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32화 (32/175)

제32화

손가락테크닉이 손가락테크닉 소리만 나오면 발작하는 건 개나 소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안 그래도 정체 안 밝히는 인간이니까 수줍음이 많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나는 그냥 손가락테크닉 소리만 나오면 발작했다.

얼마나 티를 내고 다녔던지 [Live] 손가락테크닉 뒤끝 작렬 새벽 뚝배기 깨기 [Mars/KR]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

뜨거운 반응을 받으며 뉴스까지 탔다.

그래서 대부분이 후환이 두려워 핑거킹이라고 돌려 부르는데, 손가락테크닉? 소오오온가락테크니이익?

콰득.

식당 바닥이 신발 밑창 모양으로 파이며 소리가 났다.

우리 엄마는 늘 말했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금도 그랬다. 밥 한 상 차려 주고 이런 말을 할 줄이야. 게다가 ‘그’ 이름을 언급해서 내게 엿을 먹여? 오백 번 죽어 마땅한 일이었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 헌터’ 전설에 대해 가장 잘 알면서 이 사달을 내다니.

과연 저 인간의 겁대가리 없음은 어디까지 간단 말인가?

나만 안 건드렸으면 신경도 안 썼을 주제지만 한 대 얻어맞고 나니까 정신이 팍 들었다.

아까 누굴 처리하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스스로를 처리하셨으면 좋겠네요. 밥은 잘 먹었으니까 전 이만 갑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았다.

후두둑.

돌가루 소리 요란한 와중에 저 옆에서 숨죽이고 있던 새벽 길드원들이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우성쳤다.

“으아아악! 가시면 안 돼요!! 사람 죽어요, 사람!!”

“형, 내가 그러게 그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형, 내 말 듣고 있어?”

“핑거킹 님, 지금 가시면 저희 큰일 나요. 사람 다섯 살린다고 생각하시고 다시 앉아 주시면 안 될까요? 현아, 가서 빨리 그거 가져와.”

민주의 것으로 추정되는 식물 줄기가 스멀스멀 기어와 앞길을 막았다.

나는 지구 공동체의 소중한 일원 중 하나인 이름 모를 생명을 발로 콱 짓밟았다.

기다란 줄기는 그렇게 동강이 났다. 뚝.

“예, 뭐. 밥은 잘 먹었고요, 밥값 필요하시면 협회 본부에 청구하시죠. 사람 부려 먹으면서 밥값 정도는 내주겠지.”

본부에서 괜히 상급 게이트 경고를 때렸겠나.

저건 필시 수집하지 못한 외부 차원이니 가서 몹도 때려잡고 차원 정보도 수집하고 오란 소리다.

“게이트 못 닫을까 봐 걱정하시는 거면 걱정하지 마시고요. 이 좁아터진 땅에 세계 랭커가 몇인데 고작 상급 게이트를 못 닫겠어요?”

암, 그럼 그럼. 나는 우리나라 믿지.

각성만 했다 하면 돈 벌겠다고 던전부터 뛰어 들어가는 인간들이 넘치는 곳 아닌가.

게이트 툭 터지면 언제 국회나 파란 기와집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판에 공무원이 희망 직업 1짱 먹고 배겨? 당연히 시대의 흐름은 헌터지. 암, 그렇고말고.

엄마 나 외박하려고 한 건 아니고 술 사 준다길래 술 좀 마시다가 그랬지 나 술 강한 거 알쥐? 별일 없었으니까 걱정 ㄴㄴ하기 ◀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을 건 바뀌지 않는다.

외국 놈들은 저 코딱지만 한 나라에 어떻게 랭커가 저리 많냐고 의문을 제기하는데, 걔들은 이 나라 헌터 성장법을 몰라서 그런다. 밥 먹고 던전만 가는데 그럼 안 강해지겠음?

세계적인 헌터 강국, 대한민국! 일개 고시생인 저는 한국을 믿습니다!

종말의 날 직후도 아니고 상급 게이트 따위는 금방 정리해 주시겠죠?

