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33화 (33/175)

제33화

같은 시각, 낙원 길드 최상층.

길드장의 부름을 받은 이들이 모여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은?”

“이번에 열리는 게이트 준비 중.”

푹신한 소파에 반쯤 눕듯이 앉은 편애가 휴대폰 화면을 툭툭 두드리며 말한다.

러브리스는 그런 편애를 가볍게 흘겨보곤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대체 뭘 보고 웃는 건지 음흉하게 히죽거리는 게 거슬리지만, 그러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오히려 먼저 온 게 네가정말좋아가 아님에 감사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불린 건 너와 나 둘뿐이야?”

“설마. 네정좋도 불렀을걸. 걔야 뭐 이번에도 길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가 늦게 오겠지만.”

러브리스의 물음에 편애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나저나 너희 왕님 보고 왔다며. 좀 어때?”

글쎄. 러브리스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시뮬레이터 안에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중간에 강림한 나태왕을 상대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그 강함은 보스전에서 충분히 보았다.

척 봐도 묵직한 대검을 휘두르면 몬스터가 속수무책으로 쓸려 나갔다. 압도적인 강함. 모든 각성자들이 추구하는 그 끝의 경지에 도달한 자.

생각을 알 수 없는 그 잿빛 눈을 마주할 때면 꼭 피가 끓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저를 회귀자라 소개한 그를 볼 때와는 또 달랐다.

“전하는⋯.”

‘샛별 씨.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하얀 보름달이 희게 센 머리 뒤로 떴다. 피 묻은 뺨 위로 역광이 드리운다. 달빛을 닮은 보랏빛 눈이 광기에 차 번들거린다.

‘이번에도 전하의 아홉 번째 신하가 되어 주시겠어요?’

“어쩐지 조금 닮았지.”

“무슨 소리야? 주어를 끼워서 말해. 네가 네정좋이야?”

소파에 냉큼 배를 깔고 엎드린 편애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저게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저딴 포즈를.

러브리스는 겉옷 주머니에 넣어 둔 담뱃갑을 편애의 머리에 던져 명중시켰다.

“아!!”

아프지는 않지만, 노골적으로 기분이 나쁘다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와 동시에 편애의 셔츠 칼라가 뒤로 잡아당겨지며 몸이 기울었다.

쿠당탕-

갑작스러운 손길에 뒤로 넘어간 편애가 바닥을 굴렀다.

늘 그렇듯이 허공에서 튀어나온 네가정말좋아가 조금 전까지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서 오세요.”

잡음 하나 없이 열린 문 사이로 극야가 모습을 드러낸다. 러브리스는 기분이 좋은 듯 옅은 미소를 띤 극야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전하의 아홉 번째 신하가 전하의 첫 번째 신하를 뵙습니다.”

이는 그 기억에 따라, 저번 삶에도, 저저번 삶에도, 저저저번 삶에도 이어졌던 아주 길고 오래된 맹약이었다.

* * *

끼익-

“엄마, 나 다녀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신발장 위에 둔 방향제 냄새가 솔솔 났다. 나는 엄마가 언제 나타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며 까치발을 들었다.

“우연희, 너 엄마랑 얘기 좀 해.”

딸꾹.

밥 잘 먹고 집에도 잘 기어들어 왔는데 왜 딸꾹질이 나오지. 숨을 쉴 때마다 수축하는 횡격막이 자꾸만 히끅거리는 소리를 내게 만든다.

와우, 이 집 오늘 핫하네요. 우리 마님이 또 누구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셨지?

나는 대충 먼 산을 바라보며 엄마 앞에 슬슬 기어들어 와 앉았다. 그러자 다리를 척 꼬고 소파에 앉은 엄마가 입을 열었다.

“너 몇 살이야.”

“엄마. 다리 꼬고 앉으면 척추 수술 3,000만 원⋯⋯.”

“네가 지금 엄마랑 농담 따먹기 할 때야? 네 나이면 조선 시대 중전마마야, 중전마마! 넌 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

한숨을 폭 내쉰 엄마가 혀를 찬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해맑게 대답했다.

“대비마마 될 때쯤? 자식은 늘 아기라잖아. 그래도 아직 귀여우니 챙겨 주는 맛이 있지.”

“귀엽긴 무슨. 다 커서 징그럽다. 너는 네 입으로 그런 소리 하고 싶니?”

