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으아악!! 으아아아악!!”
헌터 협회 대한민국 지부, S1팀 사무실.
S1팀이라 하면 나라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헌터계 엘리트들. 공익 광고 시즌만 되면 티비에서 얼굴 사라질 날이 없는 국가의 얼굴.
길드 헌터들과 다르게 공무원인 그들은 수입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명예나 혜택 따위는 다른 헌터들과 비할 바 없었다.
심지어 S1팀 정도 되는 실력자들이면 수입마저 다른 헌터들과 그리 차이 나지 않았다.
물론 아주 조금, 아주 조오오오오금 차이가 나긴 하지만 말이다.
“손가락테크니이이이이익-!!”
S1팀의 리더, 공무원 헌터 중 유일한 S급,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90살 노인부터 한 살짜리 어린아이까지 모조리 안다 자부하는 인기 스타.
“이 쓰레기 새끼야아아아아-!!”
반반한 낯짝과 끝내주는 이미지 메이킹으로 국내 유명 잡지사 선정 인기 헌터 3위에 랭크된 날강도가 울부짖었다. 그것도 대낮부터. 손가락테크닉을 저주하면서.
‘또 저러네.’
그 모습을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배소헌이 소파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
날강도, 윤사려가 소리 지르는 거야, 한두 번이 아니긴 하다. S1팀은 모두의 인정을 받는 만큼 업무도 그만큼 많았다.
공무원 헌터들 인력 부족한 거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저랭크 헌터들은 공무원이 되지 못해 안달이지만, 국가에서는 고랭크 헌터들을 모셔 오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난이도 높은 게이트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고랭크 헌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고랭크 헌터들은 길드들이 좋은 조건으로 냉큼 집어 가는 상황.
국가는 길드만큼의 조건을 내밀 수 없다. 결국 공무원이 되길 선택하는 헌터들은 손에 꼽힌다.
현장 뛸 곳은 많은데, 인력난인 상황. 따라서 그들은 늘 만성적인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팀장님 또 왜 저러시죠.”
“몰라. 손가락테크닉이 화나게 했대.”
윤사려가 발광하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처음엔 찍소리도 못하고 굳어 있던 팀원들도 이젠 저 모습을 자연스럽게 넘겼다.
이걸 좋다고 봐야 하는지, 아니라고 봐야 하는지. 배소헌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선배. 이번 게이트 말이에요, 협회 본부에서 처리 중인데 아직도 랭크 판정이 안 났다면서요?”
“어. 그래서 지금 B급 이상 헌터들한테 소집 명령 떨어진 상태야.”
“그럼 이번에 그 사람도 와요? 손가락테크닉 말이에요.”
S1팀에 배치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손가락테크닉? 너 손가락테크닉 별명 중에 힘숨찐 있는 거 몰라? 손가락테크닉 데려오는 것보다 남산에서 산신 데려오는 게 더 빠를 거다.”
“그 정도예요? 근데 B급 이상 전체 소집이면 손가락테크닉도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한민국 국적 헌터잖아요.”
“이론상 그게 맞긴 한데….”
원래 현실하고 이론은 조금 다르지. 힘 있는 깡패 상대라면 더더욱.
손가락테크닉은 랭크 높은 헌터답지 않게 성격은 평범한 축에 속했는데, 전자 기기만 잡으면 사람이 바뀌어 방구석 여포가 됐다.
게다가 감정 표현은 얼마나 뚜렷한지. 얼굴 위로 대놓고 ‘나 불만 있소’하고 드러내는 타입이었다.
“모르지. 안 올 수도 있어.”
“네? 진짜요?”
아직 손가락테크닉을 겪어 본 적 없는 신입, 최두나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본래 헌터가 국가의 소집에 응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터진 게이트 진압 못 해서 나라 망하면 결국 그들만 손해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 랭킹권 헌터들에게는 나라가 망하든 말든 어딜 가도 환영일 테니, 말이 조금 다르겠지만.
“손가락테크닉이나 새벽쯤 되는 헌터면 국가 차원에서 강제하기도 어려워지니까. 그냥 이 나라를 떠나지만 말아 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지.”
“그래도 새벽은 소집에 꼬박꼬박 응하지 않나요?”
“새벽은 그렇지. 자기 기반이 모두 이 나라에 있잖아. 게다가 그쪽은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지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아.”
