 인간이 어떤 인간인 줄 알고 말을 섞어. 그렇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않나?
대화 나눠 봐서 손해 볼 건 없는데, 답장을 보내 줄까?
나는 마우스 휠을 굴리며 고민을 이어 나갔다. 근데 쟤는 내가 실종 사건 파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난 댓글만 달고 다녔지, 게시 글을 작성한 적은 없는데.
저 ‘이 일’이 실종 사건이 아니라 다른 일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는 개인 채팅 창을 닫으며 웹 사이트 창도 함께 닫았다. 아무래도 수상했다.
안 그래도 마침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굳이 다른 사람한테 손 벌릴 필요는 없지.
나는 그날 온 채팅을 무시하고 자리를 떴다.
그로 인해 훗날 무슨 일이 생길지 알았더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후회는 항상 늦기 때문에 후회인 법이다.
* * *
“더워서 돌아가시겠네.”
백화점 정문의 자동문이 사람을 감지하고 지이잉 열렸다. 나는 바깥과는 완전 다른 안쪽 공기를 느끼며 백화점에 입장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게 벌써부터 기운이 빠진다. 매장 안 직원이고 손님이고 이쪽을 힐끗거리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반바지에 쓰레빠 신고 올 곳은 아니긴 하지.
문제는 내 옷장에 이런 옷밖에 없다. 여름옷이라곤 반팔 티셔츠랑 반바지가 다인데 뭘 어떡하냐. 그렇다고 정장을 입고 올 수는 없잖아. 내가 극야도 아니고.
그리고 극야는 말이야, 옆에 러브리스가 붙어 있잖아! 러브리스가 그, 얼음 소환하면 온도가 촥! 해서 체온이 촥! 내려갈 텐데 얼마나 시원하겠어? 안 그래?
나는 인간 에어컨의 존재를 격렬하게 부러워하며 입구 앞 에어컨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이 지옥불반도는 여름엔 구운 계란이고 겨울엔 냉동 참치다.
이러니까 사람이 실종되는 거 아니야. 이 거대 오븐에서 쿠키들이 탈출하겠다고 애를 쓰나 보지.
그러다 쿠키들끼리 모여서 왕국 만들고, 섭식과 자연의 순리를 불이행해서 외계인의 분노가….
“여기서 뭐 해?”
백화점 안쪽에서 등장한 PK가 등을 툭 치며 물었다. 나는 반팔 티셔츠를 펄럭거리며 말했다.
“땀 식히기.”
“밖에 많이 더워? 넌 더위도 추위도 잘 안 타잖아.”
“나라서 더운 걸로 끝이지, 일반인이 나가면 죽어.”
지금 시각 오후 한 시. 뜨겁다 못해 따가운 때였다.
“어쩐 일이야? 부른다고 순순히 행차하시고.”
“아, 그거. 엄마가 집에 처박혀서 전기세 낭비하지 말고 밖에 좀 나가래.”
나는 오늘 아침부터 버럭버럭 잔소리하던 엄마를 떠올리며 말했다.
‘연희 너 요즘 집에서 컴퓨터만 하고. 따로 하는 일 없어?’
‘음, 그게.’
사실 지금 우리나라에 어마무시한 실종 사건이 벌어지고 있고, 엄마 딸은 그걸 조사 중이야.
하고 말하면 엄마가 믿을까. 그런 걸 네가 왜 조사하냐고 잔소리하지 않을까?
그런 위험한 거 하다가 너도 실종되면 어쩌냐고 할 것 같다. 나는 엄마와 나 우리 두 사람을 위해 거짓말하는 길을 택했다.
‘나도 이제 건물주잖아. 건물주 기분 좀 내 보려고. 나도 그, 뭐냐? 코인이나 할까? 요즘 대세라고 하지 않았나?’
요새 그래픽 카드 가격 엄청난 거 알아? 다 코인쟁이들 때문이라니까? 코인이 흥한 게 아니면 그래픽 카드 가격이 왜 안 떨어지겠어.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골치 아픈 얼굴로 이마를 잡았다.