“연희는 아기예요. 응애.”

본래 추구하는 방향과는 조금 달랐지만, 이대로 드러눕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집에 다른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응애 소리 낸다고 쪽팔릴 게 어디 있겠어.

나는 그대로 거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옆에서 엄마가 드디어 집에서 쫓겨나고 싶냐며 옆구리를 툭툭 치는 게 느껴졌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나는 재빨리 무리수 발언을 거두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래도 농담 받아 주는 거 보니까 엄마가 덜 화나긴 한 모양인데.

내가 오래 산 건 아니지만 하나 아는 게 있다.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로, 인생은 늘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엄마. 미안한데, 나 약속 있어서 또 나가 봐야 할 것 같아.”

내가 연락도 안 하고 외박하는 일은 여태껏 제법 있었다. 제법 있는 수준도 아니지. 많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던전에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게다가 헌터 협회 본부와 빌어먹을 차원 학회 인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괴롭혔다.

하긴 게이트가 열리는 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 쳐들어오는 놈들 마음이지.

“뭐? 너 새벽에서 방금 돌아온 거 아니니?”

갑작스러운 외출 통보를 받은 엄마가 미간을 좁혔다. 새벽에서 방금 돌아온 건 맞지. 그건 나도 부정할 생각 없었다.

“응. 그런데 거기 가서 다른 길드 사람을 만났거든.”

다만, 아까 문을 열기 전 아파트 복도에서.

“낙원 길드에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네가정말좋아의 검은 머리꼭지를 봤다. 게다가 비상계단 문은 항상 열어 두는데, 오늘은 어쩐지 닫혀 있더라고.

“⋯⋯뭐?”

내가 좋은 말로도 다른 사람 표정을 잘 읽는 건 아닌데, 지금 엄마 표정 정도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왜 거기서 낙원이 나와⋯⋯? 그 사이비⋯⋯?

딱 그런 표정이잖아, 저거.

세상에. 새벽 길드에 잠시 다녀온다길래 보내 줬던 우리 딸이 외박한 것도 모자라 갑자기 낙원 길드에 다녀온다고 통보를 한다?

세상에 저런 불효자가 다 있나. 사이비 탈출은 지능 순이라던데, 잘 키워서 대학 보내 놨더니 지능 지수가 갑자기 떡락?!

이것이 바로 21세기형 자식 농사 실패?!

…따위의 표어가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크흠. 물론 우리 엄마는 저렇게 생각 안 할 테지만, 내가 내 자식이었으면 저렇게 생각했을 듯. 이래서 엄마들이 너도 너 같은 딸 낳아 봐! 이러는구나.

변명 하나로 자식 농사 실패까지 가기. 별로 어렵지 않다.

나는 아직 어이를 상실한 표정의 엄마를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네가정말좋아!”

1초, 2초, 3초.

네가정말좋아는 콜택시가 아니었으므로 부른다고 나오지 않는 게 맞았지만, 전하라고 부르면서 우쭐한 마음이 들게 한 주제에 안 나오니 또 기분이 묘했다.

“안 나오면 길드장한테-”

“안녕하세요.”

눈앞에 검은 균열이 일렁였다. 이윽고 쑥 튀어나온 건 그의 머리였다. 왜, 아까 복도에서 본 거.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 것 같은 엄마는 허공에서 튀어나온 네정좋의 머리를 보며 기겁했다.

하긴 허공에서 머리만 불쑥 튀어나오는데 누가 놀라지 않고 배기겠는가. 보통 강심장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튀어나온 인간도 걸물이지.

네가정말좋아. 이상한 놈들만 모이기로 유명한 낙원의 얼굴마담, 낙원 욕하고 택배 오면 네정좋이 잡아갔다는 밈까지 있는 헌터계 초특급 유명인사.

20xx-01-01 12:45 조회:311,890 추천:98

[BEST] 수원시 거리 현황

작성자: 익명

(까마귀_사진.jpg)

(테러_현황.jpg)

아니 이 동네 까마귀 왜 이럼? 분명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서 까마귀 수백 마리가 떨어졌음;;

지구 멸망의 징조임?

