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유명해진다는 건 몇백 년 후에 미소녀가 될 가능성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오죽 헬인지? 수염 빽빽이 난 아저씨도 몇백 년 후엔 파격적 노출의 미소녀 카드가 되어 수집 당하는 세상 아니던가.
그 이름의 본래 위인이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공적을 세워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지는 알 바 아니다. 그냥 일러스트랑 목소리 예쁜 미소녀가 마스터♡ 하는 게 좋은 거라고.
그러니까 손가락테크닉도 유명인이라는 점에선 다를 바 없었다.
“너 그거 들었어? 핑거킹이 이번 게이트 캐리했대.”
“누가 그래? 이번 게이트 들어간 사람도 얼마 없다며.”
“비버헌터(닉네임입니당)랑 레나가 기자회견에서 말했음. 핑거킹이 영혼석 가져와서 탈출구 만들었고, 마지막까지 몹 상대했다는데?”
“오, 진짜?”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 이의 손가락이 휴대폰 자판 위를 투다다다 달린다. 이제 핑거킹 영웅 일대기는 저 사람 손에서 한층 과장되어 세상에 떠돌 것이다.
[협회, ‘등급 외 게이트 대비에 힘쓰겠다’]
[한국에서 등장한 등급 외 게이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새로운 게이트의 등장과 함께 속수무책으로 늘어난 돌발 게이트]
얻은 거 없는 게이트 이후, 세상은 조금 더 혼란스러워졌다.
헌터 협회 본부는 인간이 특정해 낼 수 없는 등급 외 게이트에 대해 공표했다. 세간에는 드디어 지구 멸망이 다가왔다! 따위의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물론 손가락테크닉이 해결했다는 발표가 나자 세기말 분위기는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그다음으로 벌어진 일은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한 돌발 게이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는 거였다.
이로 인해 세계 시민들은 조금 더 와일드한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각국 정부 소속 헌터들이 인명 구조와 게이트 폐쇄로 죽어라 뺑이 치게 된 일은 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야, 근데 손가락테크닉은 대체 뭔데 등급 외 게이트를 부숴?”
“몰라. 로봇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차라리 몬스터라는 게 더 가능성 있지 않냐.”
옆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이 요새 가장 핫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교복 보니까 이 근처 고등학교 학생들이군. 한창 헌터에 로망을 가질 나이지.
[핑거킹 정체 추측]
https://youtu.be/pQ3G46bd3O
알고보니 로봇이었던 것임ㄷ
나는 치즈버거를 덥썩 베어 물며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손가락테크닉 정체, 그거 요새 가장 핫한 거 아니냐.
- 저게 말이 되냐ㅋㅋ 우리 집 시리가 더 핑거킹 같겠다ㅋㅋㅋㅋ
- 이거 보고 바로 손가락테크닉 만들었습니다. 저희 집 인공 지능도 이제부터 손테입니다^^7
- 지나가던 반서준: 사실 처돌이는 컨셉이었고 제가 손가락테크닉입니다
- https://youtu.be/Fh7Uhd86Vn 응~ 손가락테크닉 인간인 거로 판명 났죠~
핫해도 보통 핫한 게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손가락테크닉 정체 추측 영상이 올라왔고, 하루에도 수십 개씩 외국인 반응 영상이 올라왔다.
님들 국뽕을 왜 저로 채우심.
외국인들이 ‘와! 우리나라 랭커랑은 역시 클라스가 다르네요!’ 하는 영상이 그렇게 재밌냐.
물론 재밌으니까 보겠지. 조회 수 올리려고 재밌게 만들어 놓긴 했다.
문제는 단체로 난리를 치니까 관심 없던 인간들도 난리를 친다는 거다.
슈퍼히어로, 로봇, AI, 무협지 고수, 외계인, 몬스터, 하다못해 신까지. 온갖 말도 안 되는 정체 추리가 인터넷에 나돌았다.
난 개인적으로 치즈버거 좋아하는 억만장자 플레이보이 컨셉이 좋은데.
게다가 손가락테크닉보다 철분맨이 더 멋있지 않냐.
“생각해 보니 핑거킹 얘기할 때 아님. 너 그거 봤어?”
“뭔데?”
“일소검 영상.”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핑거킹 얘기를 하던 고딩 둘이 대화 주제를 휙 바꿨다. 나는 햄버거를 한입 더 베어 물며 그들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이 시국에 핑거킹보다 더 자극적인 화젯거리가 있단 말이야? 흥미롭네.
