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저 사람 언제 가? 유명 헌터를 저렇게 둬도 되는 거야?”
속세의 환희와 비명이 난무하는 피시방. 윗동네는 지금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랫동네는 아직 평화로웠다. 정부가 입단속을 끝내주게 잘했기 때문이다.
“모름. 근데 넌 고딩이 야자 안 해도 되냐.”
“학원 가면 안 해도 되는데.”
“요새 학원이 언제부터 피시방으로 바뀜?”
실드 쳐 줄 인간 있다고 학원 쏙 빼먹는 거 봐라. 누굴 닮아서 저러나 몰라.
나는 남의 돈으로 피시방 열두 시간을 긁은 고삐리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알리바이 만들어 줄 역할이라 봐준다. 게다가 이틀째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저 헌터를 봤음에도 눈감아 주고 있기도 하고.
“근데 화환이면 공무원 헌터 중에서도 유명 인사잖아. 날강도 다음으로 유명한데.”
“저번에 화장품 가게에 스킨 사러 갔다가 등신대 봤어.”
“그래. 근데 그렇게 유명한 헌터가 누나를 왜 보러 와? 남친이야?”
이 새끼가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나는 입 밖으로 나가려는 육두문자를 삼키며 스펠을 강타로 바꿨다. 서폿캐로 강타 들고 정글 돌아야 정신 차리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심한 욕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초면에 사람 모욕하는 거 아니다. 빨리 머리 박고 사죄해.”
“죄송합니다.”
이틀간 말이 많이 없어진 화환이 텅 빈 눈으로 먼 산을 바라봤다.
초반엔 그래도 미행의 구색을 갖추더니 이제 와서는 그냥 대놓고 붙어 있다. 쯧쯧. 불쌍한 직장인이긴 한데 그건 제 알 바 아니고요.
“슬슬 게이트 터지기 직전 아닌가. 의외로 조용하네요. 이번 게이트 정도면 파급력이 엄청날 텐데.”
따각거리는 기계식 키보드가 열심히 존재감을 뽐낸다. 나는 원딜이 먹어야 할 CS를 서폿으로 다 처먹으며 지친 직장인에게 말을 건넸다.
“⋯⋯일단 규모를 짐작할 수 없는 게이트인 만큼 그 여파가 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던전형 게이트이지만, 웨이브로 전환될 확률도 있으니 주민 대피도 시켜 놓은 상태입니다.”
“저기 여의도에 계시는 분들은 자신감이 엄청나시네요. 특급이나 그 이상일 수도 있는데 무슨 수로 그렇게 안일한 대처를 하셨대요? 이게 바로 그 유명한 K-안전 불감증인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출근을 하는 민족, 한국인! 게이트가 집 앞에 터졌는데 유명 헌터 보러 가겠다고 그걸 또 구경하러 가는 민족, 코리안!
참 대단하기도 하지. 예전엔 자기 목숨 아깝다고 마녀사냥 하더니 이제는 안전 불감증도 느끼시고.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짠 계획은⋯⋯ 하.”
더듬더듬 부인의 말을 꺼내던 화환이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님 기분이 마치 개망한 이번 판 같네요. 우리 팀 정글 뭐 하냐.
“저희의 계획은 우연 님께서 초기 진압에 참여하신다는 전제하에 짜여 있습니다.”
“아하. 그러시구나.”
손가락테크닉이 영웅처럼 나타나서 저번 특급 게이트처럼 다 때려 부수고 나오시는 걸 기대하셨군요? 유감입니다. 전 지금 게이트가 아니라 우리 팀 원딜 멘탈을 쳐부수고 있는데.
“그럼 제가 안 가면 계획대로 안 굴러간다는 소리네요. 이거 좀 재밌는데.”
“예?”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공무원 나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파리하게 질린 안색이 눈에 들어온다. 이 국가의 존망을 두 어깨에 짊어진 영웅 같은 표정이라 두 배로 재밌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혼자서 원맨쇼 하는 걸 전제로 계획 세웠다는 거 아님? 님들 빡대가리임?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랭킹 1위인 내가 영웅 노릇을 자처할 것이라는 거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이 아닌데.
오로지 내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손해가 될 것 같으면 버렸지. 원래 다 그런 거 아닌가?
내가 외국으로 튀거나 걍 배 째라고 드러누우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음?
『최.강』의 삶은 이렇게 힘든 것인가.
나는 하는 것도 없는 주제에 자아도취에 빠진 양판소 주인공처럼 폼을 잡았다.
“와. 자아도취. 근데 누나 지금 뒤졌는데?”
“원딜이 못 해서 그럼.”
“저걸 남 탓하네.”
게임에 재능이 없는데 어쩌라고 이걸. 재능이 없으면 뒤져야지. 아무튼 내가 와딩 안 해도 어떻게든 될 것임.
“아! 그렇지! 요새 헌터들 실력 많이 올랐으니까 제가 안 가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여기도 결국 어떻게든 될 것임.