나는 대충 힘내라는 의미로 주먹을 꽉 쥐고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새벽 길드원들 안색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했다.

아. 설마 더 나대면 때리겠다는 의미로 알아들은 건가. 유감이다.

이래서 핑거킹으로는 나서고 싶지 않았던 건데.

손가락테크닉이라는 닉네임에 달린 업보가 무시무시하게 컸다.

나는 순식간에 바닷속 해초처럼 푸르죽죽해진 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협회 본부에 이미지 개선 프로그램이라도 짜 달라고 항의하지 않는 이상, 이 업보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냥 닉네임을 변경해 달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반들반들한 옆머리를 대충 넘기며 고민했다. 유감스럽게도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다.

“못 닫습니다.”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반서준이 입을 연 탓이었다.

“뭘 못 닫는데요. 게이트?”

“네.”

반서준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단호해서 단호박이라도 먹은 것 같았다. 참고로 나는 단호박을 싫어한다.

“오대 길드만 다 들어가도 닫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새벽의 본진인 제1공대원들을 간과하신 거 아닌가요.”

나는 저 옆에서 굳어 있는 제3공대원들을 흘끗 바라보곤 말했다.

새벽 길드의 제3공대는 중급 게이트를 겨우 엄두 내는 초짜들이다. 초코우유와 부산우유는 경험이 좀 있지만 그래도 전투가 본업은 아니지.

그런 것 정도는 유튜브 운영하는 두 사람이나 방송에 뻔질나게 얼굴 비추는 제라늄만 봐도 알 수 있다.

저 팀은 정예 전력이라기보단 새벽 길드의 얼굴마담 쪽에 가깝다. 그 정도야 민주 특성만 봐도 답 나오는 일이지 않나?

제라늄 왈 스물일곱 처먹고 공대왕이 되겠다고 설치는 반서준은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만을 뽑아 스카우트했다.

새벽에 발을 걸칠 수 있는 헌터는 최소 B급. 새벽 길드의 제1공대원들은 모두 전투에 특화된 고랭크 헌터.

전례 없이 파격적인 조합이었다.

그 낙원 핵심층조차 싹 다 고랭크가 아닌데. 대단하다고 봐야지.

나는 우리나라 랭킹을 손으로 꼽아 가며 1공대 인원의 수준을 가늠했다. 1위가 나고, 2위가 쟤고 3위가 극야, 4위가⋯⋯ 누구였지?

평소에 신경 쓸 일도 없는 터라 자세한 랭킹까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10위 안에 새벽이 셋은 있었음. 그런데 뭐가 안 된다고 찡찡대고 그래?

“저는 웨이브가 아니면 나설 생각 없습니다.”

특급 게이트라면 몰라도, 상급 게이트를 두고 전면에 나설 생각은 없다.

물론 상급 게이트 또한 한 국가의 재앙인 것은 맞긴 하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파워 인플레가 팽배해 있는데 굳이 내가 앞에 나서야 하나? 굳이?

상급 게이트를 예측했다면 던전인지 웨이브인지도 미리 알아낸 건가.

나는 단말기를 주머니로 거두며 생각을 이었다.

물론 던전이 아니라 웨이브라면 앞장서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일단 나는 이 국가에 적을 두고 있으니까.

뭐, 랭커로서 국가의 위신을 세울 의무는 던져 버린 지 오래긴 하지만.

정부 소속답지 않게 비범한 닉네임을 가진 날강도가 국가 정보원의 힘을 빌려 접근했다가 털린 지 어언 2년, 나는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손가락테크닉이라는 이름은 꾸준히 일하고 있었다.

국제 관계에서 고개를 빳빳이 드는 일등 공신, 나라의 영웅, 인류의 영웅, 세계의 영웅.

이름으로 밥값 하는 손가락테크닉. 내가 보기엔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슈퍼히어로는 원래 정체를 밝히지 않는 법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히어로 영화들을 보라. 다 그런 식으로 간다.

