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불법 길드, 블랙 머더러.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블퀴벌레로 불리는 그들은 세계 각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회의 쓰레기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일 길드가 아닌 여러 길드를 하나로 묶은 연합의 총칭. 가입과 꼬리 자르기가 쉽기 때문에 어지간한 불법 길드는 대부분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인간도 개중 하나였다.
“이게 진짜 최선이야?”
“이게 최선이야.”
빈틈에서 꾸역꾸역 밀려 나온 괴물들이 두 지점을 향해 몰려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끔찍함에 몸서리쳤다.
“당분간 하얀색은 쳐다보기도 싫어.”
“난 내 머리 보기도 싫어.”
방금 등장한 구원 투수, PK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흰 머리 보기 싫으면 밀어야지 뭐 별수 있나.
“삭발해, 그냥.”
나는 고개를 쑥 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저기 S1팀이 보인다.
“와, 진짜 새벽 길드잖아.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정말로 한 명도 없다고요?”
“그건 S1팀도 마찬가지 같아 보이네요. 동굴의 몬스터가 쉬운 시험을 냈나요?”
“그런 건 아니고, 저희 쪽엔 손가락테크닉 님이⋯⋯.”
신나게 떠들던 S1팀 신입이 돌연 말을 멈추고 입을 꾹 닫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걸 보니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손가락테크닉?”
말없이 총만 갈겨 대던 반서준이 그 말에 고개를 홱 돌렸다.
야. 튀어, 튀어. 나는 PK를 향해 손짓했다. 여긴 더 볼 것도 없다.
“중앙으로 갈 거지?”
“여기서 나가야 하니까 그쪽으로 가야지.”
날개 달린 흉물들이 땅을 꽉 메우고 있었지만, 염동력이 특성인 PK와 함께라면 문제없다.
염동력이라니, 언제 봐도 정말 편리한 특성이다. 과거 엄마 찾을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지.
엄마를 막 찾은 당시에도 같이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땐 당황해서 일행이라고 얼버무렸던 기억이 난다.
친구는 절대 아니고, 일행 정도가 적당하다. 굳이 따지면 계약 관계라고 하는 게 옳겠지만.
“일 끝나고 감옥 갈 거지? 본부로 끌려가면 말 좀 잘해 줄래?”
“왜 웃는 얼굴로 욕을 하냐?”
“네가 단말기 가져다 달라고 했잖아. 단말기 두 개니까 이제 본부에서 TF가 출동하지 않겠어?”
절대 친구라고 부를 수 없는 재수탱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땐 이 자식이 전국구 쓰레기가 될 줄은 몰랐는데.
어디 가서 블퀴벌레랑 아는 사이라고 하면 몰매 맞기 딱 좋다. 우리 관계는 어디서 들키는 순간 나가리야. 알아? 아냐고.
그리고 사람이 왜 실실 쪼개면서 말을 하냐. 화나게.
나는 미간을 좁히며 중지를 펼쳤다. 근래에 비슷한 인간을 많이 봐서 더 화났다.
콰득.
동시에 중앙 근처에 있는 괴물들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찌부러진다.
납작하게 눌린 그것들은 강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펑펑 터져 나갔다.
손가락 접으란 소리네. 나는 썩은 표정으로 손가락을 접었다. 그러자 PK가 애교 있게 눈을 찡긋거렸다.
토 나오는 광경이 주먹을 부른다. 나는 주먹을 쥔 손으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PK가 어색하게 웃으며 속도를 높인다. 우리는 금세 까마득하게 파인 중앙의 구덩이 앞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이럴 것이지.
나는 중앙의 뻥 뚫린 구멍 앞에 착지해 구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밟고 천천히 내려오라는 듯이 웅장한 생김새의 나선 계단이 존재를 드러낸다. 나는 고개를 조금 더 빼고 계단을 관찰했다.
기이한 질감의 계단 안쪽이 새카맣게 칠해져 보이지 않는다. 계단을 밟을 때의 물컹한 감촉이 갯벌을 밟는 것처럼 괴상했다.
아아아아-!!
…어디서 비명도 들리고.
“계단 밟으면 괴물들이 발광하는 것 같다.”
꾸물꾸물 움직이는 하얀 것들이 계단을 밟을 때마다 발광했다.
이걸 밟고 내려갔다간 남은 헌터들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르겠는걸.
나는 계단에서 발을 떼며 확인한 사항을 말했다. 하지만 대화는 정신 상태가 멀쩡한 인간이랑 하는 것이라고.
“그럼 계단 밟고 내려갈까?”
“…왜?”