흘끗 스쳐본 화환의 표정이 미묘하게 썩어 들어가 있다. ‘그게 뭔 헛소리…?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름 진심이었다.
“생각을 재고해 주시는 게….”
“근데 저 하나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이 동네에 S급이 이렇게도 많은데 쌩 초짜 S급 하나 간다고 뭐 달라지나요?”
야, 원딜 이 새끼 서폿 어디 갔음 ㅇㅈㄹ 하는데? 질 수 없지. 나도 정치질 한다.
따다다닥. 키보드 연타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옆자리에 앉은 우리 팀 정글은 진작에 키보드 배틀을 시작했다. 질 수 없지. 근데 이 새끼는 갱도 안 다니면서 왜 선동질이야? 어이가 없네.
“넌 뭘 잘했다고 채팅 침?”
“정글은 죄가 없어. 누나는 게이트나 보러 가. 저기서 S급이라고 애타게 찾잖아. 개백수 몇 년 했으면 이제 밥값할 때도 됐지.”
“개백수 아니거든.”
“개백수라고 잔소리 듣기 싫어서 명절에 안 오는 거 다 앎.”
아니, 개백수 아니라고. 내가 나라를 구했는데 그게 개백수냐고. 말이 되냐고.
하지만 남들 눈엔 개백수가 맞았다. 명절마다 외가 안 가는 것도 잔소리 듣기 싫어서 그런 거였다.
연희야,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니? 엄마 고생하는 거 안 보여? 너희 엄마 너만 보고 살았다. 나이도 나인데 남친은 있니? 선 자리 알아봐 줘?
“지금 생각하니까 개꼴 받네.”
제 인생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님들이 제 인생에 무슨 기여를 하셨다고 잔소리를 함?
이래 놓고 신인 S급 헌터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기사 나면 내 조카나 손녀라면서 동네잔치 한 번 벌이겠지. 옛날에 그런 소리 했던 것도 까맣게 잊고.
“야. 이번에 내가 영웅적인 활약을 하면 이모가 잔소리 대신 칭찬해 줄 것 같냐?”
“안 그래도 엄마가 사돈의 팔촌까지 소문낼 작정 같던데.”
“오케이. 딱 기다려라.”
나는 실시간으로 죽어 가는 우리팀 원딜을 버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한테는 피시방에서 밤새운다고 해.”
“작은 이모가 퍽이나 믿겠다.”
“그럼 친구 만나러 갔다고 하든가.”
알리바이를 만들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옆에서 그게 더 신빙성 없다는 소리 같은 게 들리긴 했지만, 무시하면 그만이지.
“그, 이대로 가십니까?”
미묘하게 마뜩잖다는 어투였다.
허, 그럼 안 감? 나는 미간을 구기며 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옆에서 판 던진 정글이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갑질 오지네. 이게 바로 S급의 S급 인성? 동영상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도 돼?”
“그럼 이제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나는 중지를 냅다 들어 올리며 지갑에서 현금을 꺼냈다. 신사임당을 받은 사촌 동생놈이 돌연 넙죽 기었다.
“다녀오십쇼, 누님. 제가 인수인계 마쳐 놓겠습니다.”
“오냐. 엄마한테 변명 잘해라.”
“맡겨만 주십쇼.”
화환이 어이 터진 얼굴로 우리가 시트콤 찍는 걸 바라봤다. 저 인간도 슬슬 될 대로 되라 식인 것 같았다.
“우린 이제 갈 길 갑시다. 아, 잠시만요.”
“예.”
화환이 짧게 대답했다. 나는 즉시 단말기로 네정좋에게 연락을 때렸다.
저번에 극야에게 얼핏 말을 듣긴 했지만, 안심이 되진 않았다. 내가 던전에 들어가는 건 상관없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 나올 테니까.
하지만 고랭크 헌터들이 죽고 세상이 흔들리는 건 원치 않았다. 그들은 지금 게이트를 막아 평화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사라지면 세상은 다시 혼란스러워질 테니 그런 일은 바라지 않았다.
[네가정말좋아] ▶ 아
[네가정말좋아] ▶ 죄송해요. 곧 진입이라서요.
[네가정말좋아] ▶ 이탈이 가능한지 물어볼까요?
낙원이 첫 번째 진입인가. 이탈이 가능한지 물어본다는 소리는 극야에게 물어보겠다는 소리겠지. 나는 내가 이 던전에 발을 들이는 것을 극야까지 알게 하고 싶진 않았다.
“혹시 준비된 교통편 있나요.”
“차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럼 갑시다.”
괜히 네정좋 부르지 말고 차 타고 가야겠다. 부산에서 오산까지면 진입 후 행동 계획까지 세울 수 있겠네.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화환을 따라 준비된 차에 올라탔다. 뭔가 심히 망했다는 걸 깨달은 건 현장에 도착해서였다.
