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초코우유>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네가정말좋아>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낙화유수>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비취>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자연드림>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극야>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난리가 난 헌터 협회 건물을 바람같이 빠져나와 팔찌를 다시 차니 말도 안 되는 개수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S급에 이렇게 핫한 반응이 이는데 손테인 걸 깠으면 어떻게 됐겠어. 전 세계가 터졌겠지.
근데 잘 생각해 보면 S도 별거 아니었다.
초기 랭크가 S라는 건 잘하면, 아아아아주 잘하면 S+도 노릴 법하다는 말이다.
최종적으로 판정받은 세계 랭킹이 권외여서 이 정도인 거지, 세계 랭킹까지 들었으면 아주 그냥.
나는 우연으로도 손테급 핫스타가 되는 불길한 상상을 하며 부르르 떨었다.
사실 헌터라는 직업이 나라의 위신과 존망을 결정하는 직업인 만큼, 헌터의 인기 자체는 아이돌보다 많았다.
왜, 오죽하면 학생들 장래 희망 조사서 1위가 헌터고 2위가 유튜버겠어.
그래서 국내 20위 이상 랭커쯤 되면 팬클럽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었다.
그럼 정체불명 신원불명의 손가락테크닉은 어떠냐고?
어휴, 손가락테크닉은 말할 것도 없지. 거기 팬클럽 회장 새벽 길마다.
애초에 팬클럽 활동을 전 세계에서 가장 요란하게 하는 곳이 손가락테크닉 팬클럽이었다.
세계 3위, 국내 2위나 되는 초 하이랭커 반서준 씨는 인생의 전부를 손가락테크닉 하나에 건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열성적인 활동을 벌이고 계셨는데, 개중에서 가장 기막힌 건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손가락테크닉 본인의 인터뷰 하나 없는 다큐멘터리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심지어 그 인간은 강남에 극장 하나 지어 놓고 거기서 하루 종일 손가락테크닉 다큐멘터리 무료 상영을 했다.
그게 또 웃긴 게,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손가락테크닉의 이명을 딴 군신 극장은 관광객들이 들리는 필수 코스가 되고 말았다.
야 이 개XX야!!
돈 많은 오타쿠는 그 어떤 오타쿠보다 무섭다.
나는 이번에 손가락테크닉 팬클럽 창설 5주년을 맞아 영화를 하나 만들겠다는 소식을 접하고 앓아누울 뻔했다.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배우로 최고의 예산을 써 만들겠다던데, 나는 저 인간이 제정신 박힌 인간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한테 그 영화 꼭 봐 달라고 메시지 보낸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러게, 새벽 길드 가입 필수 조항 중에 ‘손가락테크닉 팬클럽 가입’ 조항이 있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다들 단순 찌라시라고 취급했던 그 정보는 입 가볍기론 따라갈 자가 없는 새벽 길드의 ‘제라늄’이 방송에 나와 시원하게 인정하며 그 실체를 드러냈다.
예. 새벽 길드 가입 필수 조항에는 ‘손가락테크닉 팬클럽 가입’이 있습니다. 활동 잘 안 하면 길드장이 갈굽니다.
정말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반서준의 미친 짓과 새벽 길드의 헛짓거리에 눈물지으며 티비를 껐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새벽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지.
지금 생각해 봐도 몹시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손가락테크닉이 나고 내가 손가락테크닉인데 내가 어떻게 손가락테크닉 덕질을 해.
제라늄이 그랬는데 반서준은 손가락테크닉에 미친 새끼라서 틈만 나면 영상이랑 짤을 돌려 본다고 했단 말이야. 그게 벌써 3테라라고 했단 말이야.
방송 나왔을 당시에 3테라라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5테라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라면 ‘에이, 설마’ 이랬겠지만, 그 새끼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그런 반서준한테 늘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한 게 딱 하나 있었다.
반서준은 왜 손가락테크닉을 좋아하는 걸까. 단순히 이상형으로 보여서?
아니면 내가 예전에 구해 준 적이 있어서?
이상형이라는 건 단지 취향일 뿐이니까, 특출하게 이상하지 않은 이상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구해 준 것도 뭐, 그렇게 대단한 만남은 아니었다. 진짜로.
나는 반서준한테 대체 뭐로 보이는 걸까?
언제나 궁금했다. 그렇지만 답을 알 수는 없는 의문이었다.
[자연드림] ▶ 헌터 등록을 했나 보네요. 연희 양. S급 헌터가 된 걸 축하해요^^
무서운 생각 그만하고 메시지 처리부터 하자.
나는 수많은 메시지 중 가장 무서운 사람의 메시지를 먼저 보았다.
이 아줌마 메시지에 대답 안 했다간 ‘하는 것도 없는 게 어디서~’ 로 시작하는 메시지 폭탄이 온다.
난 저 아줌마가 나한테만 그러는 이유가 뭔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 던전 스틸범이라 그런가.
