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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15화 (15/175)

제15화

새카만 공간에 흩뿌려진 별빛, 허공에 떠 있는 정이십면체 플라네타륨이 그리는 우주.

새카만 공간 모든 곳에 별이 있었다. 별이 빛나고 은하수가 흘렀다.

우주에 나가 별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매 초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생기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예쁘죠?”

별이 없는 새카만 어둠 사이에서 진홍색 홍채가 빛났다.

나는 내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네가정말좋아를 향해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경찰에 신고해도 돼요?”

“갑자기요?”

“납치범을 신고하는 거니까 갑자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내 말에 네가정말좋아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잘 정돈된 검은 머리가 까치집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도 조금 더 정중하게 모시고 싶었는데⋯⋯.”

“싶었는데?”

“근처에 반서준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네가정말좋아가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에 반서준이 있었다고? 난 못 봤는데. 내가 못 볼 정도면 근처가 아닌데?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네가정말좋아로부터 두 걸음 멀어졌다.

그러자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짝 쳤다.

“지금 정식으로 인사 안 해서 화나신 거죠? 구면이라 인사 안 했는데 지금 할까요?”

“예? 저희 구면 아닌데요. 제가 일반인이었는데 어제 막 각성을 했거든요. 그래서 헌터님 같은 분 모르는데요.”

“왜 그러세요, 군신 님. 저번에 한 번 뵈었잖아요. 그때도 분명 인사를 드렸었는데, 그런 거지같은 인사할 거면 뒈지라고 대검을 휘두르신 걸로 기억해요. 삼라만상의 위광을 두르신 분, 위대한 옛 지배자를 마주하신 분, 일곱 악의 권능을 삼키고 일흔두 체의 신 위에 서실-”

“악! 아악!! 으아아악!!!”

거지같은 인사!

낙원 미친 사이비 놈들의 돌아 버린 인사!

나는 소름 돋는 말을 지껄이는 네가정말좋아를 향해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신체 강화 S++랭으로 일반인의 한계는 물론 몬스터의 한계도 넘은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미친 또라이의 수하, 네가정말좋아는 내 발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둠 곳곳으로 스며들어 말을 이었다.

“-분, 조각난 차원을 잇고 지고한 옥좌에 앉으실 분, 외우주로부터 도래한 이적에 맞서 내우주를 구원하실 분⋯⋯.”

“그거 대체 어디까지 가요?”

“거의 다 왔어요. 그 누구보다 위대하고 영광된 차원왕께 당신의 세 번째 신하, 유주하가 인사 올립니다.”

“끝났어요?”

“네.”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네가정말좋아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나는 차원왕이고 뭐고 이상한 소리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이 길드에서는 그런 거 세뇌해요?”

“아니요.”

“그럼 그런 건 누가 알려 줬어요?”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편 네가정말좋아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플라네타륨이 내는 별빛이 네가정말좋아 근처에만 가면 눈 녹듯 녹아 사라졌다.

몽롱한 진홍색 눈이 새카만 어둠 안에서 홀로 빛을 발했다.

“전하는 차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전하 아닌데요.”

“⋯⋯폐하는,”

“폐하도 아닌데요.”

“핑거킹 님은,”

“저는 손가락테크닉 님이 아닌데요.”

“⋯⋯.”

네가정말좋아가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입을 굳게 닫았다.

나는 내 철옹성 같은 철벽에 만족하며 메신저를 다시 켰다.

사람 불러 놓고 코빼기도 안 보이는 몹쓸 인간에게 뭐라고 할 셈이었다.

“차원은 별에 비유할 수 있어요. 차원계는 수없이 많은 별의 모임이고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전 그냥 여기 길드장님을 뵙고 싶은데.”

“저는 관문에 서 있는 NPC라서요. 제가 하는 말씀 다 들어 주시면 길드장님을 뵐 수 있어요.”

“이거 길드장이 시켰죠?”

“네.”

네가정말좋아는 아주 단호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아주 조금 불쌍해졌다.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니까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지.

자기 종교 교주도 아닌 사람한테 저런 이상한 인사하고 다니기 얼마나 힘들겠어.

나는 넓은 마음으로 그의 헛소리를 들어 주기로 했다. 사실 극야가 메시지를 자꾸 씹었다.