‘⋯⋯너 그거 하기만 해 봐.’
‘에이, 딱 한 번만 해 보면 안 돼? 하면 무조건 대박 친다니까?’
‘조용히 해. 오늘 나갔다 와. 맨날 집에 처박혀서 전기세 낭비하지 말고.’
‘밖에 완전 더운데? 이 날씨에 쫓아내려고?’
‘넌 애가 친구도 없니? 나가서 친구랑 카페나 가!’
좀 적당히 긁을 걸 그랬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회상을 마쳤다. 엄마도 참. 주말도 아니고 평일 낮에 내가 만날 사람이 누가 있다고.
유일한 친구인 예솔이는 평범한 직장인이라 지금 한창 일할 시간이다.
물론 엄마도 내 친구 사정을 아는 만큼 정말로 친구랑 놀다 오라고 쫓아낸 건 아니다. 그냥 바깥바람 쐬고 코인 같은 헛소리나 하지 말라는 뜻으로 내보낸 거겠지.
“근데 왜 불렀어? 그것도 백화점에.”
대충 카페나 가서 시간 때울 생각이었는데, 마침 PK가 불러서 여기까지 왔다.
에어컨 앞에 한참을 서 있었으니 더 있을 필요는 없겠지. 나는 백화점 안쪽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옆에 따라 붙은 PK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따 말해 줄게. 점심 먹었어?”
“아니. 지하에 있는 푸드 코트나 가자.”
“그래.”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바닥을 삼선 쓰레빠 직직 끌면서 가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리 낯짝 두꺼워도 옷에는 TPO가 있는 법인데. 여름옷이야 이런 것밖에 없다 해도 쫓겨날 때 운동화 안 신고 온 게 한이다.
다른 사람들은 남한테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지만, 내가 괜히 찔렸다. 학생 때도 교복 꼬박꼬박 챙겨 입던 모범 시민인 탓이다.
나는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디뎠다.
도착한 지하 푸드 코트는 이번에 새로 지은 백화점답게 화려했으나, 그렇게 당기는 음식은 없었다.
결국 선택한 건 평소에 먹던 햄버거였다. 물론 내가 자주 가는 건 프랜차이즈고 여긴 수제 버거라는 점이 다르긴 했다.
“여기까지 와서 또 햄버거 먹어?”
“원래 평소에 먹던 게 베스트인 거야.”
“그냥 그게 제일 무난해서 그런 거 아니고?”
PK가 답지 않게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PK의 입을 틀어막고 주문을 넣었다.
“난 햄버거 안 먹으려고 했는데.”
“그럼 네 것까지 내가 먹을게. 고마워.”
“무슨 소리야? 누가 시켜 준 건데 당연히 먹어야지.”
PK가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처먹을 거면서 뭘 튕기고 그래.
가장 무난해서 시킨 백화점 푸드 코트 출신 베이컨 치즈버거는 굉장히 고급진 맛이었다.
나는 안 먹겠다고 한 주제에 감자튀김까지 야무지게 처먹는 PK에게 내 몫의 감자튀김을 양보했다. 케첩 대신 마요네즈에 감자튀김 찍어 먹기는 좀.
“배 채웠으면 슬슬 말해 보지 그래. 오늘은 왜 불렀어?”
콜라 대신 자몽 에이드를 입에 문 PK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컵 안에 든 얼음을 입에 넣고 굴렸다. 잇새에 힘을 주어 깨무니 와드득 소리가 났다.
“우리가 무슨 일 있을 때만 보는 사이야?”
“응.”
“안 넘어가네.”
물 흐르듯이 웃은 그가 빨대로 음료수를 휘저었다. 나는 남은 얼음을 입 안에 털어 넣고 와작와작 씹었다.
엄마가 애도 아니고 나가서 그러지 말라고 한 행동인데, 솔직히 중독성 쩔었다. 특히 더운 여름날에는.
“여기 2층에 카페가 있거든. 알아?”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PK가 물었다.