“이참에 인명 피해 크게 내자. 우연 단말기도 있으니까 대서특필 되는 거야. 내로라하는 랭커들이 다 죽은 던전에서 너만 살아남은 거지. 네가 원하는 화려한 데뷔.”
PK가 계단을 콱콱 짓밟으며 이야기했다. 방긋 웃는 얼굴이 오늘 그린 그림을 자랑하는 유치원 어린이 같았다.
“그럼 나는 아이템을 챙길게. 명성은 네가 가져.”
물론 나불거리는 말은 썩 어린이 같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팍 구기고 말을 골랐다. 욕설을 자제하기 위한 각고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너 범죄자 되고 싶어?”
“난 이미 범죄자인데?”
“그럼 너 혼자 범죄자 하지 왜 나까지 범죄자로 만들어, 이 미친놈아.”
이게 욕 안 하려고 해도 욕하게 만드네.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PK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내 언젠가 이 새끼 뚝배기를 깨겠다고 다짐했지. 오늘이 날인가 보다!
빠악-!
한낱 뒤통수에서 나오지 못할 소리가 찰지게 울린다. 그러자 억울한 표정을 지은 녀석이 뒤통수를 부여잡고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야! 계단 밟지 말라고!’
“계단 밟는 게 우리한테 좋다니까! 반서준 죽으면 너도 좋잖아!”
“설득당할 것 같으니까 그만 말해!”
반서준이면 몰라도⋯⋯. 아니지. 반서준이 죽으면 우리나라 망한다, 망해.
새벽 길마 나가리 되면 겉으로 공개된 우리나라 일짱은 사이비 교주가 되잖냐! 국제적으로 망신당하고 싶냐!
협회 본부나 차원 학회 똘추들한테 ‘너희 나라 대표 사이비 종교 교주라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정체 까고 우리나라 대표할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그 인간 찜찜해 죽겠는데, 좋은 일을 시켜줄쏘냐.
나는 난간을 잡고 몸을 돌려 바로 아래 난간 위로 착지했다. 막 아래로 뛰어 내려오던 PK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쥐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정말로 계단을 안 밟으려고? 그러면 어떻게 내려가게?”
“쉬운 길이 있잖아. 마침 염동력자도 있고.”
맞지. 여기까지도 날아와 놓고서 뭘 빼고 그래. 나는 히죽 웃으며 검지를 아래로 내렸다. 나선 계단의 중간. 그저 까맣고 까만 공간.
“뛰어내릴 거야. 꽉 잡아.”
“뭐? 잠깐-”
나는 PK를 번쩍 들어 옆구리에 끼고, 난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마아아아아아안-!!!”
졸지에 안전장치 없는 번지 점프를 하게 된 PK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 댔다. 아이고, 어디서 개가 짖나. 요즘 개는 사람 말도 하네.
허벅지를 퍽퍽 때리는 깜찍한 주먹질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게 빠른데다가 바깥에 피해도 안 준다니까. 너도 반서준이 싫은 건 알겠는데, 반서준은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고.
나는 따듯한 마음으로 동료 헌터의 목숨줄을 걱정해 주었다. 정말 훌륭한 1위의 자세가 아닐 수 없었다.
* * *
추락한다. 한없이 추락한다.
속삭인다. 누군가가 저열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문을 닫은 자가 결국 돌아왔구나.”」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는데 혹시 아는 사람이야?”
“상식적으로 인간이 저런 대사를 칠 리가 없잖아.”
옆 동네 왕들의 끊임없는 헛소리를 들어 본 적 없는 PK가 의문을 표한다. 나는 그 의문을 친히 정정해 주며 말했다.
“아마 던전 보스의 정신 공격일 거야. 무시해”
“그걸 어떻게 알아?”
“지금 던전 보스 만나러 가고 있으니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추락 중인데 그새 잊었나.
나는 고개를 살짝 꺾어 주변을 보았다. 끝없는 허공에서 부유하는 흰 깃털만이 우리가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네가 맡겨 둔 물건은 약속대로 내가 보관하고 있다.”」
“던전 보스한테 물건도 맡겼어?”
“이 던전 처음인데. 너야말로 던전 보스한테 물건 맡긴 거 아냐?”
“무슨 소리야. 난 남한테 내 물건 안 줘. 남의 물건을 뺏으면 모를까.”
PK가 선량한 얼굴로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세상에. 지구가 대체 어떻게 되려고. 외계인도 남의 물건 잘 보관했다고 말하는 판에. 우리 차원 평균 인성 수준, 이대로 괜찮은가?