* * *
검은 균열이 푸르게 일렁인다. 현장 투입된 S1팀 소속 헌터 최두나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에 이를 악물었다.
‘선배는⋯⋯ 아직인가.’
새카만 어둠 속 광활하게 펼쳐진 빙원. 혹독한 칼바람이 품을 파고든다.
[별이 추락한 나락 해방까지, 498:01:31]
던전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지 약 일곱 시간. 진입 시작부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과 매서운 추위가 일행을 강타했다.
던전 안은 말 그대로 나락. 거대한 구렁의 밑바닥.
크기 또한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다. 끔찍한 비명은 계속 들려오는데 아직 만난 몬스터는 없는 상황.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얼어 죽는다.’
가도 가도 얼음뿐인 대지였다. 먼저 진입한 다섯 길드의 헌터들이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들 무사하길 바라는 수밖에.’
최두나는 이를 악물며 앞으로 나아갔다. 모두가 강한 바람과 추위에 휘청였지만, 가장 앞뒤로 노련한 선배들이 섰기 때문에 막내인 최두나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팀장님!”
가장 끝에서 따라오던 팀원이 돌연 입을 열었다. 맨 앞에서 길을 뚫고 있던 윤사려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이쪽 방향에 무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얼음이 발자국 모양으로 패였어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간 윤사려가 팀원이 가리킨 곳의 얼음을 살폈다.
거대한 발자국 모양으로 파인 얼음. 일정한 간격으로 남은 흔적이 생물의 존재를 알렸다.
“추적할까요?”
인간의 발자국은 저렇게 크지 않으니 이 발자국의 주인은 십중팔구 몬스터다. 하지만 먼저 진입한 길드 소속 헌터 중에 몬스터를 세뇌시켜 부리는 헌터가 있었다.
윤사려는 발자국을 앞에 둔 채로 고민했다. 각성자가 아무리 일반인보다 뛰어난 육체를 가지고 있다지만, 이렇게 혹독한 환경마저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일행은 이미 일곱 시간가량을 쉬지 않고 걸어온 상황. 인간에게는 당연히 휴식이 필요했다. 제아무리 각성자라 할지라도.
“추적한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앞으로 나아간다. 몬스터라면 잡는다. 헌터라면 합류한다.
만일 문제가 생긴다면 가속을 이용해 빠져나간다. 스킬을 사용할 마나라면 몬스터를 만날까 봐 쓰지 않고 아껴 두었다.
“방향을 바꾼다! 모두 따라와!”
현실의 몬스터는 게임 속 몬스터처럼 사라지고 나타나길 반복하는 데이터가 아니다.
차원 학회는 그들이 외부 차원의 생물이며, 지구의 생물처럼 생태계를 이루고 살아간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괴물 같은 생김새와 끔찍한 능력들 외에도 생물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것도 가지고 있었다.
‘그 괴물 놈들이라고 이 얼음덩어리 한복판에서 배 깔고 누워 자진 않겠지.’
보금자리 정도는 있을 거 아니야. 적어도 이 추위를 피할 장소라도.
윤사려는 주먹을 꽉 쥔 채로 길을 뚫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진다. 끝없이 빙판뿐일 것 같았던 공간에 끝이 생겼다.
“동굴이다.”
남극점에 최초로 도달한 아문센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윤사려는 가슴 깊이 환희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크르르르릉-
아. 정확히 딱 3초만.
“모두 뒤로 물러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 안쪽에서 거대한 손이 튀어나온다. 가진 건 코딱지만 한 손전등뿐이지만, 저것이 손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아악-!!”
왜냐하면 그것이 팀원 중 하나를 잡아채 갔기 때문이다.
‘젠장, 젠장!’
윤사려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품에서 날붙이를 꺼냈다. 손에서 튕겨 나간 날붙이가 순식간에 괴물의 손을 파고든다. 하지만 크기 차이가 너무 나서 데미지가 전무했다.
“살, 살려 주세요-!!”
손전등의 미약한 빛이 괴물의 신형을 비춘다. 동굴로부터 꿈틀거리며 튀어나온 것은 괴물의 머리.
‘나로서는 저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입히지 못해. 이중 가장 강한 건 나니까 다른 이들이 나서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모두에게 가속을 걸어 자리를 뜨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잘못된 판단이 참사를 일으켰지만, 잘못은 빨리 되잡으면 된다.
“팀장님! 어쩌죠?! 두나가⋯⋯!”
다른 팀원이 비명을 토해 냈다. 한 명의 목숨과 모두의 목숨. 목숨에는 가치가 없지만, 후자보다는 전자가 낫다.
‘후퇴하자.’
각오하고 있던 사항이었다. 한 명을 잃었다고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윤사려는 후퇴를 명하려고 입을 열었다.
“야! 비켜!!”
아니.
“그러다 처맞는다!!”
입을 열려고 했다. 아마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입을 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