“난 이 백화점 처음 와 봐. 여기 신축인 데다 헌터들을 위한, 뭐더라. 아무튼 헌터 전용 층 있잖아. 나는 올 일이 없지.”
보통 백화점에 가면 엄마가 가끔 옷 사 준다고 끌고 가는 게 다니까 이런 곳은 올 일이 없지. 근처에서 사람 만날 일 있어서 1층에 잠깐 들어와 있는 거 아니면.
나는 심드렁히 대답하며 아까 넘긴 감자튀김의 흔적을 보았다. 감자튀김에 마요네즈 찍어 먹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그냥 감자튀김만 먹기도 싫다. 앞으로 이런 곳 다니려면 개인 케첩 통을 가지고 다녀야 하나.
“예약만 받는 곳인데, 타르트가 엄청 유명해. 일주일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못 가는 곳이야.”
지금 감자튀김이 중요하지, 타르트가 중요하냐. 나는 순간 케첩이나 가져오라는 소릴 하려다가 말았다.
“그래서?”
“응?”
“2층에 있는 카페 예약했으니까 그 카페 가자고?”
쟤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그 카페 가자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응. 두 시로 예약해 놨어.”
기다렸다는 듯 칼같이 대답한 PK가 온순하게 웃었다. 나는 소름이 돋은 팔을 쓸며 표정을 굳혔다.
이 새끼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길래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굴지?
아니면 이미 사고 친 후라서 수습해 달라고 이러는 건가?
어느 쪽이건 내게 좋은 건 없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야, 솔직히 말해 봐.”
“뭘?”
“또 무슨 사고 쳤어? 저번에 그거야? 군⋯⋯.”
“그건 아니야. 지금 열심히 수습 중이거든. 조만간 터질 것 같긴 한데, 시일은 최대한 늦춰 볼게.”
유하게 웃는 PK의 두 눈이 평소와 같은 라임 색이었다. 나는 웃고 있는 그를 빤히 노려보았다. 자세히 보니 두 눈의 색이 미묘하게 달랐다.
어지간한 사람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게. 저건 하람이나 와야 눈치채겠는데?
“눈에 뭐 했어?”
“뭘?”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새끼야. 손모가지 찍어 버리기 전에 까라.”
내가 저번에 네 눈깔 군청색 되던 거 분명히 봤는데 뭘 숨겨. 저번에 못 봤으면 그런가 하고 넘어갔겠지만, 본 걸 뭐 어쩌겠어.
PK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어색하게 변했다. 나는 주먹을 쥐고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알겠어. 그러니까 주먹은 일단 집어넣으시고.”
“응. 너도 빨리 무슨 짓 했는지나 까시고.”
주먹을 거두지 않고 대꾸하자 PK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손목에 건 시계를 푼다.
다른 눈보다 약간 진한 라임 색이었던 오른 눈이 순식간에 완전한 군청색으로 바뀐다.
배후좌에게 특성을 물려받은 인간 계약자 모두가 한쪽 눈의 색깔이 바뀐 것을 떠올려 보면, 저건 PK가 배후좌를 얻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너⋯⋯ 배,”
“여기서 말하긴 좀 그런 이야기니까, 이따 카페 가서 말하자.”
시계를 다시 손목에 채운 PK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나는 주변을 살피는 그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 물었다.
“그거랑 그거 했어?”
그 물음을 들은 PK는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듣기엔 내 말이 조금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뉘앙스가 좀 이상하지 않아? 그냥 말하지 마.”
“입이 뚫려 있는 이유가 뭐겠어. 다~ 말하자고 뚫려 있는 거지.”
나는 괜히 모르는 척 웃는 얼굴로 응수했다. 그대로 엿이나 처먹어라. 다 개인적인 악감정에서 나온 행동이다.
“괜찮아. 난 이해해.”
“뭘 이해해? 이해하지 마.”
“그런 사람은 많이 없으니까 주눅들 수도 있지. 하지만 기운 내.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워. 그런 시계 따위로 너의 파트너를 감추지 마!”
“⋯⋯예약 시간 다 됐으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2층이나 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PK가 쟁반을 들고 튀었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군청색이라.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