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서로 다른 두 종족간의 기묘한 화합 자리는 그렇게 파토 각이 났다.
솔직히 상상도 못 했다니까. 지구가 망하기 전부터 지구에 있던 사람이 인간이 아닐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제 겉모습이 인간이라고 무턱대고 인간이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너무 종족 차별주의자다 싶은 말이 아닌가 싶지만, 저는 종족 차별주의자가 맞습니다.
“이제 뭐 해?”
“밥 다 먹었으니까 가.”
“진짜 밥만 먹고 가라고?”
편애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하게? 근처에 코인 노래방 있는데 거기라도 갈래?”
평범한 유흥 코스를 바란다면 밥 다음에 노래방이지. 아니면 피시방.
물론 편애가 나랑 놀자고 저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편애와 계약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한테 공식적으로 스토킹 허가 내주는 취미는 없는 편이라서.
누가 순순히 계약해 줄 것 같냐. 나는 괜히 편애를 놀리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시시덕거렸다. 이를 빠득 간 편애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가자.”
“어?”
“노래방, 가자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본 편애가 입술 끝을 비뚜름하게 올렸다.
두 종족 간 화합의 현장이라고 쓰고 계약 약팔이 챌린지라고 읽는다.
다음 라운드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 *
“외계인도 3단 고음 되냐?”
“지구 토착민이라고 텃세 부리나 본데, 나도 외우주에서는 기깔나게 잘 놀았어.”
“어디 한번 불러 보든가.”
노래방.
“이게 뭔데?”
“커피 빵 아이스하키.”
오락실.
“진 사람이 커피 쏘기로 했으니까 다녀와.”
“아까 그거 이따 한 번 더 해. 이번엔 저녁 빵으로.”
“콜.”
카페까지.
흰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편애가 주문을 넣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며 생각했다.
분명 계약 타령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거 없이 잘 놀고 있었다. 지구인인 척하는 외계인과 함께 놀러 다니기. 참 기이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딸랑딸랑. 유동 인구가 많은 동네의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라 그런지 끊임없이 사람이 밀려들어 온다. 나는 푹신한 의자에 기대앉으며 사람들의 모습을 살폈다.
바쁘게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들, 책을 펼치고 공부하는 사람들, 일행과 함께 떠드는 사람들.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주변에 회귀자가 설치고 다니고, 내가 그 회귀자의 회귀 이유여도 바뀌는 건 딱히 없다.
세상은 이토록 평온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 많아서 좀 걸린대.”
지구 사회에 멀쩡히 적응한 외계인이 진동 벨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괜히 한밤중에 감성 폭발한 사람처럼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날 안 알아봐.”
“또 뭔 소리를 하려고.”
“감격스럽다는 뜻이지. 나 너희 동네에서 슈퍼스타잖아.”
왕인가 뭔가 하는 놈들은 나만 보면 자기들만 아는 소릴 지껄이지, 나 때문에 회귀했다는 놈은 자기 혼자서 다 할 테니까 가만히만 있으라고 하질 않나.
내가 무슨 공주도 아니고 뭘 가만히 있어? 요새는 공주도 자기 할 일 한다. 라X젤을 봐라. 자기 머리 타고 가출도 하지 않던가.
“평생 숨만 쉬고 살고 싶다. 건물주 된 김에 일도 안하고 백수처럼 사는 거지.”
“머리에 총 맞았어?”
엄지와 검지를 곧게 편 편애가 그 손으로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나는 방긋 웃는 얼굴로 그 손가락을 꺾는 시늉했다. 그러자 편애가 조용히 손을 내렸다.
“가서 서 있다가 음료수 받아 올게.”
영수증과 진동 벨을 잽싸게 낚아챈 편애가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도망갔다. 지구 와서 인생 편하게 사는 법을 배웠구나. 나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마침 옆 테이블에도 사람이 앉은 참이었다.
“이번 백천 길드 공채 말이야, 경쟁률이 몇이었지?”
“168대 1. 1차 붙었어?”
“붙었으면 이런 말 하겠어?”