댓글(118)

- 까마귀? 까마귀면 비눗방울 아님? 걔 이명 큰까마귀잖아

ㄴ 그 새벽 길드 개백수 밥버러지? 귀찮다고 길장 명령 아니면 출근도 안 한다던데 걔가 그랬겠냐

ㄴ ㅇㅈ 밥버러지 오늘도 출근 안 함

ㄴ 님은 그거 어케 앎; 새벽 길드원이기라도 함?

ㄴ 새벽 길드원이겠지, 익게에서 남의 신상 캐지 마라;;

- 우욱; 까마귀 똥 장난 아니네

ㄴ 밥맛 떨어지게 저런 걸 점심시간에 올리냐

ㄴ 근데 저게 하늘에서 떼로 추락했으면 기겁할 만한 듯

- 나 범인 안다

ㄴ ??

ㄴ ?누구?

ㄴ ㄴㅈㅈ

ㄴ ㄹㅇ?

ㄴ ㅇㅇ

- ㄴㅈㅈ 특성 공간이니까 충분히 그럴 만한 듯 근데 걔가 왜 저걸 수원시에 떨어뜨림? 이해가 안 가는데

ㄴ ㄴㅈㅈ 출장 갔고 ㄹㅂㄹㅅ 휴가 갔음

ㄴ ㄹㅂㄹㅅ가 여기서 왜 나옴?

ㄴ 아 설마 ㄹㅂㄹㅅ가 수원 산다는 게 찐임? 저번에 기사 났더만

ㄴ 헐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ㄴ ㅇㅇ 헌터 전문 파파라치 있잖음 그 디스텐스에서 기사 냈음

ㄴ 와ㅋㅋㅋㅋㅋ 유명 헌터들은 사생활도 없네, 난 F급이라서 다행이다^^,,,

- 그럼 결국 ㄹㅂㄹㅅ 엿먹이려고 ㄴㅈㅈ이 까마귀 떼 구해다가 뿌린 거임?ㅋㅋㅋㅋㅋㅋ 지는 출장 갔는데 쟨 휴가 갔다고? ㅋㅋㅋㅋㅋ개웃기네

ㄴ 성격이 얼마나 ㅈ같으면 별명이 너 정말 ㅈ같다겠냐ㅋㅋㅋㅋ 닉값하네ㅋㅋㅋㅋㅋ

ㄴ 님 필터링 안 함? 그러다 잡혀감; 빨리 대댓 지우셈;

ㄴ 글렀음, 벌써 잡혀간 듯

ㄴ -고인의 온기가 남아 있는 대댓입니다-

...

한 지역에 자연재해를 불러온 ㅈ같은 행동으로 유명하고,

『“유주하 헌터님! 이번에 낙원 길드에서 게이트에 참가하는 인원에 관한 말씀을-”』

『“…….”』

『“헌터님! 헌터님!!”』

『“그 얼굴로 제 이름 부르지 마세요.”』

오염 재해 당시의 인터뷰는 ㅈ같은 인성을 천하에 드러나게 한 레전드로 기억되고 있으며,

[경북 지역 소형 길드 ‘붉은 사자’, SS급 헌터‘네가정말좋아’에게 점령 던전을 빼앗겨….]

[헌터 매거진 21호. 올해 헌터들이 뽑은 최악의 헌터는? - ‘낙원’의 ‘네가정말좋아 ‘전격 파헤치기!]

[정부 소속 헌터의 대표, <헤이스트> 날강도. “헌터 관련 사건 사고를 처리하다 보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헌터는 ‘낙원’의 ‘네가정말좋아’입니다.”]

[수원시에 이은 화성시 까마귀 날벼락. <큰까마귀> ‘비눗방울’, 사건의 주범인 ‘네가정말좋아’를 향해 고소 의사 밝혀….]

그 외 자잘한, 아니. 큰 사건으로 여러모로 말이 많은 헌터.

헌터 협회 공홈 게시판은 물론 뉴스와 인터넷 기사에도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관계로, 그 유명세는 우리나라 헌터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

나쁜 의미로 유명하고, 좋은 의미로도 유명⋯⋯ 아니다. 나쁜 의미로 유명하다.

아무튼 그 지랄 맞은 인성과 번쩍이는 외모는 네가정말좋아를 헌터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뇌리에도 선명하게 각인시켜 놓았다.

“그, 그쪽은⋯⋯?”

그리고 우리 엄마 또한 뉴스에서 이 자식 상판대기를 수십 번 본 평범한 티비 시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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