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쓸 만한 게시 글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이 일을 아는 사람을 발견하는 건 그것보다 더 힘들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보통 얼마 안 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실종되거나, 아니면 죽거나.
‘실종되는 것과 비운의 사고로 사망처리 되는 것 중에 뭐가 더 나을까.’
비눗방울은 종종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훗날을 상상해 보곤 했다. 그러나 그의 차례는 기다려도 오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새벽 소속을 잘못 건드렸다간 뒤에 딸려 오는 걸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단순히 비눗방울이 이 국가에서 10위 안에 드는 랭커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리 팔팔하게 돌아가는 범인이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사건을 파헤치고 다니는 비눗방울을 놔뒀을 리가 없다.
개인은 노려지기 쉽지만, 단체는 처리하기 힘들다.
그것도 자존심 강하고 자부심 넘치는 새벽을 필두로 한 고랭크 헌터 단체면 더더욱.
‘정확히는 길드장 때문에 사리고 있는 거겠지만.’
비눗방울은 반서준이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취할 행동을 생각해 보았다. 자기들이 움직일 거라고 공표하기, S1팀에 경고하기, 전담 수사팀 꾸리기. 하나같이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범인은 절대로 저런 상황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실종 사건 숨기겠다고 크레이터 터뜨리는 놈인데, 당연하지.
따라서 범인은 비눗방울을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위의 모든 것을 무시하고 죄다 족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에 딱 하나뿐이다. 손가락테크닉.
‘물론 저희 우주최강zㅣ존킹갓핑거킹 님이 그러실 일은 절대 없고요.’
길드 가입 계약서에 붙어 있는 팬클럽 가입 조항 때문이 아닌,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 팬클럽에 가입한 열성 회원이 히죽거리며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동안 수집한 정보와 단서를 추려 특정해 낸 범인 후보는 단 세 명.
언제나 수상한 낙원의 극야, 이번에 배후좌를 업고 A랭크를 단 매화나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PK.
‘낙원의 극야는 언제나 수상했지만, 이번 사건의 배후 같지는 않아.’
물론 그를 광적으로 따르는 집단과 의중을 알 수 없는 미소 때문에 마이너스 점수를 줬다. 하지만 얼마 전에 본 그의 눈은 여전히 변함없는 보랏빛이라서, 크게 의심되지는 않았다.
‘매화나비는 군단장급 배후좌를 얻었다고 알려진 유일한 인물이지.’
배후좌를 얻은 덕에 하람처럼 오드아이를 가지게 된 그녀는 색욕왕의 군단장을 배후좌로 맞이했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것은 정교한 환영을 다루는 능력. 비눗방울은 그녀가 범인일 확률이 제법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군단장이 계약을 대가로 무엇을 요구했을지 모르니까.’
하람은 배후좌를 잘 구슬려 특성을 거저 얻었지만, 다른 헌터는 또 모른다.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PK는⋯⋯.’
비눗방울은 PK의 닉네임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플레이어 킬링(Player Killing)의 약자 같아 기분이 나쁜 닉네임이었다.
헌터 PK. 현재 랭킹 11위.
구단말기 사용자로, 완전히 모습을 숨긴 손가락테크닉과 달리 얼굴과 성별을 공개한 상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신상 또한 밝혀지지 않았고, 길드에도 속하지 않았다.
특이점은 각지에 흩어진 거의 모든 크레이터 안정화 기여도의 1위라는 것. 그것도 그냥 1위가 아니라 부동의 1위.
게이트는 열리는 순간 정보를 수집하고, 닫는 순간 정복도가 올라가지만, 크레이터는 열고 닫을 수 있는 게이트와 다르다.
게이트를 잠깐 지낼 텐트에 빗댄다면 크레이터는 집. 꾸준히 관리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각 크레이터에는 안정화 지수가 있었다. 30% 밑이면 매우 안전함, 50% 밑이면 안전함, 70% 밑으로 주의 바람, 80% 이상은 토벌 경고.
‘전국에 있는 거의 모든 크레이터의 안정화 기여도 1위를 먹으려면 대체 뭘 해야 하는 거지?’
물론 크레이터 안정화 지수를 낮추려면 당연히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 하람이 치고 올라오기 전에는 10위 안에 들었으니 당연히 강하겠지. 강한 거야 당연한데….
‘대체 어떻게 그 거리들을 오고 가는 건데?’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동해 번쩍 서해 번쩍이 말이 되느냔 말이다.
‘아니면 뭐 전우치인가?’
허허허~ 도사 놈이라. 도사란 무엇이냐. 도사는 바람을 다스리며, 마른하늘에 비를 내리며, 땅을 접어 달리며⋯⋯.
모 영화의 흐쌰흐쌰 노래가 비눗방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순간 기이한 감정에 휩싸였던 그는 머리를 털며 제정신을 차렸다.
아무튼 PK는 가장 수상한 범인 후보였다.
목격담에 따르면 그의 눈은 라임색이지만, 최근 몇 달간 그를 봤다는 사람이 없으니 그새 계약을 했을지도 모르지.
비눗방울은 오늘도 웹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정보 수집에 나섰다. 올라오는 즉시 삭제되긴 하지만 실종 사건에 대한 게시 글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니었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만든 카페가 있기도 하고.
정보를 찾아 각종 게시 글을 뒤적거리고 다니다 보면 간혹 사건에 관심 있거나 파헤치는 사람을 찾기도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은 얼마 안 가 사라지지만.’