사람이 나쁜 쪽은 따로 있지. 그것도 먹이사슬 개념을 제일 잘 아는 놈 말이다.
“어쨌든 손가락테크닉이 올지 안 올지는 잘 몰라. 팀장님 하기 나름이지.”
“역시 팀장님이에요. 손가락테크닉하고 개인 메시지도 나누는 사이라면서요. 너무 멋있어요.”
최두나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책상에 머리를 처박은 윤사려에게 꽂힌다. 배소헌은 이번에도 말을 아끼는 길을 택했다.
“아!”
한참 동안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던 윤사려가 고개를 번쩍 든다. 귀신처럼 흐트러진 머리 사이로 오묘한 빛깔의 눈이 번뜩였다.
“그렇지! 내가 안 가면 되는 거였어!”
안 그래도 무서워 죽겠는데 이제는 혼잣말까지 한다.
‘드디어 갈 때가 됐나?’
배소헌은 혼잣말하며 킬킬 웃는 윤사려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요새 스트레스가 한계에 달하는 것 같더니 결국 손가락테크닉으로 정점을 찍었다.
‘나는 팀장 아니어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A1팀의 팀장을 맡을 뻔했던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든 평범한 게 좋은 법이다. 한 번 사는 인생, 가늘고 길고 평범하게!
배소헌은 미쳐 날뛰는 팀장에게서 신경을 끄고 작성 중이던 파일로 고개를 돌렸다.
웨이브가 될 것이었던 이번 게이트가 100% 던전으로 바뀌었으니, 던전 진입 순서를 정해야 한다.
이론대로라면 높은 랭크의 헌터에게 진입 우선권이 있지만, 대부분의 헌터가 길드에 속해 있으므로 진입 순서는 길드 단위로 친다.
이번에는 엉덩이 무거운 그 길드가 우선 진입을 요구했으니, 저번과는 다르게 순서를 재편해야만⋯⋯.
“배소헌!”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쩌렁쩌렁한 외침이 그의 귀청을 때린다.
배소헌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씨익. 날강도의 얼굴에 날강도 같은 미소가 걸린다.
“잠깐 내 방으로 와라.”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날강도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방문이 잠겼다.
외부에 절대 발설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뜻.
배소헌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네가 다녀와라.”
“예?”
“네가 다녀오라고, 부산.”
윤사려가 단말기를 조작해 손가락테크닉과의 대화를 배소헌에게 보냈다. 지이잉. 단말기가 가볍게 진동하며 전달받은 메시지를 띄운다.
핑거킹 ◀ [날강도]
야 힘숨찐 ◀ [날강도]
아 읽씹하지 말라고!! 아!!! ◀ [날강도]
[손가락테크닉] ▶ 왜
[손가락테크닉] ▶나 지금 부산 바캉스 가는 중
받은 건 고작 다섯 개의 메시지뿐이었지만, 배소헌은 알 수 있었다.
“손가락테크닉 지금 부산에 계신단다.”
그는 지금 아주 X됐고,
“근데 이번 게이트는 난이도도 모른단 말이지. 어쩌면 특급이나 그 이상일 수도 있어.”
X됐고 또 X됐으며,
“손가락테크닉 없으면 나라 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가서 모셔 와.”
손가락테크닉이라는 닉네임과 얽힌 순간, 그의 인생철학은 그저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 * *
“아 그래서⋯⋯ 지금 부산에 오셨다고요.”
“네. 식사 시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갈매기 우는 소리 끝내준다. 나는 때아닌 바닷가를 바라보며 지하철 샌드위치를 씹어 먹는 중이었다.
“⋯⋯.”
“⋯⋯.”
장렬한 침묵이 흐른다. 때 되면 네정좋 불러서 올라갈 생각이긴 했는데, 벌써부터 찾아올 줄이야.
아, 물론 저 사람도 오고 싶어서 오지는 않았겠지. 얼굴 익숙한 거 보니까 S1팀인 것 같은데.
“옙, 그. 이번 게이트에 제가 꼭 필요하다고요.”
“네. 손⋯⋯ 이 아니라. 우연 님께서는 이미 혼자서 특급 게이트를 파훼하신 적 있으니까요. 이번 게이트는 랭크를 알 수 없는 게이트입니다. 저희는 이번 작전에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스락.
