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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40화 (40/175)

제40화

“헌터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연료도 없이 활활 타는 불 앞에 앉은 여자가 발그레하게 얼굴을 붉혔다.

“헌터님이 구해 주시지 않았으면 저는 벌써 죽었을지도 몰라요.”

해맑게 웃는 게 몹시 긍정적인 성격인 모양이다. 넌 이 상황이 재밌냐? 나는 재미없다.

“저 인간한테 너무 말 붙이지 마. 귀찮다고 떠나면 우리만 곤란해지니까.”

옆을 지나가던 날강도가 여자에게 충고한다. 나는 속으로 백번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발끈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까지 무정한 사람으로 보이냐고.

할 말은 많았지만, 반박할 말을 찾긴 좀 어려웠다.

나는 그냥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아니지. 화제를 돌리는 게 낫겠다.

“중앙은 어땠어?”

던전 게이트에 들어오고 시간이 꽤 지났다. 어지간한 던전이면 하루 이틀 안에 나갈 수 있을 거라 상정하고 왔는데, 여기면 그것 가지곤 턱도 없겠군.

■급 던전 ‘별이 추락한 나락’은 벽에 뚫린 여덟 개의 굴과 깊게 파인 중앙의 구렁, 그리고 그 중간을 메운 빙원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무언가에 막혀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일렁이는 건 낙원 측에서 띄운 빛 구슬이더군요. 아마 접근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날강도에게 물었으나 답변은 화환에게서 나왔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낙원이 거기에 있었구만.

“저는 오른쪽과 왼쪽의 굴을 살피고 왔어요. 오른쪽엔 아무도 없고 왼쪽에 세 길드가 모여 있더라고요.”

놀랍게도 사헌, 일연, 백천이 함께 있었다. 왜 솔플 안 하고 팀플하나 궁금했는데, 괴물 상대하기가 빡셌던 모양이더라고.

‘흐아아악!! 손가락테크닉이다!! 이모! 삼촌! 손가락테크닉이 출몰했어요!!’

별로 알 생각은 없었는데 마실 갔다가 만난 레나가 알려 줬다. 일단 들은 것에 따르면 저쪽은 괴물 상대하다 몇 명이 죽은 모양이다.

‘새벽이랑 낙원이요? 어⋯⋯ 글쎄요. 새벽은 반대편에 있는 모양이에요. 그쪽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까마귀 소리면 새벽의 비눗방울이지. 새벽은 그럼 반대편에 있는 것 같고.

낙원이 어디 있는지까지도 알았으니까 위치는 대충 파악한 건가.

종합해 보면 새벽 측도 잘 살아 있는 것 같으니까 큰 문제 없겠지.

낙원 놈들이야 안 챙겨 줘도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을 놈들이고.

“새벽은 반대편에 있는 모양이에요.”

나는 새벽의 위치까지 공유하며 다시 머리를 굴렸다. 아직 2차 투입 전이지? 2차 투입 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상황 점검? 습격 준비? 지리 조사?

“종합해 놓고 보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네.”

몬스터라도 좀 많이 나오면 좋겠는데, 이 동네는 몬스터도 안 나온다.

동굴에 있던 몬스터는 잡아 죽였더니 이상한 조각 같은 걸 떨궜다. 아무래도 석판 조각 같은데.

“이거로 뭘 하라는 소리지? 교만왕 뚝배기 깨란 소린가?”

나는 기괴한 문양의 석판 조각을 들고 중얼거렸다. 옆에 앉아 있던 신입이 냉큼 말을 받는다.

“중앙에 접근할 수 있는 키워드 아닐까요? 몬스터를 잡아서 조각이 나왔으니 다른 동굴의 몬스터도 잡으면 조각이 나온다거나?”

“그럼 중앙을 더 살펴야겠네요. 귀찮게 나서지 말고 낙원이 조사 마치면 낙원을 털죠.”

그러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나는 힘 쓸 일 없어서 좋고, 낙원은 내 얼굴 한 번 더 봐서 좋고.

하. 주체할 수 없는 이 몸의 인기란.

나는 옆에 앉은 S1팀이 들었으면 속으로 야유를 보냈을 생각을 하며 자아도취에 빠졌다. 중간에 불쑥 끼어든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자아도취가 지속되었을 터다.

“그래도 같은 헌터인데⋯⋯ 터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신입이 눈동자를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인자하게 웃으며 그 말에 대답했다.

“헌터님은 제가 어떻게 랭킹 1위가 되었는지 아시나요?”

“네?”

“뚝배기 잘 깨서 1등 먹은 거예요.”