「“기르던 개에게 목덜미를 물릴 생각이 없다면 빨리 오는 게 좋을 거다.”」
말투는 어르신인데 목소리는 어린아이다. 색욕왕이랑 대화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기르던 개는 누구지? 색욕왕에게 이야기하는 게 맞나? 그래서 여기 침입한 나를 기르던 개라고 칭하는 건가?
“이상하네.”
나는 방금 들은 목소리를 곱씹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 말하는 자가 누구지? 교만왕?
그래, 교만왕이겠지.
옆 동네의 왕이란 것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그 밑의 것들과 격이 달랐다. 그들의 말은 강력하고, 또 불길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은 것들은 적어도 내게 하는 말이었는데, 이번에 들은 것은 남에게 하는 말 같다.
교만왕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했다. 물론 고민한다고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러게. 이상하네.”
이런 내 생각도, 그리고 영문도 모르는 PK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을 받았다. 추락이 끝나지 않는다. 끝없이, 그저 끝없이 떨어지고만 있다.
영원히 추락할 셈인가. 나는 검지를 뻗어 관절을 곧게 세웠다. 파스스 흩어지는 푸른 전기가 흰 깃털을 태운다. 기이하게도 타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환영이야.”
던전의 이름이 ‘별이 추락한 나락’이니 던전이 이름값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르지 않은가?
주변에 발판이라도 있었으면 그걸 밟고 발차기라도 해 보는 건데, 그런 것조차 없었다.
까만 공간에 흰 깃털, 그리고 우리. 그게 이 공간을 이루는 전부였다.
“저 깃털들, 밀려 해도 안 밀리네.”
손을 뻗고 한참을 끙끙거리던 PK가 상황을 직시했다.
분노왕의 권능에는 타는데 PK의 스킬에는 영향이 없다. 저 깃털은 아마 교만왕의 손이 닿은 것일 확률이 높았다.
“이제 어떡하지?”
PK가 흩날리는 앞머리를 손으로 꾹 누르며 물었다. 글쎄. 나라고 뭔 수가 있겠나.
그래도 뭔가 시도해 볼 수는 있지. 나는 한 손을 뻗어 검지를 아래로 그었다.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던 깃털 주변으로 전기가 마구 튀어 오른다.
치지직 소리가 귓가를 진동한다. 나는 옆구리에 낀 PK를 냅다 집어던진 후 출력을 확 올렸다.
푸르스름한 스파크가 별처럼 튄다. 공간이 권능을 이기지 못하고 팽창한다.
콰직!!
새카만 공간에 균열이 생긴다. 권능의 과도한 사용으로 손발이 찼다.
페널티가 수족 냉증인 권능이라니.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네.
원래 페널티는 수족냉증 따위가 아니었겠지만, 신체 강화 때문에 수족 냉증이 된 걸, 뭐 어떡하겠는가. 수족 냉증 해야지.
“엿 같네.”
이를 악물고 출력을 더 올렸다. 이젠 손발에 감각이 없다.
손발에 감각 없어지는 게 낫나, 아니면 색욕왕 tmi 듣는 게 낫나.
둘 중 하나 고르자면 전자다. 후자는 너무 많이 들어서 말이지. 이 정도면 색욕왕이랑 친구 먹어도 되겠어.
아니지. 벌써 먹은 거 아니야?
콰아앙-!!
한계까지 팽창한 공간이 거칠게 터져 나간다. 갈기갈기 찢어지지도, 유리처럼 깨어지지도 않았다.
“미친!!”
말 그대로 터져 나갔다. 전문 용어로 폭발.
눈앞이 검은 조각으로 가득 찬다. 어지간한 인간은 죽을 만큼 파괴적인 후폭풍이었지만, 일단 나는 끄떡 없었다.
“흐아아아아악-!!”
저기도⋯⋯ 나름 괜찮은 것 같고. 지금 괜찮지 않은 건 내 쪽이다.
시야가 깜빡깜빡 점멸한다. 권능을 너무 썼나.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팍팍 때리며 눈을 감았다.
부서지는 공간의 모습이 눈을 감았음에도 선명했다.
“야.”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지. 들어 본 목소리였던가.
“정신 차려 봐.”
누군가가 자꾸만 내 어깨를 흔들었다. 고개가 앞뒤로 흔들거린다.
분명히 추락하고 있었는데, 추락하는 느낌이 없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위로 애써 밀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에 한 소년의 모습이 잡힌다.
“내 말 들려?”
부슬부슬한 하얀 머리칼에 분홍색 눈이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나는 소년의 얼굴을 확인한 즉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놀랍게도 달이 두 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