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헌터는 보통 둘로 나눌 수 있다.
정식 헌터와 불법 헌터.
그중 정식 헌터는 협회에 각성자 등록을 한 헌터들이다.
그들은 단말기를 받을 수 있고, 길드에 들어갈 수 있고, 또한 양지에서 활동할 수 있다.
대다수의 헌터가 정식 헌터에 속한다.
거기서 정식 헌터는 또 정부 헌터와 그냥 헌터로 나뉜다.
정부 헌터는 공무원처럼 정부에 소속돼 일하는 헌터들이고, 게이트가 예상치 못한 곳에 열렸을 시에 시민들을 구출하는 일을 한다.
얼마나 실적을 올리든 나라에서 받는 연봉은 똑같으므로 보통 낮은 랭크의 헌터들이 정부 헌터에 지원한다.
고랭크 헌터나 특별한 능력이 있는 헌터들은 정부 헌터보단 길드에 속하는 쪽을 선호한다.
헌터들이 만드는 길드는 가지각색으로, 기업과 결탁해 살림을 꾸리는 길드가 있는가 하면 상상도 못 할 범죄를 저지르는 길드도 있다.
주로 불법 헌터들이 그런 일을 많이 하는데, 길드에 속한 헌터는 대체로 수입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정부 헌터가 숫자가 좀 적은 거고.
아! 길드도 정식 길드가 아닌 불법 길드가 있다.
협회에 각성 사실을 알리지 않은 불법 헌터들이 만든 불법 길드는 정말 말 그대로 불법적인 일들을 한다.
몬스터의 부산물을 불법으로 사고파는가 하면, 대부 업체와 결탁해 빚쟁이들을 협박하고, 심지어는 암살 의뢰까지 받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불법 길드는 ‘블랙 머더러’라는 이름의 길드로, 세계 각국 으슥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어 블퀴벌레라는 별명을 얻었다.
블퀴벌레의 원산지인 미국에서 블퀴벌레 소탕에 나섰다는 기사를 봤는데 소탕에 실패한 건지 후속 기사는 없었다. 하여간 지독한 놈들이야.
블퀴벌레와 같은 불법 헌터들은 보통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던전이나 웨이브에 진입한 이후에 헌터 노릇을 하려면 단말기가 꼭 필요한데, 그들은 협회에 각성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니 단말기가 없는 탓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청탁과 도둑질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
불법 헌터 중에는 헌터 협회로부터 단말기를 빼돌려 사용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단말기만 있으면 랭크도 알 수 있고 헌터 마켓도 이용할 수 있고 심지어 랭킹에까지 오를 수 있으니 얼마나 탐났겠는가.
그래서 헌터 협회는 GPS가 없는 구형 단말기 생산을 중단하고 신 단말기를 개발했다.
그래도 개조하는 애들은 잘만 개조하더라.
단말기 지급은 각성자의 가벼운 신상 정보 제공을 원칙으로 한다.
국가와 이름, 생년월일만 알려 줘도 단말기를 지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저거 알면 누군지 다 안 거지.
그러나 막 전쟁이 터졌을 땐 또 달랐다.
하나의 거대하고 광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빅 데이터 능력자 아서 스미스가 만든 단말기는 각성자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졌고, 누가 가져갔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각성자를 던전과 웨이브에 밀어 넣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초기 각성자들은 랭킹에는 있어도 신상 정보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니 길드를 만들고 세력을 구축하느라 먼저 밝힌 사람을 제외하곤 아직도 그 사람들이 누군지 모른다는 소리다.
나 말고도 100위 안에 한 세 명쯤 있을걸? 그런 사람.
단말기 저거 초창기에는 던전에 가지고 들어가도,
[¿에 $□£¥$○$니■다]
같은 거나 떴는데 점점 발전하더니 요즘엔 무슨 왕 무슨 군단 무슨 사단인지까지 다 알려 준다.