왜, 주목받을 일 생기면 다들 안 그런 척하면서 자기 모습 찾아보잖아. 그런 이치였다.
“당연하지. 영상에 하람 나올 때마다 뒤에 뭐 붙어 있다고 올라온 거 맞지?”
“응. 그거 소환 특성 헌터들이랑 정화 계열 헌터들이 해결 못 했다던데? 그래서 무당들이 판치고 있음.”
“레전드네. 근데 하람 특성이 그쪽인데 왜 자기가 해결 못 함?”
화제가 된 헌터는 새벽의 일소검, 하람이었다. 대한민국 랭킹 11위, 새벽의 강화계 헌터이자 근접 딜러.
특성은 ‘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
“정화랑 박살은 다르다나. 모르지. 귀신이니까 물리적 공격 안 통하는 거 아냐?”
“하긴 귀신이 악마도 아니고 물리적 공격이 통할 리가.”
맞지. 나는 감자튀김에 케첩을 찍으며 그들의 말에 공감했다. 내가 귀신은 때려 본 적 없는데, 악마는 때려 본 적 있어. 저기 낙원의 편애라는 왹져인데, 때리는 맛 진짜 끝내준다.
딸랑-.
패스트푸드점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났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놀라운 패션을 보았다.
머리를 덮은 검은색 모자, 입을 가린 검은색 마스크, 눈을 가린 검은색 선글라스.
검은색 셔츠에 청바지만 보면 몹시 단정한 차림이었지만, 위의 저 삼종 세트가 장난 아니었다. 시선 강탈 끝내준다. 와, 유명한 사람인가 봐.
“야. 저 사람 좀 봐.”
“헐. 유명인인가?”
심지어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는지 매장 안이 단체로 술렁였다. 저희가 무슨 민족입니까? 유명인 나타나면 SNS에 글 올리고 싶어 하는 민족 아닙니까?
‘나 유명인이오’ 하고 복장에 써 둔 사람이 주변의 시선을 느끼곤 굳었다. 이걸 나가? 말아? 따위의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게, 누가 대놓고 유명인같이 하고 오래. 하긴 뭐 하나라도 없어서 누군지 특정되는 것보단 저게 낫겠지만.
나는 감자튀김을 씹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나야 다른 사람보다 눈이 훨씬 좋은 편이니까 자세히 보면 저게 누군지 대충 알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미처 감추지 못해 벙거지 끝에 드러난 머리털이 하얀색이군.
연예인이 머리를 극한까지 탈색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저렇게 깔끔한 하얀색이면 헌터일 확률이 높다.
특히 저 정도로 꽁꽁 싸매야 하는 거라면, 인지도 있는 고랭크 헌터.
그것도 한 번 들키면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들어올 만한 사람으로. 일부러 꽁꽁 숨기고 온 거 보니 성질 더러운 놈들은 아닌가.
하긴 누가 PK한테 사진 찍어 달라고 들이대 봐.
그날 저녁에 땅속에서 숨 쉬겠지.
“눈이 노란 것 같은데. 잘 봐.”
“노란 눈? 잠깐만. 자세히 보고.”
옆자리 고딩 듀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는지 유명인 정체 추리를 시작했다. 오… 노란 눈? 나는 눈에 힘을 빡 주고 유명인(추정)을 프레임 단위로 살폈다. 100% 명품일 게 분명한 선글라스 사이로 노란색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진짜네. 노란 눈 누구 있냐?”
“몰라. 계속 일소검 얘기해서 일소검밖에 생각 안 난다.”
“그렇다고 일소검일 리가 있겠어? 새벽 사옥은 저쪽에 있잖아. 일소검이 근무 시간에 사옥이랑 한참 떨어진 곳 버거왕이나 올 리도 없고.”
콜라를 물처럼 마신 고딩1이 타당한 소리를 했다.
그건 그렇지. 노란 눈 하면 바로 떠오르는 건 하람이었지만, 하람은 그 집 비눗방울처럼 개백수 밥버러지가 아니었다.
착실한 태도로 많은 사랑을 받는 헌터지.
그럼 저건 누구지.
나는 빨대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유명인(추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키오스크 앞을 서성이던 그가 결국 밖으로 나가려는지 몸을 홱 돌렸다.
음.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끝이 너덜너덜해진 빨대를 퉤 뱉으며 시선을 내렸다. 검은 모자의 발끝이 언제 입구를 향했냐는 듯이 다시 키오스크를 향한다.
