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돌발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의 영토에 진입하였습니다.]
[주변 환경 데이터를 수집 중입니다.]
[데이터 확인 중….]
[?와 ?의 ■¿$₩■%&으로 추정.]
[추정 게이트 랭크 ■]
[추정 던전 랭크 ■]
[추정 몬스터 랭크 ■]
[추정 보스 랭크 ■]
[추정 종합 랭크 ■]
[추정 ■급 던전 - ‘이매망량’에 진입하였습니다.]
삑, 삑, 삑.
단말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나는 하람의 손을 툭 떼어 낸 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단말기를 잡았다.
화면 위로 정보창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나는 내가 손가락테크닉인 것을 들키기 전에 냉큼 단말기를 껐다.
단말기가 알리는 알 수 없음 표시는 두 가지다.
?와 ■.
창에 표시되는 랭크는 전 세계 헌터들의 던전 클리어 기록을 종합하여 나타난 결과물.
저 창 고작 몇 개를 띄우기 위해 본부의 각성자들은 늘 개처럼 일했다.
처음엔 조금 모자랐지만, 다년간의 데이터 축척과 인력 보충으로 지금은 거의 완벽. 그러니까 ?나 ■은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거다. 정확히는, ■를 오랜만에 봤다.
창에 나타나는 ?은 현재 쌓인 데이터 이상의 것이라는 뜻. F와 SSS안에서 나타낼 수 없는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등급 외 표시인 ■은 현재 쌓인 데이터로 분석할 수 없다는 뜻. 즉, 정보가 없다는 뜻이다.
저렇게 까만 네모로 가득한 창은 단말기 제공 초기에나 봤지. 이걸 지금 또 보네.
“아…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은 일소검이 고개를 위로 들며 물었다. 괜찮고말고. 던전에 들어왔는데, 괘애애애앤찮고 말고.
“놀랍게도 안 괜찮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안 괜찮은 티를 냈다. 어차피 와야 할 던전이어서 그리 나쁘진 않네요. 근데 왜 댁이랑 같이 왔을까요. 그건 좀 불행한데.
“정말 죄송합니다.”
단숨에 저자세로 나온 일소검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재차 사과했다. 그래도 사람이 착하네. 나는 나같이 행동하는 인간 있으면 속으로 쌍욕을 했을 것 같은데.
“저희 집에 토끼 같은 엄마랑 3개월 된 동생이 있어서요. 너무 걱정되네요.”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늘 다른 법. 나는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쥐어 짜내며 지금쯤 카페에 있을 엄마와 내 방 화분(다육이, 3개월)을 팔았다.
저쪽이 내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일반인인 척하는 게 좋았다.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로는 내가 각성자라는 걸 저쪽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이 던전과 일소검의 상성 차이에 있었다.
PK가 말한 대로라면 이 던전에서 나올 건 언데드 류 몬스터. 언데드가 나오면 당연히 해골들 우르르 나올 거고, 좀비같이 생긴 애들도 좀 나와 줄 거고, 보스나 중간 보스로 리치도 나와 주겠지.
일소검 하람의 특성은 ‘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으로 통칭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선과 악을 구분하는 힘’이었다.
선으로 구분한 것에는 자비를, 악으로 구분한 것에는 철퇴를.
언데드는 생긴 것만 봐도 악이고, 몬스터로 분류되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하람은 몬스터 상대에 특화되어 있단 소리였다.
옆에서 꿀 빨 수 있는데 괜히 나설 필요는 없지. 리치 잡고 나오는 라이프 베슬을 가져다 달라고 했나? 그럼 직접 잡을 필요까지는 없지?
그러니까 나는 하람이 열심히 재주넘는 거 구경하면서 옆에서 라이프 베슬이나 슬쩍 해야겠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고생하실 테니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집에 토끼 같은 엄마랑 3개월 된 동생(식물)이 있다는 점 꼭 기억해 주세요.
나는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한 후 주변을 살폈다. 발목을 간질이는 풀, 울창하게 솟은 나무, 으슥한 안개가 낀 산.