세상일은 말이지. 어지간하면 힘으로 다 해결된다고. 화난 엄마의 포효랑 안 굴러가는 맷돌 빼면 오른 주먹과 왼 주먹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세계 랭킹이라고 해 봤자 누가 몬스터 뚝배기 잘 깨냐 랭킹이죠. 필요하면 일단 때리고 보세요. 이기면 상대가 알아서 털어놓을 것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에 그저 눈물이 났다. 포브스 선정 세기의 명언 1위.

“저런 식으로 살려면 무식하게 세야 해. 두나 너는 저렇게 살지 마라.”

“네. 명심할게요.”

날강도와 신입의 만담이 들렸다. 내 명언은 뭐 어떻게 된 건데. 우주로 감? 어? 내가 말이지⋯⋯.

쿠구구궁-!

속으로 라떼를 세고 있을 때였다. 던전 전체가 거세게 뒤흔들렸다.

“다들 한곳에 모여! 떨어지지 마!”

품 안의 조각이 진동에 공명한다.

나는 마치 카페 진동벨처럼 진동하는 조각을 든 채로 동굴 밖을 나섰다.

중앙과 벽 사이의 대빙원이 피자 조각처럼 갈라진다.

굴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총 여덟 조각.

갈라진 틈에서 날개 달린 형상의 무언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이 쏟아져 나온다.

끝도 없이 어두운 공간 위로 스포트라이트 같은 빛이 내려온다.

빛이 쏟아지는 것은 단 네 곳.

우리가 있는 조각, 세 길드가 있는 조각, 새벽이 있는 조각, 그리고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조각.

희끄무레한 장막이 중앙을 감싼 채로 빛난다.

장막 없이 중앙으로 향하는 통로 또한 단 네 곳. 역시 빛이 떨어진 곳의 조각이었다.

“눈 아프네.”

불이 있었다지만, 줄곧 어두운 곳에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깜빡거리며 대충 빛에 적응한 뒤 밖을 둘러보았다.

두꺼운 얼음 아래로 땅이 뚜렷하게 보인다.

얼어붙기 전에는 꽃이 핀 들판이었던가. 가지각색의 꽃들이 얼음에 갇혀 그대로 박제되어 있었다.

갈라진 틈에서는 나무의 형상을 한 식물이 올라와 각각의 조각을 잇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실이 그냥 평범한 과일처럼 생겼다.

근데 클리셰에 따르면 저런 거 잘못 주워 먹었다가 몬스터 됨.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백스텝을 밟았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뭔가 시작된 것 같다고 S1팀에게 알려 줄 셈이었다.

“아아아아-!!”

여기 와서 줄곧 들었던 비명이 저 날개 달린 것들한테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빨랐을 거였다.

야. 저게 뭔데.

나는 얼음처럼 굳은 채로 몰려오는 흰 덩어리들을 바라보았다.

몬스터? 몬스터인가?

근데 너무 기괴하게 생겼다. 머리는 있는데 몸뚱이는 없다.

날개가 몸뚱이인가. 몸뚱이 대신 하얗게 표백된 독수리의 날개 세 쌍이 붙어 있다.

근데 몸뚱이는 없으면서 손이랑 발은 있다! 심지어 후광까지 달고 있어!

[주의!]

[■■과 마주쳤습니다.]

[■■■■로 정신 오염이 진행됩니다.]

[신체 강화 특성이 정신 오염에 저항합니다.]

[정신 오염에 저항하였습니다.]

저게, 저게 대체 뭐임. 단말기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는 시퍼렇게 질린 채로 재빨리 후퇴했다. 내가 뭘 보고 온 거지. 꿈을 꿨나.

“핑거킹 님. 왜 그런 표정으로⋯⋯?”

팀원 중 하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밖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히이이익-!!!”

아아아아 하고 비명 지르면서 몰려오는 괴생물체의 모습은 현실에 펼쳐진 공포 영화 그 자체였다.

나는 게거품을 물며 기겁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고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멘탈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머리라도 안 달려 있으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근데 왜 머리가 달려 있음? 저게 머리가 달려 있어서 쓸 데가 어디 있다고?

“왜 그래? 뭘 봤길래?”

정신 나간 동료의 모습을 확인한 다른 사람이 밖을 슬쩍 봤다가 괴성을 지르며 돌아왔다. 야, 너도 봤냐? 장난 아니다.