샌드위치를 감싼 종이가 열심히 제 존재감을 뽐냈다. 나는 텅 빈 위장에 샌드위치를 구겨 넣으며 고민했다. 이걸 대답해, 아니면 말아?
보수야 뭐 이미 협회 본부랑 차원 학회에서 받기로 했지만, 조금 더 뻐기면 정부에서도 줄 것 같은데.
우연이라는 닉네임도 알고 있으니까 부캐 판 것도 아는 모양인데, 과연 안 줄까?
나는 오렌지 맛 탄산음료를 물처럼 들이켜며 찾아온 헌터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연다.
“이번 게이트 진압에 응해 주시면 저번과 마찬가지로 보수를 지급할 예정입니다. 우선 A급 이상 아티팩트의 소유권 양도를 약속드리며, 이번 게이트 부산물의 경매장 면세 및 다양한 혜택을⋯⋯.”
“아. 그건 따로 정리해서 보내 주세요.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저는 당연히 날강도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이 오셨네요.”
나는 쿠키를 두 조각으로 쪼개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좀 신기하네. 진짜로 그쪽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가락테크닉의 정체는 협회와 학회, 그리고 정부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극소수만이 알았다.
어쨌든 국가는 내가 필요하고 나도 헌터 일을 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연결 고리는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대중들, 특히 엄마에게만큼은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타협을 위해 정한 약속이 세 개.
첫째, 내가 손가락테크닉임을 숨기는 데 협조한다.
둘째, 연락은 단 한 사람을 통해서만 한다.
셋째, 위의 약속이 지켜지는 동안 이민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와 연락을 취하는 단 한 사람이 바로 ‘날강도’였다. 내 정체를 아는 극소수의 헌터 중에 제일 세고 강단 있는 사람. 직급도 높고, 나이도 적당하고. 아마 적임자였을 터다.
“가속 특성이 있어서 오는 건 어렵지 않을 텐데. 꼴 받아서 속이라도 뒤집어졌나요?”
나는 쿠키를 와작와작 씹으며 계속해서 물었다. 저거 맞지. 읽씹을 밥 먹듯이 했으니 속이 안 뒤집히고 배김? 그 성질머리에 얌전히 참고 사는 게 더 대단하다.
돌발 질문에 찾아온 헌터가 식은땀을 흘린다. 창백한 낯빛이 어제저녁에 본 공포 영화 속 귀신같다.
“아닙니다. 팀장님이 나름 사려 깊은 면이 있으셔서 우연 님께서 불편하시지 않도록 절 보내신 겁니다.”
“사려 깊은 게 아니라 좀 사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걔도 닉값이랑 이름값 진짜 끝내주게 함.”
날강도 같은 인성에 좀 사렸으면 싶은 성격. 이미지 관리를 괜히 하는 게 아니다. 그럴 이유가 있으니 하는 거다.
“아무튼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저도 이번 게이트 궁금해서 들어가 볼 생각이긴 했고요.”
“아. 그러십니까?”
남자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돈다. 근데 나 바로 간다곤 안 했다.
“앞에 차를 준비해 두었으니 타시면 됩니다. 어디서 묵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지금 바로 체크아웃하러 가겠습니다.”
“그건 곤란한데요. 그리고 바로 못 가요.”
“예?”
“바캉스라고 말하긴 했지만, 진짜로 놀러 온 건 아니거든요.”
우리 마님이 어떤 사람인데. 내가 바캉스 가자고 한다고 진짜로 바캉스 가 주겠어?
“저 친척 집 온 거예요. 지금 사촌 동생이랑 놀러 나온 거라서 애 봐야 합니다.”
나는 당당하고 꿋꿋하게 내 할 말을 다 했다. 어차피 네정좋 불러서 편하게 갈 건데 왜 지금부터 가서 고생을 함? 파티 주인공은 원래 마지막에 나타나는 거다.
짤랑짤랑.
가게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안 그래도 한적한 시간대라 그런가, 소리가 유독 컸다.
“누나. 밥 다 먹었어?”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자리까지 온 동생 놈이 내 앞자리에 앉은 헌터를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마찬가지로, 헌터 또한 사촌 동생을 보며 정신머리가 안드로메다로 간 표정을 지었다.
왜. 사촌 동생이라고만 했지, 어린애라고 한 적은 없음.
참고로 내 사촌 동생은 올해로 열여덟 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