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그걸 어떻게 알아? 그게 막 특정이 돼?”
“고랭크일수록 강한 배후좌가 생길 가능성이 높잖아. 통계상 고랭크 헌터의 배후좌와 관련된 문제일 확률이 높대.”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아마 S1팀이 출동할걸.”
정말 파격적이고 핫한 주젯거리다. 훔쳐 듣기만 해도 오한이 들었다. 벌써부터 지랄 발광하는 날강도의 모습이 눈앞에 스치는 듯했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이게 먹고 사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지금 크레이터 몇 개에 출입 금지 딱지가 붙었다는데?”
“그럼 크레이터 출입하던 애들이 용병 뛰겠다고 몰려들겠네.”
“어. 벌써 일감 떨어졌다고 연락 왔다, 씨팔.”
휴대폰을 만지작거린 헌터 하나가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나는 그새 곤죽이 된 편애의 케이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거야? 활약할 기회라는 게?”
“그렇지. 곧 재밌는 일이 생길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
“서울은 우리 구역이잖아.”
편애가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가 만들어 놓은 음식물 쓰레기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서울이 너희들 구역이었냐? 낙원 길드의 공식적인 구역은 강북 일대인 거로 아는데.
“너희 아는 거 또 있지? 회귀자 나리가 뭐라고 말 안 해 주든?”
고랭크 헌터의 배후좌와 관련 있다는 사건. 활약할 기회가 된다고 말하는 거 보니 어쭙잖은 일은 아닐 터다.
“얼마나 큰일인데 그래.”
자기들 구역이 서울이라고 말했으니까 서울에서 터질 일이겠지. 저 일의 여파가 우리 동네까지 미치려나?
일이 터지고 나서 움직이면 늦는다. 남들이 수습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적당히 내빼는 게 답이었다.
“막 그렇게 큰일은 아니야.”
초조하게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으니 편애가 느지막이 입을 연다.
“서울은 가장 마지막에 손댈 것 같거든. 범인이 제법 눈치 있나 봐. 이 나라는 서울만 멀쩡하면 별일 없는 것처럼 굴잖아.”
“외계인치고 우리 동네를 잘 아네.”
“아니면 눈치 있는 계약자가 있던가.”
편애가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턱 끝에 걸린 마스크가 입을 움직일 때마다 덜컥거렸다.
“너를 왜 그 정원에 데려갔다고 생각해?”
편애는 주변 눈치를 보듯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답했다.
“너희 대가리 정체 알려 주려고?”
“아니지. 그런 건 그냥 말해 줘도 되잖아.”
“너 죽는 거 보여 주려고.”
“진심?”
“그럼 뭔데, 이 새끼야.”
그냥 말해 주면 사람 속도 안 긁고 좋을 거 아냐. 너희 동네 애들은 왜 자꾸 스무고개를 하면서 시간을 끄냐?
친구가 없어서 다른 생명체랑 말을 오래 섞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이런 게 저 동네 문화인 건지.
전자면 불쌍하고 후자면 이해해 주기 싫다. 나는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네 손목에 있는 그게 필요했거든.”
“내 손목에 있는 거?”
나는 바로 고개를 떨궈 손목 안쪽에 찍힌 용머리 문양을 바라보았다. 개꿈을 꾸고 난 후로 살짝 흐려진 게 눈에 띄었다.
“곧 필요해질 거야. 그 악덕 사채업자가 부하를 얼마나 갈구는데. 효과가 아주 기막힐걸.”
빨대로 얼음을 휘저은 편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는 미간을 좁히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속보입니다. 경주 토함산에 자리한 크레이터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정체불명의 연기가….
그 소리만 못 들었어도 그대로 쌍욕을 내뱉었을 텐데.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 * *
작열하는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새벽의 개백수 밥버러지, 비눗방울은 여느 때와 같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게시물을 서치하고 있었다.
<[BEST] 이번에 불국사 뒤집어진 이유>
<이번에 터진 크레이터 말인데요>
<경북 지역 길드 사이에서 도는 흉흉한 소문>
일반인이고 헌터고 죄다 크레이터 건으로 난리가 났다. 베스트 게시 글은 볼 것도 없고, 일반 글마저 다 토함산 크레이터 건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예상대로야. 크레이터 사건 때문에 연쇄 실종 사건이 묻히고 있어.”
크레이터는 외부 차원과 연결된 장소. 그런 장소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절대로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 폭발이 전쟁의 효시일 수도 있었다.
현재 경북 지역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S1팀이 발 빠르게 달려가 크레이터 안을 조사 중이었다.
그러나 아직 폭발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 시간은 시간대로 끌고, 소득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이번 일.”
해가 꼭대기에 걸렸는데도 출근 안 한 인간을 잡으러 온 하람이 물었다.
“당연히 연막용이지. S1팀 애들이 얼마나 독한데. 날강도 성격 몰라? 문제 있었으면 벌써 발견했을 거야.”
“그쯤 되면 날강도도 눈치챘을 텐데, 왜 안 빠지고 있지?”
“그야 높으신 분들이 뭐라도 가져오라고 시키니까. 이래서 공무원 하면 안 돼.”
혀를 쯧쯧 찬 비눗방울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확인해 보니 이번 일이 터지기 전에 올라온 연쇄 실종 사건에 대한 게시 글이 듬성듬성 사라져 있었다. 남은 건 알맹이 없는 질문 글뿐.
‘확실해. 누가 사건을 일부러 은폐하고 있어.’
그렇다면 토함산 크레이터에 폭발을 일으킨 것도 같은 사람일 것이다.