“어디 한번 말씀해 보세요.”

“차원은 별이고 차원계는 별의 모임이라고 말씀드렸었죠. 인간에게 쌍둥이가 있듯이, 가끔 별도 쌍둥이별이 있어요. 그리고 그건 원래 하나여야 할 별이 둘로 갈라진 것이기 때문에, 두 별은 하나가 되길 원하죠.”

왼손 검지와 오른손 검지를 든 그가 두 손가락을 얽었다. 나는 그에게 계속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까딱였다.

“지금 저희 차원을 침략하고 있는 일곱 왕의 차원은 저희 차원의 쌍둥이 차원이에요. 별 간 간섭은 원래 철저히 막혀 있지만, 그 별과 우리 별이 쌍둥이 별인 탓에 그들은 우리에게 예외적으로 간섭할 수 있었죠. 하지만 쌍둥이 별이라 해도 엄연히 다른 별인 만큼, 그들은 우리 차원에 들어올 때마다 큰 간섭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보다 나은 방식을 고안했죠. 뭐일 것 같으세요?”

“음. 게이트요?”

“맞아요.”

검지 두 개를 이어 붙여 하트를 만든 그가 정답을 맞힌 유치원생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그 뒤로도 길게 이어졌다.

“일곱 왕의 군단은 우리 차원에 넘어올 때마다 아바타를 만들어 넘어와요. 아바타는 자신이 가진 것 중 하나를 걸어야만 만들 수 있고, 큰 것을 걸수록 간섭을 덜 받게 돼요. 그래서 약한 개체는 발톱이나 피부 조각 같은 작은 것을 걸고 넘어올 수 있지만, 군단장쯤 되는 강한 개체는 왕의 권능에 비견할 무언가를 걸어야만 넘어올 수 있죠. 전하가 가진 그것 말이에요.”

“아바타를 만들어서 넘어온다는 건 저희가 그들을 아무리 죽여 봤자 그들은 진짜 죽은 게 아니라는 소리네요.”

“맞아요. 저희는 전쟁 중에 섬멸한 군단을 지금도 반복하여 섬멸하고 있잖아요? 그들이 게임 데이터도 아닌데 어떻게 무한의 군단을 이루겠어요. 다 아바타를 죽이기 때문에 그런 거죠.”

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몬스터를 죽여서 얻는 전리품은 그들이 우리 차원에 넘어올 때 걸고 들어온 거네?

그들은 아바타가 죽으면 건 것을 잃는 거고, 우리는 그 잃은 걸 줍는 거고.

어쩐지 게임이랑 다르게 보상이 들쑥날쑥하다 했다.

게임은 몬스터를 잡으면 똑같은 전리품이 떨어졌지만, 현실의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아 얻는 전리품은 같은 개체라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개체는 꼬리를, 어떤 개체는 장비를, 어떤 개체는 또 다른 특성을, 어떤 개체는 몸 전체를 남겼다.

저 중에서 가장 좋은 건 새로운 특성이었다. 특성은 오직 각성과 사냥으로만 얻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왕들이 서로 싸우고 있기에 게이트가 뜸한 편이지만, 얼마 안 가 다시 특급 게이트가 나타날 거예요.”

“장담할 수 있어요?”

“네. 별의 융합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간섭을 덜 받게 될 거고, 인간과 가까워질 거예요. 인간의 형태를 취한 몬스터가 늘어날 거고, 인간과 대화를 하려는 몬스터도 나타날 거예요. 그리고 전쟁이 벌어질 거예요. 아주 큰 전쟁이.”

회전하는 정이십면체 플라네타륨이 변함없이 별을 그렸다.

나는 허공에 떠서 별처럼 빛나는 그것을 길게 응시하다가, 다시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을 관문 NPC라고 소개한 그는 졸린 듯 하품을 하고 있었다.

“제 임무는 여기서 끝이에요. 말하라는 거 다 말했어요.”

“일방적으로 말씀하시고 대화를 종료하시면 어떡해요.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씀해 보세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새 극야로부터 온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며 물었다.

“이런 건 어떻게 알고 계세요? 헌터 협회 본부랑 차원 과학자들도 모르는 내용일 텐데.”