깎아지른 절벽이 이 산의 위엄을 당당하게 뽐낸다. 이거 사헌 길드원들이 보면 좋아서 기절할 던전이네. 나는 발을 잘못 디뎠다간 사망 신고서를 제출하러 가야 할 것만 같은 절벽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저희는 이제 앞으로 뭘 하나요? 던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하면 되죠?”
기왕 일반인인 척하는 김에 던전에 흥미 있는 일반인인 척하자. 그래야 리치가 떨군 라이프 베슬에 손댄 걸 들켜도 둘러댈 말이 있지.
나는 두 주먹을 꽉 쥐며 목소리 톤을 높여 말했다. 평소랑 다른 짓을 하니 팔에 소름이 돋아 죽을 맛이었지만, 티는 안 난 모양이다. 하람이 곤란한 얼굴을 하는 걸 보면.
“제가 같이 행동할 테니 그건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그냥 몬스터를 만나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런데.”
차분하게 이야기하던 하람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그런데 뭐. 남다른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녀석인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하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몬스터가 나왔다고 말하거나 포위당했다고 말하면 어떤 식으로 놀라야 할지 고민하느라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혹시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으세요?”
하람이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나는 그 놀라운 광경을 보며 얼굴을 팍 구겼다. 일소검은 별것 같지도 않은 얘기를 진지하게 하는 특기가 있었다. 아까 하던 말의 연장선인 것 같았다.
“네. 아주 잘 들리네요.”
지금 내 앞에 선 네가 말하고 있네. 이상한 소리 들린다, 이 자식아. 내 긴장 돌려내.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하람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올리며 눈을 빛냈다. 120년 전통의 구연동화 맛집, 하람 선생님의 이야기 한 보따리가 시작되었다는 소리였다.
* * *
헌터는 기본적으로 판타지와 맞서는 현대인이다.
물론 살다 보면 인생은 늘 사소한 부분에서 판타지지만, 헌터라는 직업군은 조금 더 직접적으로 판타지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에 그 많은 사람이 어떻게 들어가는가 따위와는 궤도를 달리하는 판타지 말이다.
게이트에 맞서는 각성자. 지구를 지키는 초능력자들. 끝내주는 히어로 영화 소재지.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달라서, 길드에 들어간 헌터들은 죄다 돈 벌러 게이트 가는 거였다. 히어로라니, 힘 있는 깡패놈들이 퍽이나 그런 거 하겠네. 그런 건 뇌가 동경과 신념에 절여진 새벽 같은 놈들이나 꿈꾸는 거라고.
지금도 열정적으로 지구의 히어로 손가락테크닉 이미지 만들고 있을 누군가가 들으면 소리를 빽 지를 막말이었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님만 이상한 거지, 님 부하도 똑같은데요, 뭐. 지금 내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네놈 부하 얘기 들어 주고 있잖아.
“그러니까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어요.”
시무룩하게 눈을 내리깐 하람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은 산뜻하게 환청부터. 환청이면 헌터들에게 자주 생기는 질환 중 하나다.
각성자가 되어 몸이 튼튼해졌다고 해도 정신까지 튼튼해진 건 아닌 법. 허구한 날 게이트에서 몬스터랑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정상일 리 없다.
그러므로 정신 질환은 헌터라는 직업의 직업병이었다. 비전투 계열을 가진 헌터들은 모를, 전투 계열 특성을 가진 헌터들의 고질병. 괜히 각성자 중에 또라이가 많은 게 아니라니까.
“병원도 가 보고 상담도 해 보고 약도 먹어 보고 힐러도 찾아가 봤는데 변함이 없더라고요. 저는 제가 미친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하람이 말꼬리를 끌었다. 나는 이왕 들어 주기로 한 거 얌전히 경청하기로 했다. 어디, 다음 내용은 무엇이지? 드디어 불법의 영역에 손을 대기로 한 건가? 아니면 퇴사 후 병이 씻은 듯이 나았어요! 패턴?
“무당이 그러더라고요.”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온 건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소리였다. 머, 머요? 무당이요? 나는 믿을 수 없는 전개에 당황했다. 무당이라니, 이게 무슨 타로 가게에서 사주팔자 보는 소리야.