듣고 싶었던 건 아닌데, 특성도 특성인 데다 자리도 좀 붙어 있어서 너무 잘 들렸다. 옆자리 사람들은 아마 헌터인 모양이다.
“예전에 같이 용병일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말이야, 얘기 들어 보니까 배후좌 만나서 랭크가 올랐다더라고.”
“그래? 얼마나 올랐는데?”
“D에서 B가 됐대. 일연 길드에서 스카웃해 갔다는 모양이야.”
“부럽다. 5대 길드 아니어도 상관없으니까 나도 어디서 스카웃 좀 받아 봤으면.”
일반인들은 헌터를 부러워하는데, 헌터들은 또 고랭크 헌터들을 부러워한다.
사람이 다 그렇지. 원래 자기가 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법이다.
“열심히 뭐라도 하다 보면 랭크도 올릴 수 있겠지. 그래도 타고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배후좌도 고랭 선택률이 더 높잖아.”
“그렇지. 얼마 전에 그런 사람 하나 있지 않았나? 태생 S급.”
“있었지. 5대 길드에서 싹 다 몰려갔었잖아. 그 뒤로 활동을 전혀 안 해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요새 욕먹고 있던데?”
쾅!
손에서 미끄러진 휴대폰이 테이블에 모서리를 찍으며 떨어졌다. 하드 케이스를 끼운 탓에 소리가 장난 아니게 요란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뭐라고? 욕먹는 중이라고?
“뭐 해? 휴대폰 안 줍고.”
때마침 쟁반을 들고 등장한 편애가 굳어 있는 날 보며 말을 걸었다. 나는 손을 뻗어 아이스커피를 쭉 들이켰다. 예쁘게 놓여 있는 종이 빨대는 뜯지도 않았다.
사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다. 생각만 하고 넘겨서 문제지.
대 헌터 시대를 살아가는 헌터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란 무엇인가?
러브 앤 피스 같은 흔하고 뻔한 거 말고, 좀 그럴듯한 거 말이다.
저기 높은 곳에 있는 반서준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러브 앤 피스가 나올 테고, 바닥에 떨어진 팝콘 주워 먹는 네가정말좋아에게 물어보면 얼굴이라는 답이 나오겠지.
언제나 바쁜 S1팀의 날강도는 즉시 돈이라고 답할 테고, 돈 때문에 대형 사고를 친 PK도 같은 대답을 내놓을 거다.
돈⋯⋯ 뭐, 돈도 좋지만, 난 날로 먹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새벽의 날백수로 유명한 비눗방울도 같은 소리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남이 날로 먹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인간이 수두룩한 법이다. 실제로 날로 먹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기도 하고.
20xx-07-31 16:15 조회:190 추천:11
<개인적으로 힘 있는데 아무것도 안하는 애들 꼴 보기 싫음>
작성자: 익명
아 물론 새벽처럼 열심히 일하는 고랭크 헌터들도 있는 거 아는데ㅋㅋㅋ
돌발 게이트 터지고 난리 난 상황에서 지들 이익만 챙기고 뒤로 쏙 빠진 길드들 있잖음;;
뭐 예전처럼 돈 안 주고 무보수 노동 시키는 것도 아니고 고랭크 헌터님 귀하다고 온갖 대우 다 해 주는데 배가 불렀어.
걔들도 한번 없어 봐야 정신 차리지ㅋㅋ 운 좋아서 각성하자마자 상위 길드에서 모셔 가고 바닥도 안 봤을 거 아냐
후⋯⋯ 오늘도 랭크랑 특성 구리다고 용병 신청 짤렸는데 기사 보고 있으니까 속 뒤집어지네.
