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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18화 (18/175)

제18화

사이비 측과의 불편한 만남은 영문 모를 헛소리만 잔뜩 듣고 오는 걸로 끝이 났다.

길드 영입 제의하려고 부른 건 맞는지 낙원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소리를 들었는데, 내가 미쳤다고 거길 가냐.

나는 극야 면전에서 시원하게 그를 깠다. 예쁜 얼굴이 다시 울망울망 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존재만으로 분위기 팍 깨는 네정좋이 우릴 줄곧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 다른 길드 가지 마세요.”

부른 주소에 맞춰 날 이동시켜 준 네가정말좋아가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네정좋의 팝콘을 몇 개 집어 먹으며 물었다.

“왜요?”

“길드장님이 너무 불쌍해요. 이제 전하한테 친한 척 말 걸어도 된다고 좋아했는데 면전에서 차였어요.”

“그건 그쪽 길드장 사정이지 제 사정 아니잖아요.”

“전하 사정은 아닌데 슬프게도 제 사정은 맞아요. 전하가 다른 길드에 가게 된다면 저는 본의 아니게 전하를 스토킹하게 될지도 몰라요.”

뼈마디가 긴 손이 제 팝콘 통으로 향하는 내 손을 막았다.

나는 대놓고 스토킹 선언을 하는 네가정말좋아를 길게 노려보다가 그가 들고 있는 팝콘 통을 뒤집어엎었다.

그러자 그가 세상 잃은 대왕 토끼 같은 얼굴로 팝콘 통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폭군.”

“방금 뭐라고 하셨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쏟아진 팝콘 앞에 쪼그려 앉은 네가정말좋아가 상심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네가정말좋아의 정수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줄곧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런데 낙원에는 왜 계속 있는 거예요? S급 헌터에 벽막도 아니니까 나중엔 낙원 길마보다 더 세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자기 길드 세우는 게 더 좋지 않아요? 낙원은 다른 길드랑 달라서 간부라고 이권이 있거나 하진 않잖아요.”

실제로 이권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지만, 사이비 종교 베이스는 교주만 꺼-억 하는 거니까 대충 추리해 봤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닌지 네가정말좋아는 내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저는 그분께 은혜를 입었어요.”

“헌터님은 검은 머리 짐승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그분이 그리는 미래는 완벽해요. 한 치의 틈도 없고, 오차도 없어요. 저는 그 미래의 세 번째 NPC예요. 우리는 그분의 바람에 따라 전하를 위한 낙원을 만들 거예요. 그러기 위해 우리가 모인 거예요.”

목소리가 단어 끝마다 느릿느릿 끌렸다.

아까부터 자꾸 자기가 NPC임을 강조한 네가정말좋아가 땅바닥에서 구르는 팝콘의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그게 다예요?”

두 손 꼭 모아 기도하던 그가 내 말에 눈을 떴다. 우물거리는 입술을 보니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다는 아니에요.”

“그럼 또 뭔데요? 저 진짜 궁금하거든요. 완전 이상한데 따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잖아요.”

네가정말좋아의 무표정한 낯 위로 곤란함이 스몄다.

나는 아파트 복도에 뿌려진 팝콘을 다시 주워 팝콘 통에 넣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한참을 그렇게 묵묵부답으로 있던 네가정말좋아는 치즈 시즈닝 향기가 진동하는 팝콘 통에 얼굴을 박고 짧게 대답했다.

“예쁘잖아요.”

“예?”

“길드장님 얼굴 보면 근심이 사라져요.”

……?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나는 멍청한 얼굴로 네가정말좋아를 바라보며 눈만 깜빡였다. 네정좋은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진지해 보였다.

“전하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는 전하가 그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면 홀라당 넘어가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

“존경해요.”

날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인 그가 내게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아주 그냥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 그…… 저도 넘어갈 뻔하긴 했는데요, 그쪽이 분위기를 싹 다 박살 내서 못 넘어갔습니다.

“아무튼 길드장님을 차셨으니까 조만간 또 뵙게 되겠네요.”

“스토킹하시면 경찰에 신고할 건데요.”

“⋯⋯다음에는 헌터님 말고 주하라고 불러 주세요.”

네정좋이 자기 PR을 하고 사라졌다. 내가 열심히 줍던 팝콘과 함께 떠나갔다.

그, 뭐냐. 환경을 보호할 줄 아네. 쓰레기를 함부로 만들지 않는 친환경적인 헌터네.

나는 치즈 시즈닝 향기가 머무는 아파트 복도에 서서 그와 나눴던 대화를 곱씹었다.

그러니까 은혜를 입은 것도 있긴 한데, 근심이 모두 사라지는 얼굴 때문에 거기 있는 거다?

결국 얼굴에 홀랑 넘어간 상태다? 뭐야, 그럼 결국 얼굴로 광신도 만든 거잖아.

나는 그 뒤로도 아파트 복도에 멍청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빛나는 얼굴의 위대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 *

S급 헌터가 된 지 이틀째, 내 인생은 놀랍게도 변화가 없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헬조선이 됐다지만, 영입을 위한 주거지 침입이 허용되는 건 아니다. 그랬다간 잡혀간다.