신용 카드를 그림과 같이 투입구에 넣은 후 결제를 완료해 주세요. 신용카드를 회수해 주세요.
지이잉.
영수증 나오는 소리까지 완벽했다. 결국 버거왕에서 한 끼를 때우기로 한 모양이군. 나는 반절 남은 내 치즈버거를 보며 공감했다. 나도 그런데. 엄마, 지금 나랑 텔레파시가 통하고 있다면 부디 용서해 줘.
‘너는! 어디 갈 거면 간다고 말을 해야지! 내가 윤우한테 누나 먼저 올라갔단 얘기를 들어야겠어?!’
‘악!! 엄마 아파!! 엄마!!’
더는 손가락테크닉이 아니고 싶었다. 그래서 화려한 우연 데뷔를 꿈꾸었건만, 게이트가 등급 외라서 데뷔는 폭망했다.
그 와중에 너무 끔찍해서 찢어 버리고 싶은 박윤우 그 자식은 내가 게이트 구경 갔다고 냉큼 일러바쳤다. 게이트 구경 아니라고! 게이트 구경 아니야! 내가 인명 피해를 얼마나 많이 줄였는데!
라고 해 봤자 손가락테크닉이 한 일이라서 어디다 호소할 수도 없고.
나는 그렇게 꿈과 희망의 헌터 일에 설레어 등급 외 게이트 구경 간 인간이 되었다.
언제 날 잡고 국가 비상 소집령에 대해 엄마한테 설명해 주든가 해야지. 아니다. 그러면 더 걱정하려나.
아, 진짜 최악.
내가 이래서 미적거렸던 건데. 다음에 내가 그 자식을 믿나 봐라.
그래도 던전 안에서 위기에 처한 뉴비 헌터 얘기보다 신나서 게이트 구경 간 뉴비 헌터 얘기가 훨씬 나아서 봐준다. 이게 엄마가 훨씬 덜 걱정할 테고.
사람이 왜 대낮부터 버거왕에 와 있느냐. 백수 주제에 왜 집 밖을 벗어나 있느냐.
다 그런 사연이 있어서였다.
엄마. 이주 째 식빵에 딸기잼만 주는 게 어디 있어. 식빵 구워서라도 주면 안 돼?
아⋯⋯ 식빵에 딸기잼이 싫으면 시리얼 먹으라고⋯⋯? 아냐. 나 식빵 좋아해.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감자튀김을 씹었다. 이게 바로 눈물 젖은 감튀?
어젠 유부초밥을 세 개나 준 걸 보면 조만간 마님 화가 풀릴 것 같긴 한데, 인내가 참 쓰다.
쇤네가 잘못했습니다요. 제발 노여움을 풀어 주십사 간청합니다요.
나는 감자튀김 끝을 질겅질겅 씹으며 우울함에 빠졌다. 덜컹. 빈 옆자리에서 의자 빠지는 걸 보니 누가 앉은 모양이다.
“헐. 완전 가까운 데 앉았네.”
“야, 목소리 낮춰.”
여전히 팔팔한 고딩들이 매우 잘 들리게 속닥거렸다. 저렇게 잘 들리는데 무슨 목소리를 낮춰. 나는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보았다.
얼굴을 보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스크 때문에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검은 모자와 선글라스 사이로 샛노란 눈이 보였다.
마치 레몬 사탕 같았다. 근데 이 생각 근래에 해 본 적 있지 않았냐.
저 색깔.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는 사이다로 당분을 섭취하며 지나간 기억을 더듬었다.
던전? 아니고. 낙원 길드? 아니고. 새벽 길드? 아니고. 센터? 아니고.
그 전에, 보다 전에, 지하철역에서.
낙뢰를 내려 꽂아 우연이 된 그날이 아니라, 그날보다 조금 더 전에.
지하철역에 몰린 인파 사이에서⋯⋯ 일소검을 보았을 때.
그래, 그때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막 지하철역으로 온 일소검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고, 레몬 사탕 같은 눈색이라고 생각했고.
“안녕하세요.”
맞다. 어디서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다.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살짝 내린 선글라스 아래로 레몬 사탕 같은 눈이 보인다. 어디서 들어봤는지 확실히 기억하지. 새벽 1공대잖아. 모르는 게 이상했다.
이 자식, 빼도 박도 못하게 일소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