댓글(14)
- 난 각성하고 고랭크 받아도 태생 금수저라 아무것도 안 하는 인간들도 싫음
ㄴ 난 저랭크 받고 돈으로 사람 사서 길드장 놀이하는 금수저들도 싫음
ㄴ 네 말이 맞다
- 갠적으로 고랭크 받았는데 길드 안 가고 크레이터만 다니는 애들도 별로
ㄴ 돈에 환장한 거 웃김
ㄴ 그렇게 혼자 설치다 죽으면 고랭크라서 헌터 하나 또 죽었네 뭐네 하면서 주목받음
- 크레이터는 그렇다 쳐도 길드에 있는 헌터한테까지 뭐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길드에 속해 있으면 나라에서 혜택 받는 만큼 강제 동원 시에 우선시되는데.
ㄴ 지금 그 얘기 하는 거 아님
ㄴ 눈치 챙겨
- 다 손가락테크닉부터 아무것도 안 해서 그럼ㅋㅋㅋ 대가리가 저러니까 밑물도 저러지
ㄴ 핑거킹은 언급 금지임 ♡♡아
ㄴ ♡♡ 너 그러다 특급 열렸을 때 핑거킹 파업하면 어쩌려고;
ㄴ 댓삭해
ㄴ 조만간 새벽이 택배 보내면 받지 말아라⋯⋯
그런 건 대충 홈페이지 익명 게시판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어디서 욕을 먹고 있는지 대충 알겠네. 고랭크인데 길드 가입도 안 하고 들리는 소식도 없어서겠지.
아, 물론 나도 활동 열심히 하고 싶었지. 그리고 실제로 활동 열심히 했다. 내가 지구의 평화를 지킨 게 대체 몇 건인데.
“흠.”
근데 그간 있었던 일을 하나같이 손가락테크닉으로 처리했다. 맞은편에 앉은 편애를 보라. 남들이 알아볼까 봐 모자에 마스크까지 썼는데, 나는 깔끔한 맨얼굴이다. 편애를 힐끗거리는 사람은 보여도 내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이제 본캐 아닌 부캐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정작 부캐는 안 쓰고 본캐만 쓰고 있었다.
PK처럼 돈 말고 모든 걸 포기할 게 아니라면 언젠가 신경 써야 하긴 하지. 그런 건 손가락테크닉처럼 어마어마한 명성이 없으면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아, 낙원은 다른 의미로 명성이 어마어마하니까 논외.
“던전이 필요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포크로 생크림 케이크를 자르던 편애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쟁반에 놓인 포크를 집어 케이크 위에 올라간 딸기를 홀라당 집어 먹었다. 크림새우의 복수다.
편애의 표정이 떨떠름에서 떫음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나는 포크를 입에 문 채로 히죽 웃었다.
“본캐가 아니라 부캐로 활약할 사건이 필요하다는 소리지.”
“내 딸기를 네가 왜 먹어?”
“응. 네 딸기 쩔더라.”
이미 식도 타고 위장으로 넘어간 딸기입니다. 그렇게 화내 봤자 죽은 딸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할 말 많은 편애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아까 떨어뜨린 휴대폰을 주웠다. 다행이도 흠집은 안 났다.
“그냥 앞으로 헌터 노릇 하려면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너한테 할 얘기는 아니긴 한데, 궁금해 하니까 말해 줌.”
고민을 털어놓고 있자니 진짜 친구랑 카페 온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앞을 보니 부루퉁한 얼굴로 케이크를 박살 내던 편애가 약간 퉁명스레 말했다.
“고민할 게 뭐 있어? 눈앞에 사건이 닥쳤는데.”
“그게 뭔데?”
“뭐긴.”
편애의 포크 끝이 오른쪽을 가리켰다. 나는 시선을 옮겨 포크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포크 끝이 향한 건 아까 공채 이야기하던 두 헌터의 테이블이었다. 그 둘은 아직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새 주제가 바뀐 상태였다.
“이거 저번에 들은 얘긴데, 아직 정확한 건 아니야. 그래서 다들 쉬쉬하고 있다나 봐.”
“아, 설마⋯⋯.”
“그거 맞아. 요새 논란이 되고 있는 연쇄 실종 사건 있잖아.”
말하던 사람이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살폈다. 나는 다음 말을 기다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배후좌와 관련이 있대.”
와.
“그것도 고랭크 헌터의 배후좌와.”
완전 뉴스 속보 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