한 달 넘게 땅만 판 사건의 실마리가 보였다. 비눗방울은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다른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번 건 흔히 용병으로 부르는 일용직 헌터들이 주로 사용하는 웹 사이트였다.
<[BEST] 이번 크레이터 사건 이후 벌어진 일들>
<[BEST] 경북 크레이터로 오지 마세요>
<요즘 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경북 크레이터 쪽 말고 일할 곳 없나요ㅠㅠ>
이 웹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길드에 소속된 헌터보다 크레이터 사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크레이터가 막히면 크레이터에 들어가는 헌터들이 일거리를 찾아 용병 일을 뛰므로 그들의 일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용병 일은 페이가 들쑥날쑥해도 크레이터보다 안전하다. 반면 크레이터 안은 무법 지대 그 자체.
따라서 크레이터에 출입하는 헌터들은 현장 경력 풍부하고 실력에 도가 튼 이들이었다. 평소 용병 일을 뛰던 헌터들과 비교가 될 리 만무했다.
‘일용직 헌터들만 안타깝게 됐지.’
그렇지만 안타까운 사람은 이 세상에 많고, 다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눗방울은 게시판을 쭉 둘러보다 눈에 밟히는 글을 열어 보았다. 등록된 지 얼마 안 된 글이라 그런지 조회 수가 고작 2였다.
작성자: 글카가격내려
08/13 12:30
[내가 생각한 이번 사건 배후]
*사실이 아닌 추측 글이니 지적 반박 안 받음
1. 내 동생이 경찰인데, 몇 달 전부터 경찰서에 실종 신고가 늘었다고 했음. 마찬가지로 흥신소에도 사람 찾아 달라고 방문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들었다.
2. 얼마 전부터 이 바닥 애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음. 연쇄 실종 사건이 배후좌랑 관련 있다는 소문이거든? 모르는 애도 많긴 한데 알 만한 애들 다 안다.
3. 근데 그냥 배후좌가 아니라 고랭크 헌터의 배후좌랑 관련 있다는 소문이었다. 다들 고랭크 헌터일수록 강한 배후좌를 업고 다닌다는 거 알잖아. 그래서 아는 애들 입 다물고 있었음.
4. 문제는 걔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함.
5. 동시에 실종된 애들 활동 위치 파악해 봤는데, 빨리 사라진 애들일수록 크레이터 근처에 있었음.
6. 세상 아무리 흉흉하다고 해도 이렇게 대규모 실종 사건이 터지면 언젠가 화제가 되기 마련임. 슬슬 이 연쇄 실종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같다 싶던 차에.
7. 이번 사건이 터짐.
8. 솔직히 크레이터 다니는 애들 다 알겠지만, 토함산 크레이터는 급도 낮고 나오는 몬스터도 별로 없음. 거기 들어가면 끝없는 초원밖에 안 보여서 다녀온 애들마다 하는 말이 다시는 안 들어간다임.
9. 그런데 일 터지자마자 실종 사건 이야기가 쏙 들어가더라고? 심지어 여기나 타싸 게시물 몇 개는 삭제되기까지 함.
10. 그래서 내가 보기엔 두 사건 다 똑같은 인간이 범인인 것 같음.
내 추측은 여기까지고, 댓글 달면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다 말해 줌.
댓글 없거나 글 지워지면 나도 실종된 거임.
댓글(0)
영양가 없는 다른 글과는 다르게 이번 사건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적은 글이었다.
단순한 추측이라기엔 걸리는 점이 조금 많다. 비눗방울은 마우스 커서를 내려 댓글란을 눌렀다.
댓글(1)
익명1 : 갠챗좀
마침 누가 댓글을 달아 놓은 참이었다. 비눗방울은 개인 채팅을 요구하는 댓글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게시 글에 댓글 달라고 적혀 있긴 해도 이런 문제를 댓글로 논하는 건 좀 그렇겠지.’
아무래도 댓글에 물어볼 것을 곧이곧대로 적는 것보다 개인 채팅을 요구하는 게 훨씬 나아 보였다.
‘저도 개인 채팅 부탁드립니다.’
댓글 작성을 완료한 비눗방울이 확인 버튼을 눌렀다.
[삭제된 글입니다.]
그러나 화면 위에 떠오르는 것은 허무한 메시지뿐이었다.
“허.”
계속 쫓아 달리던 사건을 풀 실마리를 잡았는데,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화면 위에 뜬 메시지를 같이 확인한 하람이 허탈한 숨을 내뱉는 비눗방울에게 물었다.
“저 사람 찾을 수는 없어? 아까 닉네임 확인했으니까 다른 글을 검색해 보면 되지 않을까?”
“잠시만.”
비눗방울의 손이 다시 한번 분주해졌다. 닉네임을 검색하고 이전 기록을 살핀다. 한참을 집중하던 비눗방울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없어.”
“뭐?”
“기록이 전혀 없어. 댓글도 게시 글도 모두 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게시 글, 전무한 활동 내역.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비눗방울은 초조하게 입술을 씹으며 화면을 노려봤다. 하람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시간 날 때 추적해 보면 되지.”
“그래.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다짐하듯 중얼거린 비눗방울이 다시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람은 그런 비눗방울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의 어깨를 잡은 하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좋아. 다 좋은데⋯⋯.”
“어?”
“출근부터 해. 길드장 히스테리에 사람 실려 가기 전에.”
듣는 이에게 남극의 온도를 체감하게 할 만큼 싸늘한 목소리였다. 비눗방울은 삐걱대는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의사를 표시했다. 하람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했다는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