비눗방울은 서치를 잠깐 멈추고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의 기간을 세어 보았다.
‘사흘이었던가.’
사흘. 비눗방울이 경고를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방팔방으로 정보를 캐고 다니던 그 사람은 단 사흘 만에 모든 곳에서 자취를 감췄다.
비눗방울은 그 뒤로 사건을 캐는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경고하든 안 하든 어차피 사라질 사람인데 굳이 수고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비눗방울은 저번의 그 글에 처음이자 마지막 댓글을 단 사람과 접촉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라질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런데.
<익명1 : 갠챗좀>
<ㅇㅇ : ㄱㅊㅈ>
<익명 : 갠챗ㄱㄱ>
<** : 갠챗 주세요>
조금 이상했다.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사라지지 않았다.
여러 웹 사이트에서 다양한 익명 닉네임으로 발견했지만, 비눗방울은 저 모든 댓글의 주인이 단 한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댓글이 하나같이 개인 채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혹시 사건을 캐는 사람이 아니라 작성자를 죽이려는 관계자인가?’
비눗방울은 합당한 의심을 하며 익명을 향해 개인 채팅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이 일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이 일과는 무관한 사람이든 관계자든 상관없다.
일단 범인의 마수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저 사람의 수준을 보여 주니까.
관계자면 더 좋지. 관계자와 접촉하게 되면 어떤 방법이든 변화가 찾아올 게 분명하다.
비눗방울은 초조하게 입술을 잘근거리며 답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 * *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편애와 헤어진 후에 옆자리 헌터들에게 훔쳐 들은 연쇄 실종 사건에 대해 조사했다.
사실 조사라고 해 봤자 별거 아니고, 각종 웹 사이트를 뒤적거리는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세 가지.
첫째는 일의 규모에 비해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것.
어림잡아 수백 명이 이 일에 휘말려 죽었을 텐데, 대중은 이런 일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까지 준비한 흔적이 있는데, 어째서인지 청원은 올라가지 않았다.
둘째는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이 용병 뛰는 헌터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
내가 누워서 웹 서핑하고 있는 지금도 돌발 게이트가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는 상황.
이름 있고 영향력 있는 길드 소속 헌터들은 돌발 게이트를 진압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늘에 있는 그분들이 이런 심해 쪽 일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지.
하늘과 심해는 길드에 속하지 못한 헌터들이 그들과 길드 있는 헌터들을 비교해 부르는 은어였다.
그럼 나도 길드 없으니까 심해인가.
나는 스크롤을 아래로 휙 내리며 쌓인 게시 글을 살폈다. 죄다 저번에 터진 토함산 크레이터에 관한 글이다.
일주일 쯤 되는 조사 기간 동안 마지막으로 깨달은 것.
그건 바로 누군가가 이 실종 사건을 숨기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서 글 쓴 사람은 죄다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추측을 뒷받침했다.
가장 처음에 읽었던 글에 개인 채팅을 달라고 댓글을 달았었지. 글 작성자는 정말 빠르게 채팅을 보냈다.
▶ ㅅㄹ
▶ 살ㅇㄴ려주
살려 달라는 내용의 채팅 두 개.
예? ◀
지금 어딘데요?◀
방금 전에 글 올려놓고서 바로 살려 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누가 옆에서 협박해서 올린 것도 아니고.
그래도 살려 달라는데 응~ 몰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 주려는 생각으로 작성자의 위치를 물었다.
답장은 하루 뒤에 왔다.
▶ 인천
정확한 위치가 아닌 지명만 콕 집어서.
“이게 대체 뭐냐.”
이건 뭐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중간 중간 혼자 조사하기엔 너무 노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아는 인간들한테 연락이라도 해 볼까 생각하곤 했는데, 연락처를 둘러보니 인맥 풀이 보통 좁은 게 아니었다.
이런 일에 부를 사람이면 첫째로 쓸 만하고, 둘째로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럼 누가 남느냐? 낙원 놈들이랑⋯⋯ PK랑⋯⋯ S1팀의 날강도, 그리고 새벽 정도.
낙원은 하도 손을 벌려서 더 보긴 좀 그러니까 패스. PK는 자기가 벌린 일 수습한다고 바쁜 모양이라 연락해도 잘 안 받았다. 패스.
S1팀? 아마 이 시국에 가장 바쁜 건 저쪽 아닐까. 패스. 그리고 새벽은⋯⋯.
“새벽은 좀 그런데.”
나는 책상에 얼굴을 박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걸 알렸다간 당장 수사 팀부터 꾸리자고 개난리를 피워 댈 게 뻔하다.
그리고 저번 게이트에서 마지막에 명치를 때리는 발언을 하고 왔거든. 먼저 도발해 놓고 걔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건 좀 그런데.
내 특기는 달려가서 박살 내는 거지, 이렇게 정보 수집하고 머리 굴리는 게 아니었다.
원래 몸이 안 좋으면 머리가 고생하는 거야. 부지런하게 토익 준비하던 과거의 내가 들으면 기함할 소리였다.
에휴. 뭐 언제부터 그룹으로 움직였다고 남의 손 빌리려고 하냐. 그냥 혼자 하고 말지.
나는 고개를 들며 다시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웹 사이트 오른쪽 상단에 있는 개인 채팅 아이콘이 반짝거렸다.
▶ 안녕하세요.
▶ 이 일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온 첫 번째 채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