“웨이브면 곤란하겠지만, 던전이라면 제가 후방에 있어도 무리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조금 전에 하신 말은 못 들은 거로 합니다?”

잠적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얼굴을 비춰. 자주 나오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

손가락테크닉과 핑거킹으로 도배된 게시글이 벌써 눈에 선연했다. 으, 끔찍하기 짝이 없군.

나는 험한 미래에 소름이 돋은 팔을 쓸며 반서준을 보았다.

한참을 혼자 줄줄 떠들었으니 저 급발진 머신이 날뛸 때가 됐는데.

“낙원 길드장이 움직인 때를 기억하십니까? 딱 세 번 있었죠.”

하지만 급발진 머신은 의외로 침착했다.

던전이나 사석에서 본 반서준과는 아주 달랐다. 저게 바로 공적인 모습의 새벽인가.

적응은 안 됐지만, 납득은 갔다.

“그날에 한 번, 오염 재해 때 한 번, 한빙 지옥 때 한 번. 저희는 이번 게이트 진입 리스트에서 극야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이예단이 예언해 논란이 되었던 그날, 상급 게이트 일대의 땅과 공기가 모조리 썩어 들어간 오염 재해 사건, 한반도의 반절이 얼어붙었던 한빙지옥 사건.

극야는 그날 네가정말좋아를 얻었고, 오염 재해 사건 때 편애를 얻었고, 한빙지옥 사건 때 러브리스를 얻었다.

인재뿐만이 아니라 이권 또한 많이 챙겼다고 들었는데 이건 내가 모르는 영역이니 넘어가자.

아무튼 위의 일들은 극야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인 일들이고,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극야가 직접 나선 일들은 모두 예상치 못한 규모로 커졌죠. 저는 이번 일도 상급 게이트 선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말도 안 되는 규모로 일이 터졌다는 것.

그날은 차원 간 전쟁이 터졌으니 말할 것도 없고, 오염 재해와 한빙지옥은 중급 게이트와 상급 게이트인 주제에 규모만 놓고 보면 특급 게이트급 문제를 야기했다.

“따라서 피해가 커지기 전에 헌터님께 미리 도움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생각을 재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반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마쳤다. 나는 바로 입을 열지 않았고, 식당 안은 차가운 침묵에 잠겼다.

남극에 비밀기지 짓고 처박혀 살던 미치광이 예언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번 일도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낙원은 이득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쪽으로 흘러가겠지.

나는 그날엔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나머지 두 사건 땐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중급 게이트와 상급 게이트였다. 둘 다 웨이브가 아닌 던전이었고, 내가 나설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아, 그렇구나. 극야는 일단 내가 나서지 않고, 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일에만 나선다.

객관적으로 퍽 수상했다.

운동화 앞코가 반들반들한 식당 바닥에 툭툭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식당 안의 모두가 내 답변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전면에 나서는 것. 참여하지 않을 일에 참여하는 것. 다 좋다고 해 보자고.

근데 굳이 새벽을 도울 이유는 없지 않나. 어차피 나야 누가 이득을 보든 상관없는 부분인데.

낙원 놈들이 지금까지 비정상적인 이득을 취했다고 해도, 그게 내게 해가 되는 건 아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게 좋은 일일 수도 있었다. 저쪽에 좋은 일 한 번 더 생기면 저쪽이 길드 랭킹 1위 먹는 것 아님? 새벽이 독주하는 것도 막고 일석이조네.

다만, 하나 걸리는 것은⋯⋯.

‘수억 개의 별을 건너 당신을 다시 뵙습니다, 나의 왕.’

그게 보통 또라이가 아니었다는 점인데.

게다가 나보고 왕이라고 했어!

그게 얼마나 소름 돋았는지 그 예쁜 얼굴과 함께 머리 한구석에 딱 박혔다.

퍽 기껍지 않은 새벽이냐, 아니면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는 사이비냐.

부우웅 소리를 내며 진동하는 휴대폰이 적막을 깨고 고민도 깼다.

나는 엄마의 답신이 도착해 있을 휴대폰을 꽉 쥐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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