정보 수집도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한데 그래도 무슨 왕 무슨 군단인지까지는 알려 준다.
세상 참 좋아졌어.
나는 박하사탕을 오독오독 씹으며 각성자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데스크에 앉은 직원이 웃으며 단말기를 건넸다.
“처리되셨어요. 받으신 단말기 켜고 사용자 등록해 주신 뒤 오른쪽 랭크 판별실로 가 랭크 확인하시면 됩니다.”
내가 가진 1세대 단말기가 아닌 간지나는 3세대 단말기를 받았다.
3세대 단말기는 손목에 차면 되는 팔찌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 광채가 참 예사롭지 않았다.
와, 어쩐지 다들 단말기 신형으로 바꾸더라.
[사용하실 닉네임을 정해 주십시오.
*한 번 정한 닉네임은 바꿀 수 없습니다.]
허공 위로 창이 떴다. 귀찮게 자판 칠 일을 줄인 건가.
던전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런 식으로 뜨게 만들어 놨구나.
나는 금세 발전한 기술력에 놀라워하며 발을 옮겼다.
닉네임은 뭐로 하지. 저번처럼 이상한 거로 했다간 큰일 나는데.
적어도 엄마 입에서 망측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닉네임으로 지어야 한다.
차라리 그냥 이름으로 할까? 어차피 길드 들어가면 신상 다 밝혀질 텐데.
나는 새 닉네임을 열심히 고민하며 랭크 판별실의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늘 각성 신고를 하러 온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지 번호표를 뽑아야 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단말기는 받고 오셨나요?”
친절함이 끝내주는 수준에 달한 헌터 협회 직원이 단말기 확인을 요구했다.
나는 직원에게 팔목에 건 단말기를 보여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닉네임은 등록하셨을까요?”
“네. 했어요.”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특성 창 열어서 특성도 한번 확인해 주시고요.”
특성 창?
구 단말기면 화면 누르면 되지만 이 팔찌로 특성 창을 어떻게 열어?
나는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작은 보석이 박힌 팔찌를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며 특성 창 소환을 기원했다. 이게 아닌가.
“아, 특성 창은 그냥 입으로 말씀하시면 열려요. 마켓이나 랭킹 창도 마찬가지예요. 다 말씀해 주시면 열릴 거예요.”
아니 그 설명을 지금 해 주시면 어떡해요. 지금 제가 한 게 뭐가 됩니까.
누가 보면 팔뚝 살 제거 운동 중인 인간 파닥맨으로 알았을 거다.
저것 봐, 저기 있는 다른 직원도 날 보면서 웃고 있잖아.
“특성 창.”
[<보유 특성 일람>
*강화계
신체 강화(S++)
*권능
분노왕의 추락(?)
색욕왕의 화형(?)]
특성 창을 부르자 정말로 특성 창이 나타났다
이야, 신기하네.
휴대폰 같은 단말기 화면으로만 보다가 창으로 보니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이게 바로⋯⋯ 21세기의 오버 테크놀로지?
사람은 오래된 것, 물건은 새것을 쓰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이렇게 엄청난 거 보니까.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신나게 단말기 기능을 살펴보았다.
손가락테크닉이 떡하니 1등에 올라가 있는 세계 랭킹 창, 마찬가지로 손가락테크닉이 1등인 국내 랭킹 창, 그 외에 마켓이나 전화 창 같은 거.
“대기 번호 6번 각성자님, 이쪽으로 오세요.”
한참 동안 단말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붉은 구슬이 박혀 있는 샌드백 앞에 서게 되었다.
“각성자의 첫 랭크는 첫 공격으로 정해지게 됩니다. 특수 특성 소지자에게도 변함없는 원칙이니 특수 특성 소지자일 경우에는 일단 F를 받으신 후, 따로 심사를 요청하셔야 합니다. 각성자님은 특성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전기요.”
“네. 따로 심사를 요청하실 필요는 없겠네요. 그럼 이제 있는 힘껏 샌드백을 공격해 주세요.”