“제 등 뒤에 누가 붙어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두 명이나.”
하람은 그 무당이 참 용한 무당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그렇겠지. 네가 생각하기엔 그렇겠지⋯⋯.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개인의 능력을 키우면 일이 풀릴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특성 개발에 매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뿌듯한 듯 두 손을 맞잡은 그가 몹시 경건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하해와 같은 미소를 짓는 걸 보니 조만간 등선하실 것 같았다.
“그랬더니 보이더라고요. 보이지 않던 것들이요.”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나는 묻고 싶었다. 선생님, 혹시 낙원 다녀오셨습니까? 근데 무당이 용하긴 하네. 저게 들어맞다니.
“제 뒤에는 두 명의 몬스터가 붙어 있어요. 생긴 거만 보면 쌍둥이 형제 같은데, 아마 속삭이는 목소리는 저 둘의 짓이겠죠.”
빠른 납득과 타협의 선구자, 일소검 하람이 담담하게 제 상태를 고했다. 그럼 목소리가 들린 건 그동안 몬스터가 붙어서 속삭였다는 소리네. 그게 저렇게 가볍게 이야기할 사항인가. 나는 기분이 조금 떨떠름해졌다.
“그럼 그동안 제 뒤를 쫓아다니신 이유는 뭔가요?”
중요한 건 다른 게 아니다. 나는 하람이 그동안 날 쫓아다니며 목소리가 들리냐고 물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가 한 말을 종합해 보면 대충 답이 나오긴 하지만, 확실한 게 좋기 때문이다.
“아, 그건 말이죠.”
하람이 내가 아닌 내 등 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작은 그가 환청이 들린답시고 출근 안 하고, 특성을 개발하겠다며 출근 안 했다는 소리부터다.
제 뒤에 몬스터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안 게 무려 몇 주 전.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스스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하람은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건 지금의 그가 존재하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그에게도 직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성질 더러운’ 상사는 무통보 잠수에 끔찍하게 화가 난 상태였다!
그런 고로, 선과 악을 재단하시는 거창한 특성을 가진 일소검 선생님께서는 생존 신고 및 성의를 보이기 위해 급히 근처에 생긴 게이트로 발을 돌렸다.
거기가 어디냐, 저번에 일소검이 떠서 핫해졌던 당산역 돌발 게이트 말이다. 우연히 일소검과 눈이 마주친 그곳.
거기서 그는 발견한다. 자기처럼 등 뒤에 몬스터가 달린 인간을.
“그 뒤로 줄곧 찾아다녔어요. 등 뒤로 몬스터가 보이는 사람은 지금까지 딱 두 명 봤거든요. 핑거킹 님이랑 당신이요.”
우직. 발밑에 있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다 못해 으스러졌다. 나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일소검을 보았다. 자네, 지금 스스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알기는 하나?
“군신 님 이름이 나와서 놀라셨나요? 최근에 잠깐 볼일이 있었거든요. 고작 몇 초 본 거라서 생각이 잘 나진 않지만⋯⋯ 그분 뒤에도 뭔가가 보였던 것 같아요. 그것도 굉장히 많이.”
하람은 제게 위기가 닥친 것도 모르고 해맑게 말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그를 협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물었다.
“제 뒤에 몬스터가 보이신다고요?”
손가락테크닉으로 일소검을 볼 수 없게 된 건 매우 큰일이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 뒤에 몬스터가 붙어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 네. 수가 꽤 되거든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눈동자를 굴려 내 머리 위를 본 하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감 같은 건 필요 없어. 나는 불타오르는 속을 느끼며 재차 질문했다.
“몇 명인데요?”
등 뒤에 외계인이라니. 등 뒤에 외계인이 붙어 있다니. 이거 사생활 침해야. 너희 다 고소할 거야.
나는 내 등 뒤에 붙어 있는 외계인의 인상착의를 알아내 아는 외계인인 편애에게 물어볼 계획을 짰다. 그리고 그걸 알아낼 방도인 하람은.
“일곱 명이에요.”
상큼한 얼굴로 폭탄을 터뜨렸다. 와! 대단해! 나는 곧장 육성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런 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