심지어 머리는 달려 있어서 뚝배기는 깰 수 있다는 점이 소름 돋음. 설마 아까 뚝배기 타령을 해서 진짜 뚝배기 달린 몬스터를?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아, 내가 차라리 바퀴벌레 뚝배기를 깨고 말지. 저렇게 생긴 건 죽어도 깨고 싶지 않은데.

게다가 왜 하나같이 인자한 표정으로 눈 감고 있냐? 저거 공격하면 눈 번쩍 떠서 레이저 빔 날리는 거 아냐?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였다. 나는 압도적 기괴함 앞에 뚝배기 마스터의 자질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다들 지금 밖의 상황 좀 보고 오세요.”

나는 이미 멘탈이 박살 난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며 되돌아오는 것을 보니 SAN치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몹은 맞는 것 같았다.

“저, 저게 대체 뭐예요?!”

처음 봤을 때 말곤 웃음을 잃은 적 없는 신입이 공포에 질린 채로 말했다.

“글쎄요. 몬스터⋯⋯?”

“저게 몬스터라고요?! 저런 거랑 어떻게 싸워요?!”

나, 나도 몰라. 나한테 묻지 마.

* * *

콰과광-!!

“아아아악-!!”

기괴하게 생긴 몬스터들이 연신 터져 나간다. 해맑은 신입의 특성이 폭발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저걸 정면으로 쳐다보지 마!”

특성인 가속을 이용해 총탄을 마구 쏴 날리는 중인 날강도가 소리친다. 말 안 들었어도 저걸 정면으로 쳐다볼 용자는 없다.

상식적으로 적당히 기괴하게 생겨야지. 몬스터가 다 멀쩡하게 생기지 않은 건 아는데, 저렇게 멘탈에 충격을 주는 몬스터는 또 처음이었다.

“저건 대체 언제까지 쏟아져 나오는 걸까요?”

파랗게 질린 신입이 연신 폭발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나는 장막이 사라진 중앙을 보며 추측한 것을 입 밖으로 내놓았다.

“중앙에 뭔가 있겠죠. 저것들이 튀어나온 건 중앙이 뚫린 후니까요.”

중앙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빙원을 가득 채웠다. 원거리 공격을 못 하는 건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가지만, 그 수가 끝도 없다.

존재만으로 공포을 가져다 주니 이 상황이 지속되면 손해 보는 건 우리.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들이 마나를 다 써서 쓰러지면 저것들이 우리에게 접근하게 된다.

“그럼 엿 되는 거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이를 악문 채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고 보니 낙원 놈들은 어떻게 된 거지? 다들 고꾸라졌나?

‘아마 재앙이 일어날 겁니다.’

음. 아니다. 재앙을 예언하는 놈이 벌써 죽었을 리가 없지. 원래 예언가는 끝까지 살아남는 게 창작물의 기본 아니겠는가.

“계속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저건 끝없이 몰려올 거고, 우린 끝까지 버틸 수 없겠지.”

마나를 빠르게 소모 중인 날강도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손가락테크닉 님. 중앙으로 가십시오.”

살짝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기세만은 아직 굳건했다.

“내가 가면 너희는?”

“저희는 어떻게든 버텨 보겠습니다. 지금은 중앙으로 가는 게 먼저입니다. 결국 던전을 부수고 나가려면 보스를 잡아야 하니까요.”

맞는 말이다. 보스를 잡아야만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지.

“당신 뚝배기 깨는 거 잘한다며. 빨리 가서 깨고 와.”

날강도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고개를 다시 홱 돌렸다. 포브스 선정 세기의 명언 1위를 기억해 주다니. 이것 참 큰 감동이었지만⋯⋯.

“근데 나 저거 무서워서 못 나가겠는데.”

“야!!”

내 멘탈이 약한 건 어쩔 수 없는 사항이었다. 아, 나도 인간인데 어떡하냐고. 정신 오염은 저항해도 보기 싫은 건 어쩔 수 없다니까?

기껏 멋진 대사를 친 날강도의 얼굴에 스팀이 올랐다. 나는 제대로 욕먹기 전에 뭐라도 해 보려고 동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1초 만에 원위치로 돌아왔다.

솔직히 저건 아니지. 야, 저건 아수라가 와도 못 이긴다.

내가 이렇게 쓸모없다니. 말도 안 돼. 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동굴 벽에 머리를 처박았다. 아마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면 계속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팀장님. 저기 보세요. 사람이 걸어오고 있어요.”

신입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재빨리 고개를 들어 밖을 다시 내다보았다.

날개 달린 괴물들 위로 멀쩡하게 생긴 인간이 허공을 걷는다. 나는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손 흔드는 그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뭐?”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단말기를 든 구원 투수가 드디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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