담당 직원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설명을 마쳤다.
충격을 흡수하는 붉은 구슬이 일정한 속도로 깜빡이는 빛을 냈다.
손가락테크닉의 능력으로 잘 알려진 신체 강화나 불 능력이라곤 밝힐 수 없어 전기라고 했지만, 이거 랭크가 ?인데 잘못해서 S 뜨면 어쩌지?
나는 특성이 세 가지나 있었지만, 내 고유 특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처음에 얻은 신체 강화 하나였다.
나머지 두 개는 특급 게이트에서 군단장을 죽이고 얻은 왕의 권능이다.
그 군단장이 군단장의 증표로서 왕에게 하사받은 걸 빼앗은 거지.
색욕왕의 화형은 손가락테크닉으로 열심히 썼으니 남은 건 분노왕의 추락밖에 없다.
상세 설명 들어가면,
<그러자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진 것을 보았다.”>
밖에 안 나오는 아아아아주 불편한 특성이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마 내가 밝힐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니까.
다른 군단장을 잡으면 새 특성을 얻을 법도 하지만, 특급 게이트라는 게 흔하게 열리는 게 아니다.
또, 군단장을 잡는다고 반드시 특성을 얻는 것도 아니고.
교만왕의 군단장 ‘찬송’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쓰던 무기를 떨궜다. 그거 내가 지금도 아주 잘 쓰고 있지.
몬스터를 상대로 쓰는 게 아니라 샌드백을 향해 쓰는 거라 그런지 몹시 떨렸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샌드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깜찍 큐티 아기 토끼에게 묻은 실밥을 태워 주는 거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힘을 최대한 빼야 했다.
그저 분노왕이 추락을 하사한 군단장 ‘마스테마’가 분노왕의 신임을 받지 못한 군단장이길 바랄 수밖에⋯⋯.
그래서 쓰레기 같은 권능을 하사했길 바랄 수밖에⋯⋯.
콰지직-!!
하지만 간절히 빌면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샌드백은 내 손끝이 톡 닿자마자 한 줌의 재로 화했다.
정전기인 것처럼 반짝하고 빛났는데, 결과는 참 처참했다.
와, 누가 보면 이 능력이 남을 재로 만드는 건 줄 알겠어.
귓가에 띠리리링 소리가 들렸다. 재가 된 샌드백을 보는 헌터 협회 직원의 표정이 허망했다.
눈앞으로 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랭크 측정치>
화력: S++
제어: E
한계치: ?
합계: S]
[세계 랭킹을 판정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국내 랭킹을 판정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추정 랭킹 판정>
닉네임: 우연
랭크: S
추정 세계 랭킹: 14위
추정 국내 랭킹: 5위]
[던전 정보가 없습니다. 랭킹이 하락합니다.]
[웨이브 정보가 없습니다. 랭킹이 하락합니다.]
[영향력 정보가 없습니다. 랭킹이 하락합니다.]
[<최종 랭킹 판정>
닉네임: 우연
랭크: S
최종 세계 랭킹: 권외
최종 국내 랭킹: 35위]
[랭킹 판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커뮤니티 시스템이 개방되었습니다.]
[길드 시스템이 개방되었습니다.]
[던전 기록 시스템이 개방되었습니다.]
[의뢰 시스템이 개방되었습니다.]
⋯⋯
수없이 많은 시스템 개방 알림이 떠올랐다.
나는 S++가 아닌 S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추정 랭킹 보니까 좀 아슬아슬했나 본데, 그래도 S니까 다행이다. 마음 같아서는 A였으면 한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랭킹 변동 소식이 국내 모든 헌터에게 돌아갔는지 밖이 소란스러웠다.
나는 쏟아지는 메신저에 질색하며 팔찌를 뺐다.
조용한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건 마포구 노래방 마스터 예솔이도 몰랐을 것이다.