도덕 없고 법 없는 낙원과 네가정말좋아 같은 애들 빼고.

어제는 아파트 복도까지 데려다준 네가정말좋아 덕분에 다른 헌터들을 피했다.

오늘도 밖에 나가면 그 인간들을 보겠지? S라는 등급에 혈안이 된 인간들이니까 당연히 따라오겠지.

S 하나 물면 길드 랭킹이 쭉 상승할 테니까.

현 5위인 일연도 S 하나 물면 바로 3위가 될 수 있다.

그러면 3위인 백천은 얼마나 더 간절하고, 1위인 새벽은 또 어떻겠어.

나는 랭킹에 목숨 거는 헌터들이 참 안타깝다고 생각하며 김밥 햄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

“그만 먹어! 너 어젯밤에 또 김치찌개 고기 건져 먹었지!”

헉, 몰래 먹는다고 먹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나는 예쁘게 썰린 계란 지단을 두 개 훔쳐서 방으로 후다닥 도망 왔다.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이 만들어 낸 등수 폐해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복병이 발생했군. 다음에는 조금 덜 건져 먹어야겠다.

나는 메시지 세례에 곤혹을 겪고 있는 신 단말기를 곱게 모셔 놓고 구 단말기를 들었다.

헌터 협회 직통 메시지를 알리는 보랏빛 아이콘이 메신저 창에서 깜빡거렸다.

얼마 전에 던전 들어갔다 왔는데 왜 또 호출이래.

외부 차원 정보 수집에 협조하기로 한 건 맞지만, 자주 일하기는 싫다.

나는 스미스 아저씨의 메시지를 쿨하게 무시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헌터가 가입한 한국 헌터 협회 공홈 자유게시판은 새 S랭의 등장이 몹시 핫했다.

그렇지. 첫 랭킹이 35위인데 얼마나 궁금하겠어.

나는 훔쳐 온 계란을 야금야금 삼키며 ‘[HOT] 근데 새 S급은’을 열었다.

20xx-04-23 12:17 조회:1,632 추천:68

[HOT] 근데 새 S급은

작성자: 룰렛(무소속)

왜 하루 지났는데 어디 갔단 소식이 없음?

길드 들갔으면 발표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글고 길드 들갔으면 랭킹 올려 주려고 길드에서 당장 던전 끌고 갔을 거 아냐.

설마 새 스급 핑거프린스 동경해서 핑거프린스 따라 하는 건가?

전.설.의 레.전.드 힘.숨.찐 손.가.락.테.크.닉을?

오대 길드 빨리 나와서 암거나 말해 보셈. F랭 무소속은 새 스급 현황이 너무 궁금해요ㅇㅅㅇ

댓글(53)

제라늄(새벽): 새벽 등장!

ㄴ 룰렛(무소속): 스급 새벽 들감?

ㄴ 제라늄(새벽): ㄴㄴ 울 공대장 영입하려고 발로 뛰고 있음 근데 소식 없다

비익연리(일연): 어제 집 밖으로 나왔는데 네가정말좋아가 따라다니고 있더라.

ㄴ ㅇㅇ: 진짜?? 너정ㅈ이 따라다닌다고? 그럼 찐 낙원각인가

ㄴ ㅇㅇ: 않이 너정말ㅈ같아가 따라다닌다굽쇼? 너정ㅈ 드디어 미쳤나? 새 스급 극야보다 예쁨??

ㄴ 네가정말좋아(낙원): ㅗ

예쁜이름(백천): 본인 어제 영입하러 갔다가 초코우유랑 짬뽕만 먹고 돌아옴

ㄴ 초코우유(새벽): 거기 맛집이더라

ㄴ ㅇㅇ: 말만 하지 말고 공유 ㄱㄱ

아기천사(사헌): 새 스급 울 길마님이랑 약속잇다 ㅋ_ㅋ

ㄴ ㅇㅇ: 읭 스급 사헌 들감?

ㄴ 룰렛(무소속): 읭 네가정말좋아가 따라다니는 거면 젊을 텐데 사헌을 들어가?

ㄴ ㅇㅇ: 어르신 여기서 약 파시면 안 돼요;

러브리스(낙원): 울 길마님 어제 차였어

ㄴ 네가정말좋아(낙원): 맞아 내가 봤어

ㄴ 제작왕(대나무숲): 헐랭; 그럼 진짜 사헌 가나 부다;

ㄴ ㅇㅇ: ???? 극야를 직접 보고도 극야를 찼다고??? 나는 극야 실물로 보면 절대 못 찰 것 같은데???

ㄴ ㅇㅇ: ????????????????

ㄴ 백설(노네임): 새 스스급 극야급 미모 실화?

ㄴ ㅇㅇ: 찐이면 나 팬클럽 만들러 감

⋯⋯

뭔데. 게시글 꼬라지 왜 이래.

나는 절로 구겨지는 표정을 느끼며 계란 지단을 우걱우걱 씹었다.

방 밖에서 엄마가 김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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