감사합니다. ◀ [우연]
하지만 핑거킹은 핑거킹이고 우연은 우연인 법.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정중함을 끌어모아 답장을 보냈다.
말끝에 마침표를 붙이다니. 휴, 너무 정중하다.
[자연드림] ▶ 연희 양을 하루빨리 초대하고 싶지만, 길드 광고 촬영이 있어서 광고 촬영 이후에 길드에 초대하려고 해요.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을게요. 그동안 다른 길드 가입하면 안 돼요*^^*
ㅋ랑 ㅡ.ㅡ 없는 자연드림의 메시지라니. 꿈인가.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답장했다.
기다리고 있겠다는 심플한 답장이었다.
[<라이언>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바깥>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적월맹약>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답장을 보내는 동안에도 메시지가 폭풍같이 쇄도했다.
나는 어느새 999+가 된 메시지를 보며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손가락테크닉에는 되레 몇 개 안 오는데, 우연으로는 엄청나게 오네.
낙원이 점찍은 S급을 영입하려는 길드들의 열기가 한여름의 태양과도 같았다.
낙원이 점찍은 헌터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대성한다.
F급에서 S급이 되어 극야의 최측근이 된 네가정말좋아, 국내외 최고 장비 제작자 루트, 감지 및 판정 특성을 개화해 협회 본부로 간 멜팅하트도 다 낙원 소속이었다.
협회 본부라고 하니까 갑자기 스미스 아저씨 생각나네. 이중 단말기 썼으니까 조만간 본부로 불려가겠다.
단말기를 이용한 시스템은 얼핏 보면 내가 막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고, 막 신이 내린 판소 각성자 같고 그렇지만, 사실 그런 건 아니었다.
이 단말기는 각종 특수 특성을 지닌 헌터들의 합작으로, 헌터 협회 본부에 있는 특수 특성 헌터들은 종일 단말기 개조와 보완에 매달려 있다.
각국의 헌터들이 클리어한 던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단말기를 가진 헌터들의 능력과 던전 부산물의 랭크도 판정하고, 최종적으로 언제 있을지 모를 외부 차원의 침략에 대비한다.
약간 전대물 사령부 같은 느낌?
그러니 각성자가 정체를 숨길 수는 있어도 힘을 숨길 수는 없다.
정체도 뭐, 그들은 대충 다 짐작하고 있지 않을까?
일단 총장 아저씨는 날 안다. 협회 내에서도 내 정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사고 치면 맨날 불려 가서 밥 먹고 술 까는 사이였다.
게임이나 판소처럼 자동으로 판정되고 자동으로 갱신되고 그랬으면 참 좋았겠지만, 여긴 엄연히 현실이다.
우리 차원을 침략하는 군단도 우리가 편의상 몬스터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은 몬스터가 아니다.
그들은 외부 차원의 거주민이며 지적 능력 또한 있다. 사실상 외계인에 가까운 이들인 것이다.
과학자들에 의해 이 사실이 밝혀진 후로 외계인 미스터리 및 신앙 분야가 아주 핫해졌다.
그건 사이비인 낙원이 대놓고 활동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자연드림 윤 선생님의 메시지를 닫고 다음 차례로 사이비의 왕중왕 극야의 메시지를 열었다.
[극야] ▶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모시러 가겠습니다.
순간 심장이 덜컹 소리를 낸 것 같았다. 아니, 만나 본 적도 없는 이 사이비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국도에서 시속 200km로 달리다가 사고를 내면 이런 심정일까. 어우.
운전대를 잡은 것도 아닌데 추돌 사고로 난리가 난 미래가 그려졌다.
뭐야. 저 사이비 교주 놈. 내가 손가락테크닉인 건 어떻게 안 거야.
멜팅하트가 발설했나?
아니. 멜팅하트는 본부 소속이라 비밀을 발설하려는 생각만 해도 저주 특성 헌터가 건 저주 때문에 백치가 되어 버릴 텐데.
미래를 본다는 말이 정말인가, 아니면 이 시대의 진정한 지능범인가.
나는 소름이 돋은 팔뚝을 벅벅 긁으며 극야의 메시지를 닫았다.
극야한테 이따위 메시지가 왔으니 네가정말좋아한테도 무슨 메시지가 왔을지 확인해야 한다.
아니면 내 정체가 들통 나고, 내 인생이 개망하고, 이 세계가 난리 나고, 이 우주가 폭발하고, 이 차원이 파괴되고!!
[네가정말좋아] ▶ 아래 보세요.
그러나 네정좋의 메시지는 급히 서둘러 연 것 치곤 별거 없는 말이었다.
나는 떫은 표정으로 네가정말좋아의 메시지를 길게 노려보다가, 메시지의 말대로 아래를 보았다.
일순간 현기증이 일며 땅이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이 났다. 미친, 이거 설마 특성을 이용한 인간 초대 방법⋯⋯.
“어서 오세요.”
이라고 생각했을 땐 이미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