“헌터 협회 본부라면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들었어요.”

“아까 하신 말씀 다 사실이에요? 미래에 전쟁이 터질 거라는 것도?”

“네. 저도 들은 거지만 사실이에요.”

졸린 듯 눈을 깜빡거린 그가 제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건데 어떻게 확신을 하세요. 직접 보신 것도 아니고.

되게 엄청나고 믿기 힘든 걸 기껏 알려 줘 놓고 사람의 신뢰를 못 얻는 재능이 있으시다.

마피아 게임 하면 완전 퍼스트 블러드 낙점일 상이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믿는 게 좋을 거예요.”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믿음이 안 가는데요.”

“사이비 아니에요. 늘 한발 앞서 있기 때문에 사이비로 보일 뿐이지.”

“그럼 아까 하신 인사말은 뭔데요. 그거 완전 사이비 같았는데.”

“신하가 왕을 섬기고 찬미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배웠어요.”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저한테 하시는데요. 헌터님 사이비 종교 교주한테 하셔야죠. 길드장님 계시잖아요.”

아 진짜 답답해서 대화 못 하겠네. 동문서답도 한두 번이지 계속하면 속 터진다.

사이비 종교 그거 상종도 하면 안 되는 거라면서요.

제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곳에 끌려와서 언어 고문을 당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나는 열 오른 눈 위를 꾹꾹 누르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왕년에 절 다닌 짬밥으로 불경을 외면 저 이단을 퇴치할 수 있을까.

아니지. 저건 보통 이단이 아니라서 내 급으론 퇴치가 불가능할 거다.

역시 진짜 스님을 모셔 오는 수밖에.

나는 조만간 스님이든 무당이든 교회든 성당이든 어딘가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 사이비 종교에서 ‘몬스터도 어쨌든 생명이에요. 나 살자고 살아 있는 몬스터 죽이는 짓 안 할래요.’ 같은 기적의 논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저 낙원교 때문에 엄청난 피해가 생기겠지.

엄마가 헌터 그만두라고 하겠지.

낙원교가 쏘아 올린 작은 불꽃이 애꿎은 헌터를 죽입니다.

나는 사이비 종교 클린 캠페인에 강한 지지를 표명할 것을 다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가는 문을 찾기 위해서였다.

“여기 출입구 없어요.”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눈만 깜빡이던 네가정말좋아가 시커먼 공간에서 벽에 머리를 쾅쾅 부딪치는 날 보며 말했다.

나는 순간 울컥 올라오는 억울함에 잽싸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어차피 제가 데리고 나갈 테니까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게 말이야 방구야.

나는 사람 혈압 올리는 데 재능이 있는 그를 보며 뒷목을 잡았다.

조만간 홧병으로 쓰러지면 그건 다 저 인간 때문이었다.

“그럼 나가게 해 주세요.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보내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건 곤란할 것 같아요. 길드장님이 데리고 오라고 하셨거든요.”

빛나는 플라네타륨 앞으로 다가간 네가정말좋아가 플라네타륨을 잡았다.

방 안을 주회하던 별빛이 사라지고, 이윽고 온전한 밤이 찾아왔다.

진득한 빛깔의 진홍색 눈이 새카만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났다.

나는 이 엿 같은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방의 벽을 발로 깠다.

그러자 쾅 소리와 함께 벽 한쪽에 큰 구멍이 뚫렸다.

벽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구멍으로 뼈를 얼릴 듯한 냉기가 쏟아졌다.

거세게 치는 바람이 공간을 가득 메웠고, 구멍 사이로 보이는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설원은 눈이 멀듯 눈부셨다.

아니 이게 무슨-

“⋯⋯여기 남극인데.”

점멸하는 시야와 함께 땅이 다시 푹 꺼졌다.

나는 저 미친 사이코 새끼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으며 조금 전에 온 메시지를 떠올려 냈다.

[극야] ▶ 벽을 부수시면 곤란해요.

아니 쓰벌 길드 영입하러 왔으면 길드 건물에 데려가야지, 남극에 데려오는 미친 새끼들이 어딨어.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쌍욕을 씹어 삼키며 주먹을 쥐었다.

오늘 누구 하나